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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규제개혁 <2> 규제 사례를 통해 본 교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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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0월23일 17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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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의 패러다임적 전환기에 서 있는 우리는 과연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살아있는 규제를 운용하는가, 아니명 죽은 규제를 고집하는가.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을 구시대의 틀로 규제하면 신사업과 혁신적 기업이 출현할 수 없다. 기업들은 기술개발 투자를 기피해 기존 사업에 안주하는 산업의 고착화(lock-in) 현상이 나타나고 말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는 마당에 낡은 규제의 틀을 고집하는 것은 현대판 ‘위정척사(衛正斥邪)’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그 대표적인 국내・외의 몇몇 사례를 들어보자.

 

자동차산업의 발상지인 영국의 증기자동차와 적기조례는 널리 인용되는 사례다.  이미 1820년대 중엽  시속 30마일로 달리는 증기자동차가 등장했는데, 1865년 The Locomotive Act(일명 Red Flag Act, 즉 ‘적기조례’)가 제정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마차 보호를 위해 전방에서 조수가 붉은 기를 들고 안전신호를 해야 했고, 야간에는 랜턴으로 안전신호를 해야만 했다. 속도도 교외에서 시속 4마일(약 6km), 시가지에서는 2마일(약 3km)로 제한되었다. 적기조례의 명목은 마차 보호였지만, 사실은 기득권자인 마부들의 생존권 보호였다. 문제는 이로 인해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결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 뒤처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기존 산업의 보호를 위해 신산업 출현을 외면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적기조례는  기득권자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강력한 진입규제를 설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산업혁명기에는 신산업 분야와 전통산업의 충돌을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그 과정에서 기득권자들과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다.

 

비단 영국뿐이랴.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4년에 국내 기업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됐지만 빛을 보지 못한 당뇨폰 사례가 있다. 혈당 관리와 투약 관리가 가능하도록 IT와 BT가 융합된 당뇨폰은 개발 초기에 통신기기냐 의료기기냐 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었고, 결국 의료기기로 분류되었다. 제품을 개발한 회사는 의료기기법 제6조 1항에 따라 의료기기 제조허가를 받았고, 동 법 제6조 2항에 따라 의료기기 품목허가를 받았다. 문제는 그 후 의료기기법 제17조에 따라 의료기기 판매허가를 받는 단계에서 발생했다. 의료기기 판매허가가 없이 휴대폰를 취급하는 통신기기 대리점에서는 당뇨폰을 유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마케팅이 어려워진 사업자는 제품 출시를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당뇨폰 케이스는 영국의 자동차 사례와 비교된다. 영국에서는 시장 기득권자와 신산업 사업자와의 대립 구도 하에서 진입규제가 설정된 것이라면, 우리나라는 전통산업에 적용되던 낡은 규제를 신산업에 그대로 적용하려다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융합 기기가 등장했는데도 단일 기술과 단일 산업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유효했던 규제의 틀이 그대로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낡은 규제의 적용으로 인해 시대의 혁신이 가로막히고 만 것이다. 

 

당뇨폰 케이스와 비슷한 문제는 10년이 지난 2014년 심박 센서가 탑재된 웨어러블 기기 출시를 앞두고 재발되었다. 만일 이 제품이 의료기기로 분류될 경우 의료기기법에 따라 의료기기 제조업허가 및 제품 별로 의료기기 제조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제품의 판매도 제약을 받게 된다. 현행 의료기기법 제2조에 따르면, ‘질병을 치료・진단 또는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제품 등을 의료기기’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심박 수나 운동량을 측정하는 기능뿐 아니라 유사 기능이 탑재된 모바일 기기나 이어폰 등 IT 기기와 연결된 의료기기들이 의료기기법 등에 저촉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되었다. 다행히 이를 둘러싼 논란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료기기 품목 및 품목 별 등급에 관한 규정'의 개정 고시를 통해 운동 및 레저용 기기를 대상으로 하여 심박 수를 재는 심박수계 및 맥박수계에 대한 예외 규정을 발표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전통적으로 의료 목적이 아닌 최신 웨어러블(착용형) 기기는 의료기기 허가 대상이 아니라고 재해석하였다. 형식은 고시의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의료기기법의 재해석을 통한 것이었다. 융합기술의 혁신으로 기기의 활용도가 대중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규제의 재해석을 통해 신제품 출시의 물꼬를 튼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기존 법체계 하에서라도 법규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서 얼마든지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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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지게차도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트럭지게차는 운송기기인 트럭과 건설장비인 지게차의 장점을 결합한 융합제품인데, 인증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국내 한 기업이 2008년에 트럭지게차를 개발하여 특허까지 받았지만, 건설기계인지 자동차인지 분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시장출시가 지체되고 말았다. 안전과 형식 측면에서 보면 건설기계로 분류해야 하지만 주행기능으로 인해 선뜻 건설기계로 인정하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자동차로 분류하기도 어렵다는 의견이 평행선을 이룰 뿐이었다. 건설기계나 자동차의 인증을 관장하는 부처는 같은 국토교통부였는데, 심지어 부처 내의 소관 부서 간에도 규제를 둘러싼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던 것이다.결국 산업융합촉진법이 제정된 이후 2012년 ‘건설기계관리법 및 건설기계관리법 시행령’의 개정을 통해 트럭지게차는 ‘특수건설기계’로 분류되었고, 관련 구조 및 성능의 기준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야 인증 신청이 가능해졌으며, 실무 검사를 통해 최종 승인이 이루어졌고, 마침내 시장 출시가 가능해졌다. 제품 개발로부터 시장 출시에 이르기까지 4년이 걸린 셈인데, 그나마 트럭지게차는 해피엔딩으로 끝난 운 좋은 케이스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외국 사례를 보자. 이번에는 미래 산업에 대한 생태계 조성의 대표적 사례로 미국 기업 테슬라(Tesla)의 경우다. 2017년 4월 전기자동차 제조회사인 테슬라는 시가총액 면에서 113년 전통의 포드와 109년의 GM을 차례로 넘어섰다. 테슬라의 역사는 불과 14년이다. 게다가 미국 최고의 자동차회사인 GM은 2016년 매출액 1,163억 8,000만 달러, 순이익 94억 2,700만 달러, 시장점유율 17.3%를 기록한 반면에, 테슬라는 매출액 70억 13만 달러에 순손실이 6억 7,491만 달러인 적자기업에다, 시장점유율은 0.2%에 불과한 회사였다. 단순히 기업의 현금 흐름을 보는 시각보다는 전기자동차를 비롯한 가정 에너지의 생성과 저장 등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잠재적 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반영된 것이리라. 투자자들이 사들인 건 테슬라의 ‘현재 가치’보다 ‘미래 가치’를 사들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미래 산업에 대한 생태계 조성을 뒷받침하는 제도 자체가 부러울 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 온 결과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우리나라는 2017년 초에 이른바 ‘테슬라 상장’ 요건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적자기업이라도 미래 성장성이 있으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만시지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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