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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과 한국의 전략적 선택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6월15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6월14일 12시17분

작성자

  • 왕윤종
  • 경희대학교 국제대학 객원교수, 매일경제TV '왕박사의 글로벌경제'(유튜브) 진행

메타정보

  • 14

본문

1. 들어가며

 

   미 상무부의 2019년 3월 발표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6,21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의 무역수지 증가 요인으로는 미국경제의 호황 국면 지속과 달러 강세가 지적되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 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의 대중(對中) 상품수지 적자는 4,195억 달러로 2017년 3,752억 달러 대비 약 440억 달러 증가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의 대중 상품수지 적자폭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대중 수입이 작년 10월 522억 달러에서 금년 4월 348억 달러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월별로 상품수지 적자는 작년 10월 431억 달러로 정점에 이른 후 매월 꾸준히 감소세를 보여 금년 들어 1월 345억 달러, 2월 247.6억 달러, 3월 207.5억 달러, 4월 260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현재 양국 간 교역은 축소균형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1983년 이래로 중국에 대해 쌍무적 무역수지에서 단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무역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 그동안 미국이 가장 즐겨 사용하여 왔던 무역구제조치(trade remedies)는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치이다. 미국 무역위원회(U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USITC) 자료에 따르면 2019년 3월 19일 기준 미국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 건수는 총 481건으로 이 중 182건(37.3%)이 중국을 대상으로 한다. 인도가 43건, 한국이 34건, 대만이 27건으로 중국 상품에 대해 미국은 가장 많은 횟수(回數)의 무역구제조치를 발동하고 있다. 

주요 품목은 철강, 금속(알루미늄), 화학제품 등이다. 이러한 무역구제조치가 발동되어 최종 확정되면 관세가 부과된다. 미국의 무역구제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WTO 분쟁해결 절차를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12월 이후 2018년 12월말까지 WTO에 보고된 분쟁 건수는 총 63건이다. 이중 중국과 미국 사이의 분쟁 건수는 38건이다. 미국이 중국을 제소한 건수가 23건이고 중국이 미국을 제소한 건수가 15건이다. 이러한 WTO 분쟁해결절차는 다자규범이 허용하는 가장 합리적인 분쟁해결 방식으로 볼 수 있다.

 

2. 미·중 무역분쟁의 전개과정

 

   2018년 들어 미·중 무역분쟁은 격화되기 시작했다. 3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 무역법 301조에 근거하여 500억 달러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미·중 양국은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결렬되면서 미국은 6월 15일 340억 달러 규모 총 818개 품목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였고, 중국도 즉시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340억 달러 규모 총 545개 품목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였다. 이후 7월 6일 동시에 미국과 중국에서 보복관세 부과가 실시되었다. 나머지 16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는 8월 23일 실시되었다. 아울러 미국은 대중 수입품 2,000억 달러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보복관세 부과를 예고하였다. 그 결과 9월 24일 5,745개 품목에 대해 보복관세 10%가 부과되었다. 중국 역시 미국산 수입품 5,208개 품목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기로 하였으나, 그 규모는 600억 달러로 미국에 비해 작은 규모에 그쳤다. 이는 중국이 그만큼 미국산 수입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2월 1일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 아르헨티나에서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협상을 벌였다. 격화되고 있는 무역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90일간의 협상을 하기로 합의하였다. 당초 미중 협상이 결렬될 경우 2019년 1월 1일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2,000억 달러에 대한 보복관세율을 10%에서 25%로 인상하기로 하였다. 90일 간의 협상이 다시 결렬될 경우 보복관세율은 3월 2일자로 인상될 예정이었다. 트럼프-시진핑 양 정상간 회담의 성과는 결론적으로 추가적인 관세전쟁의 시한을 연기한 것에 불과하다. 미국은 월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비교적 유순한 인물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대신해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를 미국의 협상대표로 임명했다. 통상문제에 있어서 강성인물이 임명되었다는 점 역시 중국에게는 협상이 계속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했다. 

결국 협상은 당초 예정된 기간을 훌쩍 넘어 2019년 6월 10일 현재 아직도 진행형이다. 미국의 요구는 단지 무역수지 적자 폭을 해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지적재산권 보호, 강제기술이전 금지, <중국제조 2025>와 관련된 산업보조금의 금지 등에 대한 중국의 확실한 약속과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협상 타결을 어렵게 만드는 핵심적 쟁점은 미국이 중국에 대해 요구하는 지적재산권 보호, 강제기술이전금지, 부당한 산업보조금의 폐기 등과 같은 정책을 중국이 제대로 이행할지 여부에 관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법 개정을 통해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할 것을 약속하였다. 물론 구체적인 시행령을 통해 과연 만족스러운 이행이 강제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현재 150페이지 분량으로 예상되는 양국 간 합의문에는 양국의 이행사항이 조목조목 적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이 이행을 잘 안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미국은 중국과의 최종 협정에서 일종의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강제시행조항(enforcement provisions)의 검증을 미국이 직접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법 개정과 시행령을 통해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행되고 있는지 검증을 담당할 기구로 시행 사무국(enforcement office)의 설립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선언적으로 외국인투자법 개정을 통해 보호하겠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내 위반자에 대해 형사처벌을 담보할 수 있도록 매우 구체적이고 세세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법적 이행과 관련하여 스냅 백 조항(snapback provisions)의 삽입 역시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쟁점 사항이다. 미국은 중국이 협정의 이행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을 경우 보복관세를 즉시 재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미국만이 가질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즉 협상 타결로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관세를 원상대로 낮추게 되지만 언제라도 중국이 협정 이행을 제대로 안한다는 증거가 나오게 되면 미국만이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호혜성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중 관세전쟁을 둘러싼 협상이 큰 틀에서 합의를 했다고 해도 결국 세부적인 디테일로 들어가면 타결점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양국은 협상을 무기한 연장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2019년 6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담에 시진핑 주석이 참여하기로 공식 발표됨에 따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협상 타결의 분수령이 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 국빈 방문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친구로 표현하면서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속내는 알 수 없다. 아무리 친구라도 국가적 이익과 자존심이 걸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에 체면을 구기면서 양보를 한다는 것은 수치로 받아들일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중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이다.

 

3. 평가 및 전망

 

   미·중 무역분쟁이 다자무역체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신보호무역주의로 확대될 것인가의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여타 국가들은 직접적으로 관세전쟁에 동참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하다보니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무역조치가 다자무역체제의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주1> 

 

 1) Fajgelbaum, Goldberg, Kennedy and Khandelwal(2019)의 논문은 미국의 일방적 무역조치에 주목하여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The Return to Progectionism)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자무역체제의 질서를 지켜나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2001년 시작한 도하라운드 협상의 실패 이후 WTO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통상질서의 확립 역시 필요하다. 현재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들은 현 WTO 체제로는 지적재산권 보호와 산업정책을 통한 보조금 문제 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적어도 선진국을 중심으로 WTO 체제의 개혁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분명히 형성되어 있다. <주2>

 

  2) 2018년 9월 EU가 WTO 체제 개편에 대한 구상안을 제시한 이후, 캐나다, 미국이 뒤를 이어 WTO 체제 개혁방안과 투명성 제고 및 통보강화 방안을 제시하면서 선진국 주도로 WTO 체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특히 중국의 산업보조금과 국영기업에 의한 불공정 행위, 지적재산권 침해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EU 등이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통상규범에 대해서 중국, 인도 등 개도국 그룹이 호락호락하게  수용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 더구나 중국은 WTO 분담금을 제일 많이 내는 국가이다. 중국을 홀대하면서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그런 무역규범이 쉽사리 만들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WTO 체제가 폐기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운송비용의 감소로 글로벌 가치사슬(GVC)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난 30년 간 한중일 3국 역시 국제분업 구조가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GVC 구조 형성에 크게 일조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GVC 구조가 무역의 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즉 제품 생산 단계에서 다양한 중간재가 공급망 형성을 통해 국경을 넘어 거래되면서 리처드 볼드윈(Richard Baldwin)이 지적하듯이 제2차 번들해제(unbundling)현상이 확산되었다.<주3> 

 

3) 리처드 볼드윈(Richard Baldwin)은 생산과 소비의 분리를 첫 번째 번들 해제(unbundling)로 명명하였고, 두 번째 번들 해제는 GVC 혁명, 즉 생산 공정 단계에서 공장의 분리(separation of factories)에서 찾았다. 그의 대표적 저서 <The Great Convergence: Information Technology and the New Globalization, 2016>을 참고하기 바란다.

 

즉 무역을 통한 국제분업은 다단계로 세분화되었다. 오바시와 키무라(Obashi and Kimura, 2018)는 2001-2016년의 무역통계를 분석하여 동아시아의 역내 무역에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현상을 중간재 부품의 교역에서 찾고 있다. 최근 세계무역의 둔화 현상을 두고 중국 중심의 GVC 구조가 성숙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는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더욱 확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중 통상분쟁은 역내 GVC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중국의 최종 소비재가 미국이 부과하는 보복관세로 영향을 입게 된다면 중간재와 자본재를 중국에 수출하는 한국, 대만, 일본 등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중 무역분쟁이 GVC 구조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여부가 대단히 중요하다. <주4>

 

4) 중국이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GVC 구조 형성에 핵심적인 국가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 대만, 한국 등의 대 중국 투자의 증가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일본, 대만, 한국 기업들의 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을 통해 중국산으로 둔갑한 제조품이 미국으로 수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일본, 대만, 한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은 감소하는 반면에 중국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대만 기업의 경우 정보통신제품의 93% 이상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스티브 배넌은 5월 22일 폴리티코(Politico)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협상이 잘 타결되어 미국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보다도 화웨이를 죽이는 것이 10배 이상 더 중요하다고, 그야말로 막말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미 상무부가 5월 16일 중국 통신장비제조사 화웨이 및 26개국 68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 명단(entry list)'에 올린 후에 발언한 내용이다. 미 상무부의 화웨이 견제 카드는 중국을 대표하는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가 중국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선두 주자로 보고 더 이상 화웨이의 약진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그야말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웨이가 미국 기업들과 기술이나 제품을 거래하려면 상무부 산업안보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냉전 시대 공산국가에 수출을 금지시키는 조치와 매우 유사한 수출통제조치이다. 

 

   미 상무부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반 기술을 5G로 판단하고 있다. 화웨이는 2019년 1/4분기 기준 5G통신 표준필수특허(SEP: Standard Essential Patent)출원 건수(15%)를 기준으로 1위 기업이다. 노키아(13.82%), 삼성전자(12.74%), LG전자(12.34%)가 뒤를 잇고 있다. 또한 2018년 PCT(특허협력조약) 국제특허출원에서도 화웨이가 1위를 기록하였다. 화웨이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면 5G에만 국한되고 있지 않다. Big Data/Clouding/AI 등 4차 산업의 핵심영역에서 화웨이의 핵심 자회사인 하이실리콘(HiSilicon)은 시스템 반도체 사업 확장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2019년 초 화웨이는 Big Data 분야의 클라우드 사업 글로벌 Top5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면서 서버용 새로운 프로세서 칩의 개발을 발표하였다. 미국 여론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쿤펑 920’이라고 불리는 이 서버는 7나노 프로세서 칩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첨단기술이 적용되었다. 이 칩은 화웨이의 빅데이터 장비인 타이샨 서버를 구동하는 칩으로 미국의 인텔과 AMD의 아성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었다. 쿤펑이라는 장자에 나오는 전설적인 새를 자신의 야심찬 프로세서 칩에 명명한 것도 화웨이의 기술굴기 정신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쿤펑 칩은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장비의 전력 효율을 최소 25% 이상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하고 이를 24시간 가동하는 장비가 소비하는 전력은 엄청나다. 당연히 전력수요를 줄여야 경쟁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기술이 과연 화웨이의 핵심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독자 개발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기술은 애플 등 스마트폰을 구동하는 CPU 칩을 설계한 영국의 대표적 기술기업인 ARM이 기본 설계를 한 것이다. 결코 화웨이의 독자개발이라고 말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소유주 손정의는 미래 기술을 선도할 기술기업으로 ARM에 주목했고, 2016년 무려 35조~36조 원의 가격으로 인수하였다. 손정의의 소프트뱅크는 일본의 통신사로 미 상무부의 화웨이 제재조치가 취해지자 바로 동참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ARM 역시 화웨이 제재조치에 동참하기로 하였다는 점이다. 이제 화웨이는 ARM과 같은 선도적 기술기업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화웨이의 스마트폰은 독자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 한 기술진보가 불가능하다. 애플 역시 ARM이 설계한 CPU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화웨이라고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빅데이터/클라우드 역시 서버를 구동하는 칩 설계에 있어 여전히 선진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화웨이는 지금 당장은 큰 소리를 치지만 힘든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 것이다. 당장 부품은 그럭저럭 재고를 사용하고 조달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기술에 있어 우군을 찾기 어려울 것이고 홀로서기를 해야 할 것이다.

 

4. 한국의 전략적 선택

 

   미국기업들이 미 상무부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조치에 동참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OS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대표적 IT 기업이 화웨이 제재조치에 동참하였고, 일본, 영국, 대만 등도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는 기업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기업은 사면초가이다. 중국 정부가 한국기업에 대해 미국의 화웨이 제재조치에 동참할 경우 제2의 사드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한국기업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하고 있다. 과연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정부는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 당시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으로 호된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독일이나 프랑스는 화웨이를 무조건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미국이 주장하는 화웨이의 보안상 위험은 검증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무조건적으로 화웨이 제재에 참여하겠다는 성급한 판단은 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의 요청을 감안하여 화웨이가 실제로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나오면 즉시 미국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이라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화웨이가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나온다면 아마 독일, 프랑스도 즉각적으로 화웨이를 비난하면서 제재에 동참할 것이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의 경우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기업에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삼성과 SK하이닉스를 견제하기 위해 반독점 위반 혐의로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법원이 얼마나 공정한 판정을 할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당당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마이크론이 중국 업체에 반도체 공급을 중단한 상황에서 삼성과 SK 하이닉스가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면 우리 기업도 막대한 피해를 입겠지만 중국기업은 당장 공장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반도체 공급자가 갑이 될 수도 있고 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거래 관계의 신뢰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입장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 뿐이다. 미국이 삼성과 SK하이닉스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할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관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국가 차원에서 미국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국, 일본, 인도 3국이 주도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G20 정상회담 때마다 미국, 일본, 인도 3국의 정상이 모임을 별도로 갖고 있다. 한국이 참여하게 되면 호주와 함께 5국 정상회담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아직 인도-태평양 구상은 선언적 수준일 뿐이다. 구체적인 전략이 없는 상황이다. 논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간 협의 채널도 복구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이 협력관계를 개선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인도-태평양 구상의 참여를 주저하는 것은 사실상 외교를 포기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미국이 빠지긴 했지만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참여도 다시 재검토하여 서둘러 가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미중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애매모호한 입장만 보이는 것은 오히려 어느 누구로부터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게 우리의 전략적 이해와 관련한 상황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의 목소리에 원칙이 담겨 있다면 강대국 미국과 중국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ifsPOST>

 

참고문헌

 

Baldwin, Richard, 2016, The Great Convergence: Information Technology and the New Globalizat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Fajgembaum Pablo D., Pinelopi K. Goldberg, Patrick J. Kennedy, and Amit K. Khandelwal, 2019, "The Return to Protectionism," NBER Working Paper No. 25638.

Obashi Ayako and Fukunari Kimura, 2018,  "Are Production Networks Passe in East Asia? Not Yet," Asian Economic Papers Vol. 17, Issue 3, pp. 8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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