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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궐 선거와 정치 재편성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4월12일 20시1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33분

작성자

  • 김형준
  • 배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석좌교수(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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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서만 권력이 창출된다.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은 민심을 얻고 이를 토대로 정국 운영의 동력을 차지하게 된다. 특히, 정권 중반기에 실시되는 재․보궐 선거는 결과에 따라 정부 여당을 무력화시키고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시킬 수 있을 만큼 폭발력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보선은 비록 4곳(서울 관악을, 인천 서구 강화을, 광주 서구을, 경기 성남시 중원구) 밖에 안 돼 규모는 작지만 정치적 의미는 적지 않다. 특히, 이번 재보선은 ‘심판의 다층화’로 인해 정치적 파장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첫째, 여야 대표들의 향후 대권 경쟁력에 대한 심판이 담겨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각각 여야의 수장으로 취임한 뒤 처음으로 맞붙는 선거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두 대표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달라 질 수 있다. 만약, ‘1여다야’의 악조건속에서도 새정치연합이 의미 있는 선거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이는 문대표의 공으로 돌릴 수 밖에 없고, 향후 문 대표의 대권 행보는 크게 탄력을 받을 것이다. 동교동계와의 밀월 관계를 유지하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도 있다. 반대로 새정치연합의 강세 지역인 관악을과 광주 선거에서 패배하면 안철수 등 비노계의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야당 발 지도체제 개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 수 도 있다. 한편, 새누리당이 2곳 이상에서 승리하면 김무성 대표의 위상은 강화 될 것이다. 더구나, 친박 핵심 인물들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 파동’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일궈낸다면 정치적 의미는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선거에서 패배하면 당․청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비박과 친이가 연대해서 청와대와 친박을 향한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될지 모른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위한 특별 검사제 도입을 둘러싸고 내홍이 깊어질 수도 있다. 또한, 유승민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로 촉발된 ‘신(新)보수’와 ‘구(舊)보수’의 정파 논쟁도 더욱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정치적 부활을 노리는 거물급 정치인에 대한 심판이다. 그 중심에 제3의 신당창당을 추진하는 '국민모임' 소속의 정동영 전의원이 있다. ‘떳다방 정치인’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까지 정 전의원이 관악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모임 측은 관악이 전통적인 야당의 텃밭인 점, 민주당 대표에 대선후보를 지낸 정 전 의원의 대중 인지도가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 관악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호남 호남 출신 고령 인구의 친노에 대한 거부감 등을 고려해 한번 해볼만 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특히,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새정치연합 후보보다 득표를 더 많이 하면 성공이라는 계산을 한 것 같다. 지난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서울 시장에서 물러난 오세훈 전 시장도 정치적 부활을 위한 행보에 가세했다. 그는 이번 선거의 최대 격전지인 관악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만약, 새누리당 불모 지역인 이곳에서 오 전시장이 승리를 일궈낸다면 그야말로 정치권에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 서구을에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천정배 전 의원의 운명도 초미의 관심사다. 천 후보는 “"무소속 한 석이지만 광주와 호남 민심이 담겨있는 한 석"이라면서 ”문재인 호 야당에 대한 강한 회초리. 옐로우 카드가 될 것이다“고 했다. 작년 광주시장 선거에서 안철수측이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하자 강운태-이용섭 후보가 탈당해 연대를 했지만 패배했다. 과연 천 후보가 광주의 바닥 민심을 요동치게 해서  기적의 승리를 일궈낼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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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새정치연합 동교동계의 파괴력에 대한 심판이다. 권노갑 상임 고문 등 동교동계는 이희호 여사와 DJ 묘소를 참배하고 4·29 재보궐 선거에 적극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동교동계가 재보선 4곳 전패 위기에 놓인 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박지원 의원은 ‘선당후사’를 강조하며 관악을 당내 경선에서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아 0.6% 차이로 석패한 김희철 전 의원을 설득했다. 만약, 야당의 텃밭인 관악을과 광주 서구을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패배하면 동교동계는 세대교체 요구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당장 추미애 최고위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이 가신들 지분 챙기라는 데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원칙과 정도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라 충고한 적이 있다. 반대로 최대 격전지로 부상 한 두 곳 선거에서 승리를 일궈낸다면 동교동계는 문재인 대표와의 '6대 4 지분 배분'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친노와 동교동간의 ’신밀월관계‘가 만들어 질수 잇다. 문제는 이럴 경우 안철수-김한길-박영선-박원순 등 새정치 세력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넷째, ‘종복 진보’ 심판론이 내재되어 있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잔재 세력과 지난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했던 새정치연합(민주 통합당의 후신)에 대한 심판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 관악을의 경우,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야권 연대로 통진당 이상규 후보가 38.2%의 득표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33.4%)를 제치고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27년간 야당 텃밭이었던 관악을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하면 ‘1여다자’ 구도속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면도 있겠지만 ‘종북 진보’ 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여하튼 이번 재보선은 다층적인 심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파장이 클 것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흥미롭다. 

그렇다면 이번 재보선 결과가 가져 올 정치적 함의는 무엇일까? 

 

‘정치 재편성’(political realignment)의 시각에서 보면 그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 정치 재편성은 정치 체제에서의 급격한 변화를 묘사하는 용어이다. 실제 정치권에서 새로운 연합을 가져오는 힘의 도래를 의미한다. 즉, 다른 정당의 지배적인 연합을 전환시키거나 교착상태에 빠진 정치권을 새롭게 대체하는 것이다. 이슈, 정치 지도자, 정당의 지역적 또는 사회 배경적 기반, 그리고 정치 체계의 구조 또는 규칙 등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때 정치 재편성이 일어난다. 그리고 일단 정치 재편성이 일어나면 상당한 기간 유지되면서 새로운 정치권력 구조가 형성된다. 이번 4․29 재보선은 정치 재편성과 관련 두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2007년 대선이후 형성된 유권자의 투표 행태가 지속될지 여부와 또 다른 하나는 기존 정당 체제의 변혁이다. 특히, 통진당 해산 이후 진보 세력의 공백을 어느 정치 세력이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새정치연합은 2007년 대선 패배, 2008년 총선 패배, 2012년 총선 및 대선 패배, 2014년 지방선거 무승부, 2014년 7․29 재보선 참패(새누리당 11, 새정연 4)등 선거에 유독 약한 정당이다.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는 정당은 정당으로써의 존재 가치가 없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공동의 적인 정동영 후보와 천정배 후보의 부상을 막기 위해 친노무현계와 동교동계가 일종의 ‘노-동 합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이 합작이 계속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승자독식의 한국 정치에서 지분 약속은 종종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한편, 정동영과 천정배가 선거 막판 연대를 성사시키고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면 ‘호남 자민련’을 향한 행보를 가속화할 수 있다. 여기에 친노 세력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동교동계 일부 가세하면 기존의 여야 양강 구도가 깨지면서 제3정당의 출현도 가능하다. 이런 정당 재편성을 현실화시킬수 있는 뇌관은 현재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선거제도 개편이다. 만약에 중앙선관위가 제기한 ‘지역구 200명, 비례구 100명’을 기초로 하는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채택되면 정당 체제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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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각 정당의 의석수가 비례대표 선거(정당투표)의 득표 결과에 따라 먼저 정해지고 정당은 정해진 의석수로부터 지역구 선거에서 얻은 의석수를 빼고 남은 의석수 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할당하는 병용제併用制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제 선거가 연계되어 있지 않아 의석 배분이 독자적으로 이뤄지는 일본식 병립제(竝立制)와 큰 차이를 보인다. 만약 2012년 총선에서 독일식 병용제가 채택되었다면 새누리당은 139석을 얻어 실제(152석)보다 13석 줄어들고, 민주통합당은 118석을 획득해 9석이 줄어든다. 

 

반면 통합진보당은 33석을 얻어 실제(13석)보다 무려 20석을 더 얻게 된다. 독일식 선거 제도는 비례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이렇게 정당 체제의 지각 변동을 가져 올수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만약 무소속 후보들이 승리하면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욕구가 게세질 것이다. 반대로 기존 거대 양당 후보들의 승리로 귀결되면 이런 식의 정치 재편성은 기대하기 어럽게 된다. 여전히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보수 양당의 독과점 체제가 지속될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정치 개혁특위가 활동중이다. 그런데 이 특위가 무엇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지 명확하지 않다. 이렇다보니. 특위는 의원 정수,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 제도, 선거구 획정위원회 구성,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 도입 등 세부적인 선거 제도 문제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개혁 특위가 한국 정치에 효율성과 대표성, 그리고 비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치 재편성이 일어 날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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