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론, 이재용에게 오히려 해롭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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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에 대한 국민 인식 나빠 … 이건희 사면으로 삼성공화국론 부상
특권 탈피라는 이재용 이미지도 갉아먹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赦免)론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위기론과 함께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 얘기다.
"한국 경제를 위해 이 부회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한다. "세계 각국이 반도체산업을 키우겠다고 나서고 있어 한국이 언제 ‘반도체 강국’ 자리를 뺏길지 몰라서"라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이 부회장이 하루빨리 경영을 진두지휘해야”하므로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면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2년6개월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2018년의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기 이전 징역형을 살았던 걸 포함하면 내년 7월 말까지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 사면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오는 8월 광복절 특사에 포함돼야 한다고 한다.
사면론은 일리 있다. 우선 삼성전자를 둘러싼 현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다. 특히 반도체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전쟁 우려다. 미국이 반도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지난 12일 미국의 ‘글로벌 화상 반도체 대책회의'가 단적인 예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 등 반도체 생산 및 수요 기업 19개 기업을 모은 자리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석해 '반도체 돌격'을 선언했다.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는 중국을 저지하겠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반도체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물자로 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사실 공격은 진작 시작됐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만드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네덜란드 ASML이 유일하다. 미국은 ASML이 이 장비를 중국 SMIC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ASML은 저항했지만 버티지 못했다. 중국에 유입된 EUV 장비는 전무하다.
삼성전자가 난처해졌다.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한 생산기지이자 판매처다. 가령 파운드리 공장은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운영 중이다. 최근 20조 원을 들여 증설을 추진 중이다. 중국에도 시안과 쑤저우에 각각 낸드플래시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이 있다. 게다가 중국은 우리나라 반도체 최대 수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국가가 모두 자기편을 들 것을 강요한다면? 중국도 미국처럼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추가 확충하겠다며 대규모 투자를 삼성전자에 요구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이 부회장의 구속에 따른 삼성의 리더십 부재가 안타까운 이유다. 하긴 삼성의 위기론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 이 부회장이 구속되자 일본경제신문은 삼성 관련기사를 시리즈로 연재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대기업 삼성, 중국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는 기사였다. 삼성은 리더십 부재 상태에 빠졌고, 그룹의 향방이 안개 속에 빠졌다고 했다.
하긴 리더십 부재에 따른 위기론은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한국은 오너경영체제다. 오너가 없으면 잘 돌아가지 않는 재벌체제다. 그중에서도 삼성은 국내 최대 재벌이니 이 부회장의 부재는 삼성과 한국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 사면론이 일리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사면론은 이 부회장과 삼성에 득(得)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害)가 될 게다. 당장은 좋겠지만 길게 보면 나쁜 영향을 미친다. 왜냐? 사면론은 네 가지 점에서 잘못됐다.
첫째는 시기다. 이 부회장에 대한 긍정적인 뉴스들이 나오고 있는 시점이다. 그는 3월 중순 배가 아픈데도 진료를 받지 않고 참았다고 한다. “특혜를 받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중에 병원으로 옮겨져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여론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4월15일 병원에서 퇴원해 서울구치소로 복귀할 때도 그랬다. 병원은 더 입원해야 한다고 연장을 권했지만 그는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구치소로 복귀했다고 한다.
여론은 긍정적이었다. 다른 재벌 오너들과 180도 다른 모습이이 신선하게 비쳐졌다.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갈 때 없던 병이 새로 생겨 휠체어를 타고 출두하는 재벌 오너들이 많았다. 수감되면 병보석을 신청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부회장의 ’특권 거부‘모습이 국민들의 호감을 싸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면론이 제기됐다. 찬물을 끼얹었다.
둘째는 사면론의 주체다. 손 회장은 이 부회장과 친척이다. 이 부회장의 큰 아버지(이맹희)의 처남이다. 친척이 제기하는 사면론은 부정적이기 쉽다. 친척이 아니라 경총 회장의 신분으로 얘기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물론 경제단체장들이 공동으로 사면을 건의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이 부회장에 대한 호감도를 깎아먹을 게다. 재계는 기업인들의 방면과 사면을 습관적으로 주창하기 때문이다.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 재계가 주장하는 재계 인사 사면론은 역효과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사면의 역사다. 사실 이게 오늘 필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다. 그의 선친인 고(故) 이건희 회장이 정치자금이나 뇌물 제공 등의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건 세 번이다. 첫 번째가 노태우 정부 시절 노 대통령에게 갖다 준 250억 원의 뇌물이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이건희 회장이 기소됐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구속은 면했다.
그 다음은 2007년 10월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사건으로 인한 수사다. 김 변호사는 삼성과 이 회장이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 돈으로 불법 로비와 뇌물 공여를 했다고 주장했다. 자녀 승계를 위한 불법행위와 증거 조작도 같이 폭로했다.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하지만 검찰(특검)은 불법 증여와 탈세만 기소했다. 비자금 조성과 불법 정치자금 제공 등은 무혐의 처리했다. 이 회장은 2008년 7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선고를 받았다. 또 구속을 면했다.
마지막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이다. 지난해 10월 이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실소유주인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DAS)가 미국의 투자자문업체인 BBK에 투자했다가 받지 못한 돈(140억 원)이 있었다. 이 돈을 받기 위해 다스는 미국에서 투자금 반환소송을 제기했고, 미국 로펌이 소송을 대행했다. 그런데 이 대행료 89억 원을 다스가 아닌, 삼성이 2008~2011년 중 대신 내줬다는 거다. 돈을 받은 이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았으니 돈을 준 이 회장 역시 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 회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이 기소된 건 2018년이었는데, 이 회장은 2014년 5월에 쓰러져 내내 병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정리해보자. 이 회장이 기소되고 형을 선고받은 건 두 번이다. 그런데 이 회장은 모두 사면 받았다.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은 1심 선고 후 1년 1개월이 지난 1997년 9월 30일 특별사면을 받았다.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두 번째 사건에선 선고 4개월 후인 2009년 12월 혼자만 특별사면을 받았다. 단독 특별사면이다.
첫 번째 사면도 논란이 많았지만 여론의 질타를 받은 건 두 번째 사면이다. 이 사면은 결국 세 번째 사건의 단초가 된다. 이 회장을 단독 사면할 당시 정부는 그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위원으로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노력해야 해서 사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8년 4월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하면서 밝힌 내용은 정반대다. 삼성이 다스의 소송 대행료를 대신 내준 건 2009년의 단독 사면의 대가라는 것이었다. 당시 삼성의 2인자였던 이학수 삼성 부회장이 그렇게 진술했으니 사실이지 싶다. 만약 이 회장이 2018년 병상에 누워있지 않았다면 아마 이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됐을 게다. 2009년의 특별사면이 정권 교체와 함께 독약으로 작동했을 거다.
이 부회장의 사면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게다가 삼성은 오너 뿐만 아니라 전문경영인들도 사면이 일상화돼있다.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대부분 사면을 받는다. 삼성이 나라를 주무른다는 '삼성공화국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이 부회장이 이번에 사면을 받으면 또다시 '삼성공화국론'과 같은 부정적인 여론이 일어날 게 틀림없다.
오히려 만기까지 형을 사는 게 이 부회장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을 수 있다. 그는 앞으로 경영 일선에서 활동할 날이 매우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면 내년 7월까지 1년 3개월은 짧은 세월이다. 사실 이 부회장의 리더십은 탄탄하지 않다. “아버지 잘 만나서 오너가 됐을 뿐”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경영 능력에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게 그가 창업한 e-삼성의 실패이기도 하다. 성공의 기억이 없으니 리더십은 튼튼할 수가 없다. 이 부회장의 수감 생활은 리더십 강화에 도움이 될 거다.
이제 결론이다. 사면론은 이 부회장이 애써 쌓아 놓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무너뜨리고,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은 해소시키지 못할 게다. 사면론이 이 부회장과 삼성에 독약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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