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12> 미국에서 광고하고, 인지도 조사는 한국에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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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광고는 외국에서 하고, 인지도 조사는 한국에서 하는 게 어디 있습니까?”
“예산도 부족하고… 국내에 있는 외국인도 외국인이니까…. 이해해주면 안 될까?”
“왜 로버트 할리에게도 묻지 그랬소?”
“그분은 귀화했잖아….”
‘걱정 홍보처’(국정홍보처) 사람들의 기괴한 행태는 앞서도 말했지만 한둘이 아니었다.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치고 제대로 된 사람들이 있을까마는, 속일 때 최소한 ‘눈 가리고 아웅’ 해주는 예의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후안무치하게 ‘눈도 안 가리고 아웅’ 한다.
국정홍보처 산하에 해외홍보원이라는 기관이 있었다. 여기서 매년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인지도 조사를 했는데, 다이내믹 코리아는 김대중 정부 시절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해 정부가 선정한 영문 슬로건이다. 혹시 “17년 후 이 아이는 스페인 전(한일 월드컵) 승부차기를 막아냅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한 초등학생 사진 아래 ‘축구 국가대표 골키퍼 이운재’라는 자막이 나오는 광고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신지? 바로 이 영상을 해외홍보원이 만들었다. (그런데 이 영상은 국내 홍보용이었다. 해외홍보원이 왜 국내 홍보용 영상을 만들었는지는 뒤에 설명한다.)
다이내믹 코리아 홍보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계속됐는데, 2005년 2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 이미지위원회’를 발족하고 실무팀으로 해외홍보원에 국가 이미지 지원단과 글로벌홍보팀을 둘 정도로 상당히 신경을 쓰고 공을 들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매년 다이내믹 코리아 홍보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조사했다. 해외홍보원에서 2006년 한 해 동안 해외 언론 매체에 광고 등으로 쓴 돈만 150억원인데, 이는 인건비 등 경상비 36억원은 제외한 순수 사업비다. 대한민국의 해외 이미지 제고를 위해 기구를 만들고, 매년 수백억 원씩 쓰고, 2004년부터 매년 그 효과를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할 거다. 평가 대상에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없!었!다.’ 단 한 명도. 적어도 나한테 딱 걸린 2007년 7월까지는 그랬다. 그럼 누구에게 물어봤냐고? 2004년부터 매년 ‘국가 이미지 슬로건에 대한 평가 조사’를 했는데, 국내에 사는 내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했다. 일반 한국인 700명, 한국인 공무원 200명,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100명.
매년 수백억 원을 들여 외국에서 잡지, 신문, TV 등에 ‘다이내믹 코리아’를 홍보하고, 정작 해외에서 얼마나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는지에 관한 조사는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 거다. 그나마도 90%는 한국인이고 10%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었다. 하지는 않았겠지만, 사유리, 샘 해밍턴, 타일러 라쉬 같은 사람들에게 물어본 셈이다. 그러고는 다이내믹 코리아 인지도가 2005년 조사와 비교해 외국인은 29%에서 40%로, 일반인은 33.1%에서 51.6%로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이거 범죄 아닌가? 한국인은 물론이고 이 100명의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이 해외 홍보물을 보기라도 했을까?
외국에서 조사한 적도 있기는 하다. 해외홍보원은 2005년 7월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다이내믹 코리아 인지도 설문조사를 했는데, 뉴욕 60%, LA 63%로 국내 일반인 인지도 51.6%보다 높게 나왔다고 했다. 당시 이 자료를 보고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왔는데… 초등학생들도 이런 식으로 비교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홍보물을 틀지도 않은 국내와 비교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들도 처음에는 같은 도시의 1년 전후 인지도 변화를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놓지 못할 정도로 차이가 미미하다 보니 (어쩌면 거꾸로 1년 후가 더 낮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비교법을 생각해낸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게 더 웃긴 일인데… 홍보도 안 한 국내에서 51.6%나 아는데 돈을 주고 홍보를 한 뉴욕에서 60%가 안다면 굳이 돈 주고 홍보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마저도 내막을 알면 더 황당하다. 뉴욕 200명, LA 200명 등 총 400명을 했는데 조사 대상은 한인 동포들이었다. 파견 홍보관이 일일이 설문지를 나눠주며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100%가 안 나온 걸 보면… 응답자 중에 의식 있는 분들이 그래도 꽤 많은 것 같다.
2005년 2월 한국관광공사가 한국을 알고 있는 외국 성인 남녀 7,104명을 대상으로 한국 인지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때 다이내믹 코리아 브랜드 인지도에 관해 물었더니 22.4%만 알고 있다고 했다. 이 조사에서 북미 지역은 6.6%만 안다고 했고, 유럽 지역도 안다고 한 사람이 10.5%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것도 ‘한국을 아는 사람’을 전제로 한 것이니 정말로 한국에 관심이 없는 외국인들에게는 거의 홍보 효과가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이상한 일에 대해 담당자에게 물었을 때 그는 의외로 솔직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 형, 해외 거주 외국인에게 다이내믹 코리아인지도 조사를 한 적은 없어. 예산도 부족하고, 홍보해도 노력만큼 외국인들에게 인지도를 높이기가 힘들거든.”
아… 이건 정말 범죄다. 이런 게 예산 횡령, 국부 유출이 아니면 뭘까. 이런 도둑들이 법인카드를 받아 밥 먹고, 술 마시고, 관용차를 타고 다닌다. 한쪽에서는 청소년들이 학비를 내기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가장이 쉬는 날도 없이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지는데…. 그럴 때 가만히 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약방의 감초처럼 앞에 나서서 ‘서민을 위한…’ 운운한다. 그리고 가진 자들의 탐욕 때문에 서민들이 더 어려워진다며 이상한 정책을 남발한다. 외국에서 홍보한 광고의 인지도 조사를 한국에서 하자는 생각은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까? 이런 아이디어를 보고 받고 허락한 사람은 또 누굴까? 이런 행태가 어떻게 감사원 감사 등 각종 감사를 통과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참여정부 내내 각종 여론·설문조사에서 국정홍보처는 언제나 ‘없어져야 할 부처 1위’로 지목됐다. 그리고 실제로 정권이 바뀌면서 없어졌다. 자업자득이라고 하면 너무 가혹한 이야기일까. 권력에 아부한 간부들 때문에 피해를 본 하급직 직원들의 인생은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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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옮겨 실은 것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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