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AI 간 협력을 통한 혁신의 복잡성 문제 극복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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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결과물이자 장애물인 복잡성(Complexity)
혁신(Innovation)은 기존의 기술 혹은 방식을 개선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더 나은 해법을 제공하기 위한 실험과 변화의 과정이다.이러한 혁신의 대상에는 기술이나 제품/서비스를 비롯해 조직이나 시스템, 전략/정책, 법/제도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혁신의 대상은 긴밀하게 연결된 많은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지며, 혁신은 수많은 가능성들 중 더 나은 구성 조합과 연결 구조를 찾아가는 ‘진화적 탐색 과정(Evolutionary Search Process)’로 개념화할 수 있다.
혁신의 중요한 패러독스 중 하나는, 혁신의 결과로써 혁신의 대상이 더욱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으로, 이는 이후의 새로운 혁신을 훨씬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혁신 과정에서 시장의 변화된 요구를 잘 반영하기 위해 새로운 구성요소들과 긴밀한 연결들이 추가되며, 이로인해 혁신 대상의 복잡성이 높아지게 된다.
구성 요소들의 수와 이들 간의 연결이 증가함으로써, 더 나은 구성 조합과 연결 구조를 탐색하기 위해 고려되어야 하는 후보 조합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이는 혁신의 비용 효율성(Cost Efficiency)을 감소시키고 실패 위험성(Risk of Failure)을 증가시킨다. 일례로,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제조 분야에서는 기존의 복잡한 하드웨어 시스템에 복잡한 소프트웨어까지 더해지며 더 나은 신제품 개발을 위해 극복해야 할 혁신의 복잡성 문제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
대표적 제조 분야인 자동산 산업에서, 일반적인 자동차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 코드의 길이는 1억 줄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성능 개선을 위한 수정과 실험, 문제 해결을 위한 원인 규명 작업이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이다.
혁신의 복잡성과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설계자 입장에서는 혁신의 복잡성이 높을수록 보다 많은 의사결정 변수들(구성 요소들, 요소들 간의 연결 등)에 대해 올바른 선택을 내려야 하며, 특정 의사결정의 효과(결과)가 더 많은 다른 의사결정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더욱 어렵고 불확실한 선택과 탐색의 과정을 겪게 된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수 많은 조합(혁신 후보)들 중 더 나은 대안을 찾는 탐색 과정에서, 우리는 극히 일부의 조합들만 생각하고 실험하며 검증해 볼 수 있다(예: Prototyping, Market Test).
이로 인해 우리의 경험과 지식에 근거해 가능성이 큰 영역으로 탐색을 집중하는 일(Exploitation)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탐색 범위를 넓히는 일(exploration) 간에 딜레마가 발생하며, 이는 개인수준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기에 집단 수준에서 조직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다. 과거의 실험 경험과 결과, 현재의 정보들을 토대로 가능성이 큰 혁신 후보들을 생각하고 선택하며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실험과 학습 과정을 조직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치열한 혁신 경쟁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의사결정은 부족하고 불완전한 경험과 지식에 종속되고, 효율적으로 기억하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매우 제한적이다. 이러한 인지적 한계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인적 편향(Bias)을 만들어 내며, 이는 조직 내 의사결정 구조와 집단적 학습 과정을 거치며 더욱 왜곡되고 관성화된다. 똑똑하고 합리적인 개인들이 모인 집단이 종종 나쁜 의사결정들을 내리며 바보처럼 자기파괴적으로 행동하는 이유이다.
혁신의 복잡성 극복을 위한 조직적 접근법
혁신 과정에서의 이러한 복잡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적 방안들이 학계에서 연구되고 실무에서 실험됐으며, 여기에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양손잡이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 애자일 조직(Agile Organization) 등이 있다. 이러한 조직적 방안들은 혁신 과정의 일부를 고객이나 타 업체와 공유하거나, 다른 유형의 혁신 활동을 구조적으로 나누어 전문화시키거나,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부서 간 경계를 넘는 팀들을 만들고 활용하는 방식으로(Exploitation-Exploration Balancing을 통해) 혁신의 복잡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들이 긍정적인 결과와 꾸준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데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는, 위에서 논의한 인간의 인식적 한계와 조직적 왜곡 및 관성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연구되고 있다. 현대 과학은 인간에서 기인하는 문제를 인간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닫고 있다.
인간-AI 간 협력이 가진 잠재성
인간과 인공지능이 가진 서로 다른 강점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따라서 인간-AI 간 협력적 시너지를 통해 혁신의 복잡성 문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조직적 해결 방안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가지는 중요성이 매우 크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다양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혁신의 복잡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그 의미와 활용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인공지능은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데 인간보다 월등히 빠르고, 인간이 가지게 되는 편견에 대해 다양한 시각(정보와 추천 등)을 제공함으로써 균형을 맞춰줄 수 있으며, 나아가 협력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과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며 개선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경험적 지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의 문제 해결 가능성을 제시해 줌으로써 앞서 언급한 빠른 계산, 대용량 메모리, 일관성 및 신뢰성과 같은 강점들과 더불어 더욱 진보된 의사결정과 조직적 성과를 가능케 한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가진 서로 다른 강점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할 중요한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혁신의 복잡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인간-AI 간의 협력적 시너지를 활용하고자 시도하는 실험들이 다양한 분야에서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아래 표 참조).
인간-AI 간 협력과 시너지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
기술적 가능성, 제한된 경험적 지식 및 벤치마킹 사례들에 기반한 현장의 이러한 인간-AI 간 협력 실험들은, 그 의미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 기술 발전 속도에 뒤처진 사회적 인식과 경제 주체들의 제한된 경험적 지식으로 인해, 유행에 휩쓸리고 불안감에 쫓기며 많은 분야에서 AI 관련 프로젝트들이 급하게 기획되고 허술하게 추진되어 온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그 과정과 결과의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부정적인 경험과 인식이 확산되면서 인공지능 분야에 다시금 침체기가 덮쳐오지 않을까 우려되며, 따라서 이로 인한 부작용을 예상하고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인간-AI 간 협력과 시너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또 앞으로 기획되고 추진될 많은 AI 관련 프로젝트 실험들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줄 중요한 공동 토대가 될 것이다. 특히,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협력적 시너지의 종류와 조건 및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 체계와 이를 토대로 혁신의 복잡성 문제 해결을 위한 ‘인간중심 AI 시스템’ 설계 방법에 관한 과학적 지식의 축적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기회의 측면에서는 다행히도) 이러한 과학적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인간-AI 간 협력적 시너지를 혁신의 복잡성 문제 극복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AI 기술을 이해하는 공학적 측면 이외에도 조직, HCI(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 법/제도 등 여러 분야의 경계를 넘는 고밀도의 다학제적 연구 협력과 높은 수준의 다양한 관련 경험 및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조직이론 분야에서 구성원들의 다양한 지식과 역량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들이 연구되어 왔으나, 혁신의 복잡성 문제 극복을 위한 인간-AI 간 다양한 협력 방법들과 새로운 조직 설계 방식에 관한 연구와 과학적 지식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조직적 기술(Organizational
Technology)’을 인간중심 AI 시스템으로 구현하여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더 나은 기술과 제품/서비스, 조직, 전략/정책, 법/제도 등을 만들어 가는 치열한 혁신 경쟁과정 속에서 재래식 무기를 뛰어넘는 현대식 무기로 전쟁을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혁신 후보들 속에서 보다 가치가 높은 대안을 더욱 빠르고 저렴하게 찾아서 남들보다 앞서 실험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술개발을 위한 기술, 과학 발전을 위한 과학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그 결과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영향과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AI 기술의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
혁신의 복잡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 인간-AI 간 협력적 시너지를 조직적으로 만들어 내고 활용하는 것은 인공지능 기술의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을 촉진하는 중요한 일이다. 대표적인 예로, 일자리 문제와 노동의 미래에 대한 창의적이고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Automation)에 방점을 두고 있는 기존의 AI 기술 활용 패러다임은 일자리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반면, 인간-AI 간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AI 기술 활용 패러다임은 개인 및 집단(조직)의 능력을 ‘증강(Augmentation)’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통해 신기술 기반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Job-Creating Effect)가 기존 일자리의 보존 효과(Job-Conserving Effect)와 맞물리면서 전체적인 일자리 증가와 경제 성장을 보다 효과적으로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AI 기술 개발과 활용, 투자가 선순환되는 생태계 조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회경제적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 알파고 충격으로 촉발된 국내의 인공지능 붐은, 충분한 역량과 준비 없이 민간과 공공 부문에서 많은 AI 관련 프로젝트들이 기획되고 추진되는 과열기를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은 기술 주도의 FOMO(fear of missed out) 현상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반복됐으며, 결국 1차와 2차 AI 겨울과 같은 냉각기(3차 AI 겨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인간-AI 간 협력과 시너지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혁신의 복잡성 문제를 극복하며 인공지능 기술의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을 촉진할 수 있다면, 그 경험과 과실이 AI 기술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AI 기술 개발 및 활용 생태계’가 발전하게 되며,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끝>
※ 이 글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발간하는 [월간 SW중심사회 1월호]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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