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유충, 이제 걱정 안 해도 되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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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OECD국가 중 수돗물 음용률 "꼴찌"
2015년 세계환경교육총회에서 환경문제에 관한 발표를 하기 위해 스웨덴 예테보리에 간적이 있다. 그때 총회참가자들은 기념품으로 받은 투명한 플라스틱 텀블러에 수돗물을 담아 마셨다. 생수나 정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행사를 마치고 시내의 카페테리아에 갔는데 누르면 생맥주가 나올듯한 예쁜 탭이 몇 개 있었다. 그것은 컵에 수돗물을 담기위한 예쁜 수도꼭지였다. 음료수나 생수도 팔았으나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병에 든 생수를 사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음식점에서 수도를 바로 연결해서 공급하는 것도 신선했고, 수도탭의 디자인도 멋졌다. 현지인들은 정말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식당에서도 수돗물을 마셨다. 참 부럽고 신기한 광경이었다. 우리나라도 국민들이 수돗물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했고, 수질도 으뜸임을 자랑했다. 원수(原水)를 깨끗하게 공급하기 위해 고도정수처리시설을 통해 안전과 맛을 확보했고, 녹물이 나오는 상수도 관로를 다시 정비했으며,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학교에게 저수조를 거치지 않고 직수관으로 연결된 음수대를 설치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이 좋지 않아 맥주 등을 물 대신 마셔야하는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 수돗물은 매우 우수하다.
서울시는 2007년 수돗물 수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내용의 `상수도 비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2012년까지 총 4,973억 원의 예산을 들여 모든 정수센터에 고도정수처리시설을 도입하여, 서울시 전 지역에 고도정수처리를 거친 ‘아리수’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는 예산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추진 일정이 다소 늦어져 2017년 6월에야 마무리됐지만. 고도정수처리시설은 기존 정수처리공정에 입상활성탄(숯)과 오존소독 과정을 추가해 수질과 맛을 더 좋게 만들기 때문에, 수돗물 음용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되었다.
그 후 전국적으로 고도정수처리시설이 확대되었으며, 이를 주도한 서울시는 정수처리장 6곳 모두에 고도정수처리시설을 갖추고 기존처리공정 시설을 현대화하는데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약 1조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정수과정에 막대한 예산이 추가되었으나, 지난 2013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돗물을 그대로 먹는다'라는 응답은 일본과 프랑스, 캐나다 등 11개 회원국이 평균 51%인 반면, 한국은 5%에 불과해 조사대상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수돗물은 안전관리가 생명이다
붉은 수돗물이나 유충 사태로 그동안 정부가 강조해 온 “고도정수 처리한 수돗물이 더 깨끗하고 안전하다”란 선전이 어색해졌다. 환경부 조사결과를 보면, 전국 49개 고도정수처리시설 중 7곳에서 활성탄(숯) 여과지에 ‘깔따구’가 알을 깐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부는 지난 2016년 '제3차 전국수도종합계획'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고도처리정수장 도입율을 70%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년 기준으로 고도처리정수장 도입율은 약 40%에 이른다.
환경부는 '그린 뉴딜'의 일환으로 오는 2024년까지 광역정수장 12개에 4,300억 원을 투입해 표준정수처리시설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고도정수처리시설을 도입할 계획이다. 깨끗하고 안전한 수돗물 음용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나 음용률은 여전히 낮고, 고도정수처리방식이 ‘과연 정답인가’ 하는 의문마저 제기되고 있다. 녹슨 물을 녹물이라 부르지 못하는 붉은 수돗물,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수돗물 유충은 그동안 수돗물 안전을 위해 투입된 엄청난 예산은 물론 수돗물 음용 운동마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안전한 수돗물 공급을 위해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기존과 다른 방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안전하고 건강한 수돗물관리를 위해서는 수도 전문인력 확보가 먼저다.
이번 깔따구 유충사건은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주로 발생했다. 서울보다 전문 인력이 불충분한 지역이라 볼 수 있다. 실질적으로 유충이 발행한 원인 중 활성탄 역(逆)세척주기가 너무 길거나, 방충시설관리 미비 등 고도처리시설 운영에 관한 관리 및 기술부족,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점 등이 지적된다. 인천의 붉은 수돗물사건도 더 빨리 안정화될 수 있었는데 능력 있는 경험자들의 부재로 사후처리가 길어졌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현재 지자체는 순환보직으로 인력이 운영되고 있기에 경험 있는 수도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이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둘째, 원수-정수-배관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에서 수돗물이 관리돼야 한다.
최근까지 고도정수처리시설 도입 등 수돗물 생산에 예산과 행정이 치중되었으며, 상대적으로 원수관리는 미미한 실정이다. 노후 수도관 정비(교체)를 추진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체해야 할 물량이 상당하다. 각 가정의 수도꼭지를 통해 나오는 수돗물은 수도배관을 통해 흘러나오는데, 약 30년간 사용되고 교체되기까지 수도관의 청소와 세척을 위한 예산은 거의 없거나 매우 미미하다.
또 고도처리 된 수돗물이 수질저하 없이 각 가정의 수도꼭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배관의 정비나 유지관리가 중요하다. 즉, 노후 수도관 정비와 함께 수도관 내부를 주기적으로 세척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수도관 내용연수인 30년 동안 ‘이를 닦지 않다가, 한꺼번에 틀니로 교체’하는 형국이다. 수도관은 시간이 흐르면 여러 이물질이 끼고, 미생물도 번식한다. 깨끗하게 정수된 물도 관리되지 않은 긴 수도관을 통과하면 안전하게 우리 집까지 도착할 수 없다. 우리가 매일 이를 닦듯이 수도관 종류나 구경에 맞는 적정한 주기를 찾아 효과성 있게 우선순위를 정해 수도관을 관리해야한다.
셋째, 혈관과 같은 수도관의 선택도 매우 중요하다.
전 국토를 수도관으로 연결해야하니 그 예산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도관은 다시 노후화되므로 연차별 노후 수도관 정비는 예산문제 등으로 인해 한계가 있다. 따라서 안전하게 장기간 사용할 수도관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서울시의 경우 1세대 수도관인 아연도강관이나 회주철관 등 녹이 잘 발생하는 비내식성(非耐蝕性) 관은 작년 문래동 녹물사건을 통해 당초 2022년까지 계획된 교체일정을 앞당겨서 올 상반기에 정비를 완료하였다.
녹이 잘 발생되는 1세대 수도관은 부식에 대한 저항력이 있는 스테인레스 강관이나 덕타일주철관 등으로 교체되었다. 수돗물의 만족도가 높은 네덜란드를 살펴보면, 수돗물 하루 평균 직접 소비량은 1인당 0.51리터, 생수 소비량은 연간 1인당 22리터에 불과하다. 네덜란드는 1960년대 미생물막 형성이 제일 적은 PVC 재질의 상수도관로를 설치했고, 1990년대 이후 설치되고 있는 상수도관로 중 PVC 관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서울시는 2000년 이전에 플라스틱 재질의 PE관을 사용했지만, 내구성 및 누수발생 등의 문제로 인해 전량 교체했고 그 이후로는 플라스틱 재질의 수도관 사용을 주저하고 있다. 현재 플라스틱 재질의 수도관도 기술개발에 진전이 있는 만큼 이제는 안전하고 깨끗한 수돗물 공급을 위해 다양한 재질의 수도관 적용에 대한 검토와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다.
넷째, 시민의식이 제고(提高)되어야 한다.
숨 안 쉬고, 물 안마시고, 밥 안 먹고 우리는 살 수 없다. 자연에서 얻는 이 모든 것은 제대로 된 관리가 중요하다. 88올림픽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농도는 2배 이상 낮아졌다. 그 때에 비하면 훨씬 좋은 대기질(大氣質)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은 지금의 미세먼지를 그 때보다 훨씬 더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공기질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건강하게 숨 쉴 권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大選)에서 대통령 공약 중 가장 국민들이 관심 있어 하는 공약 1위가 미세먼지였다. 이로 인해 미세먼지 특별법이 제정되고, 모든 부처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돗물도 마찬가지다. 공급되는 수돗물이 이전에 비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나아지고 있지만, 다수의 시민들은 아직까지도 수돗물을 불신해서 정수기물이나 생수를 마시고 있다.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것과는 별개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이 충분히 안전하고 깨끗한가에 대해 관심은 매우 높다.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고객이 원하면 기업이 달라지고, 국민이 원하면 정책이 달라진다.
인류의 수명은 감염병과 끊임없이 싸우며 연장되어왔다. 인류 역사에서 유일하게 1억 명 이상 사망하여 인구감소가 일어난 사건은 중세유럽의 흑사병(1342~1353) 대유행이었다. 감염병을 막으려면 물이 깨끗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류 질병의 80%가 깨끗하지 않은 물 섭취가 원인이라고 한다. 안전한 물을 공급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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