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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혼군 #11:3대(代)만에 최강국 전연을 무너뜨린 모용위(L)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10월30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8월17일 14시18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4

본문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 끝으로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56) 이적의 억울한 죽음(AD360)

 

이적은 모용준이 죽을 때 태재 모용각에게 잘 대해 줄 것을 신신 당부했던 사람이었다. 모용각이 황제 모용위에게 이적을 우복야로 삼자고 건의를 올렸는데 황제가 그것을 거부했다.모용각은 그 후로도 여러 번 이적의 중용을 간청하였으나 황제가 거부하면서 말했다.

 

“ 만 가지 국사를 제가 다 숙부께 위임하였으니

  한 가지만이라도 저 모용위가 처리하게 해 주십시오.“

 

이적에게 모용위가 앙심을 품었던 것은 일 년 전 이적이 모용준에게 모용위는 사냥을 너무 좋아하고 음악에 묻혀 사는 것은 좀 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뒤 불평을 가슴속에 깊이 묻어 둔 때문이었다. 황제는 이적을 내보내 장무(하북성 대성)태수로 강등시켰다. 이적은 스스로 깊은 걱정을 하다가 병사하고 말았다.   

 

 

(57) 방사 정진의 이간질(AD361)

 

방사 정진이라는 자가 모용위에게 총애를 받았다. 태재 모용각의 아낌을 받으려고 모용평을 죽이도록 꾀자 모용각이 크게 분노하면서 황제에게 정진을 죽일 것을 상주했다. 모용위는 어쩔 수 없이 아끼는 정진을 죽였다.

 

이년 전 전연의 공격을 받고 하남성 형양으로 도망갔던 고창이 죽자 전연의 하내태수 여호가 군사를 규합하여 동진으로 귀부하여왔다. 동진조정은 여호를 받아주고 기주자사직을 주었다. 여호는 동진의 세력을 몰아서 업을 공략할 계획을 세웠다. AD361년 3월 모용각이 군사 5만을 거느리고 황보진은 1만 명을 이끌고 여호를 토벌하였다. 여호가 웅거하고 있는 야왕(하남성 심양)을 전연군대가 포위했다. 호군장군 부안이 급습작전으로 비용을 절감하자고 제안하자 모용각이 이렇게 말했다.

 

“ 늙은 도적(여호를 말함)은 변고를 많이 당해봤소,  

  그가 수비하는 모양을 보니 쉽게 공격할 것은 아니고

  우리 쪽에 많은 사상자가 날 것 같소.

  여호는 안으로 저축한 것이 별로 없고

  밖으로 구원해 줄 세력도 없으니 

  우리가 깊은 해자를 쌓고 기다린다면 

  100일이면 성이 무너질 것이요.

  아침저녁으로 공을 세우려고 서두를 일은 아니요.“

 

몇 달 뒤 여호가 장수 장흥을 내보내 싸움을 걸어왔다. 부안이 기다리고 있다가 장흥의목을 베었다. 황보진이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 여호가 궁핍해지면 반드시 우리에게 필사적으로 달려 들것이다.

  그 때 빈틈을 노려라.      

  내가 거느린 병사들은 갑옷도 날고 늙고 파리하니 

  반드시 호위를 엄하게 하여 보호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

 

먹을 것이 다 떨어진 여호의 정예 군사들이 모두 야밤을 타고 성 밖으로 나와 황보진 부대의 포위를 뚫고 나가려고 하였다. 기다리고 있던 황보진의 부대가 계획대로 반격하고 또 모용각의 부대까지 호응하자 여호의 정예부대는 전멸했다. 여호는 처자를 버리고 동진이 장악하던 형양으로 달아났다. 모용각이 성 안으로 들어가 남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먹을 것을 공급했으며 살아남은 자들을 모두 업으로 이송했다.(AD361)  전연이 자신의 옛 부하를 잘 포섭하고 있다고 들은 여호는 동진에서 도망나와 또 다시 전연으로 항복해 들어갔다. 전연은 여호를 죽이지 않고 용서하면서 광주(땅이 없는 가상의 주임)자사로 임명했다.

 

한 편 전연에 항복하였던 장평이 평양(산서성 임분)을 습격하여 전연 장수 단강과 한포를 죽였고 또 안문(산서성 대현)을 공격하여 태수 선남을 살해했다. 그런 상황에서 장평이 전진의 공격을 받게 되자 다급해진 나머지 전연에게 구원을 요청했는데 전연이 호응해 줄 까닭이 없었다. 마침내 장평은 전진에게 완전히 토멸 당하고 말았다. 

 


(58) 전연의 낙양 공격과 동진의 낙양천도 계획(AD362)

 

전연의 예주자사 손흥이 낙양 공격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낙양은 장안과 함께 중국 중원의 상징이요 상, 주 및 한나라와 같은 고대 여러 나라의 수도였다. 당시 낙양은 후진이 무너진 뒤로부터 동진의 장수 진우가 형편없는 군사 1천 명으로 수비하고 있었으니 빼앗는다는 말조차하기 힘들 정도로 빈약하고 허술했다. 전연 조정에서는 그곳 지리에 밝은 여호를 파견하고 군사를 하음(낙양 동북쪽)에 주둔시켰다. 3월 전연의 군대가 낙양을 급습하자 하남태수 대시가 완(하남성 남양)으로 도망갔고 진우는 급한 상황을 건강 조정으로 보내왔다. 5월 동진의 환온이 유희와 등하와 수군 3천을 진우에게 보내어 돕도록 했다.

 

환온은 나아가 도읍을 낙양으로 옮길 것과 영가의 난 이후 강남으로 이주해온 모든 백성들을 다시 강북으로 이사시켜 하남지역의 국력을 크게 보강하자고 상소문을 올렸다. 조정의 신료들은 환온이 무서워서 감히 반대의 말을 올리지 못했다. 산기상시인 손작이 반대하고 나섰다,

 

“ 환온이 본 것은 진실로 크게 본 것이며 

  국가를 위한 원대한 계획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옛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이 없는 것은 아니나 

  곧바로 죽음으로 달려가는 길이라서 걱정이 더 큽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먼저 훌륭한 장수를 낙양에 진수시키신 다음에

  청소를 깨끗이 하고 지역을 두루 평정한 다음에

  조운하는 길을 열어놓고 개간을 충분히 하여 

  천하가 소강상태에 들어 간 다음에 

  천천히 천도를 생각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환온이 손작의 상소문이 기쁠 리가 없었다.

 

“ 흥공(손작)에게 내 뜻을 전하는 바이니

  왜 그대는 수초부(손작이 지은 은둔의 시)를 따라 

  은둔생활이나 하실 것이지

  다른 사람의 국사에 참견하려 하는가?“

 

조정에서는 환온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양주자사 왕술이 이렇게 말했다.

 

“ 한온은 조정을 겁주려고 말만 떠벌일 뿐 실제로 일을 벌일 인물이 아닙니다.

  가만 두시면 스스로 그만 둘 것입니다.“

 

그래서 황제가 이런 조서를 환온에게 보냈다.

 

“ 모든 필요한 처분을 그대에게 맡길 것이요.

  다만 황하와 낙양의 터전은 경영할 곳이 실로 넓으니

  경이 두루 보살피고 품어주어야 할 곳이요.“

 

환온은 결국 낙양천도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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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전연의 하남지역 남침(AD362-AD363)

 

7월에 전연의 낙양 공격 책임자 여호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전연의 장수 단숭은 동진의 후원군이 몰려오면 전세가 불리할 것으로 판단하여 군사를 거두어 황하 이북 뒤로 물려 야왕(하남성 심양)에 주둔시켰다. 동진의 장수 등하는 신성(낙양 남쪽)을 장악하고 원진은 여남(하남성 여남)에 주둔했다. 동진 조정은 낙양을 위해 쌀 5만 곡을 공급했다.

다음 해인 AD363년 전연의 녕동장군 모용충(忠)이 동진의 하남 형양태수 유원을 공격하자 유원은 노양(하남 노양)으로 달아났다. 한 달여 뒤 전연이 형양에서 다시 내려와 밀성(하남성 밀현)을 공격하자 유원은 강릉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10월에는 전연의 모용진이 동진의 진류(하남성 진류, 개봉 동쪽)태수 원피를 장평에서 공격했는데 그 틈을 타고 여남태수 주빈이 허창을 공격하여 전연이 크게 패했다. 

 

 

(60) 전연이 회하 이북을 점령하다(AD365)

 

다음 해인 AD364년에도 전연 모용평과 이홍이 대군을 이끌고 황하를 건너 회하 이북 땅을 경략하였다. 4월에 이홍이 허창과 여남을 공격하여 동진 군사를 격파하자 동진 여남태수 주빈과 그 군사들은 수춘까지 물러났고 진류 태수 주보는 팽성(강소성 서주)까지 퇴각했다.  동진 대사마 환온은 원진을 보내 전연 군사를 방어하게 하면서 본인이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합비에 주둔시켰다. 전연은 동진이 머뭇거리는 틈을 타고 내습하여 하남 회북 지역의 허창, 여남, 진군을 모두 장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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