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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 흥망의 교훈 : #15 자만심으로 멸망한 틈새왕국, 남량(F)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6월06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6월04일 11시31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8

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29) 서진(西秦)이 후진에게 멸망(AD400)

 

아들 걸복치반과 처자식을 민화에 두고 도망나온 걸복건귀는 후진 요흥에게 항복했다. 이렇게 해서 서진이 멸망했다.(AD400) 장안으로 투항해 들어 온 걸복건귀에게 요흥은 도독하남제군사라는 직책을 주었다. 한참 뒤에 걸복치반이 민화에서 아버지 걸복건귀가 있는 후진으로 도망가려다가 붙잡혔다. 독발이록고가 그를 죽이려하자 동생 독발녹단이 말렸다.

 

  “ 자식으로써 아버지에게 돌아가려는 것은 

    죽이기에 합당한 죄가 아닙니다.

    그를 용서하셔서 큰 도량을 보이십시오.“

 

독발이록고가 이를 따랐다. 서진이 사실상 함락되자 후진 장수 요석덕은 난주에서 황하를 건너 더욱 북쪽으로 군사를 몰아 침범해 들어갔다. 광무(감숙성 영등)를 지키던 후량의 여방은 후진에 항복하고 말았다. 광무지역의 주민들은 모두 남량의 독발이록고에게로 도망갔다.

광무는 5년 전 독발오고가 천하의 인재를 얻게되었다고 극찬을 한 조생의 고향이다.

 

(30) 독발이록고 칭제논의(AD401)

 

당시 서진이 멸망하고 후량은 내분으로 지리멸렬했으며 북량 또한 단업과 저거몽손의 갈등이 표면화 되던 시기였으므로 가장 안정된 정권을 유지하던 왕국은 독발이록고의 남량이었다. 비록 독발오고가 갑자기 죽고 또 양궤의 암살기도가 있었지만 독발이록고는 그 위기를 잘 극복했었다. 독발이록고가 스스로 황제라고 칭제하는 것을 검토했다. 다들 찬성이었다. 그러나 안국장군 투물륜이 나서서 말렸다.

 

  “ 우리는 예로부터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매었으며

    관이나 허리띠가 없이

    그저 물과 풀이 있는 곳을 따라 솽곽없이 

    이리저리 다닌 까닭에 지금은 사막을 웅장하게 내려다보면서

    중원의 여러 강대국과 겨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도시를 건설하고 도읍을 세우면 우환을 피하기 어렵게 되고

    창고에 비축하게 되면 적들의 도둑 표전이 될 뿐입니다.

    진(진)나라 백성들을 성곽에다 가두고 자본과 기술을 키워서 

    농업과 잠업을 권하는 것과는 같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철저히 익혀서

    이웃 나라가 약하면 그 틈을 타고 이웃이 강하면 몸을 피하는 것이 

    장구한 계획입니다.

    황제라는 헛된 명예는 실속이 없으며 다만 세간의 과녁이 될 뿐이니

    그것을 어디에다 쓰시겠습니까?    

 

독발이록고가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 안국장군의 말이 옳다.”

 

(31) 북량의 내분 : 저거몽손의 단업 제거(AD401)

 

북량왕 단업은 비록 학문을 갖추기는 했어도 용렬한 서생에 불과했다. 정치가 매끄럽지 못했고 군사는 형편없었다. 처음부터 단업을 도와 나라를 일으킨 공신들도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북량의 인심과 실세는 흉노족인 저거씨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그 핵심에 저거몽손(AD368-AD439)이 있었다. 자기에게서 민심이 차츰 멀어지는 것을 느낀 단업은 저거몽손을 제거할 생각이 굳어져 갔다. 평소 저거몽손을 멸시하고 모욕하던 문하시랑 마권을 수도 장액태수 저거몽손의 후임으로 갈아치우려고 했다. 저거몽손은 주군 단업에게 마권의 부적절함을 고해바쳤다.

 

 “ 천하에 근심해야 할 사람은 오직 마권 뿐 입니다.”   

 

용렬한 단업은 겁에 질려 저거몽손 그 한마디에 마권을 죽여 버렸다. 저거몽손이 사촌 형 저거남성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 단공은 분별력과 결단력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혼란을 다스릴 능력도 없고 통솔력도 없습니다.

   단업에게 충성하던 색사와 마권이 제거되었으니

   이제 제가 일어나 그를 제거하고 형님을 세우려 합니다.“

 

저거남성이 이렇게 대답했다.

 

 “ 원래 단업은 외로운 나그네에 불과했다.

   우리 집안이 추대하였으므로 

   우리 형제 믿기를 물 속 고기와 같이 했었다.  

   우리를 그렇게 믿는 사람을 도모하는 것은 상서로운 일이 아니지 않느냐?“

 

힘을 합쳐서 단업을 제거하려고 생각했던 저거몽손은 사촌 형 저거남성의 생각이 다른 것을 알고 내심 많이 놀랐다. 단업 만큼이나 순진하고 용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거몽손은 다른 방법을 고안해냈다. 일단 자진하여 서안(감숙성 산단현) 외지로 나가겠다고 자원했다. 단업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저거몽손은 사촌 형 저거남송과 같이 난문산에서 석별의 제사를 지내자고 제안했다. 저거남송은 순진하게 그렇게 하기로 액속했다. 저거몽손은 몰래 사마 허함을 시켜서 단업에게 알리도록 했다.

 

 “ 저거남성이 날을 잡아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만약 난문산에서 제사를 지내겠다고 보고하면 

   그것이 반란의 시작인줄 아십시오.“

 

며칠 뒤 정말로 저거남성이 단업에게 난문산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알려왔다. 단업은 죽각 군사를 보내 저거남성을 잡아들였다. 억울한 저거남성이 단업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저거몽손이 전에 반란을 일으키자고 했지만 인륜을 들어서 제가 반대했습니다.

   다만 제 동생이 한 일이라서 감추어 두고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있으므로 부하들이 따르지 않을 것을 두려워 한 저거몽손이

   저를 죽이고자 이런 계략을 세운 것이 분명합니다.

   왕께서는 제가 죽었다고 거짓으로 말한 다면

   저거몽손은 저의 죽음을 핑계로 대고 분명히 군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 때 저를 보내시면 분명히 반란은 실패할 것입니다.“

 

단업이 그 말을 믿지 않고 저거남성을 죽였다. 저거몽손이 울면서 무리들에게 말했다.

 

 “ 끝없는 충성심으로 단업을 보필하였으나

   형님 저거남성을 이유없이 죽였다. 

   제군이 원수를 갚지 않으면 누가 갚겠는가? “

   처음에는 나라 위세가 미약하였지만 

   이제는 단업과 같은 용렬한 군주가 해결할 수 없으리만치 나라가 커졌다.“

 

저거남성은 평소 군사들의 민심을 깊이 얻고 있던 터라 만 명 이상이 몰려들어 복수를 외쳤다. 그 위세에 눌린 여러 장수들과 강족, 호족들이 저거몽손에게 귀순해 왔다. 단업은 우장군 전앙에게 저거몽손을 방어할 것을 요청했으나 전앙은 부대를 이끌고 저거몽손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단업의 거의 모든 수하 장수들이 저거몽손에 귀순하자 수도 장액은 그냥 허물어졌다. 단업이 저거몽손에게 당부했다.

 

 “ 나는 혈혈단신이요.

   그대 가문에서 추대 받아 이까지 왔으니 내 목숨을 구해주어 

   동쪽으로 가서 가족을 보게 해 주시오.“

 

저거몽손은 즉시 단업의 목을 베었다. 사마광은 단업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 단업은 유학자로써 평소에 어른스럽고 의젓했다.

   그러나 권모와 책략이 없고 법에 위엄도 없어서

   부하들의 기강이 무너졌고 해이해 졌다.

   게다가 무당과 점(무격,巫覡)을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에 패배에 이르렀다.

   (자치통감 권112)“

   

저거남성의 아들 저거부점과 친척 저거구뢰는 군사를 이끌고 남량의 독발이록고에게 항복했다. 양중용 등 저거몽손의 부장들은 저거몽손의 인물됨과 리더십을 인정하여 대도독으로 추대했다. 저거몽손은 대사면령을 내리고 중요 직책에 측근과 친척을 배치했다. 저거몽손이 북량을 완전히 장악한 셈이다.

 

(32) 여찬의 폭정과 여초의 쿠테타(AD401)

 

후량 주군 여찬은 집권하자마자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면서 정치를 등한시 하였다. 태상 양영이 그런 여찬을 안타까이 여기며 간언을 올렸다.

 

 “ 폐하께서는 하늘의 뜻에 부응하여 천명을 받았으니

   당연히 도를 가지고 정치를 올바로 하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 강토는 날로 쪼그라들어 

   두 고개(홍지령과 언지산) 사이의 땅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선조의 대업을 펼칠 생각은 않고

   날이면 날마다 여자와 술과 사냥에 빠져 계시니  

   장차 위태로움이 올까 크게 걱정됩니다.“ 

 

여찬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여전히 환락에 빠져 들었다. 이 때 반화(감숙성 영창현)지역을 다스리던 여초가 멋대로 선비족을 공격하였는데 선비족 추장 사반이 동생 걸진을 여찬에게 보내 억울함을 호소하게 했다. 여찬은 즉시 명령을 내려 여초와 사반을 동시에 조정에 들어오게 하였다. 여찬이 부르자 여초는 두려웠다. 몰래 수도 고장(감숙성 무위) 들어와 전중감 두상과 비밀 결탁을 맺었다. 그리고는 여초가 여찬을 알현했는데 주상 여찬이 여초를 몹시 나무랐다.

 

 “ 경은 형제관계를 빌미로 나를 속이다니

   경의 머리를 베어야 나라가 안정되겠구나.“

 

여초가 어쩔 줄 모르며 사과했다. 여찬은 애초에 여초를 죽일 생각은 없었고 다만 따끔하게 훈계를 할 생각이었다. 곧이어 여찬이 여러 신하들과 주연을 베풀었는데 여초의 형인 여륭이 여찬에게 여러 번 술을 권하는 바람에 여찬이 몹시 취하게 되었다. 여찬의 수레가 궁궐의 작은 문을 통과할 수 없게 되자 시위장수가 칼을 내려놓고 수레를 미는 동안에 여초가 잽싸게 땅에 놓여 진 칼을 잡아서 여찬을 내리쳤다. 놀란 여찬이 수레에서 피하며 내려와 여초를 웅켜 잡으려 하다가 가슴에 칼이 찔렸다. 수레를 밀고 있던 시위장수 두 명이 황급히 여초를 제압하려 했으나 무기가 없었으므로 여초의 칼에 죽고 말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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