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동의 문화시평 <1> K-컬처와 문예진흥기금의 고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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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위원회가 너무도 많다. 중앙에만 636개, 지방엔 거의 3,000개를 육박하는 위원회가 있으니 ‘위원회공화국’ 이란 말이 무색치않다. 행정의 민주성‧투명성‧효율성‧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정책 현장과의 소통의 중요성이 커감에 따라 위원회의 필요성은 증대되고 있지만 그 운영의 방만성은 숫자 감축 등 획기적 개선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위원회의 정신은 준정부기관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같이 ‘위원회’라는 명칭을 가진 기타 공공기관의 운영에도 중요한 원칙이 되고 있다. 관료적 독임제 구조와는 달리 현장 의견 수렴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한 투명한 운영 의지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분야별 신규 위원들과 위원장이 임명되어 새롭게 8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출범하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문예위는 1973년 문예진흥법을 근거로 설립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하 진흥원)의 후신으로, 2005년부터 협의체 행정기구인 위원회 체제로 전환되었다. 위원장은 위원들끼리 호선하여 선정하게 되는데, 전직 장관 출신의 정치가인 신임 정병국 문예위원장 임명을 놓고 예술계 일각에선 말들이 무성하다.
개인의 역량과는 무관하게 위원회 역사상 최초로 비문화예술인이 위원장을 맡았다는 것은 좀 어색하긴 하다. 전통적으로 국가 대표급 중진 예술가들이 수장을 맡아 상징성과 무게를 가졌었다. 물론 환경이 바뀌어 정책 능력과 경영 마인드를 가진 인사들이 수장을 맡기도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예술기관인 만큼 경영 마인드를 겸비한 비중 있는 예술인들이 그 운영의 책임을 맡는 것이 전문성과 함께 현장과 밀착된 소통의 신뢰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위원회는 국내 문화예술 분야의 수장기관이라 할 수 있지만 위원회로 바뀐 뒤 위상이 많이 약화 되었다. 중앙의 문화예술 관련 유관기관들과 기초지역문화재단이 늘어나고, 근자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커다란 약화 요인은 예술 현장과 떨어진 나주로의 지방 이전과 문예진흥기금의 고갈 문제일 것이다.
위원회의 본질이 국가 문화예술의 지원 기능임을 감안할 때, 기금의 고갈은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기금 고갈은 2004년 기금모금이 중단된 뒤,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지만, 위원회 출범 초기에 적립금을 헐어 쓰기 시작하며 가속화되었다. 당시 5,000억 원 미만의 적립금이 고갈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현재는 국고와 복권기금, 체육기금 등 매년 3,000억 원 규모의 외부 재원에 의지하는 미봉책으로 운영해가고 있는데, 국고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문화예술 현장의 자율성과 전문성이라는 위원회 취지는 증발하고 정부의 대행기관으로 변모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우리는 언필칭 반만년 문화와 K-컬처의 성과를 운위하고 있지만, 문예진흥기금의 실상을 알면 허망하기까지 하다. 물론 문화산업진흥기금을 통해 콘텐츠 생산과 문화산업 활성화를 기하고 있지만,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국가의 과학기술 경쟁력의 관건이듯, 문화산업의 경쟁력은 기초예술에 대한 집중 지원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렇게 볼 때, 기금의 조성 문제는 미술품 거래 등 기초예술 관련 세제 조정이나 기부제도 활성화 등 획기적인 기금개발 정책 의지를 통해 해결해야 할 초미의 과제 중 하나이다. 예술적 식견과 정치적 역량을 겸비한 신임 위원장을 수장으로 위원회가 새로이 출범하였으니 정부와 위원회는 그간의 숙원과제를 해결함으로써 문화강국의 기틀을 일신시켜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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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 전시기획자는? 1957년생으로 홍익대학교 사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석사)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문화예술인으로 그동안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전시총감독을 비롯해 ▲수원시립미술관(관장) ▲경기문화재단 뮤지엄본부 본부장 ▲아르코미술관 관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예술경영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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