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인 난제, 전세사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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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는 주거 수단이면서도 일종의 금융상품으로 2+2년 만기 채권이기도 하다. 전세계약은 주택을 매개로 하는 개인 간 금융거래로, 채권계약에 기인하는 전세보증금 상환을 담보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부족한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보완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지난날 전세제도는 집주인과 세입자에게 모두 이상적인 제도였다. 집주인 입장에서 보면, 집값이 빠르게 뛰던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집을 살 때 부족한 목돈을 전세보증금 형태로 세입자로부터 조달할 수 있었으므로 내 집 마련의 사다리 역할을 담당했다. 세입자로서도 계약기간 동안 임대료 인상이나 강제퇴거의 불안감 없이 살수 있는 주거의 안정성이 보장되었고, 월세에 대한 부담 없이 보유한 목돈으로 보다 나은 집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전세보증금은 일종의 강제 저축 역할을 하면서 내 집 마련의 지렛대 역할을 했다.
전세시장을 둘러싼 두 번의 시대적인 난제
이처럼 전세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내 집 마련을 위한 사다리와 주거 안전망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과 국내 주택시장의 변화 속에서 큰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전세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주택가격의 급등락으로 인한 전세시장의 왜곡이 있었고,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깡통전세의 문제로 전세시장은 사회의 굵은 주름살이 되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시절에는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주택시장의 왜곡이 해소되면서 전세시장을 둘러싼 위기는 해소되었고, 2008년 금융위기의 경우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펼쳤던 친시장적인 부동산정책에 힘입어 주택시장이 회복되면서 깡통주택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이렇게 전세시장을 둘러싼 두 번의 시대적인 난제는 해소되었다.
전세사기는 현재 진행 중
전세사기란 전세계약과 이행 과정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을 기망하여 금전적 피해를 입히는 의도적인 행위를 말하는데, 전세사기는 임대인이 보증금 편취라는 악의를 가지고 이중계약이나 위조, 무권대리 등 정보를 왜곡하는 수단을 통해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미반환하여 전세보증금을 탈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전세사기는 주로 정보의 비대칭, 시장 참여자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법·제도적 한계에 기인하여 발생한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빈발하는 전세사기는 전세보증금을 탈취하려는 의도에서 계획적으로 자행된 사기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과거의 두 번에 걸친 시대적인 난제와는 그 결이 다르다.
전세사기는 그동안 누적된 정책과 거시적인 시장환경 변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주택과 관련된 세제·금융·공급 등의 규제를 완화하였고 그 결과 주택시장이 과열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화를 목표로 재건축 규제, 종부세 강화, 임대차 3법 등 주택시장에 대한 수십 차례의 강력한 규제정책을 펼쳤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주택시장은 급등하였다. 급등하는 주택시장에서 투자수요는 향후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심리로 전세보증금을 지렛대로 삼는 거래 형태인 갭투자로 나타났다. 그러던 중 2022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거시경제의 불확실성, 금리 인상으로 인한 집값과 전세가 하락으로 전세 만기 시점에 주택매도가 어려워지고,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이 신규 세입자의 보증금보다 높아 추가 자금의 융통이 어려워진 집주인은 결과적으로 전세사기 가해자가 되었고, 갭투자로 인한 다주택자는 악성 임대인으로, 세입자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었다. 이렇게 세 번째 시대적인 난제 전세사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시행 1년
총 2만 3,730명,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전세사기피해자법)이 시행된 지 1년 2개월여 만에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인정한 전세사기피해자의 수치이다. 전세사기피해자 중 대부분은 부동산임대차계약 경험이 적은 신혼부부나 청년들이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국토교통부·대검찰청과 2022년 7월부터 2024년 7월까지 2년간 특별단속을 하였는데, 확인된 피해자는 1만 6,314명, 피해금액은 총 2조 4,963억 원이고, 피해자 중 30대 이하가 62.8%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피해금액은 1인당 1억~2억 원이 34%로 가장 많았고, 2억 원 이상의 피해를 본 피해자도 23.8%에 달했으며, 피해가 발생한 곳은 다세대주택이 59.9%로 가장 많았다. 국토교통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내년 5월까지 「전세사기피해자법」에 의한 전세사기피해인정자가 약 3만 6천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
전세사기는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시세 확인이 어려운 다세대주택 등 소규모 주택에 거주하는 사회초년생과 서민층을 대상으로 촉발된 ‘사회적 재난’이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등 주택금융의 허점을 파고든 치밀한 조직범죄이고, 피해규모도 천문학적 수준이다. 직업윤리를 팽개치고 사기꾼과 공모한 공인중개사에 대한 관리도 허술했고, 전세보증금의 반환보증과 대출 관리에 정부와 금융 당국은 무책임했다. 결국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전 재산을 날리는 상황에 직면해서야 정부는 뒤늦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재원 마련과 피해 구제를 위한 실효성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전세사기는 전세제도의 구조적인 한계에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촉발된 인위적인 재해일 수도 있다는 자성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세사기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능동적인 지원도 필요하고, 나아가서는 전세사기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방안도 제도적인 형태로 강구되어야 한다.
전세사기피해자들이 ‘빼앗긴 미래’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절실했던 시점에서 지난 8월 말,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이 여야 간의 협상을 통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안이 피해자 보호와 함께 부동산 시장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끝>
<관련 특집> 전세 사기와 주거정책 과제 - 보고서 5편
특집 보러가기 https://www.ifs.or.kr/bbs/board.php?bo_table=research&wr_id=1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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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토연구원(KRIHS)이 발간한 [월간 국토 11월호] ‘국토시론’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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