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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나라 재정이 가야할 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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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6월08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0년06월06일 20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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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6월 3일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35.3조 규모의 3차 추경 예산안을 발표했다. 1~3차 추경안을 합하면 올 한해 총 추경 규모는 59.2조원이 된다. 이번 추경을 통해 2019년 37.6조원이던 관리재정수지는 112.3조원으로, 740.8조원이던 국가채무는 840.2조원으로 늘어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19년 39.4%에서 올해 43.5%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 해 추경은 횟수나 규모 면에서 우리나라 재정 역사상 최고의 기록으로 남을 듯하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5년 동안 총 10회의 추경이 편성되었는데 올 한 해만 3번이 편성되었으니 편성 횟수도 최고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최고 규모였던 2008년 추경 28조원을 훌쩍 넘었으니 규모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전대미문의 사태 발생으로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될 수밖에 없고, 다행히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양호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추경은 충분히 감내할만하다고 한다. 필자도 전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재정이 건전한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 정도에 대해 논하기 전에 정부에서 발표되고 있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숫자에 대해 먼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동 비율이 우리나라의 재정 상태를 정확하게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세 가지이다. 

 첫째, 국가채무비율에 사용되고 있는 GDP가 2018년 신(新)계열 기준으로 새롭게 작성됨에 따라 기존의 GDP보다 증가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8년 GDP는 구(舊)계열 기준으로는 1,782조 원인데 신계열 기준으로는 1,893조원이 되어 111조원 증가했다. 이로 인해 2018년 GDP대비 국가채무비율도 구계열 기준에서는 38.2%이었으나 신계열 기준으로는 36.0%로 2.2%p 감소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재정 상태는 변한 게 없는데 GDP 계산 방식의 변화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2%p 떨어졌다. 

둘째, 국가채무는 포함범위에 따라 D1, D2, D3로 나뉘는데 정부 발표는 D1 기준인 반면 국가 간 비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채무 기준은 D2이기 때문이다. D2 기준으로 할 경우 공공기관관리기금과 비영리공공기관 부채가 포함되기 때문에 동 비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D2 국가채무비율이 D1 기준 채무비율보다 대략 4.0%p 높다. 

셋째, 세수가 정부 예산보다 덜 걷힌다면 이 역시 추경을 해야 하고, 국채 발행은 이로 인해 더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세수진도율을 감안할 때 정부 세수는 정부 예상보다 덜 걷힐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점 등을 모두 감안할 때 D2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50%를 초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러 우려되는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더라도 현재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OECD 평균인 110% 정도 보다는 훨씬 낮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재정이 매우 건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향후의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특수한 요인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위협적인 것들 몇 가지만을 추려보자. 

 첫째, 인구구조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저출산 및 고령화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2020년 출산율은 1.1로 세계에서 171등이고, 고령화 속도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 빠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 부양수는 2020년 32.8명에서 2060년 82.6명으로 급격히 증가해 세계 최고 수준이 된다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는 생산가능인구를 줄이고 부양 인구수를 늘리기 때문에 정부의 세수를 줄이고 정부지출을 늘린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급격한 노령화는 특히 정부지출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기 때문에 현행 정부지출 체제하에서도 고령화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둘째, 총부채 규모이다. 가계부채, 기업부채 및 정부부채를 합한 총부채 규모는 2019년 4,540조 원으로 GDP대비 237% 수준이다. 우리보다 정부 부채가 월등히 높은 미국도 동 비율은 254%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가계 및 기업부문의 부채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가늠할 수 있다. 
 가계와 기업부문이 부실화되면 금융기관이 타격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의 사례에 비춰 볼 때 금융기관 부실은 여지없이 정부의 개입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한 나라의 재정건전성은 가계 및 기업부채까지 포함한 총부채 규모에 기초해서 평가되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는 외부충격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가계 및 기업부채가 높다는 것은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셋째, 경제성장률 둔화이다. 세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경상성장률인데 물가상승 압박이 그다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산업구조 등을 감안할 때 향후 경상성장률이 높아질 것 같지는 않다. 실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동안 디플이션으로 정부의 세수는 크게 감소했다. 

 넷째, 사회보험의 적자 가능성이다. 국민연금은 2051년쯤 고갈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 이후 국민연금이 미적립방식으로 운영된다면 현재 9% 수준인 보험요율은 16% 정도까지 올라야 한다고 한다. 현재 9%인 요율을 16%까지 올리는 것이 가능할까?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실업보험 및 장기요양보험도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에 요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독일의 경우 2011년 기준으로 사회보험기여율이 임금대비 38.65% 수준이다. 기여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사회보험에 정부의 일반재원을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연금 총지출 중 정부 지원 비중이  25% 가량 된다. 우리나라 역시 향후 지금보다 사회보험기여율이 높아지겠지만 현 수준의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려면 정부의 일반재원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다섯째, 재정준칙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어떠한 재정준칙도 없다. 반면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3~4가지의 재정준칙이 도입되어 있다. 재정준칙이 도입될 경우 재정당국은 예산적자 편향이 강한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유럽 국가 중에서도 재정건전성이 높은 스웨덴이나 독일은 매우 실효성이 있는 재정준칙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국가채무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일본은 어떠한 재정준칙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경제학자들이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필요할 때 재정을 쓰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정부의 곳간을 과감히 풀어야할 때이다. 올해 세 번의 추경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재정상태가 건전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추경을 통해 마련된 재원이 필요한 곳에,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곳에 쓰여 져야 함은 당연하다. 정부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 믿는다. 

 이에 못지않게 정부가 해야 할 일 중 중요한 하나는 코로나 사태 이후를 대비해 출구전략을 잘 준비하는 것이다. 자체 수입이 없는 정부가 마냥 예산을 늘릴 수만은 없다. 최후의 보루로써 정부의 역할이 소규모개방경제인 우리나라만큼 중요한 나라도 많지 않다. 세수가 뒷받침되지 않은 급격한 정부지출 팽창은 나라의 신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라의 신용은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 정책 당국은 이를 감안해 재정만큼은 보수적으로 운영해주었으면 한다. 다른 부문은 몰라도 정부재정만큼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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