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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의 유인체계와 책임소재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6월21일 17시42분

작성자

  • 박상인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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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현행 구조조정 방식의 문제점

  2013년 4월에 채권단이 STX해양조선을 자율협약 형태로 지원키로 결정했을 때,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등 일반 시중은행 3곳은 지원 불가를 선언하고 채권단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나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농협은행 등 국책은행과 특수은행은 채권단에 남아 자금지원을 강행했는데, 이에 대해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장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당국에 손실 보전과 면책 보장을 요구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연합뉴스, 2016.05.27.). 사실상 STX해양조선의 회생가능성이 낮은 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원 결정을 주도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15년에 진행한 정기 재실사에서 채권단은 "추가 리스크 부담 없이 회사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다"며 "2016년 하반기까지 추가 신규자금 지원 없이 정상 운영되고 2017년부터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고 평가하고 4천억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그러나 STX해양조선은 자율협약에 돌입한 이후 신규로 4조5천억원을 지원받고 38개월간 구조조정 끝에, 2016년 5월 25일 법정관리행이 결정되었다. 현재 STX조선해양 대출금 현황은 산업은행 (3조원), NH농협은행 (1.1조원), 수출입은행 (1조원), 무역보험공사 (0.06조원), 기타은행 (0.7조원) 등이다.

  그런데 STX해양조선에 대한 국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닌 전형적인 사례이다. 해운 및 조선산업으로 확대해 보면 국책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대한 금융권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약 1.77조원으로, 이중 특수은행(산은, 수은, 농협) 비중은 각각 77.6%와 68.4%이다. 해운사를 돕기 위해 2013년 한시적으로 도입한 회사채 신속인수제 지원규모는 현대상선 7천억원이고 한진해운 8천억원 수준으로, 신용보증기금이 이 중 9천억원 정도를 보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우조선에 대한 금융권의 익스포저는 21.7조원이며, 특수은행 (수은 12.5조원, 산은 4.1조원, 농협 1.6조원) 비중이 84.3%이다. 

  이런 국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책은행의 지원은 공적자금의 자동 투입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는데, 금융권은 국책은행의 지원이 이뤄질 경우 기업의 신용위험도를 B등급으로 평가하고, 따라서 구조조정 대상기업들을 채권은행들은 ‘정상’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국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부실 징후 기업에 국책은행 또는 특수은행이 주거래은행이 되고, 기업 도산에 따른 실업발생을 핑계로 삼고 기업 회생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기초로 국책은행은 지원을 확대한다. 국책은행의 부실 대출로 인한 BIS 비율 하락은 공적자금으로 자본을 확충해 사후적으로 해결한다.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을 통한 채무재조정 후, (1) 재벌총수는 경영권을 되찾거나 (2) 정부부주도의 사업재편 후 경영권을 되찾거나 (3) 회생 불가능한 경우 파산 절차를 밟는다.

  따라서 현행 구조조정은 국민에게 경영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다. 즉, 재벌총수일가나 공기업 경영자는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국책(특수)은행으로 전가할 수 있고, 국책은행은 부실대출로 인한 경영 압박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부실대출을 남발하고, 정부는 국책은행 자본 충당이라는 핑계로 공적자금 지원을 남발하는 방식이다. 결국 기업부실의 책임을 국민, 채권은행, 주주가 지는 순서가 되는 셈이다. 공적자금 투입 규모와 필요성에 대한 평가를 어렵게 하는 현행 방식은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관료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런 정부주도적 구조조정은 국책은행과 공기업 경영진, 재벌총수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며, 공적자금 투입의 효과와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함으로써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기업 퇴출이 시장의 평가가 아닌 정부의 정책적 판단으로 이뤄지게 함으로써 정경유착을 강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즉, 현행 구조조정은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의 결과이며 동시에 이를 공고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현행 구조조정 방식을 유지하면서, 재벌총수나 공기업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국책은행 관계자 및 정부 관료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총수일가의 사재 출연이나 대주주 감자 등도 결국 청산되어야 할 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되도록 하는 꼼수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 관료들의 지시로 이뤄지는 부실기업 지원에 대해 국책은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쉽지 않다. 나아가 검증될 수 없는 전문가 의견을 기초로 정책 판단을 했다는 관료들의 항변에 대해 로비 등의 반대 물증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2. 구조조정 정책의 패러다임 변호가 필요한 시점

  현행 구조조정 방식은 대주주, 주주,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경영실패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함을 논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과 회사채 매입의 대부분을 국책은행이나 공공기관이 충당하고 있는 실정인데, 해운·조선업체 대출금만 산업은행 8조3천800억원, 수출입은행 12조8천400억원 등 21조원 이상이라고 한다. 2014년 말 기준으로, 대기업집단 계열기업에 대한 은행 대출의 24%가 정책금융인데,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조선, 건설, 해운 등 부실 우려가 높은 산업에 정책금융 비중이 특히 높다. 

  현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의 핵심 고리는 국책은행과 특수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았고, 법원 주도의 회생절차도 신뢰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국책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은 과도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현행 방식의 유지가 자본시장과 법원주도 회생절차의 미발달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또한 국책은행의 지배구조나 평가 방식 변경이 도덕적 해이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움은 지난 20년간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가 보여주며, 오히려 정부의 국책은행에 대한 통제와 관치금융만 심화시킬 수 있다.

  기업 구조조정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첫 단추를 바로 끼우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국책은행과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구조조정을 더 이상 확대하지 말고, 국책은행의 도움 없이 더 이상 회생할 수 없는 기업에 대해서는 청산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또한 국책은행과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회 조사를 통해 책임 규명도 뒤따라야 한다. 더 이상 미룰 것이 아니라, 시장주도적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실패와 기업부실의 책임을 대주주, 주주, 채권자 순으로 지도록 해야만 한다.

  시장주도적 구조조정은 채권은행(채권단)과 기업의 자율협약과 법원을 통한 회생 및 청산 절차로 구성된다. 기업이 주식이나 채권 발행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이나 은행의 추가적 융자를 통해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예측될 때, 기업과 채권단은 자율협약을 통해 채무재조정, 추가 금융지원, 감자 또는 채권의 출자 전환 등을 논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채권단은 기업청산 시 회수할 수 있는 채권 금액과 채권의 일부를 탕감(채무재조정)해 줌으로써 기업이 정상화되어 미래에 회수할 수 있는 채권금액을 비교해 자율협약에 임할 지 또는 기업청산을 요구할 지 결정하게 된다. 또한 경영자, 주주 등은 기업청산 시 잔여 가치와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받아드릴 수 있는 수준의 감자나 사재출연 등의 비용을 차감한 기업 정상화에 따른 순편익을 비교해 자율협약에 임할 지 또는 기업청산을 요구할 지 결정하고, 노동자들도 기업청산 시 보장받을 수 있는 편익 (임금, 퇴직금, 실업급여 등)과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받아드릴 수 있는 수준의 임금 삭감 등을 통해 기업 정상화에 따른 순편익을 비교하게 된다. 즉, 기업청산이라는 신뢰할 수 있는 위협(credible threat) 하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의사결정은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고 효율적인 결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이 청산 및 회생절차에 돌입할 때, 주주와 채권자 모두 기업 청산 가치를 극대화시킬 유인이 있다. 따라서 기업 청산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경영자를 법원이 선정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청산을 통한 사업재편은 효율적이게 된다. 

  그러므로, 시장주도적 구조조정 절차는 적대적 M&A 위협처럼 효율적 경영을 유인하는 시장기제이며,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대주주, 주주, 채권자 순으로 지게하며, 주주와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국책은행이나 특수은행의 이른바 정책적 개입이 없게 된다면, 이런 시장주도적 구조조정은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3. 정책 제언

1) 단기적 대책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운 및 조선 기업 재무구조조정 및 사업구조조정 경우에, 국책은행을 통해 추가적 자금을 지원 없이, 회사채 발행, 신규 출자, 대주주 출자, 민간기관의 대출, 부분 매각 등의 자구노력으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 사업재편을 추진할 수 없는 기업은 청산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  

  기업 청산 시,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여부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검증과 승인을 거쳐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제조업에서 기업도산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사례는 매우 예외적이다. 노키아가 몰락할 때도 핀란드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았다. 2009년 미국의 GM 및 크라이슬러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2008년 금융 위기 와중에 발생한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는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경제위기로 전이 (systemic risk) 될 수 있는 은행산업이나 보험산업이 아닌 이상 공적자금 투입을 정당화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기업의 도산은 막아야한다는 것은 잘못된 전제인 것이다. 사양 산업 (falling industry)에 속한 기업들에게 구조조정의 명목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재정자금의 낭비로 귀결된다. 사양 산업이 아닌 산업에서, 특정 기업의 실패는 더 효율적 기업이나 새로운 진입기업이 대체될 수 있다.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할 경우에도, 공적자금 투자의 비용과 사회적 편익(실업 및 조세 등에 대한 영향을 고려)에 대한 계산이 필요하다. 2009년 미국의 GM 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사례는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미 재무부 (60.8%), 캐나다 정부 (11.7%), VEBA (Voluntary Benefit Association, 17.5%+2.5%), Old GM (10%) 등의 출자로 New GM을 설립하고, 새로운 기업(New GM)은 청산기업(Old GM)의 자산 및 고용 승계했다. 새로운 기업에 전문경영인을 선임해 빠른 시기 안에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사업재편을 실시한 결과, 4년 후 510억 달러의 정부 지원 자금 중 390억 달러를 회수할 수 있었다. 미 재무부는 2009년 6월 이후 약 341,000 일자리가 자동차 산업에서 창출되었고 GM이 세금을 계속 납부했다는 점을 들어, 공적자금 투입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 기업 청산 후 새로운 기업에 출자하는 GM 방식은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평가와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고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성을 기준으로 구조조정 이뤄지게 한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은 해운 및 조선 기업들이 청산에 돌입할 때,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와 필요한 자구계획과 자본확충 규모를 국회와 금융위원회에 제출하고, 정부는 국책은행 재무구조조정과 사업구조조정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고 공적자금 출자 승인 요청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국책은행에 추가로 출자하며, 국책은행 경영진, 이사회, 실무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실시하고, 대통령은 두 국책은행에 대한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 기관과 담당자 문책해야 한다. 이후 국책은행들은 발전적 해체 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 즉,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중소기업은행과 통폐합하고, 국책은행들을 통한 관치금융, 정경유착의 고리를 끈기 위해서 대기업에 정책금융을 하는 국책은행은 없어져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실업대책 및 지역경제 안정화에 필요한 기금과 프로그램을 확충에 재정 지출 확대 등 정책적 초점을 이동해야 한다.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대우해양조선의 경우, 노키아에서 시행했던 브리짓 프로그램과 유사한 적극적이고 맞춤형 일자리대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업대책과 지역경제 안정화를 위해 “경제적 재난 특별지역”을 선포하는 특별법의 도입도 고려해 볼만 하다.  

 

2) 중장기적 대책

  중장기적으로는 주식 발행을 통한 자본 조달과 주식시장을 통한 경영 감시 및 기업 청산이 제대로 작동하는 자본시장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반복되는 기업 부실과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은 은행 대출과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한국 재벌과 관치 금융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식 발행을 통한 자본 조달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적은 자본으로 비정상적 출자관계를 이용해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의 해소가 선결되어야 하며, 아울러 신속하고 효율적인 청산이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특히 청산전문법원의 설립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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