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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표가 가로막는 시장의 혁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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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1월04일 17시00분

작성자

  • 박희준
  • 연세대학교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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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反轉)을 담은 배꼽 잡는 희극 한 편


지난 28일, 반전(反轉)을 담은 멋진 희극 한 편을 보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첨단기술 개발자 콘퍼런스, `데뷰(Deview: Developer`s View) 2019` 를 찾아 AI 분야를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그리고 같은 날 검찰은 ‘타다’ 운영사인 브이시엔시(VCNC)의 박재욱 대표와 모기업인 쏘카의 이재웅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타다가 면허를 받지 않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승합차와 운전기사를 제공한 것은 불법 유상여객운송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희극의 백미는 검찰의 기소 이후, 청와대와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검찰 기소에 대한 비판이다. 국무총리,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직접 정책을 만들어야 할 관련 책임자들이 제3자 입장에서 평론가처럼 앞다투어 비판을 쏟아냈다.

 

정부는 타다 등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에 대해 택시 업계가 반발했을 때 사실상 택시 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이제 와서 검찰의 기소 결정을 비판하며 마치 타다의 편을 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주어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고발 사건을 처리했을 뿐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7월 17일 발표한 ‘혁신성장과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 제도 개편방안’도 지난해 10월 출시된 타다 같은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자를 사실상 택시 시장으로 편입하는 내용이다. 정부가 검찰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를 묻고 싶다.

 

써 먹지도 못할 기술, 개발해서 무엇 하나


AI 분야를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청와대는 전 년에 비해 50% 증액된 약 1조7000억 원의 예산이 데이터·AI 분야에 배정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AI 분야의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다. 시장의 변화를 견인할 새로운 기술이 소개될 때마다 정부는 서둘러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하지만, 개발된 기술을 상용화하고 관련 시장을 육성하는데 필요한 규제 철폐에는 미온적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관련 기술의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 시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기존 시장의 사업자들과 종사자들이 새로운 시장에 유입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는 19세기 영국의 '붉은 깃발법'이 떠오른다. 당시 영국은 마차산업 보호를 위해 자동차의 최고 속도를 도심에서 시속 3㎞로 제한하고, 기수가 붉은 깃발을 들고 자동차의 55m 앞에서 차를 선도하도록 했다. 붉은 깃발을 앞세워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게 한 것이다. 영국은 자동차 산업을 가장 먼저 시작하고도 독일과 미국에 뒤쳐졌다.

 

오히려 무인택시가 등장하는 수년 후를 준비해야


수년 뒤에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고 무인택시가 출현하면 지금의 택시 업계와 모빌리티 업계 간의 갈등과 법적 공방은 해묵은 화두가 될 것이다. 법적 제도가 기술의 진보를 예측하고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지는 못할지라도, 기술의 진보와 새로운 시장의 성장은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모빌리티 사업이 택시 시장에 편입되도록 할 것이 아니라 택시 사업이 모빌리티 시장에 편입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최근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택시 사업이 그나마 영향을 덜 받는 것은 카카오택시와 같은 택시 호출 서비스 덕분이라고 택시 기사들은 입을 모은다. 회사택시 운전자들은 모빌리티 시장으로 편입되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문제는 사업면허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택시 사업자와 개인택시 사업자들이다. 회사택시 사업자들이 모빌리티 시장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기술적 지원을 해주고, 개인택시 사업자들의 면허권은 모빌리티 사업자와 정부가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매입하는 동시에, 개인택시 사업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면허권의 가치만큼 그들이 모빌리티 사업에 투자하고 지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1990년대 국내에서 이메일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도 법적 논쟁이 불거졌다. 우편법 상 우체국이 아닌 개인이 유상으로 서신을 전달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출현할 때마다 기존 사업자와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자 간의 갈등과 법적 논쟁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다. 현재 모빌리티 업계와 택시 업계 간에 상생 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용자는 배제되어 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시장은 결국 사용자들의 편의성을 높이고 선택권을 넓혀주는 방향으로 늘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정책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선거에서의 표를 헤아리는 셈법 보다는 산업과 시장의 미래를 읽어내는 통찰력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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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11월04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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