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23) 가을을 재촉하는 억새와 갈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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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나 식물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가을이 무르익어 가면 한번쯤 시도하는 것이 갈대와 억새를 구분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이제 이들이 막 이삭을 내밀고 하늘거리기 시작했으니까 저도 그걸 시도해 볼 때가 된 것 같네요.
그래서 지난 주는 주로 호수가 있는 분당 율동공원, 탄천변 등을 많이 거닐었습니다. 갈대와 억새를 사진에 담으려고 말입니다. 갈대와 억새를 구분하는 글 중에 가장 쉽게 등장하지만 무책임한 글이 갈대는 강변, 호수변 등 물가에서, 억새는 산과 들에서 볼 수 있다고 하는 글입니다. 그런데 억새는 물가에서도 지천으로 자랍니다. 하기야 물가에 자라는 억새를 물억새라고 이름 붙이고 구분하기도 합니다만...
본론으로 들어가서 두 식물 구분의 첫째 포인트는 갈대는 이삭이 갈색인 데 비해 억새는 흰색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이삭이라고 부르는 부분 즉 꼭대기 부분을 흔히 꽃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두 식물이 벼과의 식물이고 그 부분이 열매인 셈이니까 이삭이라 부르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포인트. 억새 이삭은 날씬하고 갈대 이삭은 복슬복슬하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억새가 사람 눈에는 더 예쁘게 보인다는 것이지요. 가을이 무르익어서 이들 이삭에서 만들어낸 씨앗들은 다 바람에 날려버리고 쭉정이만 남을 때가 이 두 식물의 정취가 무르익게 되지요. 거의 무게감 없이 달려 있는 이삭들이 바람이 불면 사각거리며 날리는 모습은 사람들의 감정을 순화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금강에 면하여 지어져 있는 세종시의 국책연구기관 청사에 근무하던 시기에 점심 시간에 약속이 없으면 종종 금강 강변에 내려가 산책하면서 억새와 갈대의 정취를 즐기곤 했습니다.
10월 말쯤 되면 억새들이 많이 핀 들판을 모티브로 삼은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지요. 산정호수가 있는 명성산, 서울 안에서는 하늘공원이 유명하고 밀양, 양산, 울산 일대를 연결하는 몇 개의 산을 지칭하는 영남 알프스의 억새축제는 11월초에 전국적으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조금 못생긴(?) 갈대만 불쌍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갈대는 갈대의 순정을 필두로 가련한 이미지로 뇌리에 남는 것 같네요. 제가 몇 년전에 SNS에 글을 올렸을 때 댓글을 달며 갈대와 관련한 노래들을 언급한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언급한 노래만 하더라도 ‘갈대의 순정’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집 창가에~’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등등 참으로 많았습니다. 우리 가요만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에도 있다고 하면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아리아에서 "갈대와 같은 여자의 마음~"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고 하는 분도 있었지요. 갈대에 대해 글을 쓰신 다른 분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고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조금 못난 갈대에서 더 많은 정감을 찾아내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갈대와 억새는 그 쭉정이로 남은 이삭을 겨우내 간직하여서 사람들이 물가를 거닐 때 정취를 북돋아 주곤 하지요. 심지어는 그 다음해 봄까지도 꿋꿋이 서 있는 이삭들도 심심찮게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두 식물이 막 이삭을 내밀고 있을 때는 구분이 조금 더 어렵습니다. 이삭 모양이 비슷하니까요. 그래서 세 번째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억새는 줄기 맨 윗부분에서 이삭 가닥들이 몰려나는데 갈대는 줄기 윗부분에서 몇 층을 이루면서 각 층마다 이삭가닥들이 빙글 돌아 달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결정적인 한 포인트만 더. 가장 정확한 기준은 억새의 길게 내민 잎 한 가운데에 있는 뚜렷한 흰줄 (엽맥이라 부릅니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갈대에는 없거나 희미하다는 것이지요. 제가 올린 억새 사진 속에서 이 뚜렷한 엽맥을 찾아보시지요.
그런데 두 식물의 이름은 왜 이렇게 지어졌을까요. 갈대는 대와 마찬가지로 줄기 속이 비어 있답니다. 그래서 대나무 비슷한데 가짜라는 의미입니다. 억새는 농부를 괴롭혔나 봅니다. 잎을 잘못 만지면 제법 손을 벨 수 있다니까, 억세다고 이름 지어진 것 아니겠어요. 이건 순전히 저의 생각입니다.
두 식물은 모두 ‘벼과’에 속합니다. 벼과는 아마도 가장 많은 식구를 거느린 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억새와 갈대는 벼와 마찬가지로 가을에 이삭을 내미는 식물이지만, 같은 벼과에 속하는 보리, 밀과 같이 봄에 이삭을 내미는 녀석들도 많습니다. 여하튼 벼과의 식물들을 상당 부분 구분해서 알아보는 데는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엄청난 숙제입니다. 제가 겨우 해결한 몇 가지 벼과 식물들을 (그것도 가을에 이삭을 내미는) 언급하면서 글을 맺을까 합니다.
갈대와 비슷한 녀석으로 달뿌리풀이란 녀석이 있습니다. 서식지도 갈대와 비슷하게 물가입니다. 종종 이 녀석이 줄기가 땅바닥 위로 한없이 뻗어가서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리는 것에 착안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녀석은 참으로 갈대와 닮았는데 잎이 나오기 시작하는 부분에 (즉, 잎이 줄기를 감싼 부분으로 잎집이라고도 합니다.) 자주빛이 돌면 달뿌리풀입니다. 갈대라 생각하고 지나쳐버린 녀석들 중에 달뿌리풀인 경우가 많을 것이란 얘기지요.
줄이라고 부르는 녀석도 있는데, 이 녀석은 참으로 물을 좋아해서 물가를 지나서 아예 물 속에서 부들과 함께 자라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이 녀석도 가을에 이삭을 길게 내미는데 억새나 갈대에 비해서 조금 부실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녀석의 잎은 물속에서 참으로 싱싱한 모습을 보입니다. 올해와 같이 큰 장마와 태풍 등으로 탄천도 물이 많이 불고 물살도 세어서 이 녀석들이 다 떠내려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시 꿋꿋이 서서 이삭을 내민 모습이 정겹기도 합니다.
9월17일 분당 탄천변의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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