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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들의 퇴행적 위대함 경쟁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8월20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8월20일 19시54분

작성자

  • 이경태
  •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前 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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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미국, 중국, 러시아가 다시 강대국으로 일어서겠다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내세우는 국가비전이다. 중국몽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목매어 달성하고자 하는 중화제국 부흥의 꿈이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 병합에 이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러시아제국 회복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러시아는 좀 뒤쳐지지만 미국과 중국은 이미 세계 1, 2위의 강대국인데 새삼스럽게 웬 강대국 타령인가? 트럼프 후보가 보기에는 미국이 과거의 위대함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일 게다. 어떤 면에서? 

 

첫째, 독보적이었던 경제 최강국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중국이 G2라고 불릴 정도로 부상하다 보니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이 예전만 못하다. 미국이 주도해서 만들었고 세계 경제질서의 중심 공론장이었던 브레튼-우즈 체제가 좀비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개인도 그렇고 국가도 그런데 자기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던 분위기가 일변해서 두런  두런, 시끌 시끌 산만해지면 내 위상이 추락했다는 자괴감이 들고 어떻게 해서든지 예전의 지위로 돌아가야겠다는 자각을 하기 마련이다. 

 

둘째, 미국민들이 스스로 미국이 국내적으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다. 마약, 총기 살인, 노숙자, 기회의 실종, 동성결혼, 남녀 구별의 실종, 신앙심의 실종, 양극화 등 부정적 현상들이 걷잡을 수 없이 만연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놔두면 안 되겠다 싶고 예전의 좋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복고적 정서가 퍼져 나간다. 물론 예전에도 숱한 문제들이 있었지만 선택적 망각은 좋은 기억들만 떠올리게 한다. 

 

나는 1979년부터 1983년까지 미국 유학생활을 했다. 회사에 알바구직을 했는데 아무런 서류를 요구하지 않고 나의 신상설명을 그대로 믿어 주었다. 눈길에 차가 미끄러져서 앞차를 들이 받았는데 백인 여자는 나의 보험서류만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눈길 조심하라고 했다. 아내가 둘째를 가졌는데 분만 보험이 없어서 난감해 하는데 조지타운 대학병원에서 무료 분만하도록 안내를 해 주었고 카운티 병원에서 공짜로 산모와 아기 검진을 해 주었다. 또 연말 세금정산 때 소득이 기준 미달이라고 국세청에서 수백달러를 주어서 오디오를 구입하였다. 그때 미국은 가히 천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귀국 몇 년 후에 미국 출장을 갔다. 충격적인 광경은 워싱턴 DC의 여기저기에서 목격되는 노숙자들이었다. 겨울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온기가 올라오는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담요를 덮고 잠자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중에 통계분석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미국 중산층의 소득이 1980년대부터 정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대중 압박에 착수했고 동맹국들도 압박하기 시작했다. MAGA의 대외정책이었다. 중국이 WTO 가입 이후에 덤핑, 정부 보조금, 기술 훔치기, 수입제한 등 갖가지 불공정행위로 산업을 보호, 육성하면서 미국시장을 안방 드나들 듯 침략해서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그는 공장이 문을 닫은 러스트벨트(rust belt) 도시 유세에서 일터와 삶터를 잃은 백인 노동자들의 상실감에 호소하고 중국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의 뒤를 이은 바이든은 대중(對中)제재에 더해서 강력한 산업정책으로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산업정책은 물론 과거 일본과 한국의 산업정책을 매도하던 미국이 이제는 앞장서서 국내외 기업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여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제조업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들과 한국 등 전통적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증액, 대중 포위망 참여 등을 일방적으로 요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동맹국들과 마찰을 빚었고 나토 무용론까지 나왔으며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한다는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분명한 점은 미국이 더 이상 자유세계의 경찰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점이다. 저명한 통상전문가인 미국 친구가 나에게 말하기를 미국은 우방 지켜주느라고 돈이 없어서 도로보수도 제대로 못하는데 한국은 끊임없이 도로포장을 덧씌우고 있다고 했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그렇게 여길 것이다. 

 

1998년 초에 미국 의회에서 열린 한국에 대한 IMF지원 공청회를 참관했었는데 하원의원들이 주장하기를 자기 지역구에 어려운 주민들이 많은데도 돌보지 못하고 있는데 왜 우리가 한국을 굳이 도와주어야 하느냐고 했다. 국무장관, 국방장관, FED 의장 등이 한국이 부도나면 북한이 도발하고 이는 미국의 안보와도 직결된다는 거시적인 얘기로 설득하였다. 지금 미국의 America first 구호가 그때 광경을 떠 올리게 한다. 

 

MAGA의 반이민정책 역시 800만에 육박하는 불법 이민자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고, 과거 미국 사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편견에 근거한다고 본다. 반이민정책은 백인우월주의를 부추기고 합법적인 이민자들까지도 차별하고 박해하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그러나 증가하는 유색 이민자들에 대해서 피해의식을 갖는 백인들의 정서가 이해되기도 한다.  

 

시진핑의 중국몽 역시 흘러간 시절 중화 제국의 영광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세계 GDP의 60%를 차지했다는 송나라, 몽고와 티베트와 대만을 병합하여 지금의 중국보다도 영토가 더 넓었던 청나라의 영광은 신무기를 앞세운 유럽의 신예 강국들에게 짓밟혔다.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병든 사자에게 하이에나가 덤벼들 듯 중국을 난도질하던 치욕을 갚기 위해서는 그들을 넘어서는 강대국이 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을 하나하나 추월하고 이제 미국만 남았다. 영토야욕은 청나라를 무색케 한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주변 모든 나라들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소수민족들의 독립 열망이 살아있는 중국에서 공산당 독재를 포기하면 다민족국가이던 소련연방처럼 와해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터득한 중국은 공산당 지도하에 시장경제를 채택하였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갈파한 자본주의의 경이로운 생산능력을 활용해서 공산주의의 물적 토대를 구축해서 공산주의를 현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이다. 

중국몽이 어디까지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다. 정치적 압제와 경제적 자유 간의 내재적 모순을 풀어나갈 묘책이 쉽지 않다.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 본성을 고쳐서 중국몽의 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신인간이 나타난다면 모를까. 모택동 어록을 외우게 하고,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포함하는 것으로 인간 개조가 가능할까. 역사상 인간개조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히틀러, 레닌, 스탈린, 모택동, 폴 포트 등 모두가 실패했는데 시진핑이라고 성공하겠는가?

  

푸틴의 러시아 중흥의 꿈은 거칠고 폭력적이다. 그가 숭배한다는 표트르대제의 영토확장전쟁을 본받았는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2000년부터 장기집권하고 있는  독재자를 러시아 국민들은 소련제국의 복원자로 지지한다. 반면에 자유를 선사한 고르바쵸프에게는 조국을 붕괴시킨 배반자의 낙인을 찍었다.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민주적이지만 허약했던 바이마르공화국을 타도한 독재자 히틀러를 지지했던 독일 국민들이 회상된다. 푸틴의 영토확장 야욕은 계속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쉽게 끝날 것 같던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질질 끌고 있는 데서 러시아 군사력의 민낯이 드러났다. 

 

지금 세계는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의 범주 안에서 동질성을 갖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독재주의로 이질화되었다. 정치, 경제 모두 넘을 수 없는 철의 장막, 죽의 장막으로 차단되어 있던 구냉전과 비교하면 적어도 경제적 교류협력은 지속되고 있다. 신냉전을 녹일 수 있는 해빙제가 남아 있으니 조금은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백인민족주의, 중화민족주의, 슬라브민족주의 모두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다. 국력의 상대적 약화를 되돌려서 절대적 최강국 패권을 확보하겠다는 미국, 세계의 중심국가의 위엄을 되찾겠다는 중국, 잃어버린 소련영토를 회복하겠다는 러시아의 자국 우선주의는 국제관계를 협력에서 편가르기로, 통합에서 분열로 변화시키고 있다. 세 나라 모두 자기편을 확장하고 상대편은 견제해서 블록화된 지정학적 세력 구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라건대 중국몽이 한낱 꿈으로 끝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해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걷히면 좋겠다. 두 나라는 전제정치와 영토확장의 구시대 질서로 돌아가려고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고 거꾸로 돌리려고 한다. 자국민들에게는 물론이고 세계의 안정과 번영을 위협한다. 

그리고 미국역시 복고적 퇴행의 길을 버리고 진보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 민주주의, 인종적 다양성, 기회의 문호개방, 성적 차별 해소 등 미국이 추구해 온 가치를 훼손하는 대신에 고양시켜야 한다.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리 경제가 회복되고 군사력이 증강되어도 2차대전이후의 국제적 리더십을 회복하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트럼프의 재선을 지지하지 않는다. 선동과 거짓으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증오심을 부추기고 미국의 위대함이라는 미사여구 포장으로 표심을 훔치는 지도자를 가진 미국은 미국민과 세계 모두에게 불행이다.

희망과는 반대로 중국몽이 이루어지고 러시아의 영토확장 야욕이 좌절되지 않으면 세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직면할 것이다. 전체주의의 도전이 눈앞에서 벌어지게 되면 미국 또한 트럼프 같은 스트롱맨이 인기를 얻을 것이고 국내외적으로 미국우선정책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조금 더 상상의 날개를 펼치자면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이 동맹을 맺어서 미국과 유럽, 일본의 동맹과 맞붙게 되는 상황이 그려진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했던가? 강대국들의 패권경쟁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 또한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진영통합과 자강이 최우선 아니겠는가.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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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4년08월20일 19시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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