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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 탈출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7월24일 18시3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03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학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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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무력감 탈출

 

 

  처음에는 누구나 기대가 크다. 그러다가 기대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실망을 하고, 실망이 쌓이면 무력감에 빠진다. ‘아무리 해도 안된다’거나, ‘도무지 해 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거나, ‘해 봤자 소용없을 거야’라는 생각이 모두 무력감의 전형적인 상태다.

새로운 정권이 탄생할 때, 새로운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대개 큰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러다가 몇 가지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한다. 처음에는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또 다시 일어나 시도해 보지만, 계속 넘어지기만 하면 또 다시 일어날 의욕마저 사라진다.

전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의 경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등이 줄줄이 발생하면서 우리 국민의 기대와 희망은 좌절과 절망이 쌓여 무력감으로까지 변화해 가려 한다. 관광객들로 붐비던 명동 거리의 상인들도 힘이 빠져 있고, 어디든 취업해 보겠다며 수십 곳의 문을 두드리다 연거푸 좌절한 청년 실업자들도 의욕을 잃어 가고 있다. 최근 메르스 종식 선언의 기대와 함께 상황이 조금씩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다.

어떻게 하면 다시 의욕이 넘치는 상태로 심기일전할 수 있을까? 혹시 우리는 너무 단번에 큰 성과를 내려는 욕심에 갇혀 ‘작은 성공의 기쁨’을 누적해 가는 방법을 잊은 것은 아닐까?

 

□ 무력감 발생 원인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장기간 겪을 때 무력감이 발생한다. 지금은 긍정심리학의 대가로 자리매김한 마틴 샐리그먼 교수는 예전에 개를 이용해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개를 상자에 넣고 발바닥에 전기충격을 가하면, 개는 그 전기충격을 피하려고 한동안 발버둥 치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음을 경험한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면, 나중에는 그 전기충격을 피할 기회가 와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전기충격을 다 받는다. 무력감을 학습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샐리그먼의 개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까? 그렇게 믿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현재 우리나라에는 생애 주기별로, 지속적으로 무력감을 학습할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보자.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학업경쟁에 돌입한다. 한 발 앞서 나가기 위해 시작하는 선행학습은 유아 시절부터 시작돼, 정상적인 발달단계에서 순조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보다 더 앞선 내용을 주입시킨다. 그러면 아이들은 ‘즐겁게 성공의 경험을 누적’해 가는 것이 아니라, ‘힘들게 실패의 경험을 누적’해 가기 쉽다.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버거움을 견뎌내는 것은 ‘대학만 가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대는 대학생활 중에도 계속 이어지는 스펙 경쟁과 취업 경쟁으로 또 무너지고, 지속적인 좌절을 경험한다. ‘사회에 나가면 좀 나으리라’ 기대하지만, 대학 졸업 이후의 삶도 여전히 ‘미생’으로서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계속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고통을 장기적으로 경험한다.

어른들의 삶은 어떠한가? 30~40대의 젊은 직장인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지만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많고, 자기가 쏟은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보상은 너무 적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맡길 곳도 찾기 힘들고, 국가가 안전을 지켜 준다고 생각되지도 않아 이민을 고려하기도 한다.

50세 전후 명예퇴직하여 자영업의 전선에 뛰어든 이후에도 ‘실패 경험의 누적’은 계속된다. 평생에 걸쳐 무력감을 체득한 채 마침내 체념하게 된다. 지속적으로 성공을 경험할 확률보다 실패를 경험할 확률이 큰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에는 ‘패자 부활’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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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력감 탈출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무력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무력감 탈출의 불을 지필 수 있는 첫 단계의 촉발 요소는 일단 아주 작은 일에서 한 번 성공해 보는 것이다. 처음에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고,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 새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일단 처음에는 비교적 달성하기 쉬운 작은 목표를 설정해 ‘성공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성공하면 우리의 뇌는 그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비로소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단계가 무척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욕심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라고 하는 명문대에 입학할 실력이 되지 않더라도 일단 대한민국 상당수 수험생과 학부모의 꿈은 SKY다. 그래서 그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좌절한다.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성공 경험’을 쌓아 갈 수 있건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저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다 좌절하는 것이다.

물론, ‘꿈을 크게 가져라’라는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꿈을 크게 가지고 전진해야 그에 근접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속 누적되어 쌓이는 감정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스스로 어떤 큰 꿈을 이루겠다고 마음먹은 후 이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며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꿈의 달성 여부와 무관하게 그 과정에서 긍정적 정서가 누적되기 때문에 긍정적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문제는 타의에 의해, 또는 타인의 삶이 기준이 되어 너무나 높은 목표를 설정한 후 실패를 반복할 때 발생한다.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면 당장 내 앞에 있는 가까운 일, 작은 일에서부터 ‘성공의 경험’을 쌓아 나가야 한다.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 기업을 구성하는 직원이 무력감에서 빠져나오게 하려면, 무엇보다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작은 일에서부터 성공의 경험을 맛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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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욕 충만 사회를 향해

대다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엄청난’ 성공이 아니다. 그저 일상의 작은 생활 속에서 각자 들인 노력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으며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현 정부가 생애주기별 국민행복 정책을 내걸었을 때 기대가 컸다. 임기 5년 중 정확히 절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이러한 기본적인 정책들이 잘 실현되고 있는지 기초부터 잘 점검해 보기를 희망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지만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면, 이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체념하는 국민이 많아진다면, 잃어버린 정부의 신뢰와 추진력을 되찾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단번에 아주 큰 성과를 냄으로써 그동안 발목을 잡아 왔다고 생각하던 반대 진영을 보란 듯이 누를 수 있는 방안을 찾기보다는, 바로 옆 가까이에 있는 국민들 개개인의 삶 속에서 그들이 오늘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들이 올해 어떤 작은 꿈을 이루려 하고 있는지를 현장으로 들어가 경청해 보면 좋겠다. 정부가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 왜 그것을 몰라주느냐며 안타까워할 것이 아니라, 왜 국민들이 현 정부에 걸었던 초기의 기대가 하나 둘 무너지게 되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력감에 빠진 국민들은 현 정부의 비전을 보고 싶어 한다. 그 비전이 실천되어 가는 모습을 갈망하고 있다. 그 비전이 국민들의 하루하루의 삶과 직결되는 비전일 때, 그리고 그 비전의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될 때 조금씩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긍심, 희망, ‘하면 된다’는 생각, ‘국가가 우리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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