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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 흥망의 교훈 : #17 광개토대왕과 후연(3)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11월07일 17시01분
  • 최종수정 2019년11월07일 15시59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16) 모용준과 친동생 모용수의 갈등(AD358)

 

모용준의 둘째 동생 모용패(수)는 단말배의 딸과 결혼하여 모용령과 모용보를 낳았다. 모용수의 어머니도 같은 단씨였다. 당시 단씨는 선비계통 종족 중에서 모용씨와 거의 동급일 정도로 높은 신분이었다. 그러니 단씨 사람들은 황제 모용준의 처 가족혼씨를 아주 가볍게 보았다. 비록 모용준과 모용수가 피를 나눈 형제로 서로 일곱 살 차이였지만 재능이나 용맹이나 인물 면에서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두 사람 사이에는 치명적인 경쟁관계가 있었다.  

 

형제간 갈등의 호기를 알아차린 사람이 중상시 열호였다. 열호는 모용수의 처 단씨와 그의 측근 고필을 엮어서 무고죄를 뒤집어 씌웠다. 모용준은 정위에게 즉각 조사를 명령했고 혹독한 심문절차가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런 혐의를 찾지 못했다. 모용수가 가혹한 고문을 당하는 처 단씨가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 어찌 그렇게 매섭고 독하시오.

  자복하는 것만 못하지 않소?“

 

단씨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 어찌 죽는 것이 무섭거나 애석해서 그랬겠습니까?

  스스로 반역 무고를 인정하게 되면

  위로는 조종으로 

  아래로는 오왕(모용수의 존호)에 누를 끼칠 것이라 

  자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씨는 옥중에서 죽고 모용수는 화를 면하고 평주(지금의 요동지역)자사로 강등되어 요동지역으로 내보냈다. 모용수가 죽은 단씨의 동생을 처로 삼자 모용준의 처 가족혼씨가 동서 단씨마저 쫓아내고 대신 자신의 동생을 처로 맞이하게 했다. 모용수가 반가울 리가 없었다. 모용수가 처 가족혼씨를 매우 냉대하자 형수 가족혼씨는 더욱 모용수를 미워했다.  

 

(17) 모용준의 와병과 후계논의(AD359)

 

AD359년 겨울 모용준이 병으로 눕게 되었다. 이 때 그의 나이는 만 40세였다. 바로 밑 동생 대사마 태원왕 모용각에게 말했다. 

 

“ 내 병은 반드시 나지 못하는 병이다.

  지금 두 방면(동진과 전진)이 평정되지 못했는데

  경무(모용위, 아홉 살)는 아직 어리기만 하구나.

  국가의 어려움이 많은 데 

  송나라 선공(동생 목공에게 양위)처럼 

  너에게 양위하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떤가?“

 

모용각이 펄쩍 뛰면서 말했다.

 

“ 태자가 비록 어리기는 하나 

  해로움을 이기고 치세를 이룰 군주이십니다.

  신이 어떻게 감히 끼어들겠습니까?“

 

모용준이 화를 내며 말했다.

 

“ 어떻게 형제 사이에 이런 속에도 없는 겉치레 말을 한단 말이냐.”

 

모용각이 말했다.

 

“ 신이 천하를 짊어질 자격이 있다면

  어찌 어린 조카 군주를 보필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모용준이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말했다.

 

“ 너는 능히 주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니

  내가 무슨 걱정을 하겠느냐.

  이적은 청렴하고 방정하며 충성스럽고 밝은 사람이니

  네가 그를 잘 대우해 주어라.“

 

그리고는 서둘러 요동에 가있던 셋째 동생 모용수를 업으로 불러 들였다.(AD359년 12월)  

 

(18) 모용준의 사망과 모용각의 리더십(AD360)

 

AD360년 정월 20일 업에 모용준은 동진을 치기 위한 대군을 징집하여 대열병식을 올렸다. 대사마 모용각과 양무가 전군을 지휘하여 동진을 침입하려던 차에 갑작스럽게 모용준 병이  위독해졌다. 모용준은 서둘러 모용각, 양부, 모용평, 모여근을 불러들여 유조를 내렸다. 모용준은 그 다음날 죽었다. 모용위가 만 11세의 나이로 전연 2대 황제에 즉위했다. 2월에 모용준의 처 가족혼씨를 태후로 올리고 태원왕 모용각이 태재가 되어 조정 정치를 도맡았으며 상용왕 모용평(모용준의 숙부)을 태부, 양무는 태보, 그리고 모여근이 태사가 되어 조정 정치에 참여하였다. 모여근은 나이가 많아서 모용황 시절부터 공이 컸고 또 강직하고 지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자신이 보기에 모용위도 그렇지만 황실의 모용각이나 다른 모용씨들을 존대하는 마음이 엷었다. 그런 모여근이 모용각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 주상이 어리고 모후가 정치에 간여하니 

  전하께서 당연히 변고를 사전에 막아 스스로를 보전하셔야 합니다.  

  지금 나라를 세운 공은 오로지 전하의 몫인데

  형이 죽으면 동생이 잇는 것은 민족 대대로의 전통입니다.

  산릉의 장례작업이 끝나는 대로 

  주상을 폐위시키고 왕으로 강등시킨 후

  전하께서 높은 자리를 밟으시면

  위대한 전연의 무궁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용각이 깜짝 놀라 모여근에게 말했다.

 

“ 공께서는 취하셨습니까?

  어찌 말씀하시는 것이 이렇게 패역합니까.

  나와 공이 함께 들어가서 황제의 유조를 받은 지가 언젠데

  이렇게 갑자기 이런 의논을 일으킨단 말입니까?“

 

모여근이 얼굴을 붉히며 사과하고 물러났다. 모용각이 동생 모용수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모용수는 즉각 모여근을 죽여야 한다고 권하였다. 모용각이 머리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 지금은 새로 대상을 당했네.

  지금 두 나라(동진과 전진)가 틈새를 엿보고 있는 터에 

  재보들이 서로 죽이면 먼 곳과 가까운 곳 사람들의 

  희망을 어그러뜨리는 일이 아니겠나.

  좀 참아야 할 것일세.“

 

비서감 황보진이 모용각에게 말했다.

 

“ 모여근이 원래 용렬한 사람이었는데 

  먼저 돌아가신 황제의 두터운 은혜를 입고서 고명까지 받았습니다.

  소인이 잘 알지는 못하나 국가의 슬픈 일이 있고 부터는  

  더욱 더 교만해지니 장차 화란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밝으신 공께서 주공의 자리에 계시면서 

  사직을 위해 깊이 도모하시고 일찍 그를 처단해 주십시오.“

 

그러나 모용각은 또 다시 듣지 않았다. 자신의 위상이 위태롭다고 느낀 모여근은 태후 가족혼씨와 황제 모용위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 태재(모용각)과 태부(모용평)가 장차 불궤한 짓을 꾸미고 있습니다.

  청컨대 신이 금병을 이끌고 가서 저들을 죽이게 해 주십시오.“

 

태후 가족혼씨가 그러려고 할 참에 모용위가 (어머니 가족혼에게) 말했다..

 

“ 두 공은 짐과 매우 가깝고 현명하신 분들이요.

  그렇기에 돌아가신 선제께서 특별히 뽑아서 

  고아와 과부를 의탁하신 겁니다.

  반드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인데 

  태사께서 난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님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마침내 중지하였다. 그러나 모여근은 끈질기게 고향을 그리는 가족혼 태후와 모용위를 꼬드겼다.

 

“ 지금 천하는 쓸쓸하고 외부의 침략이 여럿이어서

  나라에 큰 걱정거리가 깊으니

  동쪽으로 돌아감만 못합니다.“

 

모용각이 그 소식을 듣고 급히 숙부 모용평을 찾아가서 모여근을 처리하는 방안에 관하여 의논을 했다. 모용각과 모용평은 우위장군 부안을 보내어 역모를 획책한 모여근과 그의 일족을 모두 죽이도록 했다. 나라가 대상을 치르는 가운데 조정 핵심 중신의 일족이 피살되면서 어수선하고 흉흉한 분위기가 조정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모용각은 침착했고 걱정스런 기색을 전혀 띄지 않았으며 호위병도 딱 한 명만 데리고 다녔다. 어떤 사람이 엄하게 경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하자 모용각이 말했다.

 

“ 사람의 마음이 바야흐로 모두들 두려워하고 있는데

  마땅히 평안하고 진중하게 해야지

  어찌 사람들을 놀라게 하겠느냐.“

 

모용각은 비록 조정의 가장 큰 중책을 맡고 있었지만 항상 예의바르고 조심조심했으며 매사 부지런하게 담당했다. 마음을 비우고 선비들을 대했으며 훌륭하게 자문해 주었고 재주를 헤아려 임무를 주었으니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이 거의 없었고 혹 잘못을 범하더라도 조용하게 다른 자리로 옮기게 하였으므로 원래의 신분을 잃지를 않았을 뿐더러 이를 경계삼아 더욱 온전히 행하도록 은밀하게 격려를 한 셈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 당시 관리들 사이에 가장 부끄러운 욕이 ‘재공으로부터 관직을 옮겨 받은 사람’일 정도였다.      

 

모용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동진 조정은 이 때야 말로 전연을 공격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직 환온만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 모용각이 아직 살아있으니

  걱정거리는 더 커진 셈이오.“

 

태재 모용각은 동생 오왕 모용수를 사지절, 정남장군, 도독하남제군사, 연주목, 형주자사로 삼아 여대(하남성 상구시)에 진수하게 하고 손희를 병주자사로 고 부안을 호군장군으로 임명하여 2만 군사로 황하 이남의 지역을 순무한 뒤 회하를 거쳐 돌아오게 하였다. 이로써 전연은 확실히 이 지역을 영토로 확보한 셈이 되었다.  

 

(19) 전연 태재 모용각의 죽음과 오왕 모용수 강력추천(AD367) 

 

새로운 황제 모용위가 어린 10세에 등극해서 이제 열여섯 살이 되었으니 정치를 관장하던 삼촌 태재 모용각과 종조부 모용평이 정치를 황제에게 돌려 드리고 개인 사저로 돌아가겠다고 간청했다. 모용위는 허락하지 않았다.(AD366) 일 년 쯤 지난 AD367년 어느 날 모용각이 황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  폐하, 오왕 모용수의 재주는 신보다 열 배나 되지만

   먼저 돌아가신 황제께서 장유의 법칙에 따라 

   저를 오왕보다 먼저 세우셨습니다.   

   신이 죽거든 부디 나라를 들어 오왕을 곁에 두시고 

   그의 의견을 들으십시오.“

 

며칠 지나 모용각 병이 위독해지자 모용위가 친히 그의 집에 가서 후사에 관해 물었다. 모용각이 대답했다.

 

“ 신이 듣기로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훌륭한 사람을 천거하는 일보다 중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이 비록 판축(담장 쌓는 막노동 일)하는 곳에 있다 하더라도

  재상으로 삼을 수 있는 법인데

  하물며 아주 가까운 친척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오왕은 문무의 재주를 다 갖추어

  관중이나 소하 다음 가는 사람이오니 

  폐하께서 만약 큰 정치를 맡기신다면

  반드시 국가는 안전할 것이나 

  만약 등용치 않으신다면 동진이나 전진이 틈을 만들어 

  계책을 꾸밀 것입니다.“   

 

그 말을 마치자 곧바로 모용각이 숨을 거두었다. 이 때 모용각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40대 중반이었을 것이다.(동생 오왕 모용수 나이가 이 때 41세였음)   

 

(20) 전진이 전연의 틈을 엿봄(AD367)

 

전연의 모용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전진에서는 그 틈을 노렸다. 일단 부견에게 항복했던 흉노 좌현왕 조곡을 시켜서 전연에 조공을 하도록 지시했다. 조공하는 척하면서 전연의사정을 염탐하려는 의도였다. 사신으로는 곽변을 보냈다. 곽변이 전연의 수도에 도착한 뒤 사공 황보진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특별히 황보진을 만난 이유는 황보진의 형제들이 모두 전진에서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제가 원래 전진 사람입니다만 

  집안이 전진에게 몰살되어

  할 수 없이 조왕(조곡)에게 붙어서 살아왔습니다만 

  전진에서 크게 쓰이시는 그대의 형님과 조카들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황보진이 크게 노하며 곽변을 꾸짖었다.

 

“ 나는 경계 밖의 사람(형제친척을 의미)들과 

  사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런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이요?

  그대는 간사한 인물 같으니 

  인연을 가지고 나에게 부탁하려는 생각 아니요!“

 

모용위에게 곽변의 저의를 말하고 끝까지 추궁하여 엄단할 것을 종용했으나 모용평이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곽변은 서둘러 전연을 빠져나와 장안으로 돌아온 뒤 부견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전연의 조정과 정치를 보니 

  기강이 형편없이 무너져 있습니다.

  기회를 보고 변화를 아는 사람은 황보진 밖에 없었습니다.“

 

부견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여섯 주(유주, 병주사주, 연주, 예주)나 장악하고 있는 전연에 

  제대로 된 신하가 어찌 황보진 하나 뿐 이겠는가! “

 

전진 부견은 일단 전연 공격의 생각을 거두었다.  <다음에 계속>

 

[그림] 후연 및 서연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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