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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세계보건기구(WHO)에 탈퇴를 통보하고, 1주일 사이에 ‘불법이민자 추방’ 등 약 300개의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2월1일 캐나다와 멕시코(25%), 중국(추가10%)에 관세를 부과하여 미국과 세계를 흔들고 있다. ‘트럼프현상’의 본질은 미국사회와 세계가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정부와 정치권, 학계와 언론, 모두가 트럼프인맥을 찾고 두려움과 위기를 과장하며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한 ‘자학적 안보’ 심리는 한국의 대미외교에 그대로 드리워져있다.
한미동맹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방위해 준다는 약속이었다.
휴전 직후인 1954년 11월 발효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승만 대통령의 처절한 대미외교의 결실이다. 미국은 동맹을 맺지않는 ‘원조 비동맹국가’였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을 ‘불가사의한 동맹’이라고도 했다.
미군은 한국의 절실한 요청에 따라 한국에 주둔했다. 한국은 부지만 제공했고 주둔비용은 모두 미국이 부담했다. 한국은 1989년부터 미군 주둔비용을 분담했다. 2024년에는 1조4천억원을 부담했다. 평택미군기지 건설비용의 90%(98억 달러)를 부담했다.
2022년 바이든 미국대통령 방한시 양국 정상은 한미동맹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강화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신냉전시대에 대응하여 동맹을 경제분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다.
한국사람들의 ‘미국 짝사랑’은 복잡하다.
한국인은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대등한 한미관계’나 ‘반미’를 논한다. 보수·우파세력은 미국성조기를 흔들며 ‘친미’시위를 하고 진보·좌파세력은 미군을 ‘식민세력’, 점령군’이라며 ‘반미’를 외친다. 또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주장한다. ‘친미’는 ‘반미’를 정당화하고 ‘반미’는 ‘친미’를 교조화하며 공생한다. 오도된 민족주의가 대립을 부채질한다.
그러나 그런 시끄러운 논쟁도 ‘미군철수’라는 말만 나오면 금방 조용해진다. ‘반미’를 표방한 정권도 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미국에 순응한다. 미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엉뚱하게 미국식 정치제도를 모방한다. 미국을 섬기는 데는 보수와 진보, 여야가 따로 없다.
미국과의 외교는 ‘외교’라기보다는 ‘내교’다.
대미외교는 ‘친미’적 보수세력과 ‘반미’를 이용하는 진보·좌파세력 간의 내전이 되었다.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신임대통령과 전화통화나 정상회담을 빨리 하든 늦게 하든, 한·미·일 3국의 정상이 캠프데이비드합의를 해도, 미국의 고위 정치인에 대한 영접이 소흘해도, 미국의 CIA가 한국대통령실을 도청해도, 한국의 정치권은 서로를 탓하며 싸운다. 고위 외교관료와 학계도 두 진영으로 갈라져 미국의 심기를 기준으로 반대진영의 외교를 비판한다. 언론은 갈등을 부채질한다. ‘외교정책은 국가이익에 관한 국민의 통합적 지지가 있어야 강해질 수 있다’는 키신저의 어록이 한국외교의 문제를 직격한다. 사실 그것은 오래된 사대주의 심리의 적폐다.
한국과 미국간의 외교는 불균형하다.
한·미관계는 과거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연상시킨다. 미국의 정권교체기마다 위기가 과장되고 인맥을 찾는 것은 전형적인 종속적 행태다. 한국의 외교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미리 알아서 기는’ 경우가 많다. 정상외교도 당연히 평등하지 않다. 한국에게는 대통령이 나서는 중요한 사안도 미국은 외교실무자가 다룬다. 한국에서 미국에 관한 일은 큰 뉴스지만 미국언론은 한국에 큰 관심이 없다.
한·미·일관계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에게 안보를 의존하며 경쟁하는 삼각관계다.
미국은 1882년 조선과 수교한 이래 줄곧 일본 편만 들었다. 미국은 한국을 버렸고, 해방시켰고, 분단했고,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구해주었다. 병주고 약주는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미국이 일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해줄 것을 기대한다. 일본인들은 미국이 당연히 한국보다 일본을 더 중시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치열한 구애경쟁을 잘 이용하며 갈라치기한다. 한·미·일군사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냉각된 한·일관계를 반전시키는 연출자가 되기도 한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와 2015년 일본군위안부문제합의가 그랬다. 윤석열정부의 일본정책도 그렇게 유인했을 것이다. 2023년 한·미·일캠프데이비드합의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실현되었다.
한국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이 변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으로 시작된 신냉전은 전후국제질서를 사실상 붕괴시키고 19세기식 ‘세력균형’과 ‘중상주의적 경제전쟁’의 시대를 다시 불러왔다. 트럼프는 매킨리 대통령과 시오더어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 100년만에 다시 나타난 제국주의자 대통령이다.(이코노미스트 1.25) 트럼프는 이기적 패권(Selfish Hegemon)을 추구한다.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봉쇄망을 계속 유지·강화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동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일본이 ‘불침항모’라고 한다면 한국은 대륙의 위협을 방어하는 ‘불침교두보’다. 한반도 주변 해양의 출입로를 통제하는 한국식 반접근/접근거부(A2/AD) 능력도 있다.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다.
한국은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사고와 행동을 해야 한다.
트럼프시대를 한국의 새로운 기회로 만드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현명한 방안은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가장 실속있는 ‘안보보험’이다. 지금은 중국의 눈치를 보고 균형외교나 평화를 외치며 탁상공론을 할 때는 아니다. 미래의 불확실한 이익을 위해 현재의 안보이익을 소홀히할 수는 없다.
이제까지 한국은 미국의 의견에 추종하는 수동적 외교로 일관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미국이 하자는대로만 하면 대과 없다’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었다. 30년에 걸친 북한비핵화협상 실패는 그 결과다. 앞으로 한국은 잘 준비된 전략으로 미국의 정책을 유도하거나, 미국과 군사적‧경제적 보상을 등가물(quide pro quo) 또는 지렛대(leverage)로 거래하는 능동적인 전략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외교전략은 추측과 해석이 아니라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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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2월09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2월05일 10시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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