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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19: 우문태‧우문옹의 업적을 탕진한 북주(北周)의 우문빈 <Y>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3월03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3년01월21일 14시58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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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

   

   

 <157> 울지형의 양견 토벌 계획(AD580)

 

양견의 입장에서 가장 큰 위협은 과거 북제의 도읍이던 업 지역을 장악하는 相州총관 울지형이었다. 일단 울지형의 아들 울지돈을 장안으로 불러 아버지 울지형이 황제의 장례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리고 上柱國 위효관을 울지형 대신 상주총관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상주자사로 질렬장차를 임명했다. 진왕으로 나가있는 우문순 또한 최팽을 보내 잡아들였다. 양견의 소환을 받은 번국 5왕들은 모두 장안으로 들어왔다.

 

울지형으로써는 매우 굴욕적인 인사였다. 아무런 상의도 없이 자신을 경질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보다 양견이라는 인물이 북주 조정에 결코 해로울 뿐이라는 소신에 가득 차 있었다. 위효관이 양견의 임명을 받아 업으로 오고 있는 동안 울지형은 대도독 하란귀를 먼저 보내 편지를 전달하면서 염탐하도록 지시했다. 위효관은 하란귀를 붙잡아 두고 병을 핑계로 속도를 늦추어 올라가면서 이것저것을 울지형에게 요구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울지형은 위효관의 조카 위예를 보내 겉으로 환영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위효관이 조카에게 울지형의 속마음을 캐물었지만 울지형과 같은 무리인 위예는 사실대로 말해 주지 않았다. 위효관이 위예를 죽이려고 하자 그때서야 위예는 울지형의 반란 모의를 낱낱이 고해 바쳤다.위효관은 즉시 위예와 함께 군사를 돌려 서쪽으로 피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촉공(울지형)이 곧 도착할 것이니

    신속히 술과 음식을 대접해 드려라.“ 

 

마침내 울지형이 모든 계획이 드러난 것을 알고 급히 군사를 몰아 위효관 무리를 쫓아갔지만 번번이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 마을사람들에게 지체되어 결국 위효관을 따라잡지 못했다. 양견과 울지형의 대립은 만천하에 드러나며 공식화 되었다. 울지형이 이렇게 선언했다.

 

  ” 양견이 황후 아버지라는 지위와 권세를 이용하여

    어린 주군을 끼고서 국정을 농단하고 있음이 천하에 드러났다.

    나는 국구의 생질로써 장상을 겸한 몸인데

    황제께서 나를 이곳에 부임하게 하신 것은 

    바로 지금과 같은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신 때문이었다.  

    지금 모든 사람들과 함께 용감한 사람들을 규합하여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보호하려고 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

 

울지형은 우문태의 누이동생의 아들로써 본인 또한 우문태의 딸 금명공주와 결혼한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대총관이라고 부르며 장안으로 불려 간 조왕 우문초의 아들을 받들었다.

 

 

<158> 울지형의 세력권(AD580)

 

양견의 울지형 토벌은 거국적이었다. 위효관을 행군원수로 삼고 양사언, 원해, 양소, 이순, 우문흔, 우문술, 최홍도 일곱 명을 행군총관으로 임명했다. 이 때 옹주목인 우문현이 양견을 죽이려는 계획을 모의하다가 누설되어 죽었다. 그의 세 아들도 같이 죽였으니 5번국 친왕들은 모의에 가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적이 너무 많아지는데다가 가장 큰 숙제인 울지형 토벌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울지형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광대했다. 업성을 중심으로 하는 상주에다가 위주, 여주, 명주, 패주, 조주, 기주, 영주, 창주와  동생 울지근이 관할하고 있는 청주, 제주, 교주, 광주, 거주 등 총14개 주에 수십만 병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외에도 형주자사 우문주,신주자사 이혜, 동초주자사 비야리진, 동주자사 조효원, 서주 사록 석비라는 연주, 필의서는 난릉을 점거하고 울지형과 동맹을 맺었다. 지금의 하북성 중남부와 산동성 전역, 그리고 안휘성 북쪽이 모두 울지형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셈이다. 운주(호북 안륙)총관 사마소난도 울지형에게 호응했지만 서주총관 원웅과 동군태수 우중문은 울지형에 동조하지 않았다.

 

울지형은 병주자사로 있는 대좌보 이목을 초청하려고 사신을 보냈다. 이목은 그 사신을 쇠사슬로 묶은 다음 편지와 함께 장안 조정으로 압송했다. 이목의 아들 이사영은 울지형을 좇을 것을 아버지에게 권했지만 이목은 거절했다. 양견은 유구를 보내 자신을 배반하지 말 것을 다시 다짐했다. 이목은 쇠다리미를 양견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 바라건대 이 다리미 자루를 잡듯이

    천하를 다림질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함께 천자를 상징하는 13개의 금고리가 달린 금대를 양견에게 보냈다. 이목의조카 이숭은 원래 울지형을 지지했는데 삼촌 이목이 양견과 가까이 하는 것을 보고서는 마지못해 양견에 귀속하였다. 이목은 울지형의 아들 삭주자사 울지의를 붙잡아 장안으로 압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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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북주 친왕 우문초 등의 양견 암살시도(AD580)

 

조왕 우문초는 양견을 죽일 생각을 하고 양견을 집으로 초대했다. 양갼은 술과 안주를 싸가지고 우문초의 집으로 갔다. 우문초기 양견을 침실로 끌어들였는데 거기에는 아들 우문원과우문관 처남 노봉이 모두 칼을 차고 서 있었으며 무장한 무사들이 병풍 뒤에 숨어 잠복하고 있었다. 양견의 좌우의 호위무사들은 모두 따라 갈 수가 없어서 오직 6촌 동생 양홍과 대장군 원주만 침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술자리가 익어가면서 우문초는 품속에 있는 작은 패도를 꺼내어 오이를 계속 잘라 먹이다가 양견을 찌를 생각이었다. 낌새를 알아차린 원주가 양견에게 말했다.

 

  ” 상부에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더 머무르실 수가 없습니다.“ 

 

우문초가 원주를 크게 꾸지었다. 원주는 칼을 만지작거리면서 들어가 양견 곁을 호위했다.우문초가 언성을 낮추며 원주에게 술을 권하면서 말했다.

 

  ” 내가 어찌 불손한 생각을 했겠는가. 경은 어찌 그리 심하게 경계하는가?“

 

우문초는 취해서 토하는 척 하면서 뒷방으로 들어가기를 여러 번 했는데 원주는 그 행동을 의심하고 우문초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혔다. 우문초가 원주에게 목이 마르니 물을 좀 갖다달라고 부탁했지만 원주는 들은 척도 않고 양견을 보호하였다. 마침 등왕 우문유가 도착하자 양견은 그것을 핑계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그를 영접하였다. 원주가 양견의 귓속에 이렇게 말했다.  

 

  ”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속히 떠나셔야 합니다.“

 

양견이 말했다.

 

  ” 저들은 군사력이 없는데 무슨 짓을 할수 있겠소“

 

원주가 말했다.

 

  ” 병마는 원래 저들의 것이었습니다.

    저들이 먼저 발동하면 대업은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저 한 몸이야 목숨을 사양할 것이 없지만

    죽어도 아무 이익이 없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양견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원주는 방 뒤 병풍 사이에서 갑옷입은 군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취한 양견을 거의 강제로 끌어 내 말을 태워 보냈다. 우문초가 급히 따라 나왔지만 원주가 강하게 저지하는 바람에 양견을 따라잡지 못했다. 사흘 뒤 양견은 우문초와 월왕 우문성 무리를 반역으로 몰아 모두 죽였다. 북주 친왕들도 여러 번 양견을 죽이려고 시도했지만 양견의 도독 임경과 이원통이 철통 같이 호위하여 해를 입지 않았다.    

 

 

<160> 무척대치 (AD580)

 

위효관의 울지형 토벌군이 영교성(하남성 무척)에 도달했다. 부장들이 서둘러 성을 공격하자고 했지만 위효관은 이렇게 말했다.

 

  ” 성은 작지만 견고하오.

    이기기도 쉽지 않지만 만에 하나 진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오.

    이겼다고 하더라도 적의 대군을 격파하는 것이 더 중요하오.“

 

위효관은 무척에 주둔하며 성을 쌓았다. 울지형은 아들 울지돈에게 10만 대군을 무척의 동쪽 무덕으로 보냈다. 위효관의 대군과 울지돈의 대군이 심수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가을 비 때문에 심수가 크게 물이 불어서 양군은 강을 사이에 두고 물이 가라 앉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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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효관의 장사 이순이 말했다.

 

  ” 양사언, 우문흔, 최홍도 총관이 울지형에게 

    금을 뇌물로 받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군대 안에 근심하고 불안한 기운이 심각합니다.“

 

양견은 이 세 사람을 교체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이덕림에게 물었다. 이덜림이 이렇게 판단했다.

 

   ” 지금은 혼란기라서 

     누구라도 공의 명령을 위엄있게 받들지 못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원칙과 위엄을 가지고 

     제 장수들을 다스리며 설득하는 것에 힘쓰셔야 합니다.

     장수를 바꾸신다고 그들이 명령을 잘 따르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뇌물 풍문은 그 진위를 잘 알지도 못합니다.

     만약 교체한다고 하면 그들이 다 도망가 버릴 것입니다.

     만약 가두어버린다면 위효관 부터 모두 두려워 할 것입니다.

     적을 앞에 두고 장수를 바꾸시는 것은 

     전국시대에 연과 조가 패배한 까닭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공의 심복 중 능력도 있고 제장들도 따르는 한 사람을 뽑아 

    보내어 그곳을 지휘하게 하고 상황을 낱낱이 보고하게 하십시오.

    그곳에서 딴 생각을 품는 사람들도 감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

    움직이더라도 즉각 제압할 수 있습니다.“

 

양견이 소리를 질렀다.

 

  ” 내가 크게 일을 그르칠 뻔 했구려. “ 

 

양견은 위효관의 군영에 파견할 사람을 물색했다. 먼저 소내사 최중방을 보내려고 했지만 선친이 그곳에 살고 있다고 하면서 사양했다. 유방과 정역을 뽑을까 생각했지만 유방은 군사경험이 없는 문신이라고 사양했고 정역은 어머니가 연로하다고 거절했다. 인선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본 승상부 사록 고경이 흔쾌히 가겠다고 자원했다. 고경은 명령을 받고 어머니에게 하직인사만하고 곧바로 전장으로 출발했다. 이후 양견은 군사에 관한 일을 이덕림하고만 상의했다. 

 

   

<161> 위효관이 울지형 대파

 

고경이 서둘러 군영에 도착하고 나서 맨 먼저 한 일은 심수를 건널 다리를 건축하는 일이었다. 울지돈은 심수 상류에 뗏목을 만들어 다리를 부수려고 했지만 고경은 물속에 토담을 쌓아서 뗏목 피해를 예방했다. 울지돈은 옛날 비수대전처럼 북주 조정군사가 강을 건너도록 한 뒤에 습격하려고 조금씩 군사를 뒤로 물렸다. 그러나 위효관의 군사들은 순식간에 강을 건너 먼저 다리를 북 태운 뒤 뒤로 물리고 있는 울지돈의 대군을 급습하였다. 울지돈의 대군은 순식간 대패하였고 본인은 단기로 도망갔다. 위효관은 곧바로 북진하여 업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울지형은 울지돈과 울지우와 13만 대군으로 위효관을 업성 남쪽에서 막았다. 울지형의 특수병 1만 명은 모두 푸른 수건과 누런 비단 두루마기 걸쳤으므로 황룡병이라고 불렀다. 비록 늙기는 했지만 오랜 군대생활로 실전에 경험이 많은 울지형이 갑옷을 입고 직접 선두에 나서서 지휘했으므로 군대들이 격렬하게 방어한 까닭에 위효관은 방어선을 뚫지 못했다. 업성 내에서는 위효관과 울지형의 싸움을 수수방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것을 본 위효관의 총관 중의 한 명인 우문흔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속임수를 써서 적을 함락시킬 것이다.“

 

우문흔은 울지형에게 금을 뇌물로 받았다고 의심받은 세 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전쟁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활을 쏘았다. 돌연 자신들을 향해 화살이 비오듯이 쏟아지자 성 안의 사람들이 놀라서 몸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혼란을 틈타서 우문흔이 큰 소리로 말했다.

 

  ” 성 안의 적들이 패배했다.“    

그 기세를 타고 위효관의 군대가 울지형의 진영을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울지형은 업성으로 들어가 방어에 치중했다. 위효관은 업성을 포위했다. 위효관의 군대가 성벽을 타고 올라가자 쫓기던 울지형은 성내 누각 위로 도망쳤다. 행군총관 최홍도가 성을 타고 올라가 누각아래에서 울지형에게 설득하며 나섰다.

 

  ” 우리는 서로 인척지간 아닙니까.

    그러나 나라 일을 도모하는 것이므로 사사롭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형세가 이렇다면 신속하게 결단을 내려야지

    길게 끈다고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습니까?“

 

빨리 항복하라는 예기였다. 최홍도의 누이동생은 울지형의 며느리였다. 울지형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활과 무기를 던졌다. 한 동안 양견을 향해 욕을 뱉은 다음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최홍도는 동생 최홍승에게 을지형의 목을 취하라고 했다. 업 성 안에 있던 수 만 명의 사람들을 위효관은 모두 땅에 묻어버렸다. 자치통감에서는 울지형이 패배한 이유로 울지형이 핵심참모를 우둔하고 무능한 최달나를 장사로 삼은 때문이라고 했다. 도망갔던 울지근, 울지돈, 울지우는 모두 청주에서 사로 잡혀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양견은 울지형의 아들 울지근을 죽이지 않았다. 전에 자신을 위해 울지형을 설득하려고 했던 공을 참작한 것이다. 동쪽으로 나간 우문중은 울지형 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양군(하남 상구), 조주(산동 정도),성무(산동 성무)를 차례로 뽑았다. 위효관은 또 군사를 나누어 관동(함곡관 동쪽)의 반란세력도 소탕했다. 양견은 상주의 치소를 업에서 안양(하남 안양)으로 옮기고 업성을 해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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