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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2023년 말 기준 주요국 중 시가총액 13위, 상장기업 수 7위로 양적으로 대폭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장기업의 주가나 순자산가치가 수익성이 비슷한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낮게 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여전히 관찰되고 있다. 2014~2023년까지 10년간 국내 상장기업의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 (BPS: Book value per share)로 나눈 주가순자산비율 (PBR: Price-to-Book Ratio)은 평균 1.04배로 선진국의 42%, 신흥국의 66%에 불과했다. PBR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은 기업의 자산가치 대비 시장가치가 다른 나라들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의미인데, 우리나라 기업의 자본효율성이 주요국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국내 상장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 (ROE: Return on Equity)은 같은 기간 8.0%로 선진국의 11.6%, 신흥국의 11.1%보다 낮았다. 미흡한 주주환원과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기관투자자의 낮은 참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이 지배주주의 이익이 우선하여 이뤄지고 일반주주, 특히 소액주주들의 권익이 보호되지 못하는 사건들도 빈번하게 나타났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SK C&C와 SK의 합병, 2020년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 등이 그 사례다. 정부 주도 하에 기업가치 제고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7월에도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이 상당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주식 교환 및 합병이 발표되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낮은 자본효율성과 지배주주에 의한 일반주주의 권리침해 사례는 주식시장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8년부터 2024년 6월 말까지 6년 반 동안 코스피는 13.4% 상승에 그쳤지만, 미국의 S&P 500지수는 104.2%, 대만 가권지수는 116.4%, MSCI 선진시장은 74.6%, 일본 니케이225지수는 73.9%나 상승했다. 투자자들도 떠나고 있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 비중은 2017년 21.2%에서 2024년 5월 13.5%까지 낮아졌고, 개인투자자들의 해외증권투자 잔액은 2017년 140억달러에서 2024년 1분기 838억달러로 6배나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2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한 상장기업의 ‘기업가치 제고 (밸류업)’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나섰다. ‘밸류업 (Value-up)’ 프로그램은 상장기업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자율적으로 중요한 핵심지표를 선정하여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사업부문별 투자, R&D 확대,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 자사주 소각 및 배당, 비효율적인 자산 처분 등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 공시, 이행함으로써 주주 및 시장참여자와 소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옆 나라 일본이 기업가치 제고와 자본시장 개혁을 통해 34년 만에 니케이지수가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을 경험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다. 한국 증시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단순한 주가 상승을 넘어, 시장의 본질적 가치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자리잡기 위해 실행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중산층과 젊은 세대들의 자산증식 차원에서도 필수적이다.
일본 자본시장 개혁의 성공 사례와 한국의 시사점
일본의 자본시장 개혁과 성공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적으로 추진된 다양한 정책 지원의 결과물이다.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 정책, 지배구조 개혁, 그리고 최근 동경거래소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등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특히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10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와 거버넌스 코드를 도입하고 개정하였으며,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거래소 상장유지 조건을 강화한 점도 높게 평가된다. 우리나라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어 참고할 만한 시사점이 많다. 일본의 사례와 함께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밸류업 정책을 위한 과제들을 짚어보자.
일본 정부는 첫째, 2012년 말부터 통화완화와 재정확대, 산업 구조개혁 등 ‘세 가지 화살’로 불리는 아베노믹스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엔화 약세는 상장기업의 순이익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고, 기업실적 회복 기대는 외국인과 주식형펀드의 자금을 유입시켰다.
둘째, 산업 구조개혁의 연장선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와 거버넌스 코드를 도입하는 등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장기간 추진해왔다. 2014년 일본 정부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정책보고서인 ‘이토 리뷰 (Ito Review)’를 채택했다. 보고서는 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은 일본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 (ROE)과 매출액순이익률 (ROS: Return on Sales)에 주목하여, 기업 스스로 ROE를 높이고 ‘자본비용 및 주가 의식 경영’을 통해 자본효율성을 높이며,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등의 개선 방안들을 제시했다. 이에 맞춰 2014~2015년 일본 금융청은 스튜어드십 코드와 거버넌스 코드를 도입하고 이후 몇 차례 개정을 통해 수탁자 책임의 이행 정책과 이해상충 관리, 의결권 행사, 지속가능 성장 등과 함께 상장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이사회의 주주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등의 원칙을 수립했다. 일본중앙은행 (BOJ)과 세계 최대의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 (GPIF)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동참했다. BOJ는 2013~2023년까지 연평균 3~4조엔 규모의 일본주식 ETF를 매수했는데, 특히 일본 기업들의 ROE등 자본효율성과 기업지배구조 강화를 위해 고안된 니케이400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매수했다. GPIF도 자국 주식 비중을 2010년 말 11.5%에서 2023년 말 24.7%까지 확대했고, 의결권을 위임한 위탁 자산운용사를 통해 상장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함으로써 정책을 지원했다.
셋째, 동경거래소는 2022년 상장유지 조건을 대폭 강화하고, 2023년 ‘자본비용 및 주가 의식 경영 (가칭 ‘PBR 개혁’)’을 권고함으로써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동경거래소는 일반 주주들이 거래가능한 유동주식의 최소규모 등 유동성과 지배구조, 재무성과 기준을 상장유지 조건으로 부과했고, 상장기업들에게 PBR은 1배 이상, ROE는 8% 이상을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상장기업들은 자본효율성, 주가, 경영상황 등을 점검하고, 이사회는 개선 정책을 마련하여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고, 주주와 소통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자율적으로 공시하도록 독려했다. 2025년 4월부터는 모든 주요 공시항목에 대해 영문으로도 공시가 의무화될 예정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상장기업의 ROE는 대폭 개선되었고 동경거래소의 자율공시를 수행한 기업들은 미공시 기업 대비 최근 1년간 10.5%의 초과수익률을 기록하는 등의 성과가 나타났다. 기업의 수익성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반영한 결과로 분석된다.
한국 증시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한 주요 과제들
일본의 자본시장 개혁 과정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된 일관된 정책 지원이었다. 우리나라 정부의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도 상장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독려함으로써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장기 투자자의 기반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본의 성공적인 자본시장 개혁은 특히 기업의 수익성 및 성장성 개선과 주주환원 강화, 그리고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이뤄졌다.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와 2015년 거버넌스 코드 도입은 일본 기업들이 자본 효율성을 높이고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도 이러한 접근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업들이 자본비용 (COE: Cost of Equity)을 고려한 경영전략을 도입하여 자기자본이익률 (ROE)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증시의 낮은 PBR의 원인 중 하나는 저조한 수익성과 낮은 ROE이다. 코스피 상장기업의 약 2/3가 자본비용 (COE)보다 자기자본이익률 (ROE)이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들이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론적으로 ROE가 COE보다 높을 때는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반대로 ROE가 COE보다 낮을 때는 주주환원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상당수는 ROE가 COE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주주환원을 늘리지 않고 있다. 이익을 자기자본으로 쌓으면서 PBR의 분모인 순자산 (Book Equity)이 무거워지고 그 결과 ROE와 PBR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구조다. ‘저평가’된 것이 아니라 기업의 펀더멘털 (ROE) 자체가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일본의 자본시장 개혁은 2014년 ‘이토 리뷰’를 기반으로 기업들이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도입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회사의 입장에서 자본비용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요구수익률이 된다. 일본의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자본비용을 파악하고, 경영을 다면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여,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라는 뜻이다. 기업은 ROE와 COE의 비교와 매출 성장률 전망 등을 통해 신규투자 확대나 주주환원 (자사주 매입소각 및 배당) 확대 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성장과 주주환원 간의 최적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사회가 중심이 되어 계획을 세우고 이행하며 투자자와 소통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자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는 정책을 보완하고 지원해야 한다.
둘째, 기업들이 ROE가 낮아질 만큼 쌓아둔 과잉자본을 활용하여 주주환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기업의 잉여 현금흐름이 과잉투자로 이어지거나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을 위해 남용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은 낮은 배당 성향과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부족으로 주주환원에 소극적이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전년 대비 주주환원이 감소하는 기업들은 그 이유를 상세히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과도한 잉여 현금흐름 보유로 ROE가 지속적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동경거래소의 경우처럼 상장유지 조건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사주 취득과 소각은 배당과 함께 기업의 성과를 주주와 공유하는 주주환원 정책이다. 주주환원 관점에서 볼 때 기업의 자사주 취득은 배당을 대체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자사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하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자사주를 보유하면서도 소각에는 소극적이다. 2011년 상법 개정을 통해 회사는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 또는 처분하지 않고 보유하면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자사주를 활용하여 지배권을 강화하고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그 영향으로 자사주 매입이 주주가치 제고 및 주주환원에 기여하지 못하고, 자사주는 오히려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자사주는 지배주주가 아닌 회사 자금으로 매입한 것이므로 경영권 방어의 수단이 될 수 없다. 회사가 재무관리의 수단으로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은 허용하되, 자사주에 아무런 권리가 인정되지 않음을 법률상 명문화하여 해석을 통해 자사주를 지배권 강화에 활용하는 편법을 방지하는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자사주 처분에 신주의 제3자 배정과 같은 규제를 두어 주주를 보호하고, 불공정한 자사주 처분에 대해 주주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수단도 도입해야 한다.
셋째,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여 기업가치를 제고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상장회사에는 회사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가 존재한다.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와 이사회 독립성 부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문제다. 지배주주는 배당과 같이 주식 비율에 따른 현금흐름 외에도 내부거래, 과도한 수준의 보수, 불공정한 자전거래를 통한 사적이익 편취 등 지배권의 사적이익 (private benefit of control)을 누릴 수 있다. 전체 주식가치가 동일해도 지배주주의 사적이익이 크다면, 일반주주의 주식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지배권의 사적이익이 클수록 지배주주는 전체 주주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유인이 높아진다. 이사회는 일반주주를 보호하는 기업지배구조의 핵심 기구다.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 조항을 유지하되 직무수행에 있어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며 특정 주주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조항을 추가하는 등 법적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넷째, 장기투자자 기반 확충을 위해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용을 더욱 강화하고,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를 지금보다 늘려 투자자들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주요 기업의 의결권 행사를 통해 스스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에 공적연금 (GPIF)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다양한 세제 혜택을 통해 밸류업을 지원하고 장기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잉여자본을 줄이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거나 배당을 늘리는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은 지배주주들에게 주주환원을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다. 외국인들도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이다. 대만처럼 이익을 주주에게 환원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과세하는 정책도 검토할 만하다. 배당소득세에 대한 분리과세와 세율 인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배당소득세에 대한 분리과세는 배당성향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안정적인 기업의 배당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장기투자자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다.
우리나라 상장회사들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언급한 과제들 외에도 여러가지 추가 조치들이 필요하다. 기업의 정보 투명성을 높이고, 밸류업 지수 개발과 ETF 출시 등 금융상품의 다양화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수급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장기 투자자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 개인투자자들이 보다 합리적인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필수다. 지정학적 위험은 더 이상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요인이 아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 증시의 밸류업을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며,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는 등의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국 증시는 장기적인 성장과 투명성 강화를 통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신뢰 받는 시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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