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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감시견으로 돌아와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4월06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1년04월07일 10시17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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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는 4마리 개가 살고 있다. 감시견, 애완견, 공격견, 보호견 등이 바로 그들이다. 감시견은 말 그대로 지키고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정권의 부정부패 부도덕을 감시하는 임무다. 언론을 일컬어 ‘무관의 제왕’ 또는 ‘제 4부’라는 등의 향기로운 관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 경영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언론사 수입의 대부분은 광고에서 온다. 따라서 광고주인 대기업과 정부, 지자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언론은 감시견에서 광고주의 비위를 의식하는 애완견으로 전락하게 된다.

 

무조건 짖는 개도 있다. 이른바 공격견이다. 주로 선거국면에서 나타난다. 언론사마다 내심 지지하는 후보도 있고 싫어하는 후보도 있게 된다. 이 경우 싫어하는 후보에 대해 일방적으로 맹공을 퍼붓는 경우를 공격견이라고 한다. 트럼프에 대한 뉴욕타임스나 CNN의 보도태도가 해당된다. 역으로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 대한 FOX-TV의 날선 비판도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보호견이 있다. 국가나 사회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면 으르렁대던 상황을 잠시 제쳐두고 체제를 보호하려는 본능(Status Quo)이 나타나게 된다.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피격사건이 발생하면 보수, 진보를 떠나 언론이 한목소리로 나라를 걱정하게 되는 경우가 예가 된다. 

 

예를 든 언론의 4마리 개 모델( four dog model of the press)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네 마리 개 중에서 중심은 감시견이다. 아파트에서 아무리 애완견으로 키워지더라도 한밤에 낯선 이가 침입하면 본능적으로 짖어대는 짐승이 개다. 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늑대에 대항하는 사례는 전혀 새롭지 않다. 키워보면 안다.

 

이처럼 감시견은 개를 개답게 하는 기본이 된다. 따라서 언론은 기본적으로 정권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서로가 피해를 주거나 양자가 추구하는 목표가 다른 것은 아니다. 양측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업무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반면에 언론은 절차의 중요성을 따지게 된다. 그래서 견제가 필요한 것이다. 적대적인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은 언론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한국 언론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정권에서 임명하는 관영매체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공영인 KBS는 차치하고라도 MBC, EBS, YTN, K-TV, TBS, 연합뉴스, 교통방송, 서울신문, 연합뉴스TV, 아리랑TV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유례가 없는 수많은 관영매체가 존재한다. 이들 언론사의 경영진은 청와대 낙하산으로 온 인사들이다. 정권의 비리를 파헤치는 감시견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다. 현재 이들 언론의 보도태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문재인 정권처럼 대놓고 언론을 프로파간다 도구로 이용하는 정권은 없었다. 진영 내에서도 가장 극단에 서 있는 자칭 논객, 개그맨 등에게 아예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을 주고 있다. 전두환 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아예 노골적이다. 교통방송(TBS)이 교통정보 보다는 문 정권 지킴이로 올인하고 있다. 비판의 소리에는 “방송독립 침해”라고 되레 호통을 친다. 김어준 같은 지극히 정파적인 인사가 공영방송을 진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황당하다. 문정권의 특기는 내편 네편 갈라치기, 막무가내 우기는 프레임이다. 검찰장악을 검찰개혁으로, 성추행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다. 이 과정에서 이들 언론들이 동원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친정부 언론의 영향력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이제 국민 대부분이 이들 언론의 정체를 안다. 그래서 그동안 갈라치기로 본 재미가 더 이상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단골로 써먹던 편가르기식 프레임 전술만으로는 상황을 조작하기 힘들어진 상황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드라마 ‘조선구마사’ 파동이다. 문 정권의 극단적인 친중 저자세와 남북이벤트, 반일공세는 이제 약발이 다했다. 언론을 이용한 엄청난 프로파간다 공세에도 불구하고 반중정서는 팽배해졌다. 지구상에서 가장 퇴보한 전체주의 국가 중국의 실상을 누구나 안다. 김치, 한복, 윤동주 등등으로 설명되는 중국 공산당 정권의 동북공정에 국민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아무리 언론을 동원한들 문정권이 더 이상 친중행보를 하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오매불망 그토록 공을 들이던 남북이벤트도, 궁할 때마다 꺼내던 반일프레임도 쑥 들어갔다. 바이든 정부가 연일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출범이후 내내 들리던 토착왜구 소리도 최근 들어 잦아졌다. 문정권의 레임덕 현상은 이제 눈에 띄게 뚜렷해지고 있다.

 

지금쯤 한국 언론은 반성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비록 경영진은 청와대를 바라보더라도 현장 언론인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 균형감각을 잃은 일방적인 정권 프로파간다는 심각한 역효과를 낳게 된다. 언론불신과 기레기라는 모욕적인 표현에서 벗어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적대적이고도 긴장감이 있는 언론과 정권과의 관계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은 인류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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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4월06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1년04월07일 10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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