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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갑’들의 순환인사?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3월16일 19시0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05분

작성자

  •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KBO총재,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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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갑’들의 순환인사?

 

  앞으로 기획재정부 공무원이 삼성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듯하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1월 21일 ‘2015 업무보고’에서 공무원의 대기업 근무를 허용하는 인사혁신안을 발표했다. 이 안이 시행되면 공무원이 삼성·현대차·엘지 등 대기업 및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포함한 경제단체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적용 대상 공무원도 기존 4~7급에서 3~8급으로 확대했다. 대신 민관유착 방지를 위해 보수는 공무원 보수의 최대 1.3배로 제한한 기존 규정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민간근무휴직제는 공무원에게 선진 경영기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해 정부의 능률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2002년 참여정부 시절 도입 되었다. 그러나 민관유착 등 여러 부작용이 불거지자 2008년 폐지됐다가 2012년 대기업, 금융지주회사, 로펌, 세무법인 등에선 근무할 수 없다는 제한 규정을 덧붙여 부활시켰다. 이후, 규정이 지나치게 엄격해 실효성이 없다는 논란이 지속되면서 정부가 이번에 그동안 제외되었던 대기업을 포함시키고 적용대상 직급도 확대한 것이다. 우려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민관유착 가능성이 있는 분야의 재취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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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과연 인사혁신처가 내놓은 대책만으로 충분한 걸까? 안타깝게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먼저, 보수 제한 규정만 해도 가이드라인이 잘 지켜질 거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음만 먹는다면 피해 갈 방법은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내용으로는 오히려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본래 민간근무휴직제는 민·관 교류를 통해 공무원이 정책현장을 직접 체험케 함으로서 실효성 높은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런데 이번 인사혁신처의 안은 국가전체 경쟁력보다 대기업 중심의 정책 편향성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과거 산업화시대에 제한된 자원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대기업 우선 정책을 추진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 기조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는 경제만 있는 게 아니고 경제가 대기업으로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국가의 구성요소는 다양하고 구성원 간 이해관계는 끊임없이 충돌한다. 운영체계도 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국가운영에서 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려해야 할 측면이 많다는 뜻이다. 

 

 더욱이 저성장이 구조화 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중소기업 육성과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데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중소기업에 누가 가서 배우려 하겠느냐?”는 공무원 사이의 냉소는 이번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부처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공무원이 뭐 하러 중소기업 민간 직으로 가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중소기업에 갔다 오면 손해라는 인식이 많다고 한다. 결국 이번 민간근무휴직제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중심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공무원과 대기업 간의 유대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반면, 중소기업 성장에 필요한 동반성장 정책은 소외될 개연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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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이번 민간근무휴직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발표된 내용대로 시행된다면 인·허가권을 가진 힘 있는 부처나 ‘관피아’의 대명사로 불리는 기획재정부와 재벌 대기업의 결탁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또한 대상 기업 및 정부부처의 편중, 합법적인 로비 창구, 국가 중요 정보의 노출 등 과거에 드러난 부작용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정책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관의 권한이 강화될 수 있고, 그 역으로 대기업의 힘이 공직수행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정책경험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축적되어야 한다. 편향된 경험은 편향된 정책을 생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제 공무원의 중소기업 정책현장 경험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실효성 있는 중소기업 정책을 수립할 의지가 있다면 경제 공무원의 중소기업 정책현장 경험이 축적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고, 민간근무휴직제도도 그러한 방향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무원과 대기업의 이종 교배, 회전문 인사라는 세간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민간근무휴직제는 또 목표를 잃고 표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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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3월16일 19시0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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