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28> 여의도 감염병 ‘다만증(症)’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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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일반 문법): 앞의 말을 받아 예외적인 사항이나 조건을 덧붙일 때 그 말머리에 쓰는 말. 예문=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다만’ 법적인 처벌까지 받아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다만’(여의도 문법): 99% 잘못한 일도 인정하기 싫어서 어떻게든 강변하고 싶을 때, 1%로 99%를 덮고 싶을 때 쓰는 부사. 뒤에 ‘이런 점도 있습니다’라는 관용구가 자주 붙는다. 정상인의 눈에는 애처롭게 보이지만, 간신(奸臣)들에게는 말을 묘하게 꼬아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줄 수 있는 마법의 단어다. 사용 용법=먼저 대다수가 지적하는 잘못을 한 두 문장 언급하며 마치 반성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한다. 그리고 ‘다만, 이런 점도 있습니다’라며 강변할 내용을 ‘아주 길게’ 설명한다. 일반 문법에서는 ‘다만’ 앞부분이 주(主)지만 여의도 문법에서는 ‘다만’ 이후가 주(主)로 주부가 거꾸로다.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 나온 패널들에게 굉장히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가 ‘다만’이다. 본래 뜻은 위에 설명한 대로, 대체로 지금 알고 있는 사안들이 맞지만 일부분 이런 다른 점도 있다는 걸 설명할 때 쓴다. 중요한 것은 일반적으로는 ‘다만’ 앞이 본질이고, ‘다만’ 이후의 말은 보조적 설명일 뿐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여의도 문법에서는 거꾸로다. 99% 잘못했는데 약간 애매한 부분이 1%라도 있으면 이 마법의 단어를 사용해 기를 쓰고 강변한다. 꼰대 할아버지 정치인들이 하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소위 배웠다는 교수, 판검사에 변호사, 의사 출신, 정치를 바꾸겠다는 20~30대 청년 정치인들이 나와서 ‘다만~’하며 기를 쓰고 강변하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어떤 시사 프로그램을 봐도 한 번 이상은 반드시 나오는데,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중 한쪽은 항상 강변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며 보고 있는 프로그램에서도 방금 ‘다만증’이 나왔는데, 마침 바람직한 예시(일반 문법)와 부적절한 예시(여의도 강변 문법)가 동시에 나와 소개한다.
2022년 2월 15일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 패널인 ○○○ 변호사와 ○○○기자의 발언인데,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의 관용차 사적 사용이 주제였다. 화면에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김 씨를 옹호하는 발언을 보여준 뒤 앵커의 질문이 이어졌다.
앵커=“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요, 관용차를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게 관행이지만 잘못된 거다. 이번 기회에 고치자 이러면서 사실상 김혜경 씨를 감싼 것으로 그렇게 보이는데요.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 변호사=“당연히 잘못된 관행이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김혜경 여사도 한… 두 번 정도 사과를 했고, 후보자도 사과하지 않았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관용차를 개인적으로 이용한 부분이 있다면 이것도 당연히 사과할 것으로 보이고요. ▲‘다만’ 이제 이런 논란이 한 11일째 되잖아요. 그러면서 제보가 하나씩 하나씩 나오다 보니까, 후보자가 지금 대통령 선거해야 하는데 매일 사과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저는 과거 이제 민주당이 보궐 선거 때,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때 생태탕 논란이 있었고, 그것에 있어서 본질은 생태탕이 아니라 어떤 시장으로서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대통령 선거도 국정 운영 능력도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그런데 너무 이제 이런 것에만 몰입되다 보면 잘못하면 이번 선거가 또 닭백숙 대선, 초밥 대선이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검증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국가 운영 능력에 대한 측면이 중요할 것 같고, 또한 과거에 이런 이게 지금 A씨 같은 경우도, 공익 제보한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한꺼번에 제공해야지 하나씩 제공하다 보니까 좀 순수성에 의심이 충분히 간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이게 ‘다만’의 여의도식 용법이다. 화자의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초등학교만 나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관용차의 사적 사용이 잘못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밑밥을 깔고 ‘다만’을 이용해 더 이상 이런 얘기 하지 말자, 대선은 국정운영 능력을 보는 자리 아니냐며 피해 가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사용법은 어떤 것일까. 마침 앞서 말한 대로 올바른 사용예시가 바로 이어졌다. 김혜경 씨가 오늘(2월 15일)부터 선거운동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국민일보 보도에 관한 이야기 중 나왔다.
앵커=“의전 관련 추가 의혹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어서 그런 여론을 의식해서 김혜경 씨가 비공개로 봉사활동 정도 하는 거 아니겠느냐 이런 전망이 나왔었죠.”
○○○ 기자=“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복수의 언론보도를 보면, 민주당에서는 앞서서 김혜경 씨가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서면서 어느 정도 파장이 일단락됐다면서도 여론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일단 비공개로 봉사활동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렇게 전해졌었는데요. 오늘 국민일보는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됐기 때문에 봉사활동이 아닌 당원과 지지자를 만나는 등 후보 배우자로서의 선거 운동을 할 것이라는 그런 선대위 관계자의 말을 보도했습니다. ▲‘다만’ 유권자를 거리에서 직접 만나서 공개적인 유세는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상인’들은 이렇게 쓴다. 조진상도 이렇게 쓴다.
<ifsPOST>※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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