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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난 문재인의 대일(對日) 외교와 역사의 역습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7월14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7월14일 17시00분

작성자

  • 장성민
  •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

메타정보

본문

지금 한일 간에는 경제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한일 양국관계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관계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오늘의 악화된 한일관계 못지않게 과거 불행한 역사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73년 8월 8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주도로 일본 도쿄에서 발생된 ‘김대중 납치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의 과정 속에서도 한일관계를 최상의 정상관계로 회복시켜 놓았던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그와 오부치 게이조 수상 간에 이뤄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기존 한일관계로부터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이뤄낸 일대 작품이었다. 이로 인해 한일 양국 국민들의 역사적 악(惡)감정은 씻어지고 벗겨졌으며, 이 역사적 시점으로부터 한일 양국은 과거에 발목이 잡힌 ‘인식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역사와 미래를 향한 운명의 동반자로서 보조를 맞춰 나갔다. 이로써 한일 양국관계는 ‘더 이상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까워질 수 있을 때까지 가까워 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이웃국가’로 발전해 나갔다. ‘위험한 이웃국가’에서 ‘친근한 이웃국가’로 양국관계는 대변환의 기회를 잡았고, ‘적대적 야만의 관계’에서 선린우호(善隣友好)적 문명의 관계로 탈바꿈되었다.

과거에만 얽매어 감정적인 피해자 코스프레만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결코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일본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때만 우리의 힘을 키울 수 있고, 우리가 일본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극일(克日)을 향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력은 그렇게 시작됐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한일 간 문화교류가 그 시작이 되었다. 오늘날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한류의 세계화’가 이뤄지는 데는 바로 ‘한일 간의 관계 회복’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일본에서 싹트기 시작한 한류의 씨앗은 일본의 바람을 타고 미국과 유럽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보다 엄격히 말한다면, 일본은 ‘한류의 세계화’를 위한 태평양상의 교두보 국가였던 셈이다. 일본에서의 한류의 흥행이 곧 한류의 붐에 대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한류의 붐을 조성한 결정적 배경이 바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었다. 당시 ‘일본과의 전면적 문화교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를 과감히 단행했다. ‘한일 양국 간의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문화적 교류가 없이는 절대로 과거로부터 쌓인 양국 간의 역사적 앙금은 쉽게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김 전 대통령의 지론(持論)이었다. 그 결과 16세기 임진왜란 때부터 20세기 초 36년 일제 식민지배에 이르기까지 일본으로부터의 굴욕적 역사를 안고 살아 온 힘없는 우리 민족은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되었다. 그 힘이 바로 ‘한류의 붐’이었고 ‘문화의 힘’(Soft Power)이었다.

그 다음 대한민국이 일본의 힘에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부분은 다름 아닌 인터넷과 반도체 분야였다. 국민의 정부는 일본에 비해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겠다는 모토를 내걸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전체를 하나의 인터넷망으로 연결하여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지식정보의 강대국’을 만들기 위해 초고속 정보통신망(Information superhighway)을 구축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인터넷 초강국이 된 것은 이런 정책의 결과였다. 이는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인터넷 강국이 되어 일본을 압도한 두 번째 힘이었다. 또한 한국의 미래 주력산업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전자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국민의 정부는 가능한 모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 초일류의 반도체 강국, 전자제품 강국으로 올라서게 된 결정적 토대 역시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일본을 압도한 세 번째 힘은 바로 2002년 FIFA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 때 발휘되었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일 양국관계를 ‘완벽한 동반자 관계’로까지 올려놓았으며, 이 대회에서 붉은 악마의 물결 속에 한국이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스포츠 문화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이 일본을 또 한 번 압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권은 과거 김대중 정권이 쌓아 온 이 모든 피와 눈물의 금자탑을 불과 2년여 만에 무너뜨려 버렸다. 허탈한 심정이다. 솔직히 말해서 잠이 안 온다. 박정희 대통령의 대일(對日) 경제외교로 쌓아 놓은 한국 경제의 발판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고, 김대중 정부가 이룩한 ‘일본을 향한 압도적 힘의 우위’도 붕괴시키고 있다. 문 정권은 한국 경제를 파산시키고 있고, 대한민국을 파멸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외교적 무지(無知)와 무능(無能)이 빚은 외교 참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강대국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룩한 저변에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우방 국가의 원조와 기술지원이라는 뒷받침이 있었다. 박정희 시대의 대한민국 경제는 일본의 기술과 원조를 통해 상품을 만들어내고 이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 판매해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수출주도 경제정책’을 펼쳐 대성공을 거두었다. ‘수입대체 산업화’를 주된 발전전략으로 추진해서 모두 파산한 남미와 다른 길을 갔기 때문에 오늘의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권은 대일(對日) 관계에서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주사파식 민족주의의 길인가? 이 길은 바로 대한민국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길이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의 무지(無知)로 빚어진 한일 경제전쟁을 대처해 나갈 뚜렷한 그 어떤 정책도, 전략도, 비전도, 인맥도 없다. 그러니 이 난제(難題)를 정치, 외교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만만한 대상인 우리 기업인들에게 풀어 달라고 압박한다. 그리고 이 난리 통에 외무부 장관은 국가적 사태인 한일 경제전쟁을 외면하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인가 아니면 무시한 것인가? 무책임의 극치다. 그게 아니라면 유엔회원국중 다수국을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를 상대로 외교로비를 시작한 포석인가? 그동안 문 정권이 對아프리카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어떤 외교적 노력을 했는가? 이것이 바로 문 정권의 원시적 수준의 한탕주의 날림외교이자 치욕(恥辱)외교인 것이다. 그동안 미국, 중국, 일본이 對아프리카 자원외교를 통한 영향력 확보를 위해 어떤 치열한 대혈전을 전개해 왔는지 아는가? 참 한심하다.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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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지금의 일본 수상인 아베 신조 총리와 외상인 고노 다로 의원과도 교분(交分)을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두 지도자 모두 미국에서 공부한 재원 중의 재원들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아베 수상은 미국 LA의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USC)에서 공부했고, 나의 친구 고노 외상은 워싱턴 DC의 조지타운대학교(Georgetown University)에서 공부했다. 두 지도자 모두 누구보다 미국을 잘 이해할 줄 아는 지미파(知美派)정치인들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 매우 깊은 정치인들이다. 나는 당시 아베 총리가 일본 자민당의 간사장 대리 역할을 맡고 있던 2004년에 그와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눴고, 그때 한국이 좋은 대일(對日) 정책만 갖고 있으면 한일 간의 관계는 아주 깊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었다. 고노 외상 역시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세계의 흐름에 밝고 국제화된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부는 과거 주사파 민족주의를 추종하던 반미 친북 데모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작금의 한일관계에 공통된 인식이 존재할 수 없고, 어쩌면 양국 간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16대 국회에서 한일관계를 더 가깝게 만들기 위해서 김포-하네다 셔틀 개설을 주장한 첫 번째 한국 정치인이었고,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을 뚫자고 최초로 주장한 한국 정치인이었다. 한일 해저터널을 뚫어 한반도 종단철도를 타고 이를 시베리아 횡단철도, 중국 횡단철도 그리고 몽골 횡단철도로 연결하여 대륙을 통해 유럽으로 질주하고 중동까지 이어지는 대륙의 길을 개척해 나가자는 생각이었다. 소위 말해 지금의 중국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같은 ‘세계화의 길’을 나는 이미 그때 주장했었다. 일본도 고립된 섬에서 벗어나고 우리 민족도 좁은 반도의 내륙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태평양 진출과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진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나의 이런 생각에 적극 공감했던 일본의 소장파 정치인이 바로 지금의 고노 다로 외상이다. 당시 그와는 폭탄주도 서슴없이 마시면서 한일 간의 새로운 역사의 길을 토론했고 그 결과 그는 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1998년에 김포-하네다 공항 간 셔틀 항공편 추진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이렇게 한일 간의 간격을 일일생활권으로 좁히고자 했던 나의 꿈은 마침내 노무현 정부가 2003년 11월 김포-하네다 셔틀 노선을 개통함으로써 현실화되었다. 그래도 당시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강조, 제주해군기지건설, 이라크 밎 아프카니스탄 파병, 한미FTA체결 등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계승해 나가려는 적잖은 시늉이라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정권은 과거 김대중 정부가 쌓았던 업적과 정책들을 완전히 초토화 시키고 있고, 그가 걷는 노선과 정책은 김대중 정권의 그것과는 180도 다른 완전 딴판이다.
 

힘과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비분강개(悲憤慷慨)’만으로는 과거 임진왜란 때 돌을 던지면서 맨주먹으로 육탄전을 펼치다 일본의 신무기인 ‘조총’앞에 맥없이 쓰러져간 우리 선조들의 불행한 역사를 반복할 뿐이다. 우리의 힘을 키우고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전략과 정책을 갖출 때만이 진정한 극일(克日)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라도 극일(克日)의 길이 무엇인지 역사 속의 두 지도자인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의 대일 경제외교를 공부하고 극일(克日)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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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7월14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7월12일 21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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