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15> 나쁜 놈들, 추잡한 놈들, 정신 나간 놈들 2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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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뭐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있지?”
“와… 말이 안 나오네.”
“이럴 거면 왜 국정홍보처를 폐지한 거야?”
우리는 경악했다. 그냥 경악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기자실 대못질의 주역인 전 국정홍보처 홍보협력단장을, 새 정부 들어서기 전에 미국으로 가려다 언론의 반발로 못 간 그 단장을, 이명박 정부가 2008년 3월 12일 자로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정책관에 발령을 낸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한 달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홍보정책관은 문화체육관광부 내 홍보지원총괄, 국정과제홍보, 분석, 정부발표지원과 등 4개 부서를 총괄하는 자리다. 쉽게 말해 국정홍보처가 존재할 때 했던 일을 그대로 맡긴 것과 다름이 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의 능력이 탁월했던 걸까, 아니면 이명박 정부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정신이 나갔던 걸까.
노무현 정부에서 기자실 대못질이 한창일 때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권력이 아무리 대못을 박아도 언론의 문을 닫진 못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못질을 한 사람을 다시 데려다 쓰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일제강점기 순사를 해방 후에 다시 쓰는 게 이런 건가. 시간이 좀 지난 뒤도 아니고 국정홍보처를 폐지한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어쨌든 여론은 또다시 들끓었다. 안 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열흘도 채 안 돼 문화체육관광부는 그가 사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그로서도 참 기구한 팔자다. 좀 안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 나는 하수 중의 하수였다.
몇 년 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인터넷을 뒤지며 기삿거리를 찾고 있는데, 우연히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장에 바로 그 ‘형님’이 영전했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설마?’ 하며 계속 읽어보니 앞서 말한 ○○○ 전 국정홍보처 홍보협력단장이 맞았다. 더 찾아보니 이명박 정부 초기 문화체육관광부 홍보정책관을 그만둔 뒤에도 문체부에서 계속 근무를 하고 있었다. (당시 사표를 제출했다는 게 제출만 하고 수리가 안 돼 남아있었던 것인지, 사직하고 재채용 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약 2년 반 정도 이 자리에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의 소통이 어땠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누굴 탓하랴.
PS.1 ―이명박 정부 때 한 핵심 인사(지금은 국민의힘 중진 의원이다)와의 저녁 자리가 있었는데 당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정권을 잡고 나니까 국정홍보처가 필요하더라고. 당시는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파동으로 된통 곤욕을 치른 직후였다. 그는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4대강 사업, 제3 노총 설립 등 정권의 운명이 걸린 큰 문제에 대통령과 정권의 생각을 앞장서서 전파하고 밀고 나갈 돌격대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나니 그렇게 욕했던 전임 정부와 어쩌면 그렇게 닮아 가는지… 뒷간 가기 전과 다녀온 후가 다르다더니, 역시 조상님들의 혜안을 따라갈 수가 없다. 앞서 말한 그 기구한 팔자의 그분이 어떤 능력을 발휘해서 그렇게 긴 생명력을 유지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데 대통령 이름만 달라졌을 뿐 정권을 잡은 집단의 생각이 똑같았다면 그가 필요했을 거란 생각은 든다. 국민만 불쌍하다.
PS.2 ―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여성가족부 폐지가 기정사실이 됐다. (2022년 10월 정부 방침으로 확정됐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있어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부 부처는 일하는 조직이니 필요에 따라 생길 수도,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의 근거는 전적으로 ‘일’이어야지 ‘감정’이어서는 안 된다. 한 부처의 시대적 역할이 이제는 다 끝났다면 당연히 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은 남아있는데 특정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했다고 폐지한다면 솔직히 그렇지 않았던 부처가 어디 있을까.
독재 정권 시절에는 모든 부처가, 심지어 사법부와 감사원까지도 정권의 나팔수였고, 홍위병이었다. 같은 논리라면 모두 폐지해야 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국정홍보처 폐지는 반면교사가 될 만하다. 당시 아무도 홍보처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은 없었다. 홍보처가 워낙 ‘밉상’으로 찍혔기 때문에(자업자득인 것은 사실이다) 대선에서 정부 여당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였고 그래서 늘 부정적인 모습만 부각됐으니까.
지금 여가부 폐지도 나는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처의 폐지는 그 부처의 시대적 역할이 다 끝나야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와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인사들이 여가부 수장을 맡으면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문제에 눈을 감은 것은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이런 이유로 부처를 폐지한다면 탈원전에 앞장선 산업통상자원부, 북한 인권에 눈감은 통일부도 폐지해야 한다. 세월호 난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경을 없앤 것은 얼마나 유치한 행동인가. 여가부를 없애고, 그 기능을 다른 기관으로 이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징벌성 폐지 아닌가. 한나라의 부처가 그런 식으로 없어져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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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옮겨 실은 것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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