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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위헌성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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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9월06일 10시14분

작성자

  • 나승철
  • 법률사무소 리만 대표변호사, 前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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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언론중재법에 대해서는 여러 건의 개정안이 제출됐고 최종적으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제안한 대안(의안번호 12222)으로 정리가 됐다. 이 개정안은 위헌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여러 보완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개정안 중 제30조의 2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위헌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1. 공적인물 이론의 부당한 축소

 

(1) 언론의 자유를 넓히는 법리 중에는 “공적인물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서 공무원, 공직자, 유명인에 대해서는 폭넓은 비판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아래와 같이 공적인물 이론을 도입하여 언론의 자유를 확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공적인물이란 공직자 혹은 공무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는 작가, 연예인, 운동선수 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6도14995 판결>

 

공론의 장에 나선 전면적 공적 인물의 경우에는 비판과 의혹의 제기를 감수해야 하고 그러한 비판과 의혹에 대해서는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서 이를 극복해야 하며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문제된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ㆍ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경우에는 이와 달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 또는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발언으로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더라도, 발언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그 발언은 여전히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 ​

 

 (2)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 2 제3항은 공직자윤리법 제10조 제1항부터 제12호까지에 해당하는 사람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대법원 판례에서 말하는 공적인물 이론을 규정하여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규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다. 바로 공직자윤리법 제10조 제13호이다. 공직자윤리법 제10조 제13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람은 “제1호부터 제12호까지의 직(職)에서 퇴직한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전직 대통령, 전직 장관 등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 전직 장관 등에 대한 보도가 허위·조작보도인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대상인 것이다. 

 

(3) 기존의 공적인물 이론에 의하면 이들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의 인정범위가 축소되고 폭넓은 비판이 허용되어 왔다. 그러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오히려 전직 대통령, 전직 장관 등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존의 공적인물 이론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우리 사회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전직 대통령, 전직 장관 등에 대한 비판을 제한해야 할 어떠한 근거도 발견할 수 없다. 

 

(4) 게다가 개정안은 위에서 본 것처럼 전직 공무원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면서도 대기업 및 그 주요주주, 임원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주요주주, 임원들은 일반 국민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사회적 영향력도 전직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에 비해 훨씬 적다. 사회적 영향력과 언론에 의한 비판의 범위는 비례해야 한다. 그런데 위 개정안은 그 비례관계가 깨져있다. 전직 공무원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시키고, 대기업의 주요주주, 임원들의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의도가 심히 의심스러운 규정이다. 개정안 제30조의 2 제3항은 이번 개정안 중 가장 위헌성이 높은 조항으로 보인다.

 

2. 고의·중과실 추정의 문제

 

(1) 언론보도에 의한 명예훼손은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된다. 그리고 불법행위에서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칙적으로 피해를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 2 제2항은 일정한 경우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래는 언론보도의 대상으로서 피해를 주장하는 자가 언론사의 고의·과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언론중재법은 일단 언론사에게 고의·중과실이 있다고 보고, 언론사로 하여금 고의·중과실이 “없음”을 입증하도록 한 것이다. 즉, 입증책임을 언론사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리고 고의·중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손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시킬 수 있다. 물론 입증책임 전환 자체는 다른 개별 법률에서도 이미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입증책임을 전환했다는 것만으로 위헌으로 볼 수 없다. 헌법재판소 1998. 5. 28. 선고 96헌가4 결정도 입증책임의 전환은 위험책임의 원리에 따른 것으로서 입법자의 재량에 속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2) 문제는 언론사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위험책임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헌법재판소 1998. 5. 28. 선고 96헌가4 결정의 해당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헌법재판소 1998. 5. 28. 선고 96헌가4 결정>

 

“우리 민법은 헌법 제119조 제1항의 자유시장 경제질서에서 파생된 과실책임의 원칙을 일반불법행위에 관한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 그런데, 현대산업사회에서는 고속교통수단, 광업 및 원자력산업 등의 위험원(危險源)이 발달하고 산업재해 및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증가함에 따라, 헌법이념의 하나인 사회국가원리의 실현을 위하여 과실책임의 원리를 수정하여 위험원을 지배하는 자로 하여금 그 위험이 현실화된 경우의 손해를 부담하게 하는 위험책임의 원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위험책임의 원리는 위험원의 지배를 책임의 근거로 하여 위험을 지배하는 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원리로서 단순한 결과책임주의와는 다른 것이다...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이념에 비추어 일반불법행위책임에 관하여는 과실책임의 원리를 기본원칙으로 하면서 이 사건 법률조항과 같은 특수한 불법행위책임에 관하여 위험책임의 원리를 수용하는 것은 입법정책에 관한 사항으로서 입법자의 재량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3) 헌법재판소는 모든 입증책임 전환을 합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지배하는 자”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입증책임 전환을 합헌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위험원은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 즉, 언론이 어떤 사람에 대한 보도를 할 때, 그러한 보도의 진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 그것은 대부분 보도의 대상이 된 사람이다. 언론사는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기사를 쓰지만, 보도 대상자는 보도된 사안과 관련하여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언론사는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위험원을 지배하는 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언론사에게 입증책임을 부과시키는 개정안 제30조의 2 제2항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하더라도 입증책임 전환이 허용되는 경우가 아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역시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 사건’에서 언론보도의 대상이 된 공직자가 언론 보도에 대해 ‘현실적 악의’가 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판결하여 입증책임을 언론사가 아닌 공직자에게 부과시켰다.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정반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위험원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 언론사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한 개정안은 헌법 제119조 제1항의 자유시장 경제질서에서 파생된 과실책임의 원칙에 위반된다. 

 

3. 명확성 원칙의 위반

 

(1)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지켜야 할 원칙으로서 ‘명확성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 1998. 4. 30. 선고 95헌가16 결정은 아래와 같이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명확성 원칙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1998. 4. 30. 선고 95헌가16 결정>

 

“법치국가원리의 한 표현인 명확성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모든 기본권제한입법에 대하여 요구된다. 규범의 의미내용으로부터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를 수범자가 알 수 없다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은 확보될 수 없게 될 것이고, 또한 법집행 당국에 의한 자의적 집행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입법에 있어서 이러한 명확성의 원칙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수행하는 역할과 기능에 비추어 볼 때, 불명확한 규범에 의한 표현의 자유의 규제는 헌법상 보호받는 표현에 대한 위축적 효과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금지되는 표현인지가 불명확한 경우에는,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표현이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기본권주체는-형벌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자 하는 강한 신념을 가진 경우를 제외하고-대체로 규제를 받을 것을 우려해서 표현행위를 스스로 억제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그 규제로 인해 보호되는 다른 표현에 대하여 위축적 효과가 미치지 않도록 규제되는 표현의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것이 헌법적으로 요구된다.”​

 

(2) 그런데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을 규정한 개정안 제30조의 2는 어떤 경우가 허위·조작보도에 해당되어 징벌적 손해배상의 경우에 해당되는지, 어떤 경우에 면책이 되는지 너무나 불명확하다.

 

(3) 먼저 허위·조작보도의 개념부터가 불명확하다. 개정안 제2조 17의 3은, “허위·조작보도”를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뒷부분의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는 허위사실인가, 아니면 진실한 사실인가? 만약에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가 허위사실을 의미한다면 이는 그 앞의 “허위의 사실”과 중복되므로 불필요한 정의 규정이다.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가 진실한 사실을 의미한다면, 진실한 사실에 대해 왜 징벌적 손해배상, 고의·중과실 추정 등 불이익을 가중하는 것인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결국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라는 표현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범위를 “허위사실”보다 더 넓히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예측할 수 없다.

 

(4) 게다가 징벌적 손해배상의 면제를 규정한 개정안 제30조의 2 제4항은 더욱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개정안 제30조의 2 제4항은 “공공복리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언론보도 등으로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로 제3호에서 “공적인 관심사와 관련한 사항으로...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언론보도”를 들고 있다. “공적인 관심사와 관련한 사항으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과연 어떤 경우일까? 허위보도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 거꾸로 언론 보도 중에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경우는 또 얼마나 있을까?

 

(5) 결국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 2에 의하면, 어떤 경우가 허위·조작보도에 해당되는지 예측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 면책되는지도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경우 헌법재판소 결정의 표현 그대로 “무엇이 금지되는 표현인지가 불명확한 경우에는,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표현이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기본권주체는 대체로 규제를 받을 것을 우려해서 표현행위를 스스로 억제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4. 결론

 

우리나라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규정이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언론의 책임을 강화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게다가 개정안은 여기저기 흠결이 보이며 심지어 위헌성까지 있다. 개정안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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