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37> 상품이 되어버린 집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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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 통 하나/벌들이 윙윙대는 숲 속에 혼자 살으리”.
널리 알려진 시인 W.B. Yeats의 시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의 일부이다. 세상사 번뇌를 떨치고 그야말로 무욕의 일락 속에 침잠해 살고 싶은 생각을 담고 있는 시이다.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이나 “아홉 이랑 콩밭”, “꿀벌 통 하나”- 예이츠가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들고 있는 것들은 하나 같이 소박하고 수수하면서도 순수한 것들이다.
집은 사람이 일상에서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정처이고, 혈육들이 따스한 유대로 등을 붙이고 살면서 이상을 키워 가는 삶의 근거지이다. 그러니까, 현실의 곤곤한 현장에 나가 각자의 힘든 일상 속에서 맡은 일을 하다가도 날 저물면 어김없이 집을 향해 발길을 옮기게 마련이다. 집이 사람들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게 되는 것도 그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삶의 ‘정처’이며 혈육의 정이 확인되는 ‘안온함’의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런 ‘집’이 돈으로만 계량되는 사태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면서 살고 있다. 재산을 불리기 위해 집을 팔고 사는 난장의 시대가 되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자신이 가진 이 ‘유일한 자산’ 가치를 늘여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산다. 또,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집 마련을 위해 삶의 거의 모든 여력을 쏟아 부으며 힘든 나날을 살아간다. 이제 ‘집’은 행복이 잉태되고 꿈을 설계하는 안식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더 큰 자산 가치로 키워가야 할, 상품일 뿐이다. ‘상품’이 되어버린 ‘집’에 살면서 사람들은 진정한 ‘집’을 잃어버렸다. 삶의 열정이 아로새겨진 집, 아름다운 추억들이 고스란히 쌓인 집, 집안의 법도와 가풍까지가 살아 움직이면서 사람을 편히 쉬게 해주는 그런 ‘집’이 그립다.
소설가 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의 어느 대목엔가 6. 25 사변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사람마저 집을 버리고 떠나게 되었는데, 대를 이어 뒤뜰에 가지를 펴고 먹음직스런 감을 수확할 수 있던 감나무가 시름시름 죽어버렸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이 그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죽은 나무를 도끼로 찍어내며 소리 내어 울던 대목을 읽으며, 나 역시 목에 메이던 기억이 새롭다. ‘집’이 그냥 상품이 아니라 어떤 영감 같은 운명으로 사람과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옛날에는 명문 집안일수록 대를 이어 한 집에 살았다. 우뚝 솟은 솟을대문이며 조상들이 남긴 흔적까지 검게 쩔어 반들거리는 대청마루며, 울안의 커다란 나무들까지, 무엇 하나 집안의 내력과 무관한 것 없고 애정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는 집- 그래서 늘 그리움의 대상으로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는 그런 ‘집’들을 상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 수밖에 없게 되었나 보다. 이제 ‘집’이라는 상품만 있고 영혼의 안식처로서의 진정한 ‘집’은 사라져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인 예이츠가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 안식하고 싶어 했던 그의 집은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이었다. 휘황하게 치장되거나 가공된 건축자재들로 으리으리하게 시공된 저택이 아니라 자연에서 그대로 옮겨온 나뭇가지와 진흙을 재질로 하여 지어진 작은 오두막이었다. “아홉 이랑 콩밭”과 “꿀 벌통 하나” 쯤으로 노래되는 무욕의 삶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지나친 물질적 욕망의 노예로 전락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꿈꾸고, 혈육끼리의 안온한 휴식을 누려야 할 ‘집’마저도 투기의 대상이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상품화된 ‘집’만 있고 영혼이 안식할 ‘집’은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인가. 가난한 청빈의 안락함을 노래한 시인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의 끝부분은 이렇다. 소음과 매연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속삭여주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 절실함이 되어 울린다.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장도로 위에 서 있을 때면/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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