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시간’ 덫에 걸린 근로시간제도 개편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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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핵심 노동개혁 과제인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이 시작도 못 해보고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최장 69시간 근로가 가능한 개편안은 과로사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MZ세대 노조까지 가세하면서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가 떨어졌다. 대통령이 구체적인 시간한도까지 언급하면서 혼란은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해고관련 법원 관례를 일반화한 박근혜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이 쉬운 해고 지침으로 둔갑하여 노동계의 비판과 공격을 받은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이야기대로 “심도 있는 논의 없이” 도입된 주 52시간제의 성과를 평가하면 현재의 근로시간제도가 개편되어야 하는 당위성은 명확하여 진다.
주52시간제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2018년 7월 1일부터 시행하도록 돼 있었으나 1년 6개월의 계도기간을 주었고, 올해부터 시행되는 30인 미만 사업체에도 1년 동안은 법을 위반하여도 사업주가 처벌 받지 않는다. 수천억 원의 세금을 투입하는 요금인상으로 급히 해결책을 찾은 2018년의 ‘버스대란’은 준비 없는 주52시간제 도입의 실상을 잘 보여주었다.
주 52시간제도로 근로자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떨어졌으나 많은 직장인들이 소득이 줄어 2개의 일자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대기업, 공기업의 저녁 회식이 사라지면서 주변 식당,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확 줄었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으로 증가를 기대하였으나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무엇보다도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규제로 건설 등 집중근무가 많은 업종,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 연구개발 업무 등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갉아 먹었다. 생산라인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고장이나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려워졌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여 제도 도입 직후부터 개정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3년간의 논의에도 진전이 없자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를 조건으로 한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연구개발업무)의 단위기간을 각각 3개월과 6개월로 늘리고 30인 미만 사업장의 특별연장근로시간을 8시간 연장하였다. 윤석열 정부의 개편안과 같은 보다 개혁적인 조치가 이루어졌어야 하나 노조지향적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던 문재인 정부의 한계로 최소한의 보완이 이루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은 지난 정부에서 현실을 도외시하고 도입된 비정상의 근로시간 제도를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는 것이다. 주 12시간으로 제한하였던 연장근로시간을 총량을 기준으로 월 52시간, 분기 186시간, 반기 312시간, 연 612시간으로 계산하여 특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이다. 주 64시간 이상 일하도록 노사가 합의한 경우 11시간 연속 휴식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계와 야당에서는 정부가 ‘주69시간 노동’을 공식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고 많은 근로자들이 걱정하고 있으나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제 개편이 과로 사회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는 숫자 놀음에 근거한 주장에 불과하다. 지금도 연구개발 업무 종사자는 탄력근로시간제 하에 11시간 연속 휴가 보장 장치도 없이 주 69시간 일 할 수 있다.
노사합의를 전제로 사업장의 연장근로시간 제도가 개편되기 때문에 노조 반대가 예상되는 대기업, 공공부분에서는 제도 도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노사합의가 이루진다면 근로자들은 이직이라는 직장 선택권이 있어서 제도 정착은 쉬운 과제가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청년 일자리 인식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은 일자리를 선택할 때 근로시간이나 근무방식 등이 중요하다. 청년들이 희망하는 주당 근로시간은 42.28시간이었다. 보상이 있어도 희망하는 근로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직장에는 취업하지 않을 것이란 답변이 절반 가까이 됐다.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은 획일적 규제에서 벗어나 노사에게 근로시간에 대한 선택권을 확대하여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번 근로시간제도 개편 정부안이 장시간 노동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다른 나라의 예에서 보아도 근거가 없다. 기준 근로시간이 35시간인 프랑스는 스타트업, 50인 미만 중소기업은 주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서구 수준의 실근로시간 단축을 고민하고 있는 일본은 계절적 요인, 제품 납기 이행의 사유 등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높은 연장근로시간의 상한선을 두고 있다. 독일은 근로시간계좌제로 근로시간제도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정부의 개편안에 따르면 오랜 기간 논의되어 온 근로시간저축계좌제도가 도입된다. 그러나 현재도 보상휴가 제도를 활용하는 근로자가 전체 5%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근로자에게는 ‘1달 제주살이’는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정부는 4월 17일까지의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현재 발표된 정부안와 같이 근로시간제도가 유연화 된다면 산재 심사의 과로사 근로시간 기준을 초과할 수 있다는 우려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논의 처음부터 있어 왔다. 노동계의 반대 속에서 추진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치밀한 준비와 대비가 없었다는 비판에서 정부는 자유로울 수 없다. 수정 보완될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은 보다 세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숫자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나 현장에서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것은 포괄임금제이다. 주52시간제를 무리하게 도입하였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임기 말까지 확실한 포괄임금제 개편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노동시장에 대한 충격이 상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속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이 실효성 있는 포괄임금제의 개선안을 포함하였다면 ‘69시간’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수정 보완될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에는 윤석열 정부의 포괄임금제 개선 방향이 포함되어야 한다.
노동계와 문재인 정부는 주52시간제 도입이 일자리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희망사항을 피력한 바 있으나 현실화되지 않았다. 이번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이 골격이 유지되어 시행된다면 기업경쟁력이 높아지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야당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정부가 보완을 거쳐 제출할 근로시간제도 개편안 통과에 협조하여야 한다. 사용자들도 장시간 노동이 조장될 수 있다는 많은 근로자들과 노동계의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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