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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거수의 디자인 시선 <13> 공공도시 브랜딩: “우리는 왜 도시 캐릭터를 뽀로로 같은 귀여운 상징물로만 보는가?” 플랫폼 캐릭터로 도시 브랜딩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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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4월09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09일 16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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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회의 도시 명칭을 활용한 도시 브랜딩을 살펴본 것처럼. 이번에는 캐릭터를 활용한 도시 브랜딩에 대해 알아보자. -
전국 시도 지자체 캐릭터 디자인의 문제점과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
도시마다 다양한 상징이 있다. 음식, 역사, 인물, 그리고 이제는 캐릭터까지.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도시의 캐릭터’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어디서 본 듯한 전형적인 귀요미 캐릭터로 축소되는 느낌이다. 큰 머리, 짧은 팔 다리, 동그란 눈, 그리고 애매한 미소. 이름표만 바꾸면 똑같은 형식. 정말, 이게 ‘우리가 만들고 싶은 도시의 얼굴인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A도시 캐릭터를 모자만 다르게 씌워 B도시에 가져다 써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듯하다. 디자인 업체 저장폴더에 잔뜩 쌓아놓고 묶혀 놨던 귀요미 캐릭터들이 언제 또 어느 도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할지 두려울 정도다.
도시 캐릭터 공모전 심사에 참여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도시의 정체성과 무관하거나 본질을 외면한 상투적인 디자인들이 다수 제출되고, 결국 ‘상대적으로 덜 유치한 시안’을 선택하는 소극적이고 소진된 절차로 심사가 마무리되곤 한다. 공공디자인을 총괄해야 할 이들이 ‘캐릭터’라는 개념을 여전히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에서만 해석하고 있는 현실은, 실망을 넘어 좌절감을 느끼게 할 때가 많이 있다.
문제는 공모전 시스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부 디자인 전문 제작업체들조차 캐릭터를 도시의 브랜드 자산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그저 귀여움의 형식을 재탕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스토리텔링, 지역성, 상징성 등 도시 브랜드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진지한 탐색 없이, 표면적인 형식과 익숙한 패턴에 안주하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으로는 시대를 견디며 기억될 도시 캐릭터가 탄생하기 어렵다. 변화는, 본질을 향한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도시 캐릭터는 뽀로로가 아니다.
물론 어린이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뽀로로는 콘텐츠 산업에서 손꼽히는 성공 모델이다. 타깃과 시장을 정확히 겨냥해 구축된 브랜드 전략, 그리고 완성도 높은 캐릭터 표현은 인정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 사례를 도시 캐릭터의 모델로 단순 차용하거나 모방하는 접근은 분명해 재고해 봐야 할 부분이다.
도시 캐릭터는 단지 귀엽고 친근한 외형으로 소비되는 상징물이 아니라, 그 도시가 지닌 정체성과 자부심, 그리고 고유한 문화적 메시지를 응축하는 브랜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자체의 캐릭터 개발은 여전히 ‘표현 방식’에 집착하며, 정작 본질적인 기획의 출발점이 되는 질문은 건너뛰고 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본다.
“왜 이 도시에서 이런 캐릭터가 탄생해야 하는가?”
“이 캐릭터 조형물이 시대를 넘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가 있고, 있다면 무엇인가?”
“이 캐릭터는 도시의 고유한 이야기와 경제적 가치까지 포괄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는가?”
“이 캐릭터는 어떤 방식으로 도시의 브랜드 터치포인트로 확장되어 활용될 수 있는가?”
이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질문 앞에서, 현재 국내 지자체가 운영하는 다수의 캐릭터들은 그 정당성과 충분한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캐릭터’라는 개념을 해외 선진 도시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도시 브랜딩에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을까? 몇 개 도시의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자.
베토벤의 도시 본(Bonn)의 사례
과거 서독의 수도이자, 독일에서 가장 정제된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 중 하나인 본(Bonn)은 ‘베토벤’이라는 단 하나의 상징만으로도 도시의 정점을 구현하고 있었다. 도심 곳곳에 설치된 실물 크기의 베토벤 조형물은 단순한 관광 오브제가 아니었다. 이 조형물은 시민의 자부심과 도시의 품격을 동시에 전달하는 ‘문화적 매개체’이자 도시 스토리텔링의 핵심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본 시청을 비롯해 레스토랑, 가구점, 액세서리 매장 등 다양한 장소 앞에 놓인 베토벤 조형물들은 각 업종의 메시지를 창의적으로 담아 표현하고 있었다. 동일한 조형물 형상이지만, 위치와 맥락에 따라 다른 색채와 장식을 띠며 도시 전체가 ‘베토벤’이라는 브랜드 내러티브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과시하고 있었다.
본은 도시 전체를 ‘베토벤’이라는 강력한 스토리로 채우고 있었다. 관광객과 시민들은 베토벤의 상징 조형물을 보며, 마치 베토벤과 함께 도시 속을 거니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며, 거리 곳곳에 울려 퍼지는 베토벤의 음악과 함께 본이라는 도시를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했었다.
본이 선택한 도시 캐릭터 베토벤은 결코 컬러풀하거나 뽀로로처럼 귀엽게 꾸민 캐릭터가 아닌, 진중한 ‘베토벤’ 그 자체라는 것을 주목할 수 있었다. 본은 베토벤을 단순한 캐릭터 상징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 자산’으로 존중하며 도시의 깊이와 격을 함께 끌어올리는 중요한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시카고 불스’의 도시, 플랫폼이 된 또 하나의 유명한 ‘소’(Cow)
한 도시의 상징이 꼭 특정 인물이 아니어도 된다. 시카고는 실물 크기의 ‘소’ 조형물을 통해 도시 정체성을 예술로 표현하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다.
‘카우즈 온 퍼레이드(Cows on Parade)’ 프로젝트는 단순한 조형물 설치를 넘어선 도시 예술 플랫폼이다. 실물 크기의 소 조형물에 지역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시민들이 그것을 발견하며 웃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하고, 도시가 만들어주는 거리 갤러리 예술 축제를 일상에서 경험하게 만든다.
이것이 캐릭터가 도시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방식이다. ‘귀여운 조형물 하나 세웠다’라는 공무원의 행정 보고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 콘텐츠이자 플랫폼으로서의 활용을 말하는 것이다. 처음엔 시카고에서 도시 문화 활성화와 관광 증진을 목적으로 출발했지만, 그 반응은 놀라웠다. 이 공공예술 프로젝트는 이후 전 세계 도시로 확산되며, 도시 브랜딩의 새로운 형태가 되었고 우리 삶 속의 유희와 기쁨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런던의 패딩턴 베어(Paddington Bear)- 공감형 캐릭터 조형물 사례
런던의 대표적 교통 허브인 패딩턴 역(Paddington Station)에는 도시의 상징 이미지로 자리잡은 ‘패딩턴 베어’(페루에서 런던으로 온 곰) 캐릭터 조형물이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패딩턴 베어 조형물은 과거부터 수많은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재해석되고, 브랜드 콘텐츠로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서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적 자산으로 훌륭하게 활용되고 있었다. 페딩턴 배어도 무척 귀엽다. 그러나 좀 달랐다. 패딩턴 베어의 귀여움은 품격이 있고 표현이 위트와 세련된 고급스럼움을 담고 있었다. 뽀로로와 완전히 다른 귀여움이다. 사람과 똑같이 서있고 사람 옆에 나란히 앉아서 공감하며 즐거움을 선사하는 기분 좋은 친구로 어필하는 품격으로 느껴졌다.
한국의 도시 캐릭터, 지금이라도 잠시 멈추고 다시 시작해보자.
한국 지자체의 도시 캐릭터 디자인은 출발선부터 방향이 어긋난 경우가 많다. 상당수는 공모전 중심의 홍보라는 상투적 접근으로 시작되며, 결과적으로 본질보다 형식에 집중하는 방식이 고착화되어 있다. 그 평가 기준도 캐릭터의 존재 이유나 도시가 담고자 하는 메시지보다는 ‘얼마나 귀엽고 익숙한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공모전 심사위원들은 오랜 시간 대중적 캐릭터 콘텐츠에 노출되어 온 이들이 많은 듯하다. 당연히 뽀로로나 카카오프렌즈와 같은 스타일에 익숙하고, 그 기준 안에서 평가가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런 시각이 도시 캐릭터 디자인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캐릭터 제작 업체들 역시 구조적으로 이 흐름을 벗어나기 어렵다. 철저한 사전 리서치와 도시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기획, 디자인 전략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결국 익숙한 패턴의 반복에 머무는 경향이 크다. 캐릭터의 본질에 대한 논의, 해외 성공 사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 그것을 자신들의 도시 맥락에 응용하는 태도 모두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좋은 도시 캐릭터를 개발하기 위해서 정작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깊은 질문이 부족하다. 디자이너는 스토리텔링보다 일러스트에 집중하고, 지자체는 상징보다 모자 모양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도시 캐릭터가 서로 닮은꼴이 되고, 아무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가 필요한 건 또 하나의 귀요미가 아니다. 뽀로로는 뽀로로의 타겟과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모델과 스타일로 성공하되 도시의 캐릭터는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우리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 도시의 다양한 콘텐츠와 연결되고,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진화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공공 조형물’을 원한다. 도시 캐릭터는 조형물인 동시에 콘텐츠이고, 브랜드이자 교육의 도구이며, 도시 스토리텔링의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 캐릭터를 플랫폼으로 바라보자. 그리고 시민의 참여를 통해 확장됨을 믿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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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4월09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4월09일 16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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