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망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19: 우문태‧우문옹의 업적을 탕진한 북주(北周)의 우문빈 <X>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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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
<151> 북주의 번국 설치(AD579)
북중국을 통일한 북주는 AD579년 5월 전국 지방에 다섯 개 봉국을 설치하고 황제의 친족을 왕으로 책봉했다. 왕에는 모두 우문태의 아들을 세웠다. 말이 번국이지 실제로 봉읍은 1만호 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였다.
▪ 조국왕 : 우문초(우문태 아들)
▪ 대국왕 : 우문달(우문태 아들)
▪ 진국왕 : 우문순(우문태 아들)
▪ 월국왕 : 우문성(우문태 아들)
▪ 등국왕 : 우문유(우문태 아들)
수공이 양견이 조용히 대장군 여남공 우문경에게 말했다.
“ 천원은 쌓은 덕도 없고
외모를 보니 또한 오래 살지도 못할 것 같소.
여러 번국이라고는 하지만 1만호 밖에 되지 않아 약하기 그지없소.
뿌리도 얕고 약하니 근본을 굳게 하는 대책이 아닌 것 같소.
깃털이 이미 잘렸는데 어찌 멀리 날 수 있겠소.”
여기서 깃털이란 북주를 날아가게 하는 중심인물, 즉 왕궤, 우문효백, 울지운, 우문신거 같은 충신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양견이 이 말을 건넨 우문경은 사약을 받은 우문신거의 동생이었다. 양견은 조심스럽게 조정에 반대하는 세력을 규합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정은 양견에게 4보관의 가장 높은 자리인 대전의라는 자리를 맡겼다. 그 해 겨울 10월 천원(우문빈)은 그동안 금지시켰던 불상과 천존상을 모두 복구하고 종교숭배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152> 북주와 진나라의 회수, 장강 전투(AD579)
진나라 선제 진욱은 기병 10만과 누함 500척을 도독 임충에게 주어 회수지역을 확실히 장악하도록 지시했다. 이 지역은 북제가 혼란한 틈을 타서 AD573년 진이 탈취한 땅이어서 아직 완전히 국토라고 볼 수 없는 땅이기도 했다. 북주에서는 진나라의 북침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즉각 대응했다. 위효관을 행군원수로 삼고 행군총관 우문량, 양사언을 인솔하고 회수지역을 보냈다. 위효관은 우문량을 서쪽 안륙(호묵성 안륙) 에서 보내 황성(호북성 황피)을 공략하도록 하고 양사언은 동쪽 광릉(강소성 양주)을 탈취하도록 했다. 북주의 군대는 전진하여 비구(안휘성 수현)을 포위했다.
진나라 조정에서는 임충이 7천, 번의가 2만 군사를 거느리고 장강을 건너 북주에 대항했지만 북주군이 승리하여 거의 모든 성들이 함락되었다. 장강 이북에 거주하던 진나라 백성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장강이남으로 도망갔다. 이제 장강 이북은 모두 북주의 영토가 되었다.
<153> 북주 우문량의 쿠테타 실패와 5황후(AD580)
북주의 남정 행군총관 우문량은 천원(황제)의 사촌형이다. 아들 우문온의 아내 울지씨가 미색이 뛰어났는데 종친 모임에서 천원이 울지씨를 보고 반하여 강제로 음행을 저질렀다. 그 소식을 들은 우문량은 분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여 큰 일을 도모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정벌을 끝내고 돌아온 다음 행군원수 위효관을 제거한 뒤 그 군대를 가지고 조왕 우문초의 형제들 중에서 황제를 옹립하기로 계획을 짰다. 그러나 그 계획이 누설되어 위효관에게 알려졌고 위효관은 우문량의 거사를 몰래 대비하고 있었다.
AD580년 3월 우문량이 수 백 기병을 거느리고 위효관 군영을 침입했으나 이미 준비하고 있던 군대에 압도당하여 패배하고 우문량은 황급히 달아나다가 붙잡혀 목이 날아갔다. 아들 우문온도 처형되었다. 천원은 즉각 울지씨를 궁궐로 들여 장귀비로 만들었다. 천원은 지난 해에 처 네 명에게 황후라는 내렸는데 본처 양려화는 천원황후, 주씨는 천황후, 원씨는 천우황후, 그리고 진씨는 천좌황후로 만들었다. 천원은 장귀비를 위하여 황후를 한 명 더 만들고 싶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반대가 많았지만 태학박사 하타가 이렇게 말하며 찬성했다.
“ 제곡에게는 네 명의 비가 있었고
우순에게는 두 명의 비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일정한 법도가 없는 것입니다.
다섯 명이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천원은 신나서 반대했던 관리를 파직시키고 조서를 내렸다.
“ 금목수화토의 토는 5수에 해당되므로
네 명의 황후 외에 한 명을 더 두어 천중황후를 증원하도록 하라.”
이렇게 천중황후를 만든 다음 천좌황후 진씨를 천중황후로 승진시키고 그 자리에 울지씨를 천좌황후로 앉혔다.
천원의 본처 양려화는 양견의 딸로 성품이 유순하고 온화하여 투기하지도 않았고 배려심이 깊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물론 네 황후마저 존경하고 따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천원의 성격은 전차 난폭해지고 혼미가 거듭하면서 분노를 전혀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럴수록 침착하고 유순한 양려화를 밉게 보고 화를 내며 결국은 죽이려는 생각까지 갖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양려화의 생모 독고부인(독고신의 딸이다)이 궁궐에 나아와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눈물로 사죄하자 천원은 양려화를 풀어주었다.
천원이 양려화를 죽이려 한 것은 양려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번은 천원이 화를 내며 양황후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 반드시 네 가족을 멸족시킬 것이다.”
천원은 곧바로 양견을 소환한 뒤 좌우에게 지시했다.
“수공의 얼굴색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역심을 품은 증거다.
즉시 주살하라. ”
불려온 양견은 이미 그런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조금도 안색을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행동하여 틈을 내주지 않았다.
내사이자 천원 우문빈의 최측근 인사인 정역은 전에 양견과 같이 공부한 동문이었다. 정역이 보기에 양견은 용모도 기이하고 행동도 조심스러우면서 기개가 있었으므로 서로 친분을 맺어 가까이 지내고 있던 사이였다. 황제가 극도로 시기하자 걱정이 된 양견은 정역에게 부탁했다.
“ 오랫동안 번국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임을 공은 잘 알고 있지않소.
깊이 유념해 주시지요.”
정역이 말했다.
“ 공의 덕망이 천하 사람들을 끌어 들이고 있소.
많은 복을 구하려는 내가 어찌 감히 잊고 있겠소.
즉시 말을 올려 보겠소.”
천원은 장강 이남 진을 공격할 생각을 갖고서 정역을 총책임자로 임명할 참이었다. 정역이 말했다.
“ 강동(진을 말함)을 평정한다면
당연히 의척이나 중신이어야 합니다.
양견 말고는 다른 더 좋은 대안은 없습니다.”
천원은 잘됐다 싶었다. 만약 양견이 실패하면 죽일 명분도 생기는 것이고 설혹 승리한다고 하여도 트집을 잡아 죽이면 되는 것이다 싶었다. 군사를 수양에 모아 장차 출병하려는 참에 양견의 발에 병이 생겨 연기되면서 떠나지 못하고 말았다.
<154> 우문빈의 죽음과 군권을 장악한 양견(AD580)
그 다음날 천원은 몸이 몹시 불편해진 천원은 모든 행사를 중지하고 급히 궁궐로 돌아왔다. 천원은 평소 매우 가까이 하던 교활한 유방과 안지의를 급히 불러 후사를 의논했다. 그러나 돌연 천원 우문빈이 말을 못하면서 벙어리가 되더니 급기야 사망하고 말았다. 스무 살이었다.(AD580년 5월11일) 유방은 나이어린 일곱 살 황제 정제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모든 국정을 양견에게 맡기는 좋겠다고 결정했다. 영내사 정역, 어식대부 유구, 내사대부 위오, 어정하사 황보적을 모두 불러 양견을 추대했다. 양견은 한사코 거절했다. 유방이 다급히 재촉했다.
“ 공께서 서둘러 결정하시지 않으시면
내가 맡을 것이오.”
결국 양견이 수락하고 모든 것을 일단 비밀에 붙였다. 유방과 정역은 양견에게 총지중외병마사라는 최고 군권을 주기로 합의했다. 안지의는 황제의 뜻이 아닐 것이라 판단하고 반대했다.
“ 주상께서 돌아가시고
현 황제는 나이가 어리니 책임은 당연히 종실의 영재에게로 귀속되어야 하오.
조왕 우문초가 가장 나이가 많으니 중임을 위탁하기 합당하오.
나 안지의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니
돌아가신 황제를 기망할 수는 없소.”
정역과 유방은 안지의의 서명을 받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안지의를 대신하여 서명하고 실해에 옮겼다.
양견은 5개 번국 친왕을 소집했다. 국상을 계기로 한 반란을 우려한 때문이었지만 돌궐왕에게 여자를 보내는 문제를 상의하는 일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었다. 양견은 천왕의 부절과옥새를 찾았으나 안지의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 그것은 천자의 물건입니다.
스스로 주인이 있는 것인데 무슨 일로 재상께서 찾으십니까?”
양견은 격노하여 당장 죽이려고 했으나 안지의의 명망이 두텁고 아직 조정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임을 고려해 서쪽 변방으로 좌천시키는데 그쳤다. 천원이 죽고 보름이 지나서 국상이 발표되고 공식 장례절차에 들어갔다.
<155> 양견의 참모들 : 이덕림과 양혜와 고경(AD580)
북주 정제 우문천이 황제가 되고 죽은 우문빈의 동생 한왕 우문찬이 상주국, 우대승상으로 임명되었지만 명목만 있을 뿐 사실상의 모든 권한은 가황월 및 좌대승상 양견과 그 무리들이 장악했다. 백관들은 직무를 양견에게 직접 보고하기 시작했다.
양견이 고명을 받을 때 한국공 양혜를 시켜 이덕림에게 말하게 했다.
“ 조정에서 명령을 내려 문무의 일을 내게 맡겼소만
나는 그 막중한 임무를 공과 함께 하려고 하니
반드시 거절하지 말고 협력해 주시오.”
이덕림이 말했다.
“ 죽을힘을 다하여 공을 받들겠습니다.”
AD577년 북제의 수도 업이 함락될 때 황제 우문옹은 북제 중서시랑 이덕림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 초빙하는 뜻을 밝히고 위로하며 타이르면서 말했다.
” 내가 북제를 평정하여 얻은 이익이란 오직 경을 얻은 데 있다.“
이덕림을 궁으로 데리고 온 뒤 내사 우문앙을 시켜 북제의 풍속, 실정 그리고 인물에 대해 세세하게 물어서 파악했던 사람이다.
양견은 대사마를 요구하는 정역과 소총재를 바라는 유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이덕림에게 물었다. 이덕림이 말했다.
” 마땅히 대승상, 가황월, 도독중외제군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들의 마음을 누를 수가 없습니다.“
양견은 모든 정사의 중심을 승상부가 장악하도록 하고 잠시 폐쇄되었던 황궁인 정양궁에 승상부를 두었다. 정역은 승상부 장사, 유방은 승상부 사마, 그리고 이덕림은 승상부 속리로 임명하였다. 또 총명하고 군사의 일도 깊이 익힌 고경이라는 사람을 초빙하여 승상부 사록으로 삼았다. 이런 낮은 인사에 대해 정역과 유방은 불만이 많았다.
<156> 바보 삼촌 우문찬과 양견의 결심(AD580)
한왕 우문찬은 우문옹의 아들로써 우문빈의 동생이고 황제 우문천의 삼촌이다. 항상 금중에 기거하면서 황제와 나란히 앉아있었다. 유방은 환심을 얻기 위해 어리고 예쁜 여자를 불러 음악과 무용으로 황제와 우문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유방이 그 기회를 틈타 우문찬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왕께서는 돌아가신 황제의 동생이시고
현재 황제의 숙부이시니 온 천하가 존경하고 귀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주군께서 나이가 너무 어리시니
천하가 동요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잠시 왕부로 돌아가셨다가
일이 평안하게 되면 입궁하셔서 천자가 되는 것이 만전의 계책입니다.“
당시 우문찬은 21살에 죽은 황제보다 적었으므로 20대 혹은 그 이하였다. 평소에 용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었던 우문찬은 그 말 대로 한왕부로 돌아갔다.
승상부를 꾸린 대승상 양견은 몸소 검소하고 절약했을 뿐 아니라 우문빈의 가혹한 형벌정치를 대폭 간소화하는 번률 형서요제를 반포했으므로 안팎의 사람들이 놀라고 기뻐하였다.
양견이 밤중에 태사 중대부 유계재를 불러 물었다.
”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고명을 받게 되었소.
어떻게 하면 하늘의 때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알 수가 있겠소?“
유계재가 말했다.
” 하늘의 도는 자세하고 미묘하여 뜻을 살피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미 정해진 것 같습니다.
제가 안 된다고 말해도
공께서 어찌 기산과 영수의 일을 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箕山과 潁水의 일이란 요임금이 허유에게 양위하려고 하자 허유가 기산으로 도망가서 영수에서 귀를 씻었다는 고사를 말한다. 양위가 불가피 하다는 말이었다. 양견은 한찬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 그대의 말이 맞는 것 같소."
양견의 부인 독고씨가 나서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사가 이미 호랑이 등을 타고 있는 형국입니다.
내려 올 수 없을 것이니 이를 힘쓰셔야 합니다. "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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