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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좌선과 경행의 쳇바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7월01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7년06월30일 16시51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메타정보

  • 38

본문

 

  센터의 하루  

  센터의 수행 스케줄은 단순하다. 기상 새벽 3시 반, 4시부터 취침하는 10시까지 한 시간 좌선, 한 시간 경행을 되풀이 하도록 짜여있다. 그 중간 중간 식사와 청소가 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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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측은 “수면 6시간을 제외한 18시간이 모조리 수행시간”이라고 강조해 이방인을 질리게 만든다. 하지만 며칠 지내다보면 이내 익숙해진다. 센터에서의 첫 밤을 지내고 새벽 3시 반 일어나 모기장과 침구를 정돈한 뒤 얼굴을 씻고 나니 종이 울린다. 4시 좌선을 준비하라고 15분쯤 전에 울리는 종이란다. 룸메이트의 안내를 받아 메디테이션 홀(선방)로 가는 긴 낭하의 마루를 걸으면서 첫 날 일정이 시작됐다. 

  방석 1장, 보조방석 1장, 그리고 앉은 공간을 감싸는 모기장과 그것을 걸어두는 틀이 지급된다. 센터를 떠날 때까지 나는 그 물건들을 소유한다. 그리고 그 모기장 속에서 고치 속 번데기처럼 우화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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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까지 한 시간 좌선. 그 후 선방 청소. 새벽 청소는 걸레질은 하지 않고 비질만 한다. 5시 반이면 아침공양을 알리는 목탁이 운다. 몽크들과 요기들은 낭하에 길게 줄을 선다. 몽크, 요기, 띨라신(미얀마에는 맥이 끊겨 비구니는 없단다. 계를 지키는 독신 여성 수행자를 이렇게 부르는데, 사실상 비구니라고 보면 된다), 여신도 순으로 식당에 입장한다. 

 

  식사가 끝나는 대로 숙소 청소. 7시 좌선, 8시 경행, 9시 좌선이 이어지고 10시 반 점심식사. 1시부터 좌선, 경행이 이어진다. 4시에는 선방 물걸레 청소, 그리고 쥬스타임... 오후에 먹는 유일한 음식물이다. 저녁식사는 하지 않기 때문에 허기는 지지만 저녁 시간이 한가롭다. 저녁 7시 좌선타임이 있고 10시까지 경행이다. 처음 오는 요기들은 이런 빡빡한 스케쥴을 고지식하게 소화하느라 처음에는 무척 고단하게 생활한다. 나도 그랬다. 손톱 깎고, 빨래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좀체 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숙소 게시판에는 “좌선시간을 엄격히 지켜라. 안 그러면 쫒아낸다”는 경구가 붙어있다. 그런데 경행시간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고참 요기들의 생활을 참조하면서 경행시간을 자율적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룸메는 7시 좌선타임이 끝나면 론지를 도복으로 갈아입고 가라테를 수련한다. 1시 타임이 끝나면 영어공부를 한다. 일본인인 그가 사야도(큰스님)와 인터뷰를 하려면 영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경행시간을 공부하고 운동하고 이따금 누군가 가져다주는 신문을 보는 시간 등으로 활용한다. 쉐우민은 미얀마의 수행센터 가운데 가장 자유스러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센터들이 엄격한 규율과 묵언을 강조하는데 반해, 쉐우민은 속닥거림과 경행 중 휴식 등 가벼운 일탈은 모른 체 한다. 그래서 요기들은 경행시간에 슬쩍 나가서 시장구경도 하고 이발도 한다. 수행자들에게도 규칙을 깨는 일은 퍽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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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크들 

  이곳에서도 승과 속은 분명하게 구분되는 두 계급이다. 요기는 치마(론지)를 입지만 몽크는 가사를 입는다. 이곳에 오는 승가는 인터네셔널 몽크 그룹이다. 미얀마 스님들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짙은 갈색의 승복을 입는다. 미얀마 뿐 아니라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 퍼져있는 테라바다 불교(우리가 소승이라고 부르는, 상좌부 불교)의 전통이다. 스리랑카 스님들은 같은 색깔의 톤에 약간 변형된 모양의 승복을 입는다. 테라바다 승가에 출가한 서양 몽크들 역시 이 옷을 입는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몽크들은 승복의 모양과 색깔이 사뭇 다르다. 대만, 홍콩, 마카오에서 온 몽크들이 적잖은데 그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회색 톤의 승복을 입는다. 하지만 디자인은 조금씩 다르다. 중국 대륙에서 온 몽크는 못 봤는데, 일본에서 온 몽크 역시 한 사람도 없었다. 그에 비해 한국 스님은 10명 가까이 되었다. 입고 있는 가사만 봐도 어디에서 온 몽크인지 금방 안다. 하지만 공통점이 딱 한 가지 있으니 조지훈 시인의 표현대로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그것이다. 

 

  불전에 예배하는 양상도 서로 사뭇 다르다. 테라바다 전통에서는 무릎을 꿇고 앉아 완전히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삼배한다. 동북아시아 대승불교 전통에서 예배의 동작은 비교적 크다. 서서 일단 반배하고 합장한 채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닿도록 절하고 다시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완전히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한다. 홍콩이나 마카오 쪽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스님들은 선 상태에서 두 손을 앞으로 내어 뒤까지 구르는 동작을 한 차례 한다. 마치 중 고교시절 넓이뛰기를 할 때 도움동작을 하듯. 스리랑카에서 온 듯한 스님들은 삼배 후 자기들끼리 옹기옹기 모여 쭈구려 앉아서 한참 동안 주문을 왼다. 제일 선임자인 듯한 몽크가 선창하고 다른 몽크들이 문답하듯 받는다. 천주교 미사 시 사제와 신자들이 서로 주고받듯. 매일 새벽 좌선이 끝나면 곧 청소시간인데 빗자루질 하는 중에 한 편에선 이 의식이 치러져 당혹스러웠다. 이렇듯 부처님께 예배하는 방식도 문화와 전통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3배 - 3번 절하기.

 

  몽크들은 이렇게 각자 나름대로의 전통을 공들여 지켜나간다. 하지만 일단 선방에 들어서는 순간 승속의 구분은 사라진다. 넓은 선방 공간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50*50 센티미터의 면적 위에서 각자 자신과의 전쟁을 치른다. 각각은 하나의 세계이고 우주가 된다. 이 우주들이 스케쥴에 따라 한데 모이고 또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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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불식 

  이빨로 씹어서 목으로 넘기는 일은 해가 머리 위에 오기 전에 끝낸다. 센터의 규정이 아니라 부처님 당시부터 엄격하게 지켜온 테라바다 불교의 오랜 전통이다. 센터의 식사는 새벽 5시 반과 오전 10시 반 2차례 제공된다. 오후에는 4시에 주스 한 잔, 그것으로 끝이다. 3끼 식사를 하던 사람들의 수행처 행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요기들이 은밀하게 미숫가루 등 비상식량(?)을 준비해 온다. 실은 나 역시 미숫가루와 물을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인스탄트 된장국을 준비했지만 먹지 않았다. 허기를 즐기겠다는 다짐으로 오후불식계를 지켜내 아직도 뿌듯하다. 

 

  2백50 명가량의 대중이 하는 한 끼 식사는 가히 대 행사가 아닐 수 없다. 공양시간이 되기 전 요기들은 긴 낭하에 줄을 서기 시작한다.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나면 비구들은 식당 2층, 요기들과 띨라신, 여신도는 1층으로 입장한다. 아침 공양은 보통 죽이나 국수 등 비교적 간단히 먹는다. 거기에 파파야나 바나나 등 과일, 과자, 요구르트, 쥬스, 케익 등 사이드 디쉬가 곁들여진다. 점심은 대개 밥과 반찬, 국으로 푸짐한 정식 식사가 제공된다. 비구들은 바루 공양, 나머지는 뷔페식으로 식사한다. 동그란 스텐레스 트레이는 4등분 돼 있다. 제일 큰 쪽에 안남미로 지은 밥을 푸고, 주 반찬, 부 반찬을 적당히 알아서 먹을 만큼 뜬다. 절대 남겨서는 안 되지만, 서양 요기들 가운데는 남은 밥과 반찬을 잔반통에 버리는 이도 있다. 그러나 모두 적당히 못 본 체 한다. 테라바다에는 육식을 금하는 계율이 없다. 센터의 메뉴 중에는 그래서 닭고기 돼지고기 요리가 있다. 특히 닭요리는 자주 나온다. 대승의 계를 지키는 몽크와 서양의 베지테리언을 위한 배식대도 따로 마련돼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미얀마 음식은 크게 거부감이 없는 듯하다. 우선 미얀마 된장이 우리 된장과 비슷하고 오이, 풋고추, 상추, 배추 등 채소들도 풍성하다. 소고기나 닭고기를 넣어 끓인 무국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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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수십 명 모두가 식탁에 앉을 때까지 20분 정도. 공양 개시에 앞서 주문을 합송하는데 3-4분 걸린다. “어떼 자쟈 베 요가 도 꼬마 마깟 빠리얏닌 빠띠빳예..... (생명을 유지하고 나쁜 병에 걸리지 않으며 공부와 수행을 위해)” 끼니 때마다 ‘그저 좋은 뜻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듣다보니 지금도 그 가락이 귓가에 맴돈다. 공양을 마치면 각자 사용했던 식기는 각자 설거지를 해서 식기건조대에 엎어놓는다. 오후 4시면 기분 좋을 정도로 허기가 진다. 주스 타임에 마시는 주스 한 잔의 한계효용은 최대치에 수렴한다. 다음날 아침까지 아무 것도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그 한 잔이 소중하기 그지없다. 밤이 깊어가면서 허기 역시 깊어진다. 처음 며칠을 의지로 견디고 나면 그 다음 제법 익숙해진다. 10시 취침 즈음에는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지금은... 그 때 그 허기가 몹시 그립다. 안 먹는 즐거움은 먹는 즐거움 못지않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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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7월01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7년06월30일 16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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