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3> 나는 왕이로소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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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래도 되는 거야?”
“응? 왜?”
“로텐더 홀에서 담배를 피우잖아.”
“아~ 저분? 늘 저러더라고. 아무도 뭐라고 못해.”
2006년 여름, 국회 본청 본회의장 앞(로텐더 홀)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취재하고 있는데 타사 기자가 누군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당시 열린우리당 ○○○ 의원이 로텐더 홀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주관적인 느낌이겠지만 아주 맛나게 핀다는 게 그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주변에는 국회 경비 등 직원들이 있었지만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가 담배를 피우고 있던 장소는 로텐더 홀 바로 뒤에 있는 귀빈식당과 5m도 안 떨어진 곳이었다.
국회의사당은 2004년 1월 1일부터 금연 구역으로 지정됐고, 이미 1999년 말부터 금연 구역과 흡연구역을 지정해 운영해왔다. 2006년 당시 의원회관에는 층마다 흡연실이 있었는데, 이것도 국민건강진흥법을 어긴 거라 특혜 시비가 일다가 결국 없어졌다. 자신들이 만든 법이건만, 그들은 만드는 것과 지키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본인 의원실은 당연했고, 국회 상임위원회 휴게실에서 피우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스스로를 왕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잊혔던 인물이 내 기억에 다시 소환된 것은 2015년 12월이었다. 한 언론에 <법안은 ‘뒷전’ 담배는 ‘뻑뻑’… 참 불쾌한 ‘새 정치’>란 기사가 났는데 누구 이야기인가 하고 봤더니 2006년의 로텐더 홀 그 분이었다. 그 사이에 그는 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진 의원이 됐는데, 기자들과 함께 있는 회의실에서 담배를 피운 게 기사화된 것이다. (지금 국회는 건물 안은 물론이고 잔디밭에서 담배를 피워도 국민건강진흥법 위반으로 걸린다.)
더 어이없는 건… 그는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었고, 국민건강진흥법은 보건복지위 소관 법률이라는 점이다. ‘더×더’ 어이없는 건… 정부가 그해 초 담뱃값을 인상하면서 동시에 금연 치료 지원사업을 시작했는데 제대로 준비가 안 돼 참여율이 저조했다. 그러자 그는 상임위에서 “의료진에 대한 상담 교육과 금연 약물 교육 등이 시행되지 않은 채 사업이 시작됐다. 금연 치료지원 사업비 1,000억 원 중 8월까지 14.2%(142억 원)밖에 집행되지 않았다”라며 문제점을 질타했다. 법으로 정해진 금연 장소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금연 치료사업의 미비점을 지적하다니….
도대체 뇌에서 어떤 전이 현상이 일어나기에 이런 행동과 말을 태연하게 할 수 있는 걸까. 생명의 신비는 끝이 없다.
PS.1 ― 2013년 10월 민주당 △△△ 의원이 국회의사당 안에서 흡연하다가 언론사 카메라에 찍혔다. 해당 언론사는 △△△ 의원이 사과나 유감 대신 해당 기자에게 기사를 쓸 테면 써보라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해당 언론사에 따르면 담당인 영등포구청은 사진으로 찍힌 거라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는 해석이 불가능한 궤변을 했는데, 의원님들이 평소에 얼마나 ‘언터쳐블(untouchable)’이었는지 짐작할만하다.
의원님들의 무소불위한 흡연이 어느 정도였냐면, 2013년 1월 통합민주당 황주홍 의원은 “새해에 두 개의 전쟁을 선포하려고 한다. 그중 하나가 국회 내 흡연”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그는 의원들이 국회 내 각종 건물은 물론이고 본회의, 세미나에서도 버젓이 피운다고 했는데 실정법 위반도 문제지만 그 오만함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법 때문에 금연 건물로 지정됐는데 동료 의원이 ‘전쟁 선포’ 운운할 정도면 이건 오만함을 넘어 정신이상으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PS.2 ― 이 흡연 의원은 몇 년 후 문재인 정부에서 굉장히 중요한 공공기관의 수장에 임명됐지만 이런 저런 문제가 드러나 10여일 만에 사퇴했다. 속담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ifsPOST>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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