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11> 진상이도 그렇게 묻지는 않는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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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상: 실존 인물.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반 꼴찌. 친하진 않았음. 얼굴은 이름 그대로인데 다소 억울하게 생김. 잘 씻지 않음. 매 맞는 날이 안 맞는 날보다 많았음. 하지만 대체로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편. 반에서 ‘조진상도 아는데’란 말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아는 것’, ‘조진상도 안 하는데’라는 ‘세상 누구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됐음.
“처장(○○○ 국정홍보처장), 이 설문조사가 말이 됩니까?”
“조사 결과가 그렇게 나온 거니까….”
“왜? 100%로 만들어서 배포하지? 북한 선거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노무현 정부와 언론과의 대립각이 한창이던 2006년 8월, 국정홍보처가 보도자료 하나를 냈다. (국회를 출입하던 나는 2006년 7월~2007년 3월 국무총리실과 국정홍보처로 출입처를 옮겼다. 국정홍보처는 당시 정부 광화문 청사 9층에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지됐다.) 당시 참여정부는 각 부처에 잘못된 기사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침을 내리고, 그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기관 평가에 반영했다. 이런 행위에 대한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설문조사였는데, 설문 내용과 조사 대상이 가관이었다.
‘정부 차원에서 언론의 건전한 비판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이를 바로잡도록 대응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옳은 방향이다.(86.3%·221명) 2. 잘못된 방향이다.(3.9%·10명)
언론의 건전한 비판은 수용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이 있을까? 잘못된 보도를 바로 잡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더 황당한 것은 설문조사 대상이었다. 당시 홍보처는 47개 부처 홍보관리관실을 통해 부처별로 각 6명(홍보 담당 3명, 정책 담당 3명)씩 모두 257명의 응답을 받았다. 각 부처 홍보관리관실을 가장 위에서 컨트롤하는 곳이 국정홍보처였다. 쉽게 말해 자기 밑의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거다. 누구 말대로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설문 문항과 조사 대상을 생각하면 ‘옳은 방향’이란 응답이 100%가 안 나온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잘못된 방향이다’라고 응답한 10명은 실제로 잘못된 보도에 대응하는 게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행간의 의미를 읽는다’는 말처럼 국정홍보처의 이 설문조사가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 숨은 속내를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던 ‘용자(勇者)’들이라고 생각한다. 설마 그래도 공무원 시험에 붙은 사람들인데 언론의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당시 설문조사에는 이런 문항도 있었다.
‘정책 기사 점검 시스템은 언론의 건전한 비판에 대한 수용과 잘못된 보도에 대한 대응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1. 매우 필요(22.2%·57명) 2. 조금 필요(43.6%·112명)…
정책 기사 점검 시스템이란 기사에서 수용할 부분이 있으면 수용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언론중재위나 소송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수용과 대응 중 방점은 ‘대응’에 있었다. 잘못된 보도에 대한 대응은 언론중재위 제소 건수나 소송 등으로 비교적 관리가 간단하지만, 건전한 비판에 대한 수용은 개념이 너무 모호하고 파악도 어렵기 때문이다. 수용이라는 게 정책을 바꾸는 걸 말하는지, 담당 공무원이나 장·차관이 기사의 지적을 인정하는 걸 말하는지 기준도 없었다. 그래서 이 설문 문항의 진짜 속뜻은 ‘각 부처가 잘못된 보도에 얼마나 대응하는지 수치로 파악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이다. 설문 문구만 얼핏 보면 ‘필요하다’가 100% 나와야하는 게 당연한 질문이지만, 설문조사 대상 257명 중 169명만 필요하다고 응답하고 88명이 불필요하다고 응답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실무자들은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소송 등 언론과의 싸움을 직접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하다’라고 응답한 사람 중에도 국정홍보처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뻔히 아니까 맞춰준 사람이 상당수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지만, 부처별로 담당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e메일로 설문을 보낸 탓에 누가 무슨 응답을 했는지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정신이상자들은 여의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 국정홍보처의 광기를 소개할 예정인데, 당시 인터넷에 ‘걱정 브리핑’이라는 패러디물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각종 국정 현안을 브리핑하는 국정홍보처의 인터넷 사이트 ‘국정브리핑’을 패러디한 것인데, 오죽하면 이런 패러디물이 인기를 끌었을까. 진상이도 이런 설문조사를 보면 실소를 금치 못했을 거라는데 내 팔 한쪽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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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옮겨 실은 것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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