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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 흥망의 교훈#10L: 3대 인재에도 멸망한 후진(後秦)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6월28일 17시52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2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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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요필과 요선의 갈등과 혁련발발의 침략(AD415)

 

광평공 요필이 지난 해 자신을 헐뜯은 동생 요선을 아버지 요흥에게 참소했다. 마침 요선의 사마(측근 신하) 권비가 장안에 들어오자 요흥은 요선을 잘 계도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죽이려고 하였다. 권비는 죽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주군 요선의 비행을 고자질하면서 형벌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요흥은 요선 등의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고 화가 나서 요선이 주둔하고 있는 황릉에 사람을 보내 그를 감옥에 가두라고 지시한 뒤 요필에게는 군사 3만을 거느리고 진주(감숙성 천수)에 주둔하라고 명령했다.   

 

윤소가 나서서 요흥을 말렸다.

 

“ 지금 광평공 요필과 황태자 요홍이 사이가 좋지 않은데

  저렇게 많은 군사를 요필에게 주신다면

  만일 황제께서 편치 않게 되시는 날에는 

  천하가 위험하게 됩니다.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커다란 계책이 위태로워진다(小不忍,乱大谋)’고 했습니다.

  이는 바로 지금의 폐하를 위해 하는 말입니다.“

 

요흥은 윤소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왕 혁련발발은 후진의 행성(섬서성 황릉)을 뽑아 버리고 후진 병사 2만 명을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요흥이 격분하여 북지(섬서성 요현)으로 진격하여 진주에 있는 요필과 염만외를 차출하여 신평(섬서성 빈현)으로 보냈다. 혁련발발은 북량의 저거몽손과 연대를 모색하면서 후진을 괴롭혔다. 

 

  

(73) 요흥의 발작과 요홍의 형제애(AD415)

 

거의 8년 전 부터 몸이 아파 약을 먹었던 요흥이 발작을 일으켰다. 광평공 요필은 몸이 불편하다고 하면서 문병을 오지 않고서 군사를 모아 만일에 대비했다. 요흥은 그 소식을 듣고 요필의 무리 당성과 손현을 붙잡아 들여 죽여 버렸다. 요홍이 요흥에게 간청했다.

 

“ 형제의 불화는 제 잘못입니다.

  신이 죽어서 나라가 안정된다면

  신에게 죽음을 내리시고

  차마 죽이지 못하신다면 차라리 먼 곳으로 내 쫓아 주십시오.“

 

요흥이 모자라지만 효성이 극진한 요홍을 불쌍히 여겼다. 대신 요찬과 양희와 윤소를 불러서 요필을 제거하는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그러나 요홍은 그 계획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눔물로 아버지께 호소하여 요필 제거계획을 중지시키도록 했다. 요흥은 요필 무리를 사면했다. 요홍은 이 일 이후에도 동생 요필을 예전처럼 원한없이 극진하게 다루었다.    

 

 

(74) 최호 후진의 멸망예언(AD415)

 

형혹(화성)은 불길한 징조의 상징이다. 북위의 태사(천문학자)가 이렇게 상주했다.

 

“ 형혹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법칙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반드시 한 나라가 망하는데

  먼저 흉흉한 동요와 요망한 말들이 생긴 다음에

  재앙과 벌이 있게 되고나서 나라가 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북위 탁발사가 걱정스러워 유학자 10여 명을 불러들여 의견을 들었다. 최호가 이렇게 말했다.

 

“ 춘추좌전에 따르면

  신(神)이 신성(하남성 삼문협)으로 내려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19 경오일과 20일 신미일 사이에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였으니

  형혹이 사라졌다면 반드시 그 이틀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경오는 모두 후진을 의미합니다.

  신미의 신은 서쪽 오랑캐를 뜻합니다.

  지금 형혹의 가르침은 분명히 요흥의 후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화를 냈다.

 

“ 하늘 위에 별이 없어졌는데

  사람들이 어찌 그 간곳을 알 수가 있단 말이요?“

 

최호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80여 일 이후 형혹은 동정별자리를 나왔고 한 참 그 주위를 맴돌다가 마침내 떠났다. 그 뒤 후진에는 가뭄이 들어서 저수지가 모두 메말랐고 동요가 와전되어 불렸으며 사람들이 불안해했다. 후진은 최호의 예언대로 그 다음해(AD417)에 멸망했다.

 

 

(75) 궁정 암투와 요흥 죽음(AD416)

 

후진 황제 요흥은 아들 요홍에게 감국을 시키고 화음(섬서성 화음,장안 동쪽 100KM)으로 가서 살았는데 병이 위독해지자 다시 장안으로 돌아왔다. 황문시랑 윤충은 요흥이 돌아오는 때를 기하여 황태자 요홍을 죽이려고 계획했다. 요홍이 아버지를 맞이하러 나가려하자 측근 신하가 말렸다.

 

“ 주상은 위독하시고

  사악한 신하들이 전하 곁에 우굴거리니

  나가셔도 전하를 뵙지 못할 것이고

  물러나셔도 내일을 기약 못하는 재앙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홍이 이렇게 대답했다.

 

“ 신하된 아들로써

  병이 위중한 아버님을 영접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 신하가 대답했다.

 

“ 몸을 온전하게 보전하셔서 

  사직을 안정하게 하는 것이 더 큰 효행입니다.“

 

요홍이 그 말을 듣고 나가 영접하지 않았다. 상서 요사미가 황문시랑 윤충에게 독촉했다.

 

“ 지금 요흥의 승여를 받들고 거사를 하시면 

  지팡이에 의지하듯이 일이 쉽게 풀려 

  광평공 요필의 재난도 풀어내시고 동시에

  우리들의 죄도 눈처럼 녹아내릴 것 입니다.“

 

윤충은 요흥의 생사를 몰랐으므로 요사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요흥이 병든 몰을 이끌고 궁으로 들어와 요홍, 요소 및 호익도에게 궁궐 호위를 부탁했다. 그리고 염만외를 요필의 집으로 보내 그 안에 있는 병기와 갑옷을 모두 수거하도록 명령했다. 요필을 무장해제 시킨 것이다. 요흥이 누워있는 동안 요흥의 아직 어린 아들 요경아가 형 요음에게 요흥이 죽었으니 서둘러 병사를 일으켜 거사를 행동에 옮기라고 알려줬다. 

 

요음이 윤충과 함께 갑사 수 십명을 이끌고 황궁을 공격했지만 이미 염만외와 호익도 등이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으므로 쉽게 부수고 들어오지 못했다. 궁궐 밖이 방화로 소란해지자 아픈 몸을 이끌고 일어난 요흥이 요필에게 사형을 내렸다. 금병들은 죽은 줄만 알았던 요흥이 일어서서 움직이자 기뻐 날뛰며 역도들을 도륙했다. 반란을 일으킨 요음은 여산(섬서성 임동)으로 도망갔다. 요흥은 요소와 요찬과 양희와 윤소 등에게 유언을 불러 주었고 향후 정사를 보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다음날 요흥이 죽었다. 요홍은 아버지의 죽음을 비밀에 붙이고 요음과 윤원 등 역모 주동자를 체포 주살한 뒤 황위에 올랐다.(AD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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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유유의 침입과 연속 항복(AD416)

 

비록 요홍이 아버지의 뒤를 이었지만 주변 상황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저왕 양성은 기산(감숙성 예현)을 함락시킨 뒤 진주(천수)를 향해 내려왔고 후진의 요평과 요숭이 양성을 반격하였지만 혁련발발이 4만 기병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바람에 거의 모든 후진 장수들이 전사하거나 패퇴하여 들어왔다.   

양성이나 혁련발발만이 아니었다. 유유의 동진 군사들도 허약한 후진의 변경을 노리며 들어왔다. 왕진악, 단도제, 심임자 등이 모두 후진의 국경을 공격하여 들어왔고 그곳을 지키는 후진 장수들은 제대로 항전하지도 않은 채 유유 군사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이제 후진의 남쪽 국경은 회수에서 뒤로 크게 밀려 황하 언저리까지 후퇴해야 할 형편이었다.

 

후진 동평공 요소가 요홍에게 말했다.

 

“ 동진의 병사가 허창을 지났습니다만

  안정(감숙성 진안)은 외롭게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들이 공격하기도 또 지키기도 어렵습니다.

  마땅히 그리고 옮겨서 안으로 알차게 운영하시면

  10만 대군은 쉽게 얻습니다.

  그렇게 되면 동진이나 하나라가 침입하여도

  나라를 망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좌복야 양희는 이렇게 말했다.

 

“ 제공 요회가 위세로 이름이 뛰어납니다.

  요회에게 안정(감숙성 진안)수비를 맡기시면 됩니다.

  그리고 관중의 병사는 동진군사를 막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요홍은 양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의부랑 의횡이 몰래 요홍에게 말했다.

 

“ 요회는 광평공(요필)의 어려움이 있을 때 폐하께 큰 힘이 되셨읍니다만 

  폐하께서 제위에 오르신 후 보답을 변변치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안정지역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여

  남쪽으로 들어오려고 난리인데 그를 사지에 그냥 내버려두시면 

  만에 하나 그가 불안한 군중을 몰아 경사로 쳐들어 온다면

  얼마나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곧바로 불러 들여서 가까이 두시는 것이 안전하고 좋겠습니다.“

 

요홍은 반대했다.

 

“ 요회가 만일 불령한 마음을 품었다면

  징소하는 것 자체가 반란을 일으킬 계기가 될 것이다.“ 

 

 

(77) 동진의 낙양함락(AD416)

 

북진하는 동진 군사가 양성(하남성 등봉)과 형양(하남성 형양)을 함락시킨 뒤 쪽 성고(하남성 형양)까지 다다랐다. 그곳을 지키던 진류공 요광이 장안에 긴급구원을 요청했다. 요홍은 3천 기병을 염생에게 주어 즉각 구언하도록 했다. 그리고 요익남에게 보졸 1만을 거느리고 낙양으로 가서 돕도록 하는 한편 병주(산서성 영제)목 요의를 섬진(삼문협)으로 보내 굳건히 수비하도록 했다.       

 

요광의 참모 영삭장군 조현은 요광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충지는 금용(낙양성 북쪽모퉁이)이니 이것만 지키면 동진군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러나 요광의 사마 요우는 몰래 동진의 단도제와 내통을 하고 있었는데 조현을 매우 시기하고 있었으므로 요광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전하는 무용이 뛰어나지 않으십니까?

  이런 큰 사태를 만나 지키기만 하신다면

  설혹 지켜낸다고 한 들 나중에 책임추궁이 없겠습니까?“

 

요광은 요우의 말이 더 옳다고 판단하고 조현을 시켜 금용이 아닌 백곡오(하남성 언사 남쪽)를 지키도록 하였다. 조현이 눔눌을 흘리면서 요광에게 말했다.

 

“ 저 조현은 세 분 황제(요장,요흥,요홍)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니

 올바름으로 지키다가 죽을 뿐입니다.

 그러나 밝으신 진류공께서

 충신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간사한 사람에게 오도되시니 반드시 후회하실 것입니다.“

 

요광의 군사는 동진군에게 패배하였고 조현은 10여 곳 칼에 찔려 부상당했다. 조현의 사마 건감이 조현을 끌어안고 울었다. 조현이 건감에게 말했다.

 

“ 나의 부상이 이미 무거우니 나는 가망이 없다.

  그대는 마땅히 빨리 도망하여 목숨을 건지도록 하라.

  명령이다.“

 

건감이 이렇게 외쳤다.

 

“ 장군을 구하지 못하고 저 건감이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명을 받들 수 는 없습니다.“

 

조현과 건감은 모두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요우는 단도제에게로 도망쳤고 요광은 동진에 항복했다. 이렇게 해서 후진의 낙양은 동진에게로 떨어졌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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