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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아홉 번째 이야기 어머니와 아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8월19일 19시47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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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푸른 눈의 고수 

  앞서 젊은 시절 찰톤 헤스톤처럼 잘 생긴 서양 몽크에 대해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내가 센터에 갔을 때 그는 몽크가 아니었다. 머리를 기르고 론지를 입은 요기였다. 가끔 경행대에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서로 소 닭 보듯 지나쳤고 관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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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그가 우리 방에 왔다. 룸메의 침상에 앉아 룸메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룸메가 나를 소개했고, 그가 스스로를 소개했다. 나이는 밝히지 않았지만 40대 중후반처럼 보이는 미국에서 온 요기.(나이를 묻고 나이에 관심을 갖는 건 동아시아 문화의 특성일 뿐 서양인들은 나이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미국에서는 나이를 묻는 행위 자체가 차별적 행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룸메보다는 내 영어가 쬐끔 더 나은 덕에 나는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는 20년 동안 고앵까 명상을 했다고 했다. 고앵까 명상은 서양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주로 아나빳나와 바디스캔을 주로 하는 위빠사나 명상법이다. 아나빳나는 ‘아나빳나 사띠’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들숨 날숨에 마음 챙기는 공부’로 번역돼 있다. 호흡을 대상으로 하는 신념처 위빠사나이다. 바디스캔은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명상 수행법이다. 

 

  그가 내게 물었다. 명상한 지 얼마나 됐냐고. 꿀리지 않으려고 한 40년쯤 됐다고 뻥쳤다. (시작은 20대부터 했으니 그다지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ㅋㅋㅋ) 메소드를 물었다. ‘간화선’이라고 대답하고 그 수행법을 아느냐고 물었다. ‘공안을 참구하는 젠’... 그가 정확히 대답했다. 가히 고수였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주로 간화선과 위빠사나 수행법의 차이 등에 대해서. 

 

그는 쉐우민에 여러 차례 왔고 지난해에는 단기출가 수행을 마쳤으며 곧 출가한다고 말했다.     며칠 후 일요일 그는 삭발하고 정식 몽크가 되었다. 그는 74세인 자신의 어머니도 센터에 와있으며 쉐우민 수행법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후 나는 이 모자에 큰 관심이 갔다. 아들의 출가에 대해 어머니가 보이는 감정이나 태도가 궁금했다. 어머니는 무척 신심이 깊은 분 같았다. 매일 아침 온화한 표정을 하고 스님들의 바루에 나누어 떠 줄 밥통을 들고 탁발 시작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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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의식이 끝나면 스님들의 탁발행렬을 따라간다. 하지만 아들 몽크는 탁발 대열에 보이지 않는다. 탁발에 참여하려면 출가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하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경행시간에 이따금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모자를 목격했다. 두 분 다 무척 평온해 보였다. 그 풍경은 퍽 평화로워 보였다.     

 

  면회실 풍경 

  母子에 관한 이야기 하나 더. 쉐우민 센터 입구에는 면회실이 있다. 군대도 감옥도 아닌 곳에 웬 면회실? 우리나라 버스정류장처럼 꾸며진 공간인데,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이다. 평소엔 눈여겨보지 않고 그저 수행자들이 경행하다가 잠깐 앉아 쉴 수 있는 휴식공간 정도로 여겼다.

 

  아무리 규율이 엄격한 조직이라도 숨 쉴 구멍은 있는 법이다. 쉐우민도 그렇다. 한국에서 온 나이든 수행자끼리는 이따금 경행시간을 이용해 함께 센터 안을 산책하며 법담 아닌 세속적 화제로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꽉 짜인 스케쥴을 잠시 벗어나 즐기는 잡담의 맛은 가히 꿀맛이다. 그날도 그렇게 잡담산책을 마치고 다리를 쉬러 찾은 공간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곳에서 미얀마의 한 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비로소 그곳이 면회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60쯤 돼 보이는 보살님과 아들 내외,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TV를 점령해버린 ‘대한 민국 만세’ 또래의, 인형처럼 귀여운 아이. 미얀마 아이들은 정말 예쁘다. 커다랗고 까만 눈을 들여다보면 그 호수의 심연으로 딸려들어 간다. 신비스러울 정도로 깊은 눈동자를 애기는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애기가 내게 안겨온다. 자신의 할아버지에 안기듯 친숙하게. 안아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말한다. 

  “그 참 아들 녀석 참 예쁘게 생겼다.” 

  느닷없이 내 말에 피드백이 온다. 

  “아들 아니고 딸.” 

  아이 아버지다. 순간 한국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아니! 한국말 알아요?” 그렇게 대화가 시작된다. 

  현대중공업에서 6년을 일했단다. 그의 어머니는 센터의 수행자이다. 미얀마 사람들의 신행생활은 수행이 위주가 돼있다. 틈 날 때마다 센터에 와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고정된 직업을 갖지 않는 여성들의 경우 몇 달 씩 머물며 수행하는 사례가 대단히 많다. 쉐우민의 선방은 이층으로 돼있는데 여성들이 쓰는 아래층 선방은 늘 빽빽하다. 여성 수행자가 남성 수행자보다 5배쯤 많다. 오래 머무는 수행자들에게도 당연히 풀어야 할 세속사가 있을 게다. 면회실은 그렇게 누군가 찾아왔을 때를 배려한 공간이다.

  미얀마의 이 가족도 그랬겠지. 한참동안 얘기를 주고받던 어머니와 아들의 면회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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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서 같은 공간의 한국 사람들을 놀라게 한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의자에 앉은 어머니의 무릎아래 아들이 무릎을 꿇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삼배, 절 세 번.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무어라 주문 같은 것을 왼다. 눈물 나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작별했다. 

 

  이 광경을 본 한국 사람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부모를 작별하는 자식이 늘 그렇게 인사하는지, 아니면 이 모자만의 특별한 작별의 방식인지 그건 모르겠다. 미얀마의 보편적 인사방식이라고 속단하는 건, ‘성급한 귀납의 오류’가 되리라. 또 다른 케이스를 본 적이 없기에. 

하지만 그 자연스러움으로 미뤄볼 때 이들 모자만의 특별한 의식이 아니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아무튼 그날 해질녁, 센터의 면회실에서 목격한 이 풍경은 미얀마에 대한 깊은 인상으로 내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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