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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13> 문화예술 영역의 건강한 윤리회복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7월24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7월25일 10시29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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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1세대 유명 민중미술 작가 한 사람이 10년 전 자신의 조형연구소 여직원에게 가한 강체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실이 많은 언론에 오르내렸다. 사회 정의와 인권, 평화 등을 중요한 기치로 삼고 활동해온 민중 미술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물론 개인의 도덕적 문제를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로 확대,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가 가지는 상징성의 크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사과를 표명하였지만, 이번 사안으로 그가 그동안 추구해온 작품과 삶에 커다란 흠집을 남겼고, 이를 계기로 그의 작업과 활동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유미주의나 형식주의 모더니즘의 논리 속에서는 작가의 도덕성과 작품은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지만, 작품을 사회적 발언의 기조로 했던 그의 작품들은 인성과 별개의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일은 그가 추구해오던 인권이나 평화에 대한 거대 담론의 실체가 무엇이었던가를 되묻게 하는 일이며, 또한 그가 오랫동안 누려온 문화 권력의 일단을 드러낸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의 조형연구소는 자신이 가진 문화 권력을 축적하고 다채롭게 구현해가는 사업체였다.

 

  소위 민중미술은 1979년 결성된 그룹 ‘현실과 발언’을 통해 미술의 사회적 의미와 참여를 추구하는 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는 이 그룹의 핵심 멤버였고 지금까지도 과거의 이력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세이다. 이 그룹은 1980년대 5공화국 체제에 맞선 숱한 민중미술 계열 단체의 구심점이며 기폭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1987년 이후 정치세력화되어 제도 미술로 서서히 진입하였다. 그 후 점점 더 규모와 힘을 키우며 서로의 입장을 달리하던 다양한 초기의 단체들을 통합하며 민족예술단체총연합회 등 문화 사회단체들과 연대하며 미술 권력의 핵심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화단을 지배하던 모더니즘의 제도를 극복하며, 미술계의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바로잡고자 시작했던 초심은 사라지고 그들이 극복 대상으로 삼았던 전대의 그것보다 더 심한 배타적 문화 권력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문화예술 기관들을 접수하고 그 권력구조의 핵심에 서서 온갖 이권 카르텔을 조직하며, 자신들의 진지를 공고히 구축해 갔다. 국가나 공공재단의 지원사업들과 전국적인 대형 프로젝트라는 먹거리를 포식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도덕적 일탈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권력과 이권 카르텔, 상업주의와의 결탁으로 얻은 막대한 부로 인해 오래전부터 자신이 민중 작가로 불리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에 이르렀다. 그의 연구소 홈페이지에는 그간의 숱한 작업 내용이 공개되고 있는데, 순수한 작품이라기보다는 프로젝트형 작업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밝히지 않은 작업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여서 가히 그가 대가(?)임을 알게 된다. <전태일 열사 동상>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흉상>은 물론 김창열 미술관의 <김창열 조각상> 등 전국 구석구석에 온갖 동상이나 공공조형물 설치, 공원 조성 등 작품의 일관성을 상실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보노라면 그의 과도한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결과물들은 작품의 수준이나 내용보다는 정치권력이나 유력한 시장 권력과의 친연성 아래 강력한 이권 카르텔로부터 기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정치권력과의 친연성은 박근혜 탄핵 사건에 앞장서며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을 형상화한 포스터 수준의 대형 회화작품을 청와대 본관에 설치한 일로 상징된다. 여기에는 그와 친한 상업화랑이 개입되어 있었다고 한다, 급기야는 2022년 절친이 관장으로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까지 입성하여 초대작가전을 치르는 등 민중 작가로서는 드물게 상업적, 예술적 성공을 거둔 이른바 궁정화가(?)의 위상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인간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법(law)과 윤리(ethic), 그리고 도덕(moral)을 들 수 있다. 법은 정부나 국가가 정한 규칙과 규제로,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고 권리와 의무를 조정하는 목적을 가진다. 윤리와 도덕에 비해 강제적인 속성이 강한 사회적 규범으로 이에 저촉할 때 강한 제재를 받는다. 윤리는 개인이나 집단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데 사용되는 원칙과 가치들의 집합이다. 이는 자발적으로 따라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지침과 원칙들을 포함하는데 윤리적 가치는 문화, 신념, 종교, 교육 등 다양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윤리적 판단은 법과 겹칠 수도 있지만, 법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많은 행동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이에 반해 도덕은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에 관한 특정한 규칙과 관념을 의미하는데 도덕적 가치는 종종 개인적, 종교적, 문화적 배경과 유대 관계가 있으며,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과 가치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도덕이 주관적이라 한다면 윤리는 상호주관적이라 할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도 엄연히 법과 윤리, 도덕이란 규범이 존재한다. 윤리나 도덕은 법의 문제와는 별개로, 암묵적 약속으로서 문화예술계를 지탱하는 힘이다. 작위적으로 이를 깨거나 무시할 때 공동체의 질서에 균열이 생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운영에는 ICOM(국제박물관협의회)의 윤리강령이 있다. 큐레이터들은 자신의 친인척이나 지인 소유의 작품을 뮤지엄의 소장품으로 구입하는 일을 공정성을 깨는 일로 금기시하고 있다. 

 

미술시장에서는 갤러리가 경매회사를 동시에 운영하는 것은 피한다. 왜냐하면 갤러리가 자신들이 거래하는 작품을 작위적으로 옥션에서 가격을 높여 팔 수 있는 개연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사업이나 인사 등에 관한 심의를 할 때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심의 장치가 존재한다.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균형과 견제를 이루도록 하며,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도록 한다. 상호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은 스스로 기피나 배제를 신청하도록 하고 있다. 사소한 윤리 같지만, 이는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기본 규범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 문화예술계엔 건전한 윤리강령이 사라지고 승자독식이나 패거리 문화, 더욱 심하게는 이권 카르텔에 의해 특정 세력이 공공의 재화나 기회를 독식하는 문화가 독버섯처럼 증식되어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민중 진영의 작가들이 정부 지원금의 수혜를 못 받던 시절, 그들은 “예술가가 어찌 정부의 예산을 받아 창작할 수 있나?” 라며 원로 작가들은 지원금까지 반납하면서 짐짓 순수성과 예술성을 강조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득세하면서 “그동안 많이 굶었으니 많이 먹어야 한다.” 라며 문예진흥기금의 원금까지 헐어대던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경험한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예술가들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자처하고 자신이 제공한 노동력에 대한 국가의 보상에 대한 담론이 일상화 되어 있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화예술계의 윤리가 바뀔 수 있으나 예술은 여전히 단순한 노동이 아니며 인간이 가진 지고한 정신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과의 진실한 싸움이 선결되어야 한다. 치열한 정신세계의 표출로서 작품의 가치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나 공적 기금에 의존하려 하는 문화예술 활동은 건강하지 못하며 특히나 이를 둘러싼 이권 카르텔의 구축이나 이 시스템을 고수하려는 욕망은 국가의 문화예술의 수준의 저열함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취약한 여건에 있거나 실험적인 작업으로 시장성이 열악한 예술 활동은 당연히 공적 재원의 지원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국가가 예술 활동을 전적으로 책임지려고 하는 또는 책임져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태도에 순치된 창작 환경은 예술의 창조력과 자유를 약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 건강한 윤리가 제 기능을 찾도록 정부나 문화예술계가 일신할 필요가 있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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