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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粉飾)회계, 기업에게 좋은 소식인가? 나쁜 소식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12월25일 18시2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33분

작성자

  • 오문성
  • 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법학박사/경영학박사/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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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분식(粉飾)회계,  기업에게 좋은 소식인가?  나쁜 소식인가?

 

 분식(粉飾)이란 분(粉)을 발라 단장을 한다는 본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회계분야에서 분식회계는 실제와 다르게 이익을 부풀리거나, 이익을 줄이는 행위 모두를 말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회계분식은 이익을 부풀리는 방향의 분식이므로 이익을 부풀리는 분식에 대하여 그 논의를 한정하려고 한다. 회계에서 이익을 부풀려 그 기업의 가치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분식회계와 분을 발라 단장한다는 본래의 의미와는 당연히 실제와 다르게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그 기업의 당기순이익의 공시와 관련하여 두 가지의 상반된 방향의 유혹을 느끼곤 한다. 예를 들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자하는 경우, 새로운 주주의 영입 시, 자본시장에서 자사의 주식가격을 올리고 싶은 경우는 이익을 많이 내고자 하고, 과세관청에 세금을 납부할 때는 납부하는 세액을 줄이기 위해 이익을 한 푼 이라도 줄이고 싶어 하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회계에서 산출되는 이익을 기준으로 과세하지 않고 세무조정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과세소득을 도출하여 과세하기는 하지만 이익이 많이 나는 기업이 세금을 많이 낼 개연성은 당연히 높다. 만약 어떤 기업이 이익을 부풀리는 회계분식을 하였다면 결국 그 기업의 재무제표를 믿고 돈을 빌려준 채권자나, 회사의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는 엄청난 손실을 보기 때문에 회계분식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지대한 일종의 회계사기(accounting fraud)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회계분식은 「상법」, 「형법」,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등에서 이러한 행위를 규제하는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회계분식사건인 엔론(Enron)사건과 관련하여 휴스턴 지방법원은 제프리 스킬링 전 CEO에게 징역 14년의 중형과 벌금 1800만 달러, 별도로 민사상의 책임을 물었다. 이렇게 회계분식에 대하여 중형을 선고하는 이유는 회계분식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한 두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수백명, 경우에 따라서는 이보다 휠씬 더 많은 피해자를 낳아서 그 파장으로 인한 악영향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우리대법원(2006.1.26. 선고 2005두6300판결)은 분식회계를 행한 납세의무자인 대우전자(원고)가 분식회계가 적발된 이후 법인세의 부과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원심이 분식 결산한 기업회계서류를 기초로 하여 법인세 과세표준과 세액을 결정한 이사건 각 부과처분은 거래의 실질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 대하여 실질과세원칙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납세의무자가 분식회계를 행하고 그로 인하여 법인세를 과다 납부한 후 분식회계가 적발되자 법인세를 부과 취소해달라는 행위에 대하여 납세의무자의 신의성실을 문제 삼은 과세관청(피고)의 주장에 대하여도 납세의무자에게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모순되는 행태가 존재하고, 그 행태가 납세의무자의 심한 배신행위에 기인하였으며, 그에 기하여 야기된 과세관청의 신뢰가 보호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인바, 과세관청이 실지조사권을 가지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 그 실질을 조사하여 과세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납세의무자가 분식결산을 하고 이에 따라 과다하게 법인세를 신고, 납부하였다가 그 과다 납부한 세액에 대하여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다툰다는 사정만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될 정도로 심한 배신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고, 과세관청이 분식결산에 따른 법인세 신고를 그대로 믿고 과세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신뢰라고 할 수 없다고 하여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납세자가 회계분식을 통하여 이익을 부풀려 놓고 회계분식이 적발되면 과세관청에 대하여 세금을 돌려달라고 경정청구를 하는 경우 과세관청이 이러한 주장을 배척하기 위하여는 국세기본법 제15조에 규정되어 있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근거로 할 수 있다. 국세기본법 제15조는 “납세자가 그 의무를 이행할 때에는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하여야 한다. 세무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에도 또한 같다”라고 하여 납세자와 과세관청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납세자가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는 납세자에 대하여 여러 가지 제재수단이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원칙은 과세관청의 경우에 문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 사실이고 납세자의 신의성실을 문제 삼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다. 납세자의 신의성실에 대하여 우리 대법원(1999.11.26. 선고 98두17688판결)은 “객관적으로 모순되는 행태가 존재하고, 그 행태가 납세의무자의 심한 배신행위에 기인하였으며, 그에 기하여 야기된 과세관청의 신뢰가 보호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라는 요건을 들고 있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을 바탕으로 회계분식이 납세자의 신의성실에 위배되는지에 대하여 검토해보면 대법원 판결의 내용은 몇 가지 점에서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첫째, 회계분식이라는 납세자의 행동이 객관적으로 모순되는 행태라고 볼 여지가 있는가이다.  일반적으로 납세자들은 세무보고의 목적으로는 과세이익을 줄이려고 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회계분식은 세무보고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행동을 해서라도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납세자의 의도된 행위이다. 그러므로 납세자가 회계분식이 적발되기 전에 이익을 부풀려 신고한 행위와 적발된 후 부풀린 이익이 실제이익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행태는 객관적으로 모순되는 행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객관적으로 모순되는 행태가 납세자의 심한 배신행위에 기인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회계분식은 일반적인 납세자가 세금을 줄이기 위하여 과세소득을 줄이거나 가공경비를 계상하는 것과 그 방향성이 틀리다. 세금을 더 내더라도 세무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세금을 더 납부했다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이 요건을 적용함에 있어서 심한 배산행위의 상대방이 과세관청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도 있다. 회계분식의 실질적인 큰 피해는 과세관청이 아닌 채권자와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과세관청은 국민들로 하여금 세금을 징수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러므로 심한 배신행위는 과세관청에 직접적인 배신행위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채권자와 투자자에게 심한 배신행위를 했다면 과세관청에 대한 배신행위로 보아야 한다. 셋째, 그에 기하여 야기된 과세관청의 신뢰가 보호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의 판단도 중요한 요소이다. 과세관청이 실지조사권을 가지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 그 실질을 조사하여 과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해가 되지만 법인세가 원칙적으로 정부가 부과결정하는 세목이 아닌, 신고납부세목이어서 납세의무자의 신고에 의해 납부의무가 확정되므로 납세의무자의 착오나 실수가 아닌 명백한 분식결산의 의도로 이익을 부풀려 세금을 많이 납부한 경우까지 과세관청이 실지조사를 통하여 세금을 줄여 주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착오로 인하여 세금을 과다 납부한 경우 경정청구제도를 통하여 납세자는 구제받을수 있다. 착오로 인하여 과다납부한 세금에 대하여 과세관청의 신뢰가 보호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착오가 아니고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세금을 과다하게 납부하였고 그 목적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해악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과세관청의 신뢰가 보호받을 이유가 없다고 해서 세금을 환급해 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이해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은 대법원 판결에서도 설시했듯이 합법성을 희생하여서라도 구체적 신뢰보호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 이 내용은 실제로는 세법규정상 정당한 주장이나, 신뢰보호의 원칙상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납세의무자가 분식회계를 통하여 이익을 부풀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난후 분식회계가 적발되어 이익의 감소를 반영하여 세금을 줄여달라고 하는 주장은 실제이익을 기준으로 세금을 돌려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일면 그 주장의 정당성에 대하여 수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식회계행위의 결과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중차대한 사회적 범죄행위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위에서 제기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나서도 세금을 환급해 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정당화되기 힘들다.

 

 현행 「법인세법」 제66조 제2항 제4호는 “내국법인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59조에 따른 사업보고서 및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른 감사보고서를 제출할 때 수익 또는 자산을 과다 계상하거나 손비 또는 부채를 과소 계상하는 등 사실과 다른 회계처리를 함으로 인하여 그 내국법인, 그 감사인 또는 그에 소속된 공인회계사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고ㆍ주의 등의 조치를 받은 경우로서 과세표준 및 세액을 과다하게 계상하여 「국세기본법」 제45조의 2에 따라 경정을 청구한 경우 그 법인의 각 사업연도의 소득에 대한 법인세의 과세표준과 세액을 경정한다”고 하여 회계분식과 관련한 세액의 경정을 명문화하고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법인세법」 제58조의 3 제1항에서 “내국법인이 제66조 제2항 제4호에 따른 경정(更正)을 받은 경우에는 그 경정일이 속하는 사업연도의 개시일부터 5년 이내에 끝나는 각 사업연도의 법인세액에서 과다 납부한 세액을 차례로 공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법인세법」 제72조의 2는 “납세지 관할 세무서장 또는 관할지방국세청장은 제66조 제2항 제4호에 따른 경정을 할 때 제58조의 3 및 제59조에 따라 세액공제한 후 남은 금액이 있으면 환급금과 환급가산금을 즉시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결국 분식회계와 관련하여 납부한 세금의 경정청구가 들어오는 경우 5년간 세액공제하고 그래도 남은 금액이 있다면 환급금과 환급가산금을 즉시 지급하게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환급이 「국세기본법」 제51조 제6항에 따라 국세환급금의 결정을 한 날부터 30일 내에 납세자에게 지급하는 반면 분식회계로 인하여 경고ㆍ주의 등의 조치를 받은 경우는 5년간 세액공제하고 나머지는 일시에 환급한다는 차이를 두는 정도로 분식회계에 대한 조세법상의 제재규정을 두고 있는 듯하다. 

 

 건전한 자본시장의 육성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이러한 중심에는 회계의 투명성이 자리 잡고 있다. 분식회계는 회계의 투명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며 이는 수많은 채권자와 투자자에게 피해를 준다. 미국경제에서 엔론사태가 미친영향은 미국경제 전체의 신용도에 영향을 줄만큼 지대하였다. 회계분식은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되어서는 안되며 이를 규제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완벽하게 갖추어져야 한다. 어느 기업이 분식회계한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 기업이 법적측면에서 책임을 져야하는 나쁜 소식(bad news)과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좋은 소식(good news)이 함께 오는 상황에서는 기업의 분식회계라는 범죄행위가 근절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법은 정책적인 목적에서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회계분식의 근절도 세법이 행해야할 긍정적인 기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납세의무자의 신의성실을 문제 삼지 않은 대법원 판결은 재고될 여지가 있으며, 현행 법인세법의 규정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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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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