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자들은 3·16 한일정상회담을 어떻게 보고 있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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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간의 한일정상회담이 2023년 3월16일 도쿄에서 있었다. 일본내 학자들은 이 정상회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각자 다를 수 있는 학자들의 견해를 망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또 중구난방식 나열은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여기서는 한국정치론이 전공인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慶応義塾)대 교수, 한반도 지역연구를 오랫동안 해 온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東京)대 교수, 그리고 아시아경제론이 전공인 무코우야마 히데히코(向山英彦) 추오(中央)대 강사의 견해를 소개하기로 한다. 이 중 오코노기 교수와 기미야 교수는 한일관계와 관련하여서도 일본내에서 대표적인 학자라 할 수 있다.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것은 필자가 이들 학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것은 아니며 아사히(朝日) 신문 2023년 3월16일자 석간(오코노기 교수) 및 3월17일자 조간(기미야 교수 및 무코우야마 강사)에 게재된 내용을 주로 참고하고 필자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세 명의 일본 학자들 견해를 소개한 다음 필자 나름의 총괄을 피력하기로 한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의 견해>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고 국교정상화를 하였을 때 ‘1910년 한일합방은 무효’라 하며 한일합방이 ‘합법’(일본측 입장)인가 ‘불법’(한국측 입장)인가는 불문에 부쳐졌다. 이것이 한일 쌍방의 입장에서 양보할 수 없는 선으로 그어져 있고 한일간의 충돌 원인이 되고 있다.
한일갈등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냉전이 종식되고 난 1998년에는 ‘과거 직시와 미래지향의 협력’을 내세운 ‘한일공동선언’이 나왔고 ‘역사화해’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그러다가 2003년 이후 한국에서 진보 정권이 들어서며 ‘한일합방은 무효’라는 표현을 수긍하지 않았고, 일본에서도 보수회귀가 진행되며 한일갈등이 심화되었다.
3·16 한일정상회담을 통한 한일관계 구축에 있어 한국은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작금의 국제정세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미중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변화가 있다.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 성과를 이루었다는 선물을 들고 4월 방미를 성공시킨 다음, 한미일의 전략적인 협조를 달성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자유, 인권,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양국관계의 싹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의 견해>
한국과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나 대북(對北)관계라는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그런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양국으로서 서로 함께 지혜를 짜내야 한다. 한일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려야 하는데 3·16 한일정상회담에서 나온 셔틀외교의 재개는 그러한 지혜를 짜내기 위한 중요한 기회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징용공 문제 ‘해결책’은 한국 내에서 반대 의견도 있겠지만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면 상호이익이 있다는 것을 각각 국내에 보였다고 할 수 있다. 3·16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대한(對韓) 수출규제 해제, GSOMIA(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의 정상화 등 징용공 문제 이외의 현안에 대한 진전도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3월 16일 일본 방문 때 기자회견에서 “2018년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기초한 이전의 한국정부 해석과는 다르다”고 언급한 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인식이라는 인상이다.
한편, 3·16 한일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반성과 사과’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윤 정부의 징용공 문제 ‘해결책’ 제시가 일본에 일방적으로 양보하였다고 보는 점으로 인한 한국내 반대여론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에게 ‘신세를 지게 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요컨대, “일본이 앞으로 한국 내의 여론을 좀 더 배려해 주었으면 한다”는 공(ball)을 기시다 총리에게 던졌다고 하겠다.
<무코우야마 히데히코 추오대 강사의 견해>
3·16 한일정상회담으로 반도체 수출규제강화가 해제되는 성과가 있었고 앞으로도 대화와 협력이 진행될 것이 기대된다. 일본 정부의 2019년 대한(對韓) 수출규제강화는 일본 기업의 현지(한국내) 생산 움직임, 한국기업에 의한 국산화 등으로 이어졌고 일본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라는 예상 외의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 반도체산업이 현재는 비록 불황을 겪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틀림없이 성장하여 갈 것이다.
산업구조 면에서 한국도 일본의 고품질 소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외교관계 개선으로 한일 기업의 공급망(supply chain)이 안정화되는 것은 한일 쌍방에 커다란 플러스가 될 것이다. 미중 패권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 구축을 위해 미국내에 한국 반도체나 자동차 기업 유치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도체 제조장치나 재료 공급 등에 있어 일본기업의 역할은 크며, 한국과 일본 기업의 협력관계 구축은 더욱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총괄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
위에서 든 견해들은 3·16 한일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나온 일본내 학자들의 생각을 대체적으로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 학자들이 이들 견해와 크게 다른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보통의 일본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학자들도 그리 나서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도 자리하고 있다.
징용공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내세운 해결책(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일본 피고 기업 대신 ‘우선 변제’하기로 한 해결책)은 일본 정부의 의중을 거의 다 반영하는 쪽으로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가 제시한 해결책을 우호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학자들이 한국정부 제시의 해결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리 먹혀들지 않을 뿐더러 설사 목소리를 낸다고 하더라도 큰 화제거리는 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분위기도 있어 3·16 한일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위에서 보았듯이 일본 학자들의 반대 목소리는 별반 나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둘 다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술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며 풀어가자는 식의 접근도 한 듯하다. 실제로 3·16 한일정상회담이 끝나고 나서는 2차 술자리까지 이어지며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가려는 시간도 연출되었다. 기시다 총리는 전후(제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외무장관으로서 가장 긴 경력을 갖고 있다. 조심해야 할 것은 그런 경력의 소유자인 기시다 총리의 페이스에 말려 일본에 외교적인 실익을 안길 수 있는 쪽으로 유도될 공산이 크다고 하는 점이다.
기시다 총리는 공개적으로 “한일 양국이 빈번하게 연계하여 하나씩 하나씩 구체적인 결과를 내어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외교적 센스를 살리려는 기시다는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양보하여 가기 보다는 각각의 현안을 하나의 카드로 활용하며 국익을 추구해 나아가려는 심산이 엿보인다.
윤 대통령은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해제가 실현되고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 일본, 미국, 대만이 협력하면 세계공급망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입장이다. 3·16 한일정상회담에서의 흐름과 같은 한일관계 개선은 한국으로서 외교적인 손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경제면에서는 득이 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 개발이나 양산 등에서 “각국이 강점을 활용하여 상호보완적인 협력 분야를 발굴하여 가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한일 경제계도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권이 바뀐다는 것은 정당이 바뀌는 것을 뜻하므로 그 동안의 정책도 크게 바뀌게 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비해 일본은 자민당 정권(공명당과의 연립)이 계속 유지되는 정치 체제이기 때문에 한국처럼 정책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보수층의 자민당 지지가 계속되고 보수층은 우익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일본은 우익 성향을 띠는 국가 색깔을 갖는 정치 환경이다.
한일갈등이 불거져 나올 수 있는 불씨의 씨앗은 오히려 여야 대립이나 지지율 등락이 심한 한국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갤럽이 지난 3월 10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윤 정권의 지지율(긍정평가)은 34%, 부지지율(부정평가)은 58%로 부정평가가 지지율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는 윤 정권이 한국 보수층 이외의 여론 지지를 받지 못함을 뜻한다. 윤 정권이 여야 대립이나 지지율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여 갈 것인가는 예단하기 어렵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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