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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콤플랙스를 버려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11월30일 17시10분

작성자

  • 박희준
  •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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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


대부분의 국가는 경제, 교육, 환경, 보건 문제 등 모든 영역에서 정책의 진공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정부가 모든 문제를 통합하고 우선순위를 부여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를 바꾸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 ‘구세주 콤플렉스’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시장의 혼란과 갈등은 정치 지도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대부분의 정치 체제와 제도는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제도다. 시대착오적인 제도에서 비롯된 끊임없는 권력 투쟁과 책임 회피는 지속적으로 갈등을 만들어 내며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키고 있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1791년에 미국 의회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미합중국 헌법에 권리장전을 덧붙인 헌법 수정안을 통과시킨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 받는 권리장전을 설계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십계명을 새긴 석판을 대하는 신성한 경외심으로 국민 대부분이 헌법을 보았기에 헌법은 수정해서는 안 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헌법을 제정한 이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현자로 여겨졌으며 그들이 설계한 헌법은 수정될 여지가 없다고 믿었다. 헌법이나 법률이 충분한 심의와 국민적 합의 없이 수정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헌법이나 법률은 새로운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야 한다.”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회귀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틀을 찾아내야 한다.

 

새로운 제도의 틀을 제시하지 못한 채로 위기가 지속된다면, 국민의 자유를 독재자에게 헌납하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히틀러나 스탈린 신봉자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더 큰 힘을 얻게 될 지도 모른다. 주어진 자유를 일부 포기하더라도 사회의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과거의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면 대중들은 기꺼이 독재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전체주의를 통한 능률적인 정부에 대한 기대는 전체주의 사회의 나태, 부패, 무책임에 대한 실망감으로 바뀔 것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여론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국민들이 공유하고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관이 상실된 것이다. 이제 국가는 사안 별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수많은 집단들의 합체일 뿐이다. 여론은 붕괴되고 있으며, 국가의 입법 기관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다양성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가가 선거구에서 발생하는 유권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읽어내고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선거구를 대표하는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경험하고 있는 혼란은 정치인과 정부 때문이 아니라 대의(代議)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일 지도 모른다.

 

산업화 이후 대부분 국가의 정치체제는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를 지향했지만, 사회의 다양성이 증폭되면서 다수파에 의해 운영되는 정부가 존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부분의 정부는 소수파에 의해 운영되면서 불안한 연합체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어떠한 정당도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과반 이상의 여론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화와 함께 등장한 대중 사회는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IT를 기반으로 새로운 선거 틀을 마련해야


대중 사회에서 다수결 원칙의 결함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시되어 온 것은 소수파가 기존의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이념과 사고방식 그리고 이해관계가 미묘하게 얽힘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소수파에 속해 있는 현재 사회에서 기존 체제는 끝없는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사회의 다양성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최소화하고 다양성을 통해 건설적인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하나의 사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진행하기 보다는 여러 개의 사안을 두고 유권자들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 지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타당한 접근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을 지키기 위해 소득세의 인상은 동의할 수 있는 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또한 소수 주주의 권리를 보하기 위해 미국, 영국, 일본의 일부 기업들이 도입하여 운용하고 있는 누적투표 제도도 활용될 수도 있다. 각 유권자에게 후보자의 수와 같은 수의 표를 행사하도록 하고 유권자는 한 후보자에게 표를 몰아 줄 수도 있고 몇 명의 후보자에게 표를 나누어 줄 수도 있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은 선택의 절박함이나 선택의 우선권을 표현할 수 있다. 기존의 투표에 비해 절차의 복잡함으로 비용이 증가하고 부정 투표에 대한 시비가 일 수도 있지만, 진화하는 정보통신기술의 활용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비용을 억제하면서 유권자들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 기반의 레고식 입법기관


산업화 이후 기존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 다수의 여론이 쉽게 형성되던 시대와는 달리 다양한 사안별로 발생하는 다양한 정치적 수요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당구조에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소수파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용이한 레고 형태의 조립식 정당, 즉 상시적인 결합과 해체가 가능한 구조가 타당할 수도 있다.

 

또한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의 입법기구 구성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사형선고와 같은 중대한 사안도 추첨에 의해 구성된 배심원에 의존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부동산 정책과 관련된 입법을 위한 입법 기관의 구성도 일부 추첨에 의해 가능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유권자가 직접 참여해 입법 기관을 구성하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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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1월30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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