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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재판과 검찰의 증거은폐 의혹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7월28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0년07월29일 10시25분

작성자

  • 나승철
  • 법률사무소 리만 대표변호사, 前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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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6일 오후 2시, 대법원은 이재명 지사에게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던 2심 판결을 파기했다. 파기환송심이 남아 있지만 대법원에서 쟁점에 대해 분명하게 무죄 입장의 법리를 설시(說示)​했기 때문에 이재명 지사의 무죄는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다. 

 

 필자는 이재명 지사 재판의 여러 변호인 중 한명으로 참여를 했다. 2년여의 긴 재판기간에서 필자가 변호인으로서 반드시 기록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장면은 바로 검찰의 친형 녹음파일 제출 거부였다. 참고로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해서는 직권남용 혐의와 허위사실공표혐의 두 가지로 기소가 이루어졌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1심부터 3심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죄가 선고됐고, 대법원에서 판단했던 부분은 허위사실공표 혐의였다.

 

사실 이재명 지사 사건에서 가장 비중이 컸던 쟁점은 ‘친형에게 정신질환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1심 재판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 쟁점을 심리하기 위해 재판에 소환된 증인만 수십 명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당시 이재명 지사 친형의 휴대전화와 보이스레코더를 포렌식 했는데도 포렌식 결과가 전혀 증거로 제출되지 않은 것이 변호인단의 눈에 띄었다. 

 

 이런 경우 변호인들이 검찰에 열람등사 신청을 하면 검찰은 대부분 열람등사를 허용해준다. 그래서 변호인단에서 검찰에 포렌식으로 복원된 파일에 대해 열람등사 신청을 했는데, 의외로 검찰에서는 열람등사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제출거부 사유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변호인단에서는 즉시 재판부에 열람등사 허용신청을 했는데, 검찰은 1달 동안 무려 5번의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열람등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통상적인 재판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재판장의 눈에도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변호인단에서는 점점 ‘뭔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재판부는 포렌식으로 복원된 녹음파일 전체에 대해 열람을 허용했다. 필자는 그 다음 날부터 약 6천여 개의 녹음파일을 듣기 위해 재판이 열리는 법원이 아닌 검찰 열람등사실로 갔다. 그런데 검사는 필자가 녹음파일을 듣는 과정에서도 매우 신경질적이고 까다롭게 굴었다. 여러 개의 폴더 중 한번 들은 폴더는 다시는 들을 수 없다고 했다. 파일 개수가 6천개에 이르는데 검찰은 복사해 갈 파일명을 워드로 기록해도 안 되고 일일이 손으로 적으라며 메모지와 볼펜을 주었다. 필자의 옆에서는 검찰 수사관이 앉아서 계속 필자를 감시했다. 검찰이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는, 파일을 듣기 시작하자 이내 납득이 되었다. 

 

검찰이 제출을 거부하던 파일 중에는 이재명 지사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담긴 친형의 육성 녹음파일이 여러 개 있었던 것이다. 무죄를 확신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기소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는 수준의 증거였다. 검찰이 처음부터 이런 파일들을 제출했다면 법원으로서도 일주일에 두 번씩 재판을 하면서 수십 명의 증인을 부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간첩조작 사건이 이런 식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필자는 행여 검찰이 나중에 그런 파일이 없다고 잡아뗄까봐 파일 날짜는 물론이고 파일용량까지 메모지에 기록해 뒀다. 그렇게 해서 6천여 개의 파일 중 검찰이 도저히 변명할 수 없는 15개의 파일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필자는 15년 가까이 법조인으로 살아왔지만 검찰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 충격을 받았다. 추측컨대 재판부 역시 그 녹음파일을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 판결문에 자세하게 설시하면서 이재명 지사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해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던 2심 재판부도 친형의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청법은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검사의 객관의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 사건에서 검찰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은 명백히 검사의 객관의무에 위반된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지사의 사건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온 나라를 발칵 뒤집고 수십 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하여 한 사람의 개인사를 난도질 하며, 친형 강제입원에 대해 수사를 했지만 1심부터 3심에 이르기까지 직권남용에 대해 모두 무죄가 나왔다. 검찰과 경찰이 그렇게 증거를 은폐해 가면서까지 수사를 하고 기소를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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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7월28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0년07월29일 10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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