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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침항모(不沈航母) 일본을 재건한 나카소네 전 수상이 남기고 떠난 '보수의 유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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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1월30일 10시17분

작성자

  • 장성민
  •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 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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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전(前)일본 수상이 오늘(29일) 오전 향년 101세로 별세했다.

나카소네 전 수상은 일본 경제발전의 토대를 구축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이후 가장 비중 있는 수상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전후(戰後) 총결산 작업과 행정개혁을 밀고 나갔고, 미일(美日) 사이에서는 흔치 않았던 정상(頂上) 유대를 통해 양국 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구축했던 일본의 외교 안보 설계사였다. 또한 그는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 영국의 대처 전 수상과 더불어 세계 신(新)보수주의의 한 축을 이룸으로써 일본의 국가적 위상을 한 단계 높여놓은 지도자로도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나카소네 전 수상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개의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정치인’과 ‘보수’라는 단어이다.

우선 ‘정치인 나카소네’를 빼놓고서는 전후(戰後) 20세기 일본 정치를 논하기 어렵다. 그는 1982년부터 5년 동안 총리를 지냈고, 퇴임 후에도 85세까지 무려 20선(選)을 기록하며 현역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정계 은퇴 후에도 일본 총리들의 멘토 역할을 담당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나카소네 전 수상은 ‘대통령급 수상’ 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를 통해 소극적 외교와 경제 중심 외교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요시다 노선에서 탈피해서 전후 급성장한 국력에 걸맞는 적극적 역할을 담당하는 ‘국제 국가 일본’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미국 대통령과 돈독한 친분을 쌓았고, 일본에서는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론-야스 밀월(蜜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러한 나카소네 전 수상의 활발한 정치 활동의 이면에는 ‘정치인’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하고 확고한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정치와 인생」(1993)에서 유명한 ‘풍향계’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일찍이 나는 ‘풍향계’라는 좋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을 안다는 것은 조함(操艦)의 제일보이다. 바람에 따라 몸은 움직이지만, 발은 한 곳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이것이 풍향계이다. 이데올로기나 명분에 사로잡혀 조건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완미경직(頑迷硬直)의 정치가나 정치와, 유연 적절한 그것과 어느 쪽이 국익을 지킬까.”

 

물론 이런 그의 ‘풍향계’론이 변신이 빠르고 권력의 풍향 변화에 민감한 기회주의자나 마키아벨리스트로 간주되며 비판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전후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여줬지만, 이후 중국과 한국의 반발이 커지자 참배를 중지했고, 역사인식에서 진일보한 견해를 밝히는 등 국제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예컨대 전후 처음으로 중일전쟁의 침략적 측면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고, 1984년 한일정상회담 때는 ‘양국 간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천황의 발언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비록 ‘유감’ 발언에 머물렀지만, 전후 최초로 식민지배에 대한 천황의 사죄성 발언을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풍향계 정치론’을 바탕으로 나카소네 전 수상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은 ‘정치관’을 소개하고 있다.

 

“뛰어난 슬기도 필요하지만, 처세의 지혜가 없이는 ‘정치의 바다’를 건널 수 없다. 그리고 정치란 순정과 헌신, 질투와 원한이라는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바다를 헤엄쳐 가는 것과 같다. 순정에 눈물을 흘릴 때도 많지만, 질투에 지겨움을 느낄 때도 있다.” 또한 그는 “정치가 결국 권력 투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치는 항상 학문적인 연구와 과학적 객관성, 즉 아카데미즘의 기초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나는 단순한 여야당의 거래나 정계의 임기응변으로 말미암아 정치가 표류하는 것을 배격해 왔다. 그리고 학문과 정치를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부한다” 고 강조한다.

이렇게 정치인으로서 끊임없이 공부하며 노력했던 그는 국회의원 시절 항상 영어 단어카드를 들고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총리로서 첫 해외 방문국으로 한국을 선택한 후 틈틈이 한국어를 익혀서, 방한 당시 열린 청와대 연회에서 한국어로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열창하고, 만찬사도 1/3 정도를 한국어로 해서 놀라움을 자아내기도했다.

 

이러한 나카소네 전 수상만의 독특한 ‘정치인에 대한 시각’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정치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의 이념과 사고를 고집스럽게 막무가내식으로 고수하는 우리의 후진적 정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항상 책과 함께 공부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읽고 국민들 앞에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의 사명을 다하는 정치인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편 나카소네 전 수상에게는 ‘일본 보수 정치계의 원류(源流), 또는 거두(巨頭)’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닌다. 그는 1955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자유당과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의 민주당이 합당해 보수연합인 자민당(자유민주당)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민주당에 소속된 보수정치인으로서 이후 총리직을 포함해 56년에 걸쳐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전후 일본 보수정치의 '살아 있는 역사'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 그가 92세 때인 2010년에 ‘1918년생인 자신이 앞으로 10년도 더 살지 못할 것’이라며 후세에 남기고 싶은 ‘보수’에 대한 이야기를 펴낸 책이 「보수의 유언」(2010)이다. 이 책은 당시 일본 사회의 위기를 다각적으로 진단하면서 보수의 대원로이자 노정객(老政客)이 후배들에게 남긴 일종의 ‘정치적 유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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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카소네 전 수상이 일본의 위기를 논하게 된 이유는 2009년 일본 중의원(衆議院)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면서 전후 최초의 정당 간 정권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선거에서 중의원 480석 중 진보 야당인 민주당이 308석을 휩쓸었고 보수 여당인 자민당은 11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로써 무려 54년 동안의 보수 자민당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초유의 사태의 원인을 나카소네 전 수상은 “보수에 대한 본질적 논의를 게을리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보수세력인 일본 자민당이 혁신을 하지 않아서 정권을 민주당에게 넘겨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보수가 표류하는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다시 보수주의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카소네 전 수상은 보수주의를 급진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파악한다. 그러면서 일본의 보수주의를 ‘역사, 전통, 문화를 계승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꾸준히 개혁하는 보수주의’로 규정한다. 역사와 문화를 중시하면서 진정한 보수로 발전시키기 위해 개혁을 중시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보수의 핵심은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끊임없이 개혁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보수주의는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버크가 말한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명언을 보수세력이 명심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하면서 ‘원칙 있는 개혁’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보수의 본질에 대해 “불역(不易)과 유행(流行)이란 말이 있다. 변하지 않는 원칙(불역)을 갖고 있으면서 때에 따라 발전과 전환(유행)을 해서 변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원칙 있는 개혁’을 보수주의의 본질적 가치로 강조하는 그는 ‘인기 위주의 개혁을 추구하는 포퓰리즘’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아울러 “보수(保守)는 지키는 것과 고치는 것을 똑같이 중시한다”는 점에서 수구(守舊)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결국, 나카소네 전 수상은 '보수란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끊임없이 개혁하는 것인데, 이러한 보수의 본업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자민당이 밀려났고 더 나아가 일본의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보수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 그렇게 힘을 기르고 원칙을 지키며 개혁해 나가면 반드시 국민이 알아주고, 기회가 다시 온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정치가 비전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실천적 조언을 던진다.

 

“지금은 당의 힘을 축적하고 능력을 키워야 할 때다.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당과 당원들이 그 내용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 그런 다음 국회 등에서 여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야 한다. 처음에는 너무 나가지 말고 토론과 논쟁을 해가면서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해 가면 결국에는 자민당이 국회에서 변했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폭넓게 전달할 수 있다. 당장은 매서운 북풍이 불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상대방이 허점을 보이는 순간이 온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격적인 정권 탈환 작전에 들어가면 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보수가 처해 있는 위기의 현실과 너무나도 흡사한 점이 많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나카소네 전 수상의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정치와 보수에 대한 통찰과 탁견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이 책의 후반부에 그는 '성공하는 정치인의 9가지 조건'을 들고 있다. 그것은 ‘철학과 열정’, ‘굳건한 역사의식’, ‘강한 의지와 사명감’, ‘냉철한 이성과 치밀한 추진력’, ‘따뜻한 인간미’, ‘낙천적인 사고와 순발력’, ‘전통에 대한 자부심’, ‘인적 네트워크’, ‘원대한 비전’이다.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가?’, ‘진정한 보수주의란 어떤 것인가?’ 전후 일본 정치의 산 증인이면서 탁월한 정치 사상가이자 실천가로서의 일생을 마감한 나카소네 전 수상의 울림이 지금 우리에게 더 크고,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일본에 오면 자신의 비서를 통하지 말고 언제든지 바로 연락하라며 주었던 개인 전화번호와 신간 책에 직접 사인을 해 주었던 그 다정다감했던 대정치인의 모습을 이제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살아 생전에 나에게 역설했던 한일관계의 동행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한일 양국은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한 나라이고, 둘째, 자유시장주의의 가치를 공유한 나라이며, 셋째, 양국은 각각 한미동맹을 안보의 축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전후 한국과 일본의 부흥 또한 바로 이 세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나카소네 전 수상의 깊은 통찰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미래의 한일관계를 비추는 거울이자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나침반이 아닐까?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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