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을 정치가 흔들 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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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처음 주조한 나라는 길게 잡아 기원전 700년경 리디아(Lydia)라고 알려져 있다. 리디아는 지금의 터키 서쪽 에게 해 방면 해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조한 화폐가 통상적인 거래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동전이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지역과 필요에 따라 상품화폐가 사용되었다. 상품화폐의 역사는 유구하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한 곡물이 거래의 중개수단으로 사용되었지만 그 이외에도 화폐로 사용된 상품은 많다. 사실 상품화폐 가운데에는 기상천외한 것들이 적지 않다.
상품화폐와 돌 본위제도
중국과 서방의 교역은 실크로드(비단길)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비단은 당시에 중국뿐만 아니라 타지키스탄, 몽골 등 실크로드 주변에 위치한 나라에서 중요한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쓰였다. 슬로바키아에서는 강철 도끼가 화폐로 사용되었으며 니카라과에서는 코코아 열매가 화폐로 사용되었다. 몽골에서는 마시는 차를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화폐로 사용하였다.
사막지방인 수단에서는 양파를 갈아 반죽을 만든 다음 공 모양으로 말려 화폐로 사용하였으며 에티오피아에서는 아몰리(amoli)라고 불리는 정제하지 않은 소금을 일정한 규격으로 잘라 화폐로 사용하였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담비 모피를 화폐로 사용하였는데 지금 그들의 화폐단위 쿠나(kuna)가 곧 담비를 뜻한다고 한다. 귀금속이 화폐로 사용된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동남아시아의 은괴, 온두라스의 구리방울, 아프가니스탄의 청금석, 마다가스카르의 청옥수, 말레이반도의 주석괴 또한 상품화폐였다.
상품화폐에는 오만의 총탄, 솔로문군도의 새 깃털 등 상상하기 쉽지 않은 화폐도 존재한다. 우리나라 또한 토기와 볍씨로부터 손도끼, 화살촉, 포목, 은병 등 여러 종류의 상품화폐를 사용하였다.
미국령 괌의 아래쪽에 캐롤라인 군도(the Caroline Islands)가 있다. 그 서쪽, 필리핀 쪽으로 끝에 우압(Uap) 또는 얍(Yap)이라 불리는 섬이 존재한다. 이 섬에는 금속이 전혀 부존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돌(석회암)이 화폐로 사용되었다. 돌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바퀴모양으로 다듬어 나무막대를 끼워 굴리고 다니기 좋게 중간에 구멍을 뚫은 형태였다.
그와 같은 돌 화폐를 페이(fei)라고 불렀다. 크기는 지름이 30cm인 것부터 크게는 4m에 가까운 것도 있었다. 물론 큰 바퀴가 더 값나가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페이가 그 섬의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약 640km 떨어진 다른 섬에서 채석한 다음 돌 바퀴로 다듬어서 카누와 뗏목으로 운반해온 것이었다.
얍 섬의 돌 본위제도에서 현대 금융과 관련하여 몇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에 관하여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The Island of Stone Money’(1991, Working Papers in Economics, E-91-3, The Hoover Institution, Stanford University)라는 짧은 노트를 쓴 바 있다. 5천에서 6천 명쯤 되었다는 섬의 주민들은 처음에는 돌 바퀴를 굴리고 다니면서 거래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뒤에는 페이를 직접 굴리고 다니지 않았다. 거래가 성립되고 나면 소유권은 상품을 판 사람에게 넘어가지만 페이는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소유권의 이전을 인정받은 다음에는 무겁고 큰 돌 바퀴를 굳이 자기 집 앞마당으로 운반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다음 거래에서도 돌 바퀴에 대한 소유권을 이용하여 재화를 구입할 수 있었다. 돌 본위제도가 불평 없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금을 중앙은행 창고에 보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거래를 하는 금본위제도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한편, 얍 섬의 한 마을에 큰 부자 가족이 살고 있었다. 모든 주민이 그렇게 인정하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가족이 가지고 있는 부의 원천은 엄청나게 큰 페이였다. 그러나 문제는 주민 누구도 심지어는 그 가족까지도 그것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과거 2~3 세대에 걸쳐 그 가족이 바다에 수장되어 있는 엄청나게 큰 페이의 소유주라는 이유로 본 적도 없는 돌 바퀴를 근거로 구매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정은 이랬다. 먼 과거에 일행과 함께 페이를 채굴하러 나선 그 가족의 조상이 있었다. 매우 크고 값나가는 페이를 획득한 다음 뗏목에 실어 카누에 메어 달고 귀향하는 중간에 폭풍우를 만났다. 일행은 살아남기 위해서 뗏목을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페이는 바다에 가라앉고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귀가 후 일행은 마을 사람들에게 바다에 버리고 온 페이의 엄청난 가치에 관하여 증언하였다. 그리고 바다에 수장한 것이 소유주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하였다. 이 문제를 토의한 다음 마을 사람들은 수장된 페이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사고가 피할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돌 바퀴가 비록 바다에 잠겨 있으나 잘 다듬어진 페이로서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산 것이다. 금고에 보관되어 있으나, 보이는 앞마당에 있으나, 바다에 수장되어 있으나 같다고 인정한 셈이다. 거래의 매개수단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었을 때의 문제와 불편함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와 같이 인정된 구매력이 후대에까지 행사된 것이다.
화폐와 금융은 믿음이다
상품화폐의 변형인 금본위제도가 완전히 폐기된 것은 1971년이다. 미국의 대통령 닉슨이 금 태환을 정지시킨 이후 금이나 은 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나라는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존량이 한정되어 있는 귀금속을 바탕으로 한 화폐가 나날이 팽창하고 있는 실물거래를 뒷밭침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증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7세기 전반 유럽에서 큰 위기가 닥친 것도 화폐부족이 큰 원인이었다. 금이나 은 본위제도였던 당시 신세계로부터 귀금속의 유입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내재적인 가치를 갖는 귀금속과 분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화폐가 가치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순전히 믿음 때문이다. 법화(fiat money)를 사용하는 현대에 화폐 자체의 내재적인 가치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화를 파는 사람은 다음 단계의 거래에서 다른 재화를 구입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화폐를 받고 재화를 내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믿음이 사라짐과 동시에 화폐는 모든 기능을 상실한다. 얍 섬에서 그 부자 가족은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구매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 가운데 돌 바퀴는 하나의 구실이다. 어느 순간 주민들이 구매력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것의 화폐로서의 역할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경제에서 화폐의 신인도(credibility)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플레이션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고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역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많은 지자체들이 소위 지역화폐라는 것을 남발하여 화폐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조세재정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화폐를 발행한 지자체는 2016년 53개에서 2020년 벌써 229개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발행금액은 2016년 1,168억 원에서 2020년 9조 원으로 증가하였다. 이는 2020년 8월 화폐발행액의 6.5%나 된다.
한 나라 안에서 여러 종류의 화폐가 사용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폐해를 낳는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폐해는 거래질서를 교란하는 것이다. 더욱이 한심한 것은 중앙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화폐를 무슨 복지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베네수엘라가 하고 있는 정책이 그것이다. 화폐를 찍어 무분별하게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물가가 결국 수만, 수십만 퍼센트로 상승하는 것이 그렇게 부러운가? 정책은 단순할수록 좋은 것이다. 이토록 복잡한 정책수단, 특히 화폐와 금융을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좁은 나라에서 200개가 넘는 지역화폐가 존재하는 것이 정상일 수가 없다.
지역화폐로는 부족한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제 금융까지 건드리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기본대출권..수탈적 서민금융을 인간적 공정금융으로 바꿔야’라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이자율을 최고 10%로 제한하고 불법 사채 무효화와 장기저리대출 보장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전액 무상인 복지와 전액 환수하는 대출제도만 있고 그 중간이 없다면서 중간 형태로 일부 미상환에 따른 손실은 최대 10%까지 국가가 부담하여 누구나 저리장기대출을 받는 복지적 대출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기본대출권’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이다. 금융을 복지정책에 사용하여야만 한다는 주장인데 그런 정책을 편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앞에서 언급한 베네수엘라가 정확하게 이재명 지사가 말한 바와 같이 했다. 그 나라가 지금 어떠한가? 복지정책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금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돌 본위제도를 사용하는 섬보다 못한 나라고 전락한 것이다.
역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방자치단체장보다 서양의 중세 성직자가 되었으면 좋을 사람이다. 그의 주장은 중세교회가 강제한 ‘이자금지법(usury doctrine)’에 다름이 아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자금을 빌려줌에 있어서 어떤 유형의 이자나 부담금도 금지하였다. 이자금지법은 모세 오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물론 신약성경에서도 예수의 입을 빌어 이자를 금지하는 구절이 있다. 예를 들어 루카복음 6장 34절과 35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Constantine the Great)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the Council of Nicaea)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제들이 이자금지법을 지킬 것을 명시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자금지법을 일반 신자들에게까지 확대한 것은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샤를마뉴(Charlmagne)때이다.
물론 가톨릭을 믿지 않는 비신자에게까지 적용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유태인과의 이자거래는 허용되었으며 유태인이 특별히 금융에 밝았던 것은 그런 사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자금지법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유럽의 경제, 사회, 정치를 크게 제약하였으며 유럽의 금융제도와 기관의 발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받을 수 없으니 자금이 꼭 필요한 사람이 빌릴 수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것은 당연하다. 편법이 등장한 것 또한 당연하다. 예를 들어 80파운드를 빌려주고 계약서에는 100파운드를 빌려준 것으로 명시하는 방법이 있었다. 이와 같은 거래는 국제거래에서 특히 자주 사용되었다. 한편 중세에도 자금을 기한 안에 되갚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되어 있었다. 이를 포에나(poena) 또는 모라(mora)라고 하였다. 때로는 이와 같은 규칙을 악용하여 자금을 일부러 늦게 되갚으면서 벌금을 숨겨진 이자의 형태로 지급하였다. 그러나 이 모두 다툼의 소지가 있었다. 따라서 이자금지법은 적어도 거래비용을 증가시키는 제도임에는 틀림없었다.
이자는 금지되어 있었으나 자금의 대차거래가 아닌 투자의 수익에 관하여는 제약이 없었다. 예를 들어 상인들이 자금을 모아 사업을 한 다음 이익을 나누는 것을 콤파냐(compagnia)라고 하였다. 일종의 무한책임회사였다. 중세 후기가 되면 해양무역이 번성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사용된 것이 코멘다(commenda)이다. 직접 무역을 실행하는 선주(상인)와 자금을 제공하는 전주(자본가)가 공동투자를 하여 무역의 이익을 나누는 계약이다. 전주가 모든 자금을 대면 이익을 2대 1로 전주와 선주가 나누었으며, 만일 전주가 자금의 75%를 선주가 25%를 대면 1대 1로 이익을 나누었다. 이때 전주는 유한책임을 졌으며 뒤에 이러한 계약은 주식회사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자금의 대여가 이루어지지만 허용되는 거래가 있었다. 예를 들어 토지개량을 하거나 농기구 또는 가축을 구입하여야만 하는 경우 농부는 자금을 빌린 다음 매년 일정금액을 투자자에게 평생 지대의 형태로 지급하는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계약을 렌테스(rentes)라고 하였다. 농부가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지 않으면 토지를 몰수할 수 있었으나 그렇지 않고는 원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다만 렌테스를 시장에서 매각하여 현금화할 수는 있었다. 교회는 이와 같은 계약을 토지에 대한 지대의 개념으로 해석하여 허락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영구채(perpetuity)는 뒤에 정부부채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다시 말해 정부가 빚을 지더라도 역시 이자금지법에 저촉된다. 따라서 토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원금은 갚지 않고 일정금액을 정해진 기간 동안 지급하는 부채계약을 하게 된다. 지급하는 기간은 정해져 있기도 하고 투자자의 평생일 수도 있었다. 유산으로 상속할 수 있는 유형도 존재하였다. 이와 같은 정부의 영구채권을 영국에서는 콘솔(console)이라고 하였다.
이자금지법은 금융기관 특히 은행의 발전에 큰 제약이 되었다. 이자금지법이 가장 먼저 완화되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이고 영국에서는 헨리 8세의 치세에서다. 가톨릭으로부터 분리하여 왕이 수장인 성공회를 창립한 그의 의회는 1545년 10%까지 이자율을 허용하고 그 이상은 이자금지법에 저촉되는 고리대금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이후 이자상한은 계속하여 하락하여 1713년에는 5%까지 하락하였다. 영국에서 이자금지법이 폐지된 것은 1854년인데 그때까지 이자율 상한은 5%로 유지되었다. 한편 이자금지법이 가톨릭 국가에서 폐지되기 시작한 것은 1789년 일어난 불란서혁명 이후이다.
이자금지법은 하나의 질곡이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각종의 금융수단이 개발되지만 자금의 비효율적 배분은 피할 수 없었다. 한 번 도입된 나쁜 제도는 영속화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파퓰리즘에 따른 정책이나 제도는 파국을 맞고 나서야 고칠 수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이다. 이자금지법이 19세기 중반에야 폐지된 것은 천년 이상이 지난 다음 용도가 폐기된 때문이었다. 그 이후 금융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을 보면 얼마나 큰 역사의 부담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왜 기본대출권인가?
이 나라에는 아직도 이자와 금융을 불로소득이고 수탈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와 같은 견해는 포퓰리즘이고 중세의 이데올로기이다. 시장에 유통되는 자금은 누군가의 저축이다. 이자를 수탈이고 불로소득이라고 보는 것은 저축하는 가계에 대한 모독이다. 한편, 금융은 저축된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능을 한다. 이때 이자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격기능을 갖는다.
다시 말해 자금은 이자율보다 효율성이 높거나 같은 용도에 배분된다. 어떤 이유에서이든 이자율이 왜곡되면 자본은 엉뚱한 곳에 쓰이게 된다. 그때 경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 망가진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가 망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마디로 자원배분을 효율적으로 하는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자율에 개입함으로써 자원배분의 기능을 왜곡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망국을 초래한다.
이재명 경기지사, 그가 포퓰리즘에 편승하는 정치인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누가 가장 득을 보게 되는지도 모르는 듯 기본소득을 끈질기게 주장하더니 최고이자율을 10%로 제한하자고 한다. 최고이자율 24%를 위반한 채권은 전면 무효화하여야 한다고 한다. 물론 위법은 초법적 조치가 아니라 법으로 다스려야만 한다.
결정판은 ‘기본대출권’이다. 높은 이자율을 부담하는 사람들이 낮은 이자율의 대출에 대하여 보조하고 있다는 주장은 도대체 그가 이자율이 무엇이고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대한 인식은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더욱이 금융을 족징, 인징, 황구첨정, 백골징포라고 주장함에 이르러서는 넋을 잃을 수밖에 없다. 족징, 인징, 황구첨정, 백골징포가 옳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조선시대 조세징수의 부조리이다. 금융이 아니라 재정의 일탈이었던 것이다. 재정과 금융조차 구분이 안 된다는 말인가?
정치가 금융을 흔들 때 보이지 않게 나라는 더 크게 흔들린다. ‘기본대출권’은 경제 원리에도 맞지 않고 금융의 원리에는 더욱 맞지 않는다. 금융시장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등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하는 곳이다. 아직 구체적이지도 않지만 ‘기본대출권’을 도입하자마자 이 나라의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어려움에 빠진 서민을 도우려거든 파산제도 등 법령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어떻게 하면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여야 한다고 본다. 정제되지 않은 허황된 아이디어로 나라와 시장을 어지럽히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참으로 한심한 이 나라의 요즘 정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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