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하는 확실한 법칙 <4> 혼군(1) 복수 때문에 오나라를 멸망시킨 손호(B)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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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끝으로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
(9) 손량의 손침 제거 실패와 손휴 옹립(AD258)
나이가 열다섯이 되어 황제 손량이 정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하자 손침이 걱정이 되었다. 병을 핑계로 하여 칩거하면서 친동생 손거에게 숙소의 방비를 맡기고 다른 친동생들에게는 병영의 수비를 부탁했다. 황제 손량이 저번에 사약을 내린 주공주 피살사건(AD255)의 재조사를 명령하자 겁에 질린 전공주는 자신은 그 일을 전혀 모르며 오히려 주거의 아들 주웅과 주손이 주동한 것이라고 둘러대었다. 손량은 주웅과 주손을 죽였다. 손침이 주웅과 주손은 죄가 없다고 변호했으나 황제는 듣지 않았다. 손침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사실 황제 손량은 전공주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전공주와 손을 잡고 먼저 손침의 측근 주웅과 주손을 제거한 뒤 손침을 죽일 참이었다. 황제가 처남 전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 손침이 권세를 전횡하면서 나를 가볍고 어리게 취급한다.
황명을 거역하면서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우며
조회에도 나아와 알현하지 않으니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는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냐.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그를 잡아 들여야 하겠다.
경의 아버지(전상, 즉 황제의 장인)는 위장군이니
비밀리에 병사와 군마를 정비하도록 하고
내가 주작교까지 나아가면 그 때에 군사를 동원하여
일시에 그곳을 포위하여 손침의 군사를 무장해제하도록 하라.
이것은 극도의 비밀을 요하는 사항이니
어머니도 모르게 하라.“
전기는 황명을 아버지 전상에게 알렸는데 전상이 그만 손침의 사촌누나인 처에게 누설하고 말았다. 전상의 처는 즉각 손침에게 사람을 보내 알렸으며 그 즉시 손침은 군사를 일으켜 전상을 체포하고 그 다음 날 군사를 풀어 황궁을 포위하고 말았다.(9월26일) 황제 손량이 손침의 군사에게 완전히 포위되자 처 전황후에게 외쳤다.
“ 그대의 아버지는 바보 같아서 나의 큰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손량은 폐위되어 회계왕으로 강등되었고 전기는 자살했다. 전상은 귀양 보낸 뒤 자객을 보내 살해했다. 손침은 손량의 형 낭야왕 손휴를 황제로 세웠다. 그 때 손휴 나이가 23세였다.
(10) 손휴의 치밀한 계획과 손침 실각(AD258)
손휴는 손침에게 승상과 형주목이라는 직책을 주었다. 손침의 친동생 손은을 어사대부 및 위장군으로 삼았다. 여러 신하들이 황태자를 세우라고 독촉했으나 손휴가 급한 일이 아니라고 허락하지 않았다. 손침이 고기와 술을 가지고 손휴를 찾아갔으나 손휴는 선물을 받지 않았다. 손침이 화가 났다. 곁에 있던 부하 장포와 나누어 먹으면서 울분을 토했다.
“ 내가 아니었으면 황제를 꿈도 못 꿨을 놈이
나의 정성과 성의를 거절하다니.
마땅히 갈아치워야 겠다.“
장포가 그 원망을 그대로 황제에게 전했다. 황제 손휴는 당황하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했다.
먼저 손침에게 대장군과 후한 상과 직책을 내려 안심시켰다. 그리고 손침이 반란을 꾀한다고 보고한 사람을 손침에게 내려 보내 악의가 전혀 없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손침이 점차 겁이 나서 조정에서 벗어나 무창 주둔을 자원하자 손휴가 그것을 허락하여 안심시키기도 하였다. 손침의 반란 소문은 그치지 않고 올라왔다. 손휴가 부하들에게 손침 처단 방법을 몰래 물었다. 연말 조정회의(납회)에 부른 다음 체포하자고 했다. 손침이 나올 리가 없었다. 조정에서는 여러 번 손침을 불렀다.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던 손침이 대담한 계책을 세웠다.
“ 여러 번 불렀는데도 나가지 않으면 오히려 의심만 더 할 뿐이다.
오히려 나가되 미리 군사를 풀어 승상부에 불을 지르고 도망 오면 된다.“
손침이 납회에 참석했고 계획대로 승상부에 불을 놓았다. 손침이 불을 끄기 위해 나가야 된다고 하자 황제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렸다. 황제는 주변에 있던 군사들에게 눈짓으로 체포를 명령하였다. 손침은 그렇게 잡혔고 목이 베어졌다.(AD258년) 손침의 모든 부하들은 용서받았다.
(11) 손휴 사망과 손호 등극(AD264)
손휴가 황제가 된 이후 몇 년간 오나라는 비교적 조용했다. 위나라에서는 어리석은 황제 조모가 황권회복을 한다고 설치다가 가충의 심복에게 피살되었고(AD260) 그 뒤를 이어 조황(나중에 개명하여 조환)이 원제로써 제위에 올랐다. AD262년에 손휴는 주씨를 황후로 책봉했고 아들 손완을 태자로 세웠다. 승상에는 복양흥을 임명하고 장맹과 맹종을 좌우 어사대부로 임명했으나 실제로 좌장군 장포를 가장 총애했다. 곧이어 촉한이 위나라 등애에게 멸망했고(AD263) 위나라에서는 촉한 정벌에 공훈이 컸던 등애·종회의 반란이 일어났다.
오나라 주군 손휴는 병으로 눕게 되어 입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손으로 글을 써서 승상복양흥에게 아들 손완을 부탁하고는 곧 손휴가 사망했다. 나이 서른이었다. 오나라에서는 촉한이 망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불안하여 나이 많은 어른스런 주군을 원했다. 좌전군 만욱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오정후 손호를 승상 복만흥과 좌장군 장포에게 강력하게 추천했다. 재주가 있고 나이도 들었으며(당시 23세) 책과 문학을 좋아하고 법도를 존중한다는 평가였다. 승상과 좌장군이 결국 주태후에게 손완 대신 손호를 추천하였고 주태후는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손호는 손화가 사약을 받고 죽었을 때(AD253) 함께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하씨 소생이다.
(12) 손호의 복수의 폭정(AD265-AD280)
황제가 된 손호는 창고를 열어 가난하고 궁핍한 백성들을 살폈으며 선비를 우대하고 황실 동물원을 폐쇄하고 궁녀를 풀어 놓아 주는 등 선정을 많이 베풀었다. 따라서 사민은 물론 조정 신료들까지도 영명한 군주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손호는 감추었던 포악함과 교만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색에 빠지고 거칠었으며 난폭한 형벌로 백성들의 지탄을 받기 시작했다. 손호를 지지했던 승상 복양흥과 좌장군이 실망하며 한탄했다.
“아 우리가 사람을 잘못 봤구료.”
이 말을 엿들은 사람이 손호에게 밀고를 했다. 복양흥과 장포가 입조하는 날(AD264년11월1일) 체포하여 광주로 귀양 보낸 다음 도중에 자객을 보내 살해했다. 화가 난 손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복양흥과 장포의 삼족을 이멸시키고 말았다. 손호는 태자였던 아버지 손화를 몰아내고 황위에 올랐던 작은 아버지 손량과 손휴에 대한 불만에 가득 차 있었으므로 그들의 가족도 가만 둘 수가 없었다. 직전 황제였던 경황제 손휴의 처 주씨(=주태후)를 죽이고 경황제의 아들들도 수색하여 처단했다.(AD265)
산기상시 왕번은 체질과 기상이 고상하고 반듯하여 황명을 어김없이 순종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황제가 기뻐하지 않았다. 황제의 안색을 잘 살피고 기분을 맞출 줄 아는 산기상시 만욱과 중서승 진성이 질투하면서 왕번이 아마도 황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고 참소했다. 때마침 술자리에서 왕번이 취하여 쓰러지자 황제는 왕번을 시험해 볼 요량으로 귀가해도 좋다고 명령했다. 왕번이 가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황제가 갑자기 그를 다시 불렀다. 왕번은 걸음걸이를 반듯하게 하고 말씨도 어눌하지 않아 전혀 취한 기색이 없었다. 황제는 왕번이 자신을 속이고서 술 취한 척 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왕번을 끌어내 궁궐 계단 아래에서 목을 잘랐고 머리를 호랑이 굴에 던져 버렸다.
손호는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을 매우 혐오했다. 잘 만나지도 않았고 또 만나서도 모든 신하들은 눈을 내려 딴 곳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좌승상 육개(육손의 조카)가 나서서 말했다.
“ 군주와 신하는 서로 알아야 합니다.
만일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군주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면
무슨 불상사가 생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손호는 육개에게만 대면을 허락했고 다른 사람들과는 예전과 같이 대면하지 않았다. 또 손호는 황문 환관들을 내보내 여러 주군을 돌아다니며 관리들의 딸들을 뽑아 올리도록 했는데 후궁 숫자가 1천 명이 넘었는데도 그치지 않았다.
손권시절 급사였던 환관 하정은 손호가 집권하자 누하도위가 되어 술과 곡식을 구매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돈과 물자를 만지게 되자 당연히 재물을 손에 넣게 되었고 이 재력을 바탕으로 황제 손호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었다. 좌승상 육개가 간악한 하정에게 이렇게 말했다.
“ 그대는 주군을 섬기면서 충성스럽지 못하여
나라 국정을 기우리고 있으니 어찌 천수를 누리기를 기대하겠소.
어찌 그리 간사한 일만 골라서 하시오.
먼지와 더러움은 하늘이 듣는 것이니 당장 고치도록 하시오.
그렇지 아니하면 예측할 수 없는 화를 당하게 될 것이오.“
그 소리를 들은 화정이 분개하며 이를 갈았다. 육개는 황제에게 이렇게 고했다.
“ 화정은 믿고 쓸 수 없으니 의당 궁궐 바깥일을 맡겨야 합니다.”
그런 뒤 얼마 되지 않아 육개는 죽었다. 평소 육개를 곱지 않게 보던 황제는 하정의 참소에 따라 육개 가족을 모두 복건성으로 귀양 보내 버렸다.
환관 하정이 자신의 며느리로 이욱의 딸을 맞이하고자 하였으나 이욱이 허락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원한을 품은 하정은 황제에게 이욱을 모함했고 황제는 이욱의 목을 베었다. 개를 좋아하는 황제를 위하여 하정은 모든 장군들에게 개를 바치도록 했다. 개 값이 폭등했고 개를 묶는 목줄의 가격이 만전이 넘었다고 했다. 모두들 하정의 죄라고 질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그를 충성스럽고 부지런하다고 칭찬하면서 작위를 높여 주었다. 육항이 나서서 간신 하정을 물리치라는 간언을 올렸다.
“ 소인은 이치와 도리를 알지 못하고
생각 자체가 천박하므로 자기가 정성을 다 한다 하여도
올바른 일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간사한 마음을 품고서 황제의 기분을 맞추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에게서 무슨 훌륭한 일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AD271)
황제의 하정에 대한 총애는 전혀 식지 않았다. 손호가 폭정을 보이자 조정 중신들은 그를 제거할 모의를 일으켰다. 우승상 만욱, 대장군 정봉, 좌장군 유평 세 사람이 황제가 화리에서 유람할 때 건업으로 복귀하지 않음을 틈타서 거사하자는 예기였다. 황제가 이 소식을 들었으나 모른 척하고는 곧바로 건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해 연말 연회가 있었을 때 몰래 독주를 준비해서 만욱에게 먹였다. 그러나 독이 든 것을 알고 있던 연회의 시종이 독을 덜어내어 만욱은 목숨을 건졌다. 유평 또한 독배를 들었으나 사전에 해독제를 준비했으므로 살아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황제의 독살 의도를 알아차린 만욱은 결국 자결했고 유평도 분함과 원망함으로 병이 나서 죽었다.
환관 하정의 국정 농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중서령 겸 태자태부 하소(賀邵)가 긴 상소문을 올렸다.
“ 근래 조정의 관원이 분열되고 혼란하여
진짜를 말하는 사람과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섞이고
충신과 훌륭한 사람은 배척되며 믿음직한 사람은 해를 입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올바른 사람의 예리한 판단은 부서지고
용렬한 신하는 아첨하며
황제의 가리키는 것만을 좇아 시세를 맞추고 있습니다.
어긋나는 도리를 토해내고
청렴한 사람을 혼탁하게 만들고
충성스런 신하의 혀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가까운 총신들은 매일 황제의 눈치만 살피며 황제의 뜻만 좇아
순응하는 말들만 쏟아내니 사람들은
이를 현명하고 착실한 정책이라고 아부를 늘어놓고
천하는 태평성대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신이 듣건대 나라를 일으키는 군주는 자신의 허물듣기를 좋아하며
황음·혼란한 군주는 자신의 칭찬듣기를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허물듣기를 즐기는 군주는 날로 허물이 줄어들어 복된 일에 이르고
칭찬듣기를 즐기는 군주는 칭찬들을 일이 줄어들어 결국 화에 이른다고 합니다.
폐하는 엄한 형벌로 곧은 말을 금지하시고
훌륭한 선비를 내쫓으시어 간하는 말씀을 막으시며
술잔을 돌리는 연회에서조차 목숨을 보장할 수가 없으니
벼슬을 하는 자는 물러나는 것이 다행스럽고
경사관인은 지방으로 나감이 복된 일이라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빛을 지키고 실마리를 넓히며(保光洪緖)
빛나고 융성하게 도를 밝히는 일(熙隆道化)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능력도 없고 비천한 하정을 폐하께서는 그의 아첨에 현혹되셔서
높은 권위와 많은 복락을 주셨습니다.
대저 소인이란 입궐할 때 반드시 간사한 이익을 탐하는 법입니다.
춘추좌전에 이르기를 나라가 흥할 때에는 백성보기를 간난아이 보듯 하며
나라가 망할 때에는 백성보기를 마치 흙더미나 검불처럼 본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법률은 점점 가혹해지고 부세는 날로 많아지며
환관과 총신들은 황제 주변에서 나날이 궁궐건축과 같은 큰 노역을 일으키니
장리들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백성들을 옭아매어 죄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흩어지고 한탄원망의 소리가 천지를 울려 천하 화목한 기운을 해치고 있습니다.
나라에 1년 먹을 곡식이 없고 집에서는 한 달 버틸 곡식이 없는데도
후궁에서는 일없이 앉아서 먹는 자가 만 명이 넘습니다.
바라옵기는 폐하께서는 기초와 근본을 두텁고 강하게 하시고
개인적 인정을 끊으시고 정도를 좇으신다면
성왕(周成王)과 강왕(周康王)의 치세가 일어나며
성조(聖祖, 즉 손권)의 운수가 융성할 것입니다.(AD272)“
하소의 피가 끓는 듯한 절절한 상소문을 들은 손호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 길을 가던 하소와 누현이 서로 만나서 반갑게 웃는 모습을 본 환관이 황제에게 조정의 정치를 비방하면서 두 사람이 크게 비웃었다고 무고하자 황제는 두 사람을 귀양 보내 버렸다. 명망이 높은 하소는 곧 복직시켰으나 누현은 교지로 귀양지를 옮겼다가 바로 독살시켰다. 그 해에 하정은 악행이 드러나 참수되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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