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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5월30일 17시05분

작성자

  • 장성민
  •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

메타정보

본문

이른바 ‘촛불혁명 정신’이  전체국민의 총의이자 명령인가?

 

 문재인 정권은 틈만 나면 자신들의 정부가 ‘촛불 혁명’으로부터 탄생했고, 그 ‘촛불 혁명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문 정권은 ‘촛불 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의 뜻을 ‘거역할 수 없는 성역’으로 간주하면서 이들의 ‘의사(意思)’를 마치 전체 국민들의 총의(總意)이자 명령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이 ‘촛불 혁명 정신’의 이름으로 대의민주주의와 입헌주의를 무력화시키는 ‘포퓰리즘’ 독재를 자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포퓰리즘’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포퓰리즘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포퓰리즘 정권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독재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가? 현 문재인 정권은 포퓰리즘 정권인가? 문재인 정권의 어떤 측면이 포퓰리즘 독재로 규정할 수 있는가?

 

‘포퓰리즘(populism)’에 대한 다양한 정의(定義)가 존재하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위협 요인으로서의 ‘포퓰리즘’이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정치적 목적을 획득하려는 정치지도자들이 사용하는 정치적 선동, 전략 또는 정치행태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일컫는다.

 

본래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주권이 일반 국민들에게 있다는 뜻으로 폭군이나 소수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막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적 장치인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적 대표자를 선출하고 각종 법과 정부의 활동이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자, ‘유권자 다수가 원하면 무엇이든 실현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서 유권자의 인기를 끌 수 있는 방안이면 무엇이든 정책으로 펼칠 수 있다’는 포퓰리즘적 민주주의가 탄생했다. 정치적 포퓰리즘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형태로, 대중을 동원하여 정치권력을 창출하거나 유지하는 대중영합주의 정치이다.

 

포퓰리즘의 6가지 특성

 

현재 학계에서의 논의를 토대로 이러한 포퓰리즘이 갖고 있는 특성을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현 문재인 정권의 행태가 이러한 포퓰리즘의 특성에 부합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문 정권의 포퓰리즘적 성격을 규명하고,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포퓰리즘 독재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① 장기 국가이익보다 정파이익 앞세워

 

첫째, 포퓰리즘은 정파적 이해에 따른 정치적 지지나 인기 확보 때문에 국익과 미래, 특히 장기적인 국가이익을 저버리게 된다. 따라서 정치가 포퓰리즘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면 그 나라 정치는 중우(衆愚)정치의 늪에 빠지고,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하여 결국 국제적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며, 그 결과로 선진국이 되지 못하거나 그 대열에서 탈락하게 된다. 포퓰리즘 정권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거짓말이나 제살 깎아먹기 식 근시안적 이익을 내세워 대중의 환심을 산다. 국가 살림살이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복지의 확대, 세금 감면, 무상 보조금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유권자의 환심만 살 수 있다면, 국가의 장래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다수의 대중이 원하면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중우정치(衆愚政治)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인상시키고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환경을 개선해서 노동자 계층을 적극적인 지지세력으로 동원하기 위한 대중영합적 포퓰리즘이다. 이미 실업급여가 7조원에 육박하며 사상최대를 기록했고, 고갈 위기에 처한 국민연금의 지난해 수익이 무려 14조원 가깝게 감소했으며, ‘문재인 케어’로 인한 재정부담으로 건강보험공단 사업의 부채비율이 10%이상 높아졌다. 여기에 내년 예산은 사상 최초로 500조원을 넘게  짜여지는 데다가 6조원 대의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되면서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예산 쏟아붓기’라는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의 마지노선을 40%로 삼는 근거가 무엇이냐”면서 ‘퍼주기 재정확대’를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15년 9월 야당 대표 시절에 박근혜 정부의 재정상황을 비판하면서 “국가채무비율이 마지노선인 40%를 넘었다”면서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고 비판했던 입장을 불과 4년 만에 빈대떡 뒤집듯 뒤집어버린 것이다. 나라 재정과 국민들의 미래 생활이 파탄 나던 말던, 자신의 정부만 ‘나랏돈 퍼주기’로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포퓰리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②대중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강조하면서 대의민주주의 파괴

 

둘째, 포퓰리즘은 정치지도자와 대중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강조하면서 대의민주주의와 입헌주의를 비롯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무너뜨린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인한 집권자는 정당이나 헌법상의 다양한 제도들을 매개로 하지 않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으로 국정운영을 도모하게 된다. 포퓰리즘 정권은 의회나 정당을 포함하는 대의정치의 제도들을 불필요한 장신구쯤으로 생각하고 국가 관료들의 견제를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공적인 메커니즘이 아니라 언론을 활용해서 호소하거나 법에 규정된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정책을 강행해서 권력분산과 견제의 원칙을 훼손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포퓰리즘의 양태도 진화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안드레아 켄달-테일러(Andrea Kendall-Taylor)와 에리카 프란츠(Erica Frantz)는 2016년 저명한 대외정책 관련 학술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게재된 “How Democracies Fall Apart

–Why Populism is a Pathway to Autocracy”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군사 쿠데타 등을 통해 갑작스럽게 민주주의와 단절을 가져왔던 기존의 포퓰리즘과는 달리,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포퓰리즘은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민주주의를 해체시키고 독재로 나아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광범위하게 퍼진 불만을 통해 민주적 선거에서 승리한 포퓰리스트들은 “자신들의 통치에 제약이 되는 제도들을 점진적으로 와해시키고, 반대진영을 왜소화시키며, 시민사회를 침식해간다.” 또한 “이들은 특히 안보와 사법 분야를 비롯한 권력의 주요 자리에 충성분자들을 심고, 언론을 인수하거나, 법적인 제약을 가하고 검열을 시행함으로써 언론을 무력화시킨다.” 이 두 학자들은 이처럼 “민주주의가 언제 무너지는지 모르게 붕괴시키는 ‘교활한’ 새로운 포퓰리즘을 통한 ‘권위주의화(authoritarianization)’가 지난 10년(2000-2010)동안 전체 민주주의 붕괴의 40%를 차지하면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추세대로라면 ‘포퓰리즘을 통한 권위주의화’는 곧 군사 쿠데타를 제치고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독재로 나아가는 가장 보편적인 경로'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포퓰리즘이 어떻게 보이지 않게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독재로 나아가는지를 분석한 이 논문을 읽으면서 지난 2년 동안 문재인 정권의 행태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문재인 정권 하에서 의회는 정부 정책을 승인하는 ‘거수기(擧手機)’로 전락했다. 문 정권은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이 아닌 구조적 결함을 메우기 위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 보다 자신들이 원하는 개혁 과제를 추진해 나가기 위해서 군소 야당들과 연합하는 형태를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제1야당과 ‘독재와 반독재’ 과거 공방을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 ‘협치’, ‘대화와 타협’, ‘대의민주주의’ 등의 민주적 원칙들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 정권은 사법부를 비롯한 권력의 주요 요직에 자신들 정권의 성향에 맞는 이른바 ‘캠코더’ 인사들을 포진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특히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충성스런 자기 사람을 심어서 향후 전개될 수도 있는 ‘탄핵상황’이나 ‘국정운영의 실정(失政)’에 따른 재판을 대비하고 있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자기편 사람 심기에 올인하다 보니까 후보자들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는 국회 인사청문보고서도 채택되지 않은 부패한 공직 후보자들을 임명하면서 삼권분립과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은 허망하게 무너져버렸다.

 

 여기에 문 정권은 여론 형성의 핵심 역할을 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공영방송 경영진을 자신들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전면 물갈이하고, 방송 인, 허가권을 무기로 종편방송의 목줄을 비틀고 있으며, 정부에서 지원하는 신문과 방송사에 대한 광고 발주를 통해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이처럼 문 정권은 의회와 사법부를 무력화시켜 대의민주주의와 입헌주의의 원칙들을 파괴시키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언론을 통제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통해 민주주의를 서서히 붕괴시키고 독재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③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반(反)엘리트, 반(反)기득권적 특성

 

셋째, 포퓰리즘은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반(反)엘리트, 반(反)기득권적 특성을 갖는다. 우선 포퓰리즘의 등장 배경에는 기존 질서에 대한 불만과 분노와 저항이 짙게 깔려 있다. 그리고 기득권 지배 엘리트에 대한 대립적 존재로서 다수 대중의 위치가 설정된다. 여기서 핵심 전략은 기득권층, 혹은 지배 엘리트의 타락함과 탐욕을 부각시킬수록 그 대립적 위치에 있는 일반 대중의 중요성과 신성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대중과 엘리트 간의 상호 적대감, 대립이 포퓰리즘의 기본적 속성을 이룬다. 하지만 새로운 엘리트들은 ‘인민 대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약속하지만 정작 포퓰리스트 정치 현장에서도 인민 대중은 정치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인민은 사라지고 특정 지도자나 집단이 새로운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트주의’야말로 포퓰리즘의 숨은 본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출범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헌정 중단이라는 비상사태 속에서 이뤄졌다. 이런 상황에서 문 정권은 이전 박근혜 정권과 여기서 더 나아가 이명박 정권까지 지난 보수 세력 집권 10년 동안에 몸담았던 인사들과 모든 정책과 제도들을 '촛불 혁명'을 이룩한 ‘위대한 국민의 이름으로’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문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적폐청산’을 제1호 국정과제로 삼아 정부 13개 부처 및 기관에 ‘적폐청산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구성원을 대부분 친여, 좌편향 인사들로 채웠다.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이전 보수정권 때의 과거를 뒤져 수사기관에 보고하도록 하고, 무려 1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검경(檢警) 수사 인력을 동원해서 사상 유례 없는 ‘인적 청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세 명의 국정원장, 장차관급을 비롯한 110여명의 전직 고위 공직자가 구속 수감됐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군 장성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에 이어 ‘사법농단’수사를 통해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시키고, 현직 판사 66명을 징계 요청했으며, 전현직 법관 10명을 기소했다. 그중에는 드루킹 여론조작 혐의로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에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판사도 포함됐다.

이것만 봐도 현 정부의 적폐청산이 잘못된 제도와 시스템의 개혁, 개선보다는 ‘정치 보복’성 인적청산에 집중되고 있음이 명백하다. 

 

이런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 3일 원로와의 간담회에서 ‘적폐청산을 하고 나야 협치나 타협도 할 수 있다’면서 지금의 마녀사냥식 적폐 청산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는 대통령 탄핵의 비상상황을 빌미로 '촛불민심'이라는 이름하에 이전 정권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롭게 집권한 세력들로 기존 질서를 완전히 재편하는 포퓰리즘의 전형(典型)인 것이다. 아울러 모호한 ‘국민’, ‘보통사람’ 등의 개념을 앞세워 일반 대중들을 정치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포퓰리즘 정치를 답습하고 있다.

 

④ 이분법적 단순화와 적대정치를 선호

 

넷째, 포퓰리즘은 이분법적 단순화와 적대정치를 선호한다. 포퓰리스트의 사전에는 이분법밖에 없다. ‘정치적 이원론(political dualism)’이 포퓰리스트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다. 모든 존재는 적 아니면 동지이고, 그 중간단계는 없다. 그들은 정치적 이슈도 단순화시켜 이분법적 대결로 끌고 나간다. 정치 세계를 적대적인 둘로 나누듯, 모든 정치 담론을 자신들이 찬성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대립시켜 구획함으로써 전선(戰線)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도 국민들을 앞장서서 편가르기 하면서 대립하게 만드는 분열과 배제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특히 나라 안의 정치적 경쟁자는 주적(主敵)으로 삼고 나라 밖의 주적을 동지로 끌어들여서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고 있다. 도대체 주적이 누구인가? 김정은인가, 북한인가, 영남(TK)지역인가, 아니면 보수인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대화와 타협은 온데간데없고 정치적 경쟁자들을 원수처럼 여기면서 이들을 궤멸시키기 위해 모든 정치적 자원을 총동원한다. 심지어 적대 세력이던 북한과도 손을 잡고 정적제거를 통한 권력유지에 혈안이 되고 있다. '나는 선(善)이고 상대방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대결 구조 속에서 정치적 반대세력은 민주주의 규칙 속에서의 정당한 경쟁자가 아니라 극복하고 소멸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지난 5.18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제1야당을 겨냥해서 ‘독재자 후예’라고 한 발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자신의 모든 언행이 ‘좌파 독재자’라고 비판받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이렇게 ‘독재자’로 비난받고 공격받는 장본인이 다시 독재정치 운운한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변화무쌍한 4차산업혁명 시대를 헤쳐 나갈 글로벌 민주주의의 흐름에서 본다면 아직도 과거 80년대 사고에 머물러서 ‘독재 대 민주’의 낡은 구도를 재연하는 이러한 작태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여기에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라는 사람은 제1야당 대표의 광주 방문에 대해 “얻어맞으려고 오는 것"이라면서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말고, 말을 붙이지 않으며, 악수를 하지 말고 등을 돌려라”는 ‘3무(無) 지침’을 제안했다. 이는 상대방을 흠집내고 공격하면서 분열과 적대감,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친노패거리 정치의 진수(眞髓)를 보여준 것이다. 망국적 분열의 친노 정치의 유령이 다시 떠돌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현 집권세력은 자신들이 언제나 옳고 항상 ‘정의(正義)’의 편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그래서 자기편이 부당한 판결을 받으면 ‘법관 탄핵’을 운운하면서 이를 전면 부정한다. 자신들 패거리의 이익과 권력욕을 위해서라면 삼권분립이나 사법부 독립과 같은 민주주의 원칙 따위는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운동권 집권세력이 수많은 국민들의 고귀한 피와 희생으로 쌓아 올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송두리째 위협하고 있다.

 

⑤ 대중의 정치참여를 독려

 

다섯째, 포퓰리즘은 대중의 정치참여를 독려한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대중들은 정당이나 시민단체와 같은 기존의 매개적 기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대규모 정치참여를 조직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대중의 광범위한 정치 참여가 일상화 되면서 대중의 환심을 사는 것이 정치의 본질인 것처럼 생각되는 포퓰리즘의 유혹이 더욱 커진 것이다. 포퓰리스트들은 이러한 인터넷 공간을 주 무대로 자신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홍위병들을 조직화한다. 그리고 이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 형성의 주력군으로 삼는다. 그런 다음 이들 홍위병들이 ‘가공 생산’하는 여론이 마치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처럼 과대포장한다. 그리고 ‘다수의 대중이 원하는 것’을 이행한다는 명분하에 이를 실행하는 중우정치(衆愚政治, mobocracy)를 펼친다. 더군다나 포퓰리즘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국민을 바보로 보고 조작의 대상으로 삼아 여론조작에 나서기도 한다. 이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민주적 원칙들을 무시하고 여론을 자기 마음대로 조작하는 ‘디지털 독재(digital dictatorship)’가 등장하는 것이다.

 

대중의 정치참여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스스로를 ‘참여정부’라고 불렀던 노무현 정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사모’라는 온라인에 기반을 둔 친노 홍위병들을 조직화해서 이들의 정치참여를 통해 무명의 노무현은 일약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집권 이후 탄핵으로 인한 정치적 위기상황에서도 이들 세력의 커다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국민 참여’라는 구호와는 달리 국민 전체보다는 젊은층, 그 중에서도 결집력과 행동력이 강한 친(親) 노무현 성향 네티즌의 의견이 보다 많이 반영되는 편향이 발생했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한 정치 참여가 국민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 특정 정파인 노무현 지지자들의 의견에 의해서 좌우됐기 때문에 전자민주주의에 입각한 ‘디지털 참여’가 아니라 ‘디지털 포퓰리즘’으로 전락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된 ‘디지털 포퓰리즘’은 참여정부를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 ‘디지털 독재’로 진화되었다. 

 

 킹크랩을 동원한 무려 8,800만 개의 댓글조작을 통해 여론을 장악해서 지난 대선과정에서 민심을 왜곡시킨 드루킹 불법댓글여론조작사건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우선 선거여론조사를 다양한 기술로 조작해서 민의를 왜곡하거나 인터넷 댓글 조작기술과 기계를 통해 유권자들의 선택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거짓여론을 형성시킨다. 그런 다음에는 특정인이 지지하는 후보가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서 일반 유권자들로 하여금 대세추종의 선택을 하도록 판단의 프레임웍을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여론조작 기술은 민주주의의 본질인 민의의 본심을 조작, 왜곡시켜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을 파탄시킨다. 그런데 정권 탄생에서부터 ‘여론조작 정권’의 멍에를 뒤집어 쓴 문재인 정권이 최근에도 리얼미터의 수상한 여론조사 결과 등으로 인해 또다시 정권유지를 위한 여론조작을 통해 ‘디지털 독재’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만약 또다시 국민을 우습게 알고 여론을 자기 입맛대로 조작, 왜곡하는 반민주적인 ‘디지털 독재’를 자행한다면, 정권의 운명을 바꿀 분노한 국민들의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⑥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한다

 

여섯째, 포퓰리즘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한다. 그런데 감성은 대개 충동적이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反)이성적 선동정치를 일삼는다.

 

포퓰리스트의 선동술(煽動術)은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다수 대중의 공통관심사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다수 대중에게, 단순해서 이해하기는 쉽지만 현실 속에서 구체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때로는 이를 위해 이벤트 코스프레나 민족주의(nationalism)가 동원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선동정치가 힘을 얻는 곳에서는 합리적인 사유와 건전한 상식이 뿌리내리기 힘들다. 이성적 토론이 전제되어야 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지만, 포퓰리즘은 이것을 부정한다.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기본 조건을 훼손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도 끊임없이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서 각종 이벤트를 기획하고 이미지 정치를 통해 충동적인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예컨대, 직접 커피를 따르는 모습, 시민들과의 셀카를 반기는 모습, 넥타이를 풀고 소매를 걷고 참모진과 산책하는 모습,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명절 당일 고향으로 가는 귀성객들에게 교통방송을 하는 이벤트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권 홍보나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한 이벤트뿐만 아니라 대중의 특정한 감성을 자극해서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를 테면 세월호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을 끄집어내서 대중들에게 분노심을 자극시키거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 이벤트 등을 통해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데 활용한다. 하지만 이렇게 국민간의 분열과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과거 소환’ 때문에 ‘화해와 상생의 현재’와 ‘통합과 창조의 미래’는 길을 잃게 된다.

한편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과도한 민족주의 정서를 부추겨서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으로 악화되었다. 경기도 각급 학교에서 사용하는 일본산 비품에 ‘전범(戰犯)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는 스티커를 붙이려고 한다거나, 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 낙인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라며 은연중에 친일과 보수세력을 연계시켜 이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현 정권이 앞장서서 반일감정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 친일 청산과 비뚤어진 역사바로잡기는 반드시 이뤄나가야 하지만, 그것에만 올인 해서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는 한일관계의 암흑기를 만들면 도대체 우리의 국익은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 정권의 가장 대표적인 감성 정치는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이벤트였다. 전격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닫던 위기상황을 일거에 남북이 함께 하는 ‘평화와 번영’의 분위기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의 최우선 선결조건인 북한의 비핵화도 곧 실현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감성적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문 정권은 그저 막연히 남북 간의 ‘평화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인상만을 국민들에게 전달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를 달성하는지’에 대해선 침묵했다. 이를 위한 어떤 비전과 전략과 정책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북한이 치밀하게 기획한 ‘비핵화 쇼’에 장단 맞추고, 북한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홍보하는데 전력투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아무런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만 남았다. 김정은은 무력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쳤고, ‘비핵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연일 남한 비방과 긴장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평화가 왔다’고 떠들어대던 문 대통령은 ‘탄도 미사일’을 탄도 미사일이라 부르지 못하고 ‘단도 미사일’이라는 기상천외한 신조어(新造語)까지 만들어내는 삼류 코미디를 직접 연출하면서 ‘불상(不詳) 정권’의 ‘불상(不詳) 대통령’이라는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처럼 문 정권은 충동적이고 일시적인 대중의 감성을 자극해서 초미의 관심사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북한 비핵화’라는 아젠다를 던지고,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남북간 ‘평화와 번영’의 환상만을 심어준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감성 정치를 보여준 것이다.

 

‘이분법적 분열, 배제의 정치, 환상만을 심어주는 감성 정치’는 이제 그만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재인 정권은 ‘촛불 혁명’의 계승이라는 미명하에 특정 지지세력에 의해 과대 대표된 ‘일반 국민’을 앞세워서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고 입헌주의의 원칙들을 무너뜨리는 반민주적 포퓰리즘 정치를 강행하고 있다. 특히, 이념이 다른 이전 정권의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 마녀사냥식 인적 청산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오로지 자기 패거리의 정치적 이익과 권력욕을 위해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를 팔아먹으면서 ‘나라 곳간 거덜 내는 퍼주기식 포퓰리즘’ 정책들만 내놓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인터넷 홍위병 집단을 동원한 여론 조작과 왜곡, ‘적과 동지’만 존재하는 이분법적 분열과 배제의 정치, 국민들에게 헛된 환상만을 심어주는 한탕주의식 이벤트 감성 정치 등을 전방위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그 실체가 모호하기만 한 ‘일반 국민’을 ‘전가의 보도’처럼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무너뜨리는 새로운 유형의 포퓰리즘이 갖고 있는 특성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망친 케이스가 바로 남미의 베네수엘라이다.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에서 석유매장량이 1위이다. 1950년 당시 1인당 GNP가 7,424달러로 세계 4위였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당시 우리나라 1인당 GNP는 67달러로 세계 109위였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까지도 남미 제1의 경제부국이었다. 이랬던 베네수엘라가 지금 경제파산을 맞게 된 원인은 바로 포퓰리즘 정치 때문이었다. 

 

표를 얻기 위한 재정확대로 국가곳간이 거덜 났고 이로 인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맞았다. 지금 베네수엘라는 지폐 몇 다발씩을 들고 나가야 고작 바나나 한 개와 식빵 한 조각만을 살 수 있는 처참한 경제부도국가로 전락했다. 수퍼마켓의 진열장에는 생필품이 동이 났고, 굶주린 국민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쓰레기더미를 헤집고 다니는가하면, 자신들이 키운 애완견을 잡아먹고 비둘기를 사냥하고 다닌다. 대낮 거리에는 강도와 사기꾼이 들끓어 달러를 신발 밑 깔창에다가 숨기고 다닐 정도이다. 

 

어쩌다 세계 석유매장량 1위국가인 베네수엘라가 이런 비참한 경제참상을 맞았을까? 바로 표를 얻기 위해 국가재정을 마구잡이로 살포한 망국의 포퓰리즘 정치 때문이다. 지금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콜롬비아로 넘어가기 위한 탈출행렬은 끝이 안보일 정도라고 한다. 올해 말이면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난민 숫자가 540만명에 달한다. 매일 평균 6만3천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콜롬비아로 넘어가고 있다. 그것도 국경을 지키고 있는 수비대와 경찰에게 뇌물을 바쳐야 빨리 넘어갈 수 있다. 

 

이런 베네수엘라의 경제파산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표를 얻으려고 국가 재정을 마구잡이식으로 살포한 포퓰리즘 정치인들 때문에 국가경제가 파산했고, 나라가 망했으며, 그 비극의 결과는 오롯이 국민이 떠안게 된 것이다. 

 

조국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있는 문재인표 포퓰리즘 또한 지금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국가재정을 고갈시켜 경제를 파괴의 길로 이끌고 있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실시한 포퓰리즘이 조국 대한민국을 '동북아의 베네수엘라'로 빠뜨릴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망국의 포퓰리즘 정치를 중단해야 한다. 아니, 국민이 선거를 통해 확실히  나라망치는 문재인표 포퓰리즘을 청산해야 할 것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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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5월30일 17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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