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한 경기 대응…정책 공유 '플랫폼 정부' 구축 <한국경제신문 특별기고> '文정부에 말 한다' 김광두 원장의 苦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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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대는 韓·美·日관계 회복, 무너지는 대학 경쟁력 높여야
"노조 아닌 전체 근로자 목소리 들어라“
'인내 자본'으로 재정낭비 막자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질서는 격변의 한복판에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바탕이 됐던 한·미·일 삼각협력에 전례 없는 균열이 생겼다. 반면 북·중·러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긴밀한 모습이다.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시에 보유한 세계 네 번째 국가가 됐고, 이제 한국은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동북아의 ‘교량국가’가 되겠다던 우리나라는 오히려 국제사회의 외톨이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외교 관계와 통상 환경이 송두리째 바뀌면서 4, 5년 뒤 한국의 모습은 예측조차 쉽지 않게 됐다. 더 심각한 것은 대응 전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눈을 안으로 돌리면 정부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부터 경제 전문가들이 경기하강을 경고했지만 정부는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올 하반기에야 ‘엄중하다’며 심각성을 인식한 듯하더니 최근 경기 ‘부진’ 표현을 ‘성장 제약’으로 바꾸며 딴소리를 하고 있다. 기업들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데 정부는 “잘되는 기업도 많다”고 한다. 정책 역량을 따지기에 앞서 인식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들, 이젠 스스로 나서 시장경제 지킬 때
문재인 정부 '사람 중심 경제' 뒷전으로 밀려
경제조언 귀 막은 靑…바른 소리하면 '아웃'
기업들은 바짝 움츠리고 있다. 설비투자는 11개월째 감소하고 가동률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중국 등 경쟁국들은 인공지능(AI)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한국과의 격차를 벌려나가고 있다.
우리가 타개해야 할 어려움은 안팎으로 켜켜이 쌓였다. 더 늦기 전에 하나씩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당장 삐거덕거리는 한·미·일 관계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부처 간 정책을 실시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 정부도 구축해볼 때다. 고용정책은 ‘친노조’ 중심에서 벗어나 전체 근로자 의견 수렴 시스템을 마련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무너지는 대학 경쟁력을 높일 방안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재정 낭비를 줄이기 위해 금융과 재정을 융합한 ‘인내 자본(patient capital)’을 도입하는 방안을 구상해보는 게 좋다. 국정 후반기를 맞은 정부가 고민해봐야 할 제언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본다.
"주한미군 철수 땐 외국자본 탈출·신인도 추락…韓·美·日 공조 다져야"
김광두 원장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인 ‘J노믹스’의 틀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대선 때 보수 경제학자 중 유일하게 문재인 캠프에 합류해 경제 자문을 맡았고, 정부 출범 직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헌법 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문 대통령)을 지냈다.
재임 기간 동안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소신을 이어왔다. 김 원장은 21일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누구보다 더 바라는 마음을 담은 쓴 소리”라며 한국경제신문에 특별 기고문을 보내왔다.
(1) 외교·안보 위기 삼각동맹 균열 우려…안보 넘어 경제에 치명적
동북아시아 질서는 크게 바뀌고 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긴밀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전통 우방인 미국, 일본과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는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넘나들었다.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시에 보유한 군사 강국으로 거듭났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한·미·일 공조가 흐트러진다는 것은 우리의 통상 환경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과 일본을 발판 삼아 경제 발전을 했고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 체제 속에서 수출을 확대해왔다. 이 질서가 훼손된다면 우리의 기존 산업 구조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다. 워싱턴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미·일 삼각협력 관계가 훼손되면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극동아시아 방어 라인에서 한국을 배제했던 애치슨 라인처럼 미국이 한 발 더 물러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자본은 철수하고, 대외 신인도는 하락할지 모른다. 청와대와 정부 외교당국자만 논의할 게 아니다. 이를 공론화하고 전문가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고민해야 한다.
(2) 안일한 경기 대응 부처 간 정책연계 안 돼…실시간 정보공유로 가야
정부의 경제 상황에 대한 선제적 대응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의구심이 커진다. 외부 전문가들이 객관적 통계를 가지고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했지만 정부는 밀어붙였고 결국 그 부작용은 고용 참사, 소득 참사로 나타났다.
정부의 인식 부족과 대응능력 저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부동산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 급등은 부처의 합작품이다. 국토교통부는 공급을 줄여놓고 부동산 매수자를 투기로 몰았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춰 투자 수요를 늘렸다. 교육부는 교육 평준화를 하겠다며 자율형사립고와 특수목적고를 없애기로 해 안 그래도 뜨거운 강남 집값에 불을 붙였다. 서울시는 용산, 여의도 등의 개발 계획을 언급해 기름을 부었다. 부동산은 미쳤고, 미치게 만든 것은 정부다. 정치적인 접근과 능력 부족 탓에 시장을 망가뜨렸다.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복잡해지면서 정부의 대응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제 ‘플랫폼 정부’ 구축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모든 정책 정보를 클라우드에 띄워놓고 관계 부처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공동 대응하는 것이다. 정책 관계자들이 다른 부처 정보를 알게 되면 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다. 관련 위험에 대한 사전 조정도 실시간으로 가능해진다. 지금은 일단 모여서 회의하는 식이다. 대응 속도가 떨어지고 부처 간 이견 조율이 쉽지 않다. 공적을 놓고 다툼도 벌어진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융합이다. 자율주행차를 보면 산업통상자원부, 국토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지방자치단체 등이 걸려 있다.
(3) 親노조 정책 매몰 90% 의견수렴 위해 디지털 플랫폼 운영을
"노조 아닌 근로자 전체 목소리 들어라"
정부가 노동 존중을 표방하며 추진하는 노동정책은 사실은 노동조합을 위한 정책이다. 노조 주장을 받아들여 소속 근로자들이 더 좋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조직화된 노조는 전체 근로자 중 10%도 안 된다. 노조가 주장하는 바가 비노조원의 복지에도 도움이 되는가. 노조에는 안정된 양질의 일자리를 가진 사람이 많다. 비노조원은 반대로 열악한 중소 영세기업 직원과 단기 근로자가 많다. 원청 대기업의 주장이 하청 노동자들과 같나. 오히려 이익 충돌이 생긴다. 노동정책은 노조를 위한 게 아니라 노동자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이 돼야 한다.
정부로서는 “90%를 누가 대변하나”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탓이다. 기술적으로 이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플랫폼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대화할 수 있다. 그곳에 투자하면 된다. 노동정책을 노동자 전체를 위한 정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노조 90%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가 과제다. 디지털 플랫폼이 답이다. 운영 방식의 묘를 찾는 게 관건일 뿐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4) 대학 경쟁력 저하 교육質 높이려면 대학 재정부담부터 덜어줘야
인재 양성은 우리나라의 최대 과제다. 산업구조는 점점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그에 맞는 인력이 공급돼야 고부가가치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평준화 교육으로 회귀하고 있다. 교육에서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어야지 교육 내용의 평등, 결과의 평등이어서는 안된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 교육이다. 우리 대학 교육은 파괴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등록금을 동결했지만 그에 따른 대학 부담은 정부가 보전해주지 못했다. 교육의 질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인구가 줄고 경쟁력이 떨어진 대학들은 중국 유학생을 데려다가 재정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이제 대학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 산업 현장은 빨리 바뀐다. 그에 맞춰 숙련도도 올라가야 한다. 그럼 직업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도 시급하다. 우리나라가 가진 최고 경쟁력은 무엇인가. 바로 사람이다. 당장 고민해야 한다.
(5) 한국판 인내 자본 부동자금 사회적 투자 유도…재정으로 수익성 보완
우리나라는 돈이 남아돈다. 수익성을 찾아 떠도는 자금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된다. 이 자금이 수익성은 낮더라도 더 생산적인 투자처에 쓰이고, 대신 정부가 재정으로 수익성을 보강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게 됐다. 노후 선박을 새 선박으로 바꿔주는 프로젝트를 하면 어떨까. 다만 수익성은 일반 선박펀드보다 떨어진다. 그만큼을 재정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가스관, 수도관도 노후한 부분이 많다. 이를 새 것으로 대체해주면 가스회사, 수자원공사 등의 사용료를 수익으로 확보할 수 있다. 초·중·고 교육 인프라는 낙후된 곳이 많아 사교육으로 학생이 몰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설 개선에 투자하고 교육기관에서 사용료를 받으면 된다. 많이는 못 받을 것이다. 그만큼 재정에서 수익을 보전해주자.
한국형 ‘인내 자본(patient capital)’을 조성하는 것이다. 정부 재정으로 안전·교육·인프라에 투자하면 내수가 부양된다. 안전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도 생긴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 자금이 상당한 만큼 수요는 있다.
(6) 기업들, 이젠 스스로 나서 시장경제 지킬 때
근로시간 단축은 시대적 흐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기업에는 ‘독’이 됐다. 입법 단계 초기부터 기업은 정부와 정치권, 노동계 등의 이해를 구해야 했지만 실패했다. 기업의 하소연은 ‘엄살’이나 흐름을 역행하려는 ‘로비’로 비쳤다. 정부는 뒤늦게 기업의 애로를 확인하고 나서야 보완책 마련에 착수했다. 주요 정책 현안을 놓고 기업과 정부·정치권 사이에 있는 불신의 벽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 사례다.
기업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주어진 질서에 맞춰 비즈니스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 가장 필요한 건 정치권과 법조계, 노동계, 학계, 언론계 등과 지속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들이 스스로 공정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중 ‘기업 편’을 많이 만들고 시장경제의 효율성이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업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는 왜 소통을 안 하나. 청년들의 반기업 정서가 커진 것은 전교조 영향이 크다. 전교조는 시장경제의 불평등에 주목하는 반면 순기능을 외면했다. 직접 만나 소통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미국의 ‘아스펜 인스티튜트(Aspen Institute)’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아스펜 인스티튜트는 민간이 주도하는 가운데 정부, 정치권, 법조계, 언론계 등 각 분야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모여서 대화하는 단체다. 결론을 내려는 게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웨덴의 정치 토론 축제인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도 그렇다. 일단 서로의 생각을 쏟아내고 접점을 찾아간다. 기존 경제단체와는 다른 조직을 통해 시작하는 것이 좋다.
미국 외교협회도 민간이 주도한다. 이 단체의 목적 중 하나는 정부의 통상 외교를 재계가 지원해주는 것이다. 무역 현장의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가도 지원한다. 정부와 기업에 모두 이득이다. 기업이 이를 로비 창구로 삼지 않는 게 중요하다. 정부도 현장의 목소리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ifsPOST>
이글은 한국경제신문 11월 22일자 1면에 게재된 내용을 전재(轉載)한 것입니다.<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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