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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 산책 <6> 시인의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만난 반구대암각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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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2월11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1년12월09일 12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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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 시편]들에 대하여   

                                     

영국의 BBC 방송이 인류 최초의 포경인은 한국인들이라고 밝힌바 있었다. 이 방송은 "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벌써 6000년 전께부터 고래사냥을 시작한 사실을 일러주고 있다"고 하면서, 이 암각화에는 참고래, 혹등고래, 향유고래 등 큰 고래 46마리 이상이 그려져 있으며, 선사 인류가 고래를 잡기 위해 부구(浮具)와 낚시줄을 사용한 증거가 있다고 리포트한 바가 있다. 

 

유럽의 근대 포경산업이 크게 번성했던 것이 200년 남짓하다. 그런데, 단군신화 이전인 6000여 년 전 이 땅의 석기인들이 고래잡이 배(그러니까 포경선 !)를 만들어 타고 고래잡이에 나섰다는 사실을 반구대 암각화가 일러주고 있다.

 

단군신화 이전, 한반도 울산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고래잡이 배(포경선)를 만들 수 있는 조선술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이 지녔었을 꿈과 소망을 바위 벽면을 돌로 두드려서 반구대 암각화를 그렸다. 그들이 돌로 돌을 두드려(쇠로 그린 것이 아니다!) 그린 그림 300여점이 이 산의 바위 벽면에 그려져 있다. 반구대암각화가 새겨진 바위 면은 엎드린 거북 모양(盤龜臺)의 산 앞 바위 벼랑에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거북모양 산 바위 벼랑에 그려진 암각 도형들을 반구대암각화라 부른다.

그리고, 아래 사진의 고래잡이 배가 인류 최초의 포경인들이 고래잡이 때 썼던 포경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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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반구대암각화에 새겨져 있는 고래잡이 배. 단군신화 이전, 이 땅의 석기인들이 고래잡이 배를 만들 정도의 조선술을 지닌 문명인 들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세계적 문화재가 장마나 태풍때 물에 잠기기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이 암각화의 보존과 가치 홍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2010년 시집 [반구대암각화 앞에서]를 간행한 바 있다. 시인의 감각과 직관, 그리고 영감과 상상력으로 선사인들이 남겨준 그림 도형 하나 하나와 소통의 길을 트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옛 선인들이 남긴 위대한 그림 도형들은 시인의 감각과 영감으로 불러내는 시 창작 작업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234-1번지로 지번이 나와 있는 반구대암각화를 처음 찾아간 것은 1999년 11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늦가을 인적도 끊긴 산굽이 길을 걸어 들어가 반구대암각화 앞에 섰을 때, 가슴이 심하게 뛰고 있었다. 암각화는 100m 쯤 되는 물 건너 쪽 산벼랑 돌 벽에 새겨져 있었고, 물 건너 벽면은 가을비에 가려져 구체적 형상들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나는 그날 혼미한 정신이 되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충격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물 건너 암각화 쪽에서 울려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몇 사람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환청이었겠지만, 그 목소리는 나를 부르고 있었고, 100m쯤 되는 건너편 암각화에서 울려나오고 있었다.

 

여기 와서 시력을 찾는다.

여기 와서 청력을 회복한다.

잘 보인다. 아주 잘 들린다.

고추잠자리까지, 풀메뚜기까지

다 보인다. 아주 잘 보인다.

풍문이 아니라, 설화가 아니라 

만져진다, 손끝에 닿는다. 

6천여 년 전, 포경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간 사람들,

작살을 던져 큰 고래를 사냥한,

방책을 만들어 가축을 기른,

종교 의례를 이끈,

이 땅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숨결로

온다, 와서 손을 잡는다.

피가 도는 손으로 손을 덥석 잡는다.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서 오라고, 반갑다고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한반도 역사의 처음이

선연한 햇살 속에 열린다.

여기가 처음부터 복판이었다고,

가슴 펴고 세계로 가는 출발지였다고,

반구대암각화가 일러주고 있다.

신령스런 벼랑이 일러주고 있다.

눈이 밝아진다.

귀가 맑아진다.

잘 보인다. 아주 잘 들린다.


- 이건청 「암각화를 위하여」 전문

 

 그 후로도 종종 내가 반구대암각화를 찾아가 건너편을 건너다보고 있으면 아주 심한 전율에 휩싸이곤 했었다. 그것은 6천 여 년 전 바위를 갈고 쪼아 암각화를 만든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만든 암각 도형들이 제각기 살아나서 내게 다가서곤 했었기 때문이었다.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 그림을 보면 돌고래, 향고래, 솔피, 큰고래, 혹등고래, 수염고래 등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고래의 생태를 보여주는 그림들과 고래 사냥 모습, 그 외에도 사슴, 호랑이, 멧돼지 등 뭍짐승들과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도구들도 그려져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까마득한 시간을 건너오면서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오시게, 반갑네” 석기시대 사람들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에 젖어 들어가며 암각화에 귀를 기울이곤 했었다.

 

 단군신화 이전, 울산 일원에 살았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의 시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나는 시간만 나면 울산으로 달려갔고, 며칠씩 머물면서 암각화 앞에 하염없이 서 있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바위 면에 새겨진 각각의 도형들과도 깊은 교감을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열흘씩, 일주일씩 울산 강동해안 한적한 여숙에 머물면서 노트북 컴퓨터를 켜곤 했었다. 가을이 깊어지고, 눈발이 흩날리는 날, 방문객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그런 날, 나는 반구대암각화 앞에 서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암각화에 관한 서적과 영상물들을 수집해 보기도 했었다. 

 


당신들은 고래를 잡았다.

당신들이 탄 배 보다도

열 배, 스무 배 큰 고래를

당신들이 잡았다.

당신들의 동굴에서

바람부는 움집에서 기다리는 

배고픈 아내와 

아들과 딸과 이웃들에게

고래를 끌고 간다.

물에 띄워 끌고 간다.

당신들이 만든 부구에 매달아

고래를 물 위에 띄우고

끌고 가는 구나,

고래를 바다에 띄운

저 부구를 보아라,

저 부구를 만든 사람들의

예지를 보아라,

과학을 보아라,     

당신들은 고래를 잡았다.

당신들이 바닷물에\띄운 고래를\배로 끌고 돌아온다.

가볍게 가볍게 돌아온다.


 - 이건청 「부구」 전문

 

부구(浮具)는 어떤 물건을 바다 위로 띄워 올리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큰 고래를 사냥한 사람들이 고래잡이배와 고래가 부딪는 충격을 완화시키고, 고래를 물 위에 띄우기 위하여 커다란 가죽주머니에 공기를 채워 부구를 만들어 썼음을 보여주는 도형이 새겨져 있다. 지금은 사냥한 고래의 몸통에 공기를 주입시켜 고래를 물 위에 띄워 올리지만 불과 50~60년 전까지만 해도 ‘부구’를 사용해 고래몸통을 물 위에 띄워 올렸었다. 이 땅에 살았던 석기시대 사람들이 조선술은 물론 고래잡이 창을 만들어 썼으며, 부구까지 만들어 썼음을 알 수 있다. 상당한 수준의 문명집단이 울산 일원에 살았음을 반증해주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반구대암각화를 찾아다니기 5년 쯤 나는, 60 여 편쯤의 시를 쓰게 되었다. 이렇게 쓴 시편들이 시집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동학사. 2010)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이 시집에는 반구대암각화의 도형들 사진이 시와 함께 수록되었다. 울산의 사진예술가 서진길씨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실제 반구대암각화의 도형들이 시와 함께 실려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시집이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우리나라 최초의 작품집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집이 제3회 목월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선정되는 기쁨을 내게 안겨주게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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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좌로부터)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암각화를 발견한 문명대 교수, 반구대암각화의 문학성을 시집 [반구대암각화 앞에서]로추구해 보여주고 있는 이건청 공동위원장, '반구대 포럼'을 이끌어주었던 이달희 교수.(사진 2017)

 

 근래 들어 반구대암각화 문제는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라 있다. 세계적 문화유산인 반구대암각화가 일 년 중 상당기간을 물속에 잠기기를 반복하면서 심하게 훼손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 암각화의 보존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반구대암각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반구대포럼」을 만들어 보존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시인의 눈과 귀로 접한 반구대암각화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으로 발견될 수 있는 위대한 자산이다. 몇 천 년 전의 사람들이 그들의 꿈을 담아 안고 현세의 우리를 부르고 있다. 손을 흔들고 있다. 우라늄 원석같은 힘을 지닌 도형들이 소통의 길이 열리기를 고대하고 있다. 감수성과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을 손짓해 부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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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반구대암각화 앞에서 매년 펼쳐지는 '반구대 축제'. 현지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선사인들의 제례 의식을 재현한다.

 

※부기: 반구대암각화에서 1.6km쯤 거리에 천전리 암각화도 있다. 이 두 개의 암각화를 합쳐 [대곡천 암각화]라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위대한 유산이 세계 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들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암각 유산들이 매년 물속에 잠길 수밖에 없는 수난을 겪고 있다. 암각화가 있는 하류에 사연댐이 있다. 사연댐은 암각화가 발견되기 전에 울산 시민들의 식수원 조달을 위해 건립된 것이다. 사연댐은 자체적으로 수위조절을 할 수 없는 ‘물가둠’ 전용으로 만든 것이어서 상류 계곡에 많은 비가 내리면 수위조절 기능이 없는 사연댐에 물이 차올라 암각화부분이 장기간 물에 잠기곤 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한 타결안이 도출되지 못하고 있다. 직접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혀있는 지자체에 문제해결을 맡겨두면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중앙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가 조속이 해결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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