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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 흥망의 교훈 : #15 자만심으로 멸망한 틈새왕국, 남량(E)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5월30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5월29일 13시43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12

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23) 여홍의 쿠테타 실패(AD400)

 

비록 양왕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거의 모든 군권과 행정권이 동생인 여홍에게 귀속된 것에 대해 여찬은 불만과 의혹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여홍 또한 그런 여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홍이 먼저 일어나 여찬을 공격했다. 여찬은 그의 심복 초변을 보내 반격에 나섰다. 여홍의 무리는 초변의 일격에 무너져 도망갔다. 여찬의 군대는 여홍의 근거지인 동원(도읍 무위의 동쪽성)을 약탈시켜 그곳의 모든 물자와 사람을 빼앗아 나누어 가졌다. 그 안에는 여홍의 아내와 자식들도 있었다. 반란에 패한 여홍은 독발이록고에게로 가기로 마음먹고 남쪽으로 달아나던 도중에 친족인 것을 믿고 삼촌 여방에게로 갔다. 여방은 여홍을 잡아서 여찬에게로 압송했다. 여찬은 여홍의 늑골을 잘라 죽였다

여홍의 쿠테타를 쉽게 제압한 여찬이 부하들을 모아놓고 크게 웃으며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다. 시중 방구가 대답했다.

 

 “ 하늘이 후량 왕실에 겹으로 재앙을 내려 우환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황제가 붕어하신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은왕(여소를 말함)이 폐위되어 쫓겨 가다 죽었고

   능묘가 막 완성될 찰나에 대사마(여홍)이 군사를 일으켜

   경사에는 피가 흐르며 형제가 칼로 맞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록 여홍이 스스로 멸망의 길을 판 것이기는 하지만 

   폐하에게 더 이상 형제는 없게 되셨으니

   어찌 백성에게 반성하고 사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병사를 풀어 저렇게 난폭하게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욕보이게 하셨으니 흠결은 여홍에게 있었는데 

   백성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게다가 여홍의 아내와 자녀들은 폐하의 제수이고 조카인데

   그들이 욕을 보고 비첩과 종이 되면 천지신명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방구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자 여찬도 태도를 고치고 그에게 사과했다. 여홍의 아내와 자식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동궁에 안치하고 위로했다. . 

 

(24) 여찬의 무리한 남량 독발이록고 정벌계획 실패(AD400)

 

집권한 여찬은 지난해 형 독발오고의 사망으로 내부가 혼란한 남량을 점령할 생각을 굳혔다. 중서령 양영은 그런 여찬을 강력하게 말렸다.

 

 “ 독발이록고는 비록 갑작스런 변고로 왕이 되기는 했지만

   위와 아래가 다 그에게 진심으로 복종하고 있습니다.

   틈이 전혀 벌어지지 않았으니 아직은 정벌이 불가능합니다.“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반대하는 조정의 신하들을 가볍게 여긴 여찬은 마침내 남량정벌군을 파병했다. 남량에서는 독발이록고가 동생 독발녹단을 보내 방어하도록 했다. 두 나라 군사는 삼퇴(청해성 낙도 부근)에서 맞붙었는데 후량군사가 크게 패했다. 목이 잘린 후량 군사만 2천명이 넘었다.

 

(25) 이고(李暠)의 등장(AD400)

 

이고는 농서(감숙성 농서)사람이고 한족이다. 당시 세상에는 저족(전진과 후량을 세움), 선비족(남량의 독발씨와 서진의 걸복씨)이나 흉노족(북량의 저거씨) 혹은 강족들이 곳곳에서 큰 세력을 형성했지만 이고(AD3514-AD417)는 전량의 장씨와 함께 보기 드문 한족 세력으로써책을 좋아하고 인자하여 평판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오랜 전에 곽논이라는 사람이 동복형제 송요에게 이렇게 말했다.

 

 “ 그대는 장차 신하 중에는 최고 지위에 오를 것이고

   이고는 나라를 소유하는 자가 될 것이요.

   어떤 말이 이마가 하얀 망아지를 나을 때가 아마 그 때가 될 것이요.“

 

AD398년 양궤가 독발이록고와 연대하여 후량의 여찬군을 도중에서 맞서 싸우다가 크게 패하면서 왕걸기에게 도망갈 때 양궤의 참모였던 곽논은 무리를 이끌고 서진의 걸복건귀에게 항복했었다. 양궤와 왕걸기는 함께 독발이록고에게 투항했다.

 

맹민이라는 사람이 북량의 사주(돈황)자사가 되어 이고를 효곡(돈황 서쪽지역)현령으로 삼았는데 송요는 북량의 단업을 섬겨서 조정의 중책인 중산상시가 되어있었다. 맹민이 죽자 돈황지역의 사람 풍익과 색선이 이고의 평판을 듣고 돈황태수로 옹립추대했다. 이고는 극구 사양했으나 송요가 장액에서 은밀히 편지를 보내 이고에게 말했다.

 

 “ 단업은 위태롭습니다.(북량의 영향력이 약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

   형께서는 곽논의 예언을 잊으셨습니까?

   방금 하얀 이마를 가진 망아지가 태어났습니다.“     

 

송요의 말을 알아차린 이고는 사람을 북량 단업에게 보내 돈황태수의 정식 임명장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고는 이렇게 해서 북량 단업 조정의 정식 돈황태수가 되었다. 이고가 돈황태수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돈황사람 색사가 급히 단업에게 사람을 보내 이고의 음흉한 속셈을 알리며 부적격자라고 알려왔다. 단업은 즉시로 임명을 철회하고 대신 색사를 돈황태수로 바꿔 임명했다. 돈황태수가 된 색사는 5백 명의 기병과 함께 임지로 떠났는데 떠나자마자 이고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태수가 되었으니 나와 맞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고는 단업의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색사를 맞이하려 했는데 측근 장막과 송요가 말렸다.

 

 “ 단왕이 원래 어리석고 아둔합니다.

   영웅호걸이란 큰일을 할 사람인데

   어찌 손을 모아 아둔한 사람의 지시를 받들어

   귀한 기회를 남에게 넘겨주려고 하십니까?

   지금 색사는 돈황 주민들의 민심을 등에 업고서 자신만만할 뿐

   귀공의 반격을 꿈에도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의 거병으로 그들 일당을 쓸어 담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고에게 색사를 처단한 뒤 나라를 일으키라는 암시였다. 이고가 그대로 따랐다. 먼저 송요를 색사에게 보내 달콤한 말로 꾀면서 염탐을 시켰다. 돌아 온 송요의 보고는 이랬다.

 “ 색사의 군대는 허당들입니다.”

 

이고는 즉시 아들 이흠과 이양을 파견하여 색사를 습격했다. 색사는 패배하여 장액으로 달아났다. 평소 친하던 색사가 자신에게 섭섭한 짓을 한 것을 원한삼은 이고는 단업에게 색사를 주살할 것을 요청했다. 단업의 보국장군 저거남성도 또한 색사를 미워하여 제거할 것을 요청했다. 단업이 마침내 색사를 죽이고 이고에게 사과했다. 단업은 이고에게 도독양흥이서제군사라는 직책을 내렸다. 양흥(감숙성 안서현 부근) 서쪽의 모든 통치권을 맡긴다는 직책이다.

 

(26) 양궤의 독발이록고 암살계획(AD400)

 

2년 전 독발오고에게 투항한 양궤는 전현명과 함께 모의하여 그의 동생이자 새로 무위왕이 된 독발이록고를 죽이기로 계획을 세웠다. 원래 양궤는 악양(감숙성 천수현)에 살던 저족으로써 후량의 장수였는데 AD398년 그러니까 3년 전 무위 부근의 이민족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곽곤과 함께 공동맹주로 추대되었던 사람이다. 측근 정조가 용의 머리를 버리고 뱀의 꼬리를 좇는 것이므로 맹주로 추대를 받지 말라고 권했지만 스스로 대장군이라고 하면서 사실상 후량에 반란을 일으킨 자였다. 후량의 여찬이 곽곤을 공격하여 이기자 쫓기던 양궤와 곽논은 독발오고에게 구원을 요청하였고 독발오고는 동생 독발이록고와 기병 5천을 보내 구원해 주었었다.(AD398) 독발오고 형제의 도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후량의 공격을 몇 번 이긴 양궤는 후량과의 결판을 벌일 생각을 했지만 매번 곽논이 말려서 그만 두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후량 여찬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서 AD398년 독발오고에게 피신했던 자였다.

 

그런 양궤의 과거 행태를 보면 자신의 여러 번 도움을 줬던 독발이록고를 충분히 암살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독발이록고 또한 그걸 모를 만큼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었다. 양궤의 음모는 발각되었고 독발이록고는 양궤와 전현명을 죽였다.

 

(27) 서진의 후진 항복(AD400) 

 

AD400년 경 지금의 감숙성 지역에는 크게 다섯 개의 세력권이 있었다. 하나는 청해성 서녕을 중심으로 하는 독발오고의 남량과 난주를 중심으로 하는 걸복국인의 서진(西秦)과 그 북쪽 고장(감숙성 무위)을 축으로 하는 여광의 후량, 그 서쪽 지금의 장액을 거점으로 하는 저거몽손의 북량(北涼)과 그보다 더 서쪽 지금의 주천을 중심으로 하는 이고의 서량(西涼)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걸복국인-걸복건귀 형제의 서진과 독발오고-독발이록고 형제의 남량은 요흥의 후진과 국경이 겹치는 탓에 서로 다툼이 많았다. 후진의 요흥은 먼저 5천 군사를 요석덕에게 주어 농서지역으로 보내 서진의 걸복건귀를 공략했다. 

 

걸복건귀는 농서에 진을 치고 후진군을 방어했다. 걸복건귀는 모올에게 방어를 맡기고 자신은 별동대를 이끌고 요석덕의 후미를 차단하여 보급로를 끊고 급습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요흥의 주력부대가 곧이어 도착함으로써 걸복건귀의 계략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날씨도 나빴으므로 수천의 별동 기병들이 길을 헤매다가 대패하여 도주하고 말았다. 농서에남아서 저항하던 걸복건귀의 3만 6천 군사도 모두 후진에 투항하고 말았다. 요흥의 주력부대는 농서를 함락시키고 나서 북진하여 부한(감숙성 유중)을 거쳐 서진의 수도 난주로 쳐들어갔다. 걸복건귀는 먼저 난주로 퇴각한 뒤 본인은 윤오(감숙성 영정)으로 도망갈테니 모두들 후진에게 항복하라고 지시했다. 모든 걸복건귀의 부하 장수들이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 죽고 살고 간에 폐하를 따를 것입니다.”

 

걸복건귀가 말했다.

 

 “ 나는 당장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목숨을 연명하려고 한다.

   만약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는다면  

   훗날 대업을 다시 일으켜 경들과 함께 만날 것이니

   지금 따라서 다 죽음을 택하는 것은 무익한 일일 것이다.“

 

마침내 모두 울며 헤어졌다.

 

[그림] 농서회랑지역의 세력도(AD400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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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걸복건귀의 남량 투항 생각(AD400)

 

걸복건귀는 수백 기병을 이끌고 남량의 독발이록고에 투항을 애걸했다. 독발이록고는 동생 독발욕단을 파견하여 그를 크게 영접한 뒤 진흥(청해성 민화현)에 안치했다. 진북장군이자 독발이록고의 동생인 독발구연이 걸복건귀를 의심하며 이렇게 말했다.

 

  “ 걸복건귀는 원래 우리의 속국이었습니다.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를 높였다가 지금 형세가 불리하니

    우리한테 머리를 숙여 들어 온 것일 뿐입니다.

    만약 후진의 요씨에게로 간다면 우리한테는 큰 골칫거리가 될 것입니다.

    차라리 더 서쪽인 을불(청해성 청해호 서쪽)로 보내 

    아예 단절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독발이록고가 말했다.

 

  “ 저 사람이 궁색해져서 나에게 왔는데

    도리어 내가 그를 의심한다면 

    어떻게 사람의 도리라 할 수 있겠는가?“

 

주변의 여러 이민족들이 남량에 피신한 지도자 걸복건귀를 초청하자 걸복건귀가 호응할 생각을 품었는데 걸복건귀의 부하 한 사람이 몰래 급히 사람을 보내 이를 독발이록고에 알렸다. 독발이록고는 곧바로 3천 기병을 파견했다. 걸복건귀는 독발이록고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태자 걸복치반에게 말했다.

 

  “ 우리 부자가 모두 이곳에 있으면

    독발이록고가 반드시 의심하고 죽이려 들 것이다.

    지금 요씨(후진)가 매우 강성하니 나는 그에게 귀순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가족이 다 가면 반드시 잡힐 것이니

    너의 형제와 어머니를 두고 가면 그들이 안심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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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5월30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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