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의 미래, 소부장 산업에 달렸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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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보호무역주의가 확산, 아세안 등 신흥시장이 성장하면서 글로벌 분업체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양상이 신흥시장별 공급망 강화, 중국을 둘러싼 가치사슬 형성, 기업 간 투자 제휴 활성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 중남미 등 신흥시장에서 부품 조달과 제품 생산, 판매 유통을 현지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자체 완결형 공급망이 조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는 지난해 기준 55%로 미국 44%, 일본 45%, 독일 51% 등 주요국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 활용을 통해 교역규모를 늘려온 탓이다. 2019년 교역규모는 1조 456억 달러로 10년 전보다 3배 이상 성장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용 몇 가지 수출규제를 전격 단행한지 1여년이 지났다. 수출 규제 발표 이후 생산 시스템에 균열이 생겼다. 외적 요인에 의해 국내 생산에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올해 들어 코로나 여파는 불안감을 더 키웠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공장이 멈추고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은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사실상 반도체 대기업을 겨냥한 규제였다. 자국 업체들 피해는 최소화하고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한 핵심 품목에 한정된 핀셋 규제였다. 하지만 2차 수출규제에서 제재 품목을 확대한다면 산업 전체분야에 피해가 불가피하다. 대기업에서도 30%는 대체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특히 장비 안에 들어가는 특수 밸브나 배관 등은 100% 일본에서 수입한다. 우리가 가장 취약한 소·부·장 품목을 겨냥했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소부장 2.0전략’의 핵심은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차원을 넘어 소·부·장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2022년까지 차세대 전략기술을 확보하는 데 5조원 이상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공급 안정성 등 산업 안보 측면과 주력산업 및 차세대산업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섬유 등 일본 관련 100개 품목에서 338개로 확대 선정하고 바이오, 환경·에너지, 소프트웨어 등 신산업 분야에서
품목을 추가할 예정이다.
소부장 산업은 최종 제품 생산을 위한 중간 제품이다. 현재 우리 소부장 산업이 처한 환경과 경쟁력은 천양지차다. 소재 부품의 경우 다양한 수요 산업의 존재와 분업구조에 입각한 글로벌 공급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강점이다. 반면 중국의 자급률 강화,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체인 개편으로 수요 축소 위험은 약점 요인이다.
4차 산업혁명 산산업 분야의 고부가가치 첨단소재에 대해서는 취약한 국내 산업 기반과 낮은 기술력으로 전방산업과의 연계성이 낮다. 또한 원재료에 대한 해외 의존가가 높고, 소재를 가공하고 제조하는 장비에 대한 자급도도 낮다고 평가된다.
그렇다면 소부장 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까.
첫째, 소부장 산업은 글로벌 시장을 기반으로 해야 성공한다. 국내 내수로만 경제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 진출하지 못하면 그냥 육성 정책 발표만으로 끝난다.
둘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중견 소부장기업들이 탄생해야 한다. 일본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소부장을 한국에 수출해 이득을 얻는다. 한국은 그것을 가지고 중간재를 만들어 중국에 수출한다. 즉, 국제 분업을 통해 협력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글로벌 공급망 체제가 무너지면서 소부장산업 전체로 피해가 확산됐다. 산업 전반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셋째, 중소·중견 소부장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기초 연구가 필요하다. 기초 연구 없이는 소부장산업 육성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구 개발에 집중 투자를 해야 그 결과가 몇 년 지나서 나온다. 눈 앞 이익과 효율성만 중시한다면 소부장산업에서 일본의 가마우치 체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넷째, 소부장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국산화, 대일역조 해소. 수출산업으로서의 육성이 목표였다. 이제는 조업 부가가치 창출 역량 제고 관점에서 글로벌 전문기업이 나올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섯 번째 , 한국 제조업의 가치사슬 완성도 및 안정성을 제고하고 부가가치를 창출시켜야 한다. 가치 사슬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토대로 한국의 소·부·장 산업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를 전략적으로 선별해 자원 배분의 실효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여섯 번째, 일본 수출 규제로 공급 안정성에 위험성이 높은 분야에 대해서는 조기에 연구개발 투자를 집행해야 한다. R&D 이외에도 기술을 획득할 수 있는 특허 구매와 전략적 제휴 등 다양한 방식을 구현해야 한다.
일곱 번째, 중점 분야를 선정해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성, 기술획득 가능성 등을 분석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기술개발의 위험이 높고 산업화가 어려운 분야의 특성을 고려해 장기간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도록 투자 방식을 바꿔야 한다.
여덟 번째, 중소·중견 소부장기업이 글로벌 수준의 전문기업이 될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혁신 역량을 제고해야 한다. 정책과 세제지원 및 규제완화를 통해 투자 의욕을 고취하고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아홉 번째,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제품개발, 실증, 신뢰성 확보를 위한 투자비용과 위험을 낮춰야 한다. 연구기관의 개발 성과가 기업에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 이전될 수 있도록 관련 연계 지원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열 번 째, 역량을 갖춘 중소·중견 소부장기업이 글로벌 가치 사슬에 참여하고 새로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시장 창출전략이 필요하다. 글로벌 공급망과 연계하거나 현지시장개척을 위한 R&D사업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국내 소부장산업 육성을 위해 산업, 기술 정책과 통상 전략과의 연계가 중요하다. 최근 포스트 중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신남방·신북방 지역에 대한 세밀한 진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열한 번째, 장기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법적 기반을 공고히 해야 한다. 최근 소부장산업분야의 기술 흐름을 반영해 법적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 산업 환경이 융복합화, 복잡화되면서 산업 육성에 다양한 정책조합이 필요하다. 범부처간 협력을 촉진하고 강화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열두 번째, 일본의 소부장특허 소송에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전통적인 소부장산업의 강국이다. 한국의 대일 의존도 역시 여전히 높다. 국제무역협회에 따르면 기초유분의 대일 의존도는 94.8%, 반도체 제조장비 86.8%,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86.4%, 합성수지 86.4%, 플라스틱 제품 83.3%, 정밀화학 원료 78.1%, 금속공작기계 73.3%에 달한다. 한국의 소부장국산화가 마무리 단계에 이를 때를 기다린 후 특허의 허점을 노려 공격할 수 있다. 일본은 특허의 핵심 내용을 교묘하게 숨긴 채 권리 범위가 넓은 특허를 출원하는 경우가 많다. 섣부른 국산화는 일본 특허의 그물망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국산화시 소부장산업의 기초기술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전략적 제휴에 나서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고부가가치 신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 간 합종연횡이 활발하다. 소부장산업의 첨단 기술을 희망하는 기업 60%가 적극적 제휴를 추진 중이다. 소소부장산업 육성에 한국 수출 주력 제조업의 운명이 걸려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소부장산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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