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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속는 셈 치기’가 필요한 신뢰 회복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12월23일 18시5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35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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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한 번쯤 속는 셈 치기’가 필요한 신뢰 회복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불신 사회에서 신뢰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의 첫 단계는 바로 ‘한 번쯤 더 속는 셈 쳐 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몇 번 더 속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바로 신뢰 회복을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다.

지난 12월 5일에 있었던 ‘2차 민중 총궐기’ 집회 때 조마조마했다. 11월 14일의 1차 집회 때와 같은 폭력이 또 발생하면 안 될 텐데 하는 염려와 함께, 그럴 경우 서로에 대한 신뢰 회복이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대화는 영영 불가능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1차 집회 후 그 불법성과 폭력성 때문에 2차 집회를 불허하려는 방침이 나오기도 했으나, 법원은 “2차 집회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이 명백하게 발생할 집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근거로 이를 허락했고, 이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2차 집회가 이루어졌다. 다행히 2차 집회가 폭력 없이 마무리되면서 ‘이번엔 안 속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대화를 위한 신뢰 회복의 첫 발을 내디뎠다.

 

신뢰와 불신의 비대칭성

신뢰와 불신은 서로 비대칭적이다. 왜냐 하면, 신뢰는 단 한 번의 믿을 만한 행동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믿을 만한 행동들’이 쌓여야 비로소 구축되는 반면, 불신은 단 한 번의 믿지 못할 행동만으로도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번의 믿을 만한 행동’으로 신뢰 회복의 기회를 어렵게 얻었다면, 지속적으로 믿을 만한 행동을 더 해야만 비로소 신뢰가 쌓이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의 소통 상태를 보면 서로 ‘자기가 할 말만 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과정이 없다. 경청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소리의 파장을 귀로 들어주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최소한 어떤 부분에 ‘공감’할 수 있는지를 살피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대부분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당사자 또는 집단들 간의 관계에서는 상대의 이야기에 ‘100%’ 공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의 이야기 중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0%!’라고 생각하거나 (이것은 이전의 글에서 이야기한 ‘흑백 논리’에 해당한다), 또는 상대가 이야기할 내용을 자의적으로 지레짐작한 후 확신해버리는 것은 해결의 실마리를 더욱 꼬이게 만들 뿐이다. 상대의 이야기 중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1% 미만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려 하는 시도와 노력이 소통의 양 당사자에게 모두 필요하다.

법원이 2차 집회를 허용한 이유도 폭력, 불법 시위가 될 것이라고 ‘100%’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즉, ‘한 번쯤 더 속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기회를 준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지켜보았고, 아마도 그렇게 지켜보는 눈이 많았기에 불법이나 폭력 없이 잘 마무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번 쯤 속는 셈 치기’의 필요성

단 한 번의 못 믿을 행동만으로도 일단 불신이 형성되고 나면, 그것을 신뢰로 되돌리는 것은 처음부터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왜냐 하면, 한 번 속은 쪽에서 ‘내 다시는 속나 봐라’ 하며 상대가 신뢰를 쌓을 수 있는 행동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속은 쪽에서 ‘한 번 더 속는 셈 쳐 주기’를 자처할 때만 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양 당사자 모두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불신 사회에서는 양 쪽 모두 ‘절대로 속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뢰 회복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어느 한 쪽이라도 ‘다시는 속지 않겠다.’ 하고 더 강하게 다짐할수록 상대가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결국은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처럼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도 만약 서로를 믿었다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속을까봐 두려워서...’ 혹은 ‘어차피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테니...’ 하는 불신의 마음으로는 국가 전체의 통합을 이루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국가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닌 국가 전체를 포용해야 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넓은 마음으로 ‘한번 쯤 속는 셈 치고’ 상대를 한 번이라도 더 믿어 보는 과정이 중요한 신뢰와 소통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

 

‘날 선 발언’은 자제해야

신뢰 회복의 과정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은 표현의 방식이다. 같은 뜻이라도 ‘날 선 발언’으로 표현하면 상대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게 된다.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그것이 분노나 미움의 감정으로 전이되어 신뢰 회복에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일한 내용을 담되 최대한 ‘날이 서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의 화를 돋울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점잖은 표현을 사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도를 닦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느 한 쪽에서는 상대가 이성을 잃고 날선 발언이나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대의 화를 돋우는 전략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때도 힘들겠지만 ‘한 번쯤 더 참아주기’가 필요하다. 결코 쉽지 않지만, 쉽지 않기에 이를 극복하고 얻을 수 있는 결과 또한 매우 보람 있고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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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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